16세기

16세기1501년부터 1600년까지이다.

기원전
40 39 38 37 36 35 34 33 32 31
30 29 28 27 26 25 24 23 2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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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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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주요 사건

주요 인물

년대와 년도

1490년대 1490 1491 1492 1493 1494 1495 1496 1497 1498 1499
1500년대 1500 1501 1502 1503 1504 1505 1506 1507 150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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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0년대 1520 1521 1522 1523 1524 1525 1526 1527 1528 1529
1530년대 1530 1531 1532 1533 1534 1535 1536 1537 153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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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0년대 1550 1551 1552 1553 1554 1555 1556 1557 1558 1559
1560년대 1560 1561 1562 1563 1564 1565 1566 1567 1568 1569
1570년대 1570 1571 1572 1573 1574 1575 1576 1577 1578 1579
1580년대 1580 1581 1582 1583 1584 1585 1586 1587 1588 1589
1590년대 1590 1591 1592 1593 1594 1595 1596 1597 1598 1599
1600년대 1600 1601 1602 1603 1604 1605 1606 1607 1608 1609
1560년 8월 21일 일식

1560년 8월 21일 일식은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를 지나면서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이다. 개기일식은 달의 시직경이 태양의 시직경보다 커서 태양을 다 가릴 수 있을 때 일어난다. 개기일식은 매우 좁은 지역에서만 관측 가능하며, 대부분의 다른 지역에서는 부분일식으로 관측된다.

1598년 3월 7일 일식

1598년 3월 7일 일식은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를 지나면서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이다. 개기일식은 달의 시직경이 태양의 시직경보다 커서 태양을 다 가릴 수 있을 때 일어난다. 개기일식은 매우 좁은 지역에서만 관측 가능하며, 대부분의 다른 지역에서는 부분일식으로 관측된다.

개신교

개신교(改新敎) 또는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는 16세기 서방교회 개혁 찬성파인 교회의 개혁가들의 종교개혁을 통해 생겨난 기독교의 한 전통이다. 11세기 교회 대분열로 공교회(보편교회) 중심이었던 지금의 동방교회에서 서방교회가 분리되었고, 이후 16세기 서방교회내에서 종교 개혁으로 '반대파'인 천주교회와 '찬성파'인 개신교가 분리되면서 기독교의 가장 주된 사상과 종파인 정교회, 천주교회, 개신교회가 형성되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14세

교황 그레고리오 14세(라틴어: Gregorius PP. XIV, 이탈리아어: Papa Gregorio XIV)는 제229대 교황(재위: 1590년 12월 5일 - 1591년 10월 15일/16일)이다. 본명은 니콜로 스폰드라티(이탈리아어: Niccolo Sfondrati)이다.

교황 비오 3세

교황 비오 3세(라틴어: Pius PP. III, 이탈리아어: Papa Pio III, 1439년 5월 29일 ~ 1503년 10월 18일)는 제215대 교황(재위: 1503년 9월 22일 ~ 1503년 10월 18일)이다. 본명은 프란체스코 토데스키니 피콜로미니(Francesco Todeschini Piccolomini)이다.

교황 비오 4세

교황 비오 4세(라틴어: Pius PP. IV, 이탈리아어: Papa Pio IV)는 제224대 교황(재위: 1559년 12월 25일 ~ 1565년 12월 9일)이다. 본명은 조반니 안젤로 데 메디치(이탈리아어: Giovanni Angelo de Medici)이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마지막 회기를 주재하였으며, 그의 조카 가롤로 보로메오는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이끈 주요 인물로서 훗날 시성되었다.

교황 비오 5세

교황 비오 5세(라틴어: Pius PP. V, 이탈리아어: Papa Pio V)는 제225대 교황(재위: 1566년 1월 7일 ~ 1572년 5월 1일)인 동시에 가톨릭교회의 성인이다. 축일은 현대전례력으로는 4월 30일이며, 전통전례력으로는 5월 5일이다. 본명은 안토니오 지슬리에리(이탈리아어: Antonio Ghislieri)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반종교 개혁과 라틴식 로마 전례를 표준화시킨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교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비오 5세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교회박사로 선포하였으며, 저명한 교회음악 작곡가인 조반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를 후원하였다.

추기경 시절 그는 인품에 앞서 교회의 정통 교의를 수호하는 강직한 모습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졌으며, 여덟 명의 프랑스 주교들을 이단자로 기소하였다. 또한 족벌주의 문제에 있어서도 단호하게 대처하였는데, 전임 교황 비오 4세가 13세밖에 안된 자기 친족을 추기경으로 세우고 교황청의 기금을 자기 조카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한 사실을 비오 4세의 면전에서 공개적으로 질책하였다.

정치 분야에서 비오 5세는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잉글랜드의 가톨릭 신자들을 분열시키고 박해했다는 죄목을 들어 그녀를 파문시켰다. 또한 그는 가톨릭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의 위협에 맞서 신성 동맹을 결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오스만 제국이 강대한 군사력으로 유럽을 침략하자, 신성 동맹은 숫자적으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을 패퇴시켰다. 비오 5세는 레판토 해전에서 승전을 거둔 것은 성모 마리아의 도움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기념하여 10월 7일 승리의 성모 기념일로 선포했다.

교황 우르바노 7세

교황 우르바노 7세(라틴어: Urbanus PP. VII, 이탈리아어: Papa Urbano VII)는 제228대 교황(재위: 1590년 9월 15일 - 1590년 9월 27일)이다. 본명은 조반니 바티스타 카스타냐(이탈리아어: Giovanni Battista Castagna)이다.

교황 율리오 3세

교황 율리오 3세(라틴어: Iulius PP. III, 이탈리아어: Papa Giulio III)는 제221대 교황(재위: 1550년 2월 7일 - 1555년 3월 23일)이다. 본명은 조반니 마리아 초키 델 몬테(이탈리아어: Giovanni Maria Ciocchi del Monte)이다.

유능한 외교관으로 두각을 나타낸 그는 교황 바오로 3세가 선종한 후 중도주의적 성향으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으로서 그는 기독교 개혁에 있어 마지못해 단기적인 정책만 실행하였으며, 재위기간 대부분을 유희 생활로 보냈다.

교황 인노첸시오 9세

교황 인노첸시오 9세(라틴어: Innocentius PP. IX, 이탈리아어: Papa Innocenzo IX)는 제230대 교황(재위: 1591년 10월 29일 ~ 1591년 12월 30일)이다. 본명은 조반니 안토니오 파키네티(이탈리아어: Giovanni Antonio Facchinetti)이다.

남인

남인(南人)은 조선 붕당정치의 당파로, 조선 중기 이후 동인이 북인과 남인으로 분파되면서 발생했다. 남인과 북인은 서인에서 갈라진 노론, 소론과 함께 사색당파를 형성했다.

르네상스

르네상스(프랑스어: Renaissance, 영어: Renaissance, 이탈리아어: Rinascimento) 또는 문예 부흥(文藝復興), 학예 부흥(學藝復興)은 유럽 문명사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일어난 문예 부흥 또는 문화 혁신 운동을 말한다. 과학 혁명의 토대가 만들어져 중세를 근세와 이어주는 시기가 되었다. 여기서 문예부흥이란 구체적으로 14세기에서 시작하여 16세기 말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재인식과 재수용을 의미한다. 옛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사상, 예술을 본받아 인간 중심(人間中心)의 정신을 되살리려 하였다. 이 점에서 르네상스는 일종의 시대적 정신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유럽은 르네상스의 시작과 더불어 기나긴 중세시대의 막을 내렸으며, 동시에 르네상스를 거쳐서 근세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르네상스의 정신, 혹은 운동은 이탈리아에서 비롯되었으며, 얼마안가 알프스를 넘어 유럽의 다른 국가, 즉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페인 등지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나라들은 이 운동에 거의 영향을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세기 초 이 운동의 인문주의자들이 종교 개혁의 원동력이 되어 교회 개혁과 학문적 방법에 영향을 주었다.

물염정

물염정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에 있다. 2001년 7월 22일 화순군의 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되었다.

장로교

장로교(Presbyterianism)는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으로 형성된 유럽의 칼뱅주의적 개혁파 가운데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 기간 동안 존 녹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칼뱅주의 성격의 개신교 교파다. 존 녹스는 칼뱅의 제자로 스코틀랜드로 건너와 칼뱅의 종교개혁 사상을 전파하였다. 장로교는 칼뱅의 신학적 전통을 따른다는 점에서 다른 개혁파 교회와 신학에서 거의 같다. 그러나 교회의 치리 구조에서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치리회)가 교회를 다스리되, 개별 교회 만으로 완전한 교회 조직이라고 하지 않고 상회(上會)로서의 노회를 두고, 더 넓은 치리회로서 대회 또는 총회를 두는 계층적 교회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개혁교회와 구별된다. 대한민국에서는 넓은 의미에서는 개혁파(Reformed)와 같은 의미로 또는 한 부분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개혁파 교회는 성공회, 루터교, 재침례파(아나 뱁티스트)와 더불어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형성되었고, 장로교회는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보존되어 오다가, 20세기 초에 주로 미국 남장로교와 북장로교의 선교 과정을 거쳐 한국(당시 조선)에 전파되었다.

조선 광해군

광해군(光海君, 1575년 6월 4일 (음력 4월 26일) ~ 1641년 8월 7일 (음력 7월 1일))은 조선의 제15대 임금이다. 청나라(후금)와 명나라와의 외교관계에서 중립적인 중립외교를 펼쳐 조선이 자주적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었으나, 자기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반대했던 반대세력을 숙청하다가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왕후를 폐위시키는 등 폐모살제(廢母殺弟)때문에 서인세력과 힘을 합치던 능양군 인조가 반정을 일으켜 서인세력에 의해 강제로 폐위되어 유배형에 처해졌다.

1641년 제주에서 사망.

조선 명종

명종(明宗, 1534년 7월 3일 (음력 5월 22일)~ 1567년 8월 2일 (음력 6월 28일))은 조선의 제13대 임금이다.

조선 인종

인종(仁宗, 1515년 3월 10일 (음력 2월 25일) ~ 1545년 8월 7일 (음력 7월 1일))은 조선의 제12대 임금(재위 1544년 ~ 1545년)이다.

조선 중종

중종(中宗, 1488년 4월 16일 (음력 3월 5일) ~ 1544년 11월 29일 (음력 11월 15일), 재위: 1506년~1544년)은 조선의 제11대 왕이다. 휘는 역(懌), 본관은 전주 이씨(全州 李氏), 자는 낙천(樂天)이며, 사후 시호는 중종공희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中宗恭僖徽文昭武欽仁誠孝大王)이다. 묘호는 중종(中宗)으로 결정되었는데 연산군으로부터 나라를 구하여 중흥시켰다는 의미로 정해진 것이다. 반대로 38년의 재위기간 중에 뚜렷한 치적을 남기지는 못하였기 때문에 그저 가운데 중(中)자를 썼다는 해석도 있다. 인종은 '종'(宗) 자로는 부족하다 하여 중조(中祖)를 제안했는데, 중종을 연산군 대신 잇는 왕으로써 '조'(祖)를 붙이는 것은 맞지 않다는 반대를 받아들여 거두었다. 성종의 차남으로 정현왕후 소생이다.

1506년 9월 2일에서 1544년 11월 29일까지 재위하는 동안 1506년 9월 2일에서 이듬해 1507년 8월 8일까지 좌의정 박원종(朴元宗)이 1차 섭정하였고 1507년 8월 8일에서 1509년 9월 27일까지 영의정 유순(柳洵)이 2차 섭정하였으며 1509년 9월 27일에서 이듬해 1510년 3월 6일까지 영의정 박원종이 3차 성향 대리청정하였고 1510년 3월 6일에서 1510년 12월 6일까지 영의정 김수동이 4차 성향 대리청정하였으며 1543년 3월 16일에서 친정하였고 1543년 3월 16일에서 1544년 11월 28일 왕세자에게 선위(양위)할 때까지 장남 왕세자 이호(훗날 인종)가 마지막 5차 대리청정하였으며 선위한 다음날인 1544년 11월 29일 승하하였다.

반정으로 집권한 첫 번째 군주였다. 그러나 사적인 욕심이나 원한으로 반정을 일으킨 세조 찬위, 인조반정과는 다른 각도에서 평가되나, 전반에는 공신 세력의 전횡에, 후반에는 외척 세력의 전횡에 휘둘렸다. 하지만, 김안로나 조광조의 숙청 때 중종의 모습은 사관이 '마치 두 임금에게서 나온 일 같다.'라고 하거나, '이때 양연이 대사헌으로 이 의논(김안로의 처벌)을 먼저 주장한 것은 왕의 밀지(密旨)를 받았기 때문이라 한다.'라고 했듯이 단순히 신권에 의해 휘둘린 왕은 아니었다. 재위 중반에 조광조등의 사림을 일시에 기용하였으나 공훈삭제와 관련한 공신세력들의 반발과 자신의 왕권의 위협에 대해 우려하여 사림 세력들을 기습적으로 숙청한다. 이 후에는 남곤이 정국을 주도하고, 남곤 사후에는 김안로가 주도하지만, 김안로의 지나친 권력쟁투와 횡포로 인해 위협을 느껴 조광조와 마찬가지로 김안로를 기습적으로 제거한다. 이후에는 외척에게 정사를 맡긴다. 이는 후일 대윤, 소윤간의 정쟁의 원인이 된다.

철학

철학(哲學, 고대 그리스어: φιλοσοφία, 영어: philosophy)은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 원리 즉 인생관, 세계관 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또한 존재, 지식, 가치, 이성, 인식 그리고 언어, 논리, 윤리 등의 일반적이며 기본적인 대상의 실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말은 프로타고라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철학적 방법이란 질문, 비판적 토론, 이성적 주장, 그리고 체계적 진술을 포함한다.

철학(Philosophy)이라는 용어는 고대 희랍어의 필로소피아(φιλοσοφία, 지혜에 대한 사랑)에서 유래하였는데, 여기서 지혜는 일상 생활에서의 실용하는 지식이 아닌 인간 자신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를 관조하는 지식을 뜻한다. 이를테면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이 포함된다. 이런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철학은 어느 문화권에나 오래 전부터 존재하여 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실 학문 그 자체를 논하는 단어였고 전통상으로는 세계와 인간과 사물과 현상의 가치와 궁극적인 뜻을 향한 본질적이고 총체적인 천착을 뜻했다. 동양의 서구화 이후 철학은 대체로 고대 희랍 철학에서 시작하는 서양철학 일반을 지칭하기도 하나 철학 자체는 동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이에 더하여 현대 철학은 철학에 기초한 사고인 전제나 문제 명확화, 개념 엄밀화, 명제 간 관계 명료화를 이용해 제 주제를 논하는 언어철학이나 논리학등에 상당한 비중을 둔다.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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