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

파라오(Pharaoh)는 고대 이집트의 정치적·종교적 최고 통치자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집트의 또는 왕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원래는 “큰 집”이라는 뜻으로 이집트 왕의 궁정, 왕궁을 나타내는 말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왕과 동격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호루스의 현신으로 받아들여진다. “페르-오”라는 “성스러운 권좌”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1]

또한 파라오는 인간이 아닌 신으로서 숭배되기도 하며, 이 때문에 파라오가 죽으면 육체를 모두 소진하고 영혼으로서 다스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파라오가 영원히 사는 궁궐의 의미로서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어원은 처음에 파라오는 왕궁을 나타내는 말이었지만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가 파라오로 즉위하여 이집트를 통치한 이후의 모든 이집트 군주들은 군주의 명칭을 파라오라고 불리었다.

Pharaoh
파라오의 일반적 묘사.

같이 보기

각주

  1. 네이버 백과사전
군주제

군주제(君主制)는 소수자의 지배인 귀족제나 다수자의 지배인 민주제와 대비되는 세습적 단독수장에 의해서 통치되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노예제 사회 때부터 존재했었는데 그 내용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봉건제 말기의 절대군주제는 그 전형이며 19세기 이후에 그 권력을 제한한 입헌군주제가 있다.군주제에서는 ‘국왕’이나 ‘황제’ 또는 그밖에 군주에 해당하는 직위(예를 들면 술탄, 칸, 파라오 등)를 가지는 사람이 국가 원수가 된다. 왕위 계승률에 따라 세습하는 경우가 많으나, 군주를 선거로 뽑는 경우도 있다. 입헌 군주제와 절대 군주제로 나뉘는데, 입헌 군주제도 직접 투표에 의해 선출된 의회가 국정을 맡고, 군주는 상징에 머무르는 영국형과, 의회와 헌법은 있으나 군주의 권한이 강력한 프로이센형으로 나뉜다.

왕,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은 모두 황제가 아닌 국가의 원수를 말한다. 왕과 다른 영주와의 차이는 왕은 왕국에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의 작위를 줄 수 있으나 다른 영주들은 이러한 작위를 신하에게 줄 수 없다. 즉 상대적으로 왕국은 독립 국가이며, 공, 후, 백, 자, 남작은 예속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권에서는 이슬람 전체의 군주는 원래 칼리프였다. 칼리프는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전체 이슬람 세계의 군주이다. 칼리프 중에서 무함마드의 혈통만을 인정하는 시아파와 무함마드의 혈통이 아닌 칼리프도 인정하는 수니파가 있다. 술탄은 칼리프 제하에서 속령이나 제후국의 총독을 겸한 왕이었다. 왕이라고는 하나, 총독과 왕의 중간 성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칼리프가 언제든지 해임할 수 있는 왕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칼리프가 사라진 후에는 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이탈리아 등의 군주제가 타도되어 현재는 몇몇 국가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베레니케 3세 필로파토르

베레니케 3세 필로파토르 혹은 클레오파트라 베레니케(그리스어:Βερενίκη Γ', 영어:Berenice III Philopator/Cleopatra Berenice, 기원전 120년 - 기원전 80년)는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여왕이다. 아버지는 프톨레마이오스 9세 라튀로스이며 어머니는 클레오파트라 세레네 1세이다. 프톨레마이오스 10세 알렉산드로스 1세의 질녀이며 아내이다. 또한 프톨레마이오스 11세 알렉산드로스 2세의 아내가 되기도 한다.

베레니케 4세 에피파네이아

베레니케 4세 에피파네이아(그리스어:Βερενίκη Δ', 영어:Berenice IV Epiphaneia, 기원전 77년 - 기원전 55년)는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 여왕이다. 아버지는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울레테스이며 어머니는 클레오파트라 5세 트뤼파이나(혹은 6세)이다.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7세의 이복 누이이다.

아크나톤

아케나텐(Akhnaton) 또는 아크나톤(Akhenaten)은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로, 출생명 아멘호테프는 '아멘이 만족한다' 라는 뜻이다. 재위 5년에 아케나텐(아텐의 영광)으로 개명하였는데 개명 이전의 이름(출생명)은 아멘호테프였으므로 아멘호테프 4세라고도 부른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 1350년 ~ 기원전 1334년이다. 아멘호테프 3세(Amenhotep III)와 그의 제1왕비 티예(Tiye)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고, 왕비는 네페르티티(Nefertiti)이다.

아크나톤은 아멘(Amen, 테베의 수호신)에게 제사 지내는 신관들의 세력이 왕권을 억제할 정도로 커지는 것을 감지하고 그것을 제어하려 했다. 그래서 다신교인 종래의 이집트의 종교를 금지하고 태양신 아톤을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새로운 일신교를 도입했다. 또한 아멘 숭배와의 완전한 단절을 위해 수도를 테베에서 오늘날의 알-아마르나 지역으로 옮기고 아케타텐(Akhetaten, “아텐의 지평선”이라는 뜻)이라 이름지었다. 그러나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인 것은 상류층 뿐이었고, 아크나톤이 죽은 뒤 아멘 신앙이 부활하였으며 수도도 다시 테베로 돌아갔다.

알렉산드로스 3세

알렉산드로스 3세 대왕(그리스어: Αλέξανδρος Γ' ο Μέγας 알렉산드로스 감마 호 메가스[*], 라틴어: Alexander III Magnus 알렉산데르 테르티우스 마그누스[*], 아랍어: الإسكندر الثالث الأكبر 알 이스칸다르 알 탈리트 알 아크바르[*] 기원전 356년 7월 20일 ~ 기원전 323년 6월 10일) 또는 알렉산더 대왕은 고대 그리스 북부의 왕국 마케돈의 아르게아다이 왕조 제26대 군주이다.

그리스 여러 도시 국가와 오리엔트 지방에 대한 공격적 팽창으로 패권을 잡아 마케돈의 바실레우스(군왕), 코린토스 동맹의 헤게몬(패자), 페르시아의 샤한샤(왕중왕), 이집트의 파라오를 겸임하고 스스로를 퀴리오스 티스 아시아스(아시아의 군주)라고 칭하였다.

기원전 356년 펠라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로스는 20세의 나이로 아버지 필리포스 2세를 계승해 바실레우스가 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치세 기간 대부분을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미증유의 군사 정복 활동으로 보냈다. 30세가 되었을 때 그리스를 시작으로 남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인도 북서부에까지 확장되었다. 그 이전까지 고대 서양에 전례가 없던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는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고,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사 지도자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유년기의 알렉산드로스는 16세가 될 때까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기원전 336년 부왕 필리포스가 암살된 뒤 왕위를 계승한 알렉산드로스는 필리포스가 개척한 부강한 왕국과 숙련된 군대를 물려받았다. 아버지에 이어 코린토스 동맹의 패자로 추대된 알렉산드로스는 그 권위를 이용해 팽창 정책을 시작했다. 기원전 334년 그는 소아시아에서 군림하던 아케메네스 제국(페르시아 제1제국)을 침공하여 10년에 걸친 원정을 시작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수스 전투와 가우가멜라 전투 등 몇 차례의 결정적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분쇄했고, 마침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를 죽음으로 몰아넣어 페르시아 제1제국을 멸망시켰다. 이 시점에서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돈 제국의 강역은 아드리아 해에서 인더스 강에 이르렀다.

"세계의 끝"을 보겠다는 열망으로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26년 인도를 침공했으나 병사들의 반발로 회군하였다. 바빌론을 제국의 수도로 삼기 위한 개발을 계속하던 와중이었던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는 계획했던 아라비아 반도 원정을 시작하지 못한 채 바빌론에서 사망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은 그가 죽자마자 일련의 내전으로 산산이 조각났고, 조각난 각각의 지역은 알렉산드로스의 부하 장군들과 참모들이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를 자칭하면서 각각 왕을 칭하고 할거하였다. 이들을 디아도코이라 한다.

알렉산드로스 4세

알렉산드로스 4세(고대 그리스어: Αλέξανδρος Δ, 고대 그리스어: Aleksandros IV, 기원전 323년 - 기원전 309년, 재위 동일)은 마케도니아 왕국 아르게아스 왕조의 왕으로 알렉산드로스 3세(대왕)와 왕비 록사네의 적자로 아르게아스 왕조의 마지막의 마케도니아 왕이다.

카이로

카이로(영어: Cairo, 아랍어: القاهرة, al-Qāhirah 알카히라[*], 콥트어: ⲕⲁϣⲣⲱⲙⲓ, 문화어: 까히라)는 이집트와 아랍 연맹의 수도이며, 나일강의 물줄기가 여러 지류로 갈라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과 중동 지역 최대의 도시이다. 서기 642년에 건설된 도시로, 도시권의 인구는 1700만에 달한다.

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

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그리스어: Κλεοπάτρα Φιλοπάτωρ, 영어: Cleopatra VII Philopator, 기원전 69년 - 기원전 30년)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여성 파라오이다.

파라오 목록

이집트 파라오 목록은 기원전 30년,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이집트가 로마의 속주가 될 때까지 이집트를 지배하였던 파라오들의 목록이다.

파라오 하운드

파라오 하운드(Pharaoh Hound)는 말티즈 품종의 개이며, 몰타의 나라개(국견)이다. 몰타어로는 Kelb tal-Fenek라고 하며 이는 "토끼개"를 뜻한다. 전통적으로는 몰타 열도에서 토끼를 사냥하기 위해 사용된다.DNA 분석에 따르면, 품종 이름 중 "파라오"라는 이름에서와 달리 이 품종은 고대 이집트와는 관련이 없다. 그러나 유명한 신화에 따르면 이 품종은 고대 이집트의 사냥개들 중 하나인 테셈(Tesem)에서 비롯된다. 일부는 이 품종과 고대 이집트 무덤의 벽화에서 발견되는 개들 간의 유사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 이 신화는 파라오 하운드가 페니키아인에 의해 몰타로 들여왔고 몰타에서 2,000년 이상 존재했다고 넌지시 이야기한다.이 품종은 시각 수렵견 그룹의 일원으로 분류되어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10세 알렉산드로스 1세

프톨레마이오스 10세 알렉산드로스 1세(그리스어:Πτολεμαίος Ι' Αλέξανδρος, 영어:Ptolemy X Alexander I, ? - 기원전 88년는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이다. 아버지는 프톨레마이오스 8세 퓌스콘이고 어머니는 클레오파트라 3세이다. 형인 프톨레마이오스 9세 소테르 2세 라튀로스와 왕위를 놓고 다퉜다.

프톨레마이오스 13세 테오스 필로파테르

프톨레마이오스 13세 테오스 필로파테르(그리스어: Πτολεμαίος Θεός Φιλοπάτωρ, 기원전 62년경 – 기원전 47년)는 기원전 51년부터 이집트를 지배한 파라오로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왕들 중 하나이다. 자신의 누나인 클레오파트라 7세와 권력을 놓고 왕위쟁탈전을 벌였다. 별칭인 테오스 필로파테르는 "아버지를 사랑한 신"이라는 뜻이다.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이집트의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우레테스의 아들로 아직 소년이었던 기원전 51년 봄 아버지의 뒤를 이었는데 누나인 클레오파트라 7세와 결혼함으로써 공동통치자가 되었고 포티우스가 섭정의 역할을 맡았다. 기원전 48년 섭정 포티우스와 프톨레마이오스는 클레오파트라가 단독 여왕의 자리를 노리자 그녀를 하야시키고 이집트에서 추방하였다.

마침 동맹국인 로마에서 내전이 일어나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에게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패하고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몸을 의탁하자 처음에는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48년 9월 28일 폼페이우스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자 프톨레아미오스의 부하들은 그를 죽여버렸고 목을 잘라 추격해온 카이사르에게 바쳤다. 이는 카이사르의 승리를 보고 그의 환심을 사기위하여 폼페이우스를 살해한 것이었으나 카이사르는 오히려 화를 내고 울면서 폼페이우스를 성대히 로마식으로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 사이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로 몰래 돌아와 카이사르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했다.

10월 4일 알렉산드리아에 소수의 병력으로 도착한 카이사르는 곧바로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사이를 중재하여 다시 공동통치를 하도록 결정했으나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에 반발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자신을 보필하던 아킬라스와 포티우스의 사주를 받고 수적으로 열세인 카이사르 군을 공격했다. 카이사르는 구원병을 요청하고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방전을 펼쳤고 이듬해인 기원전 47년 구원병이 도착하자 나일강의 델타지역에서 프톨레아미오스군을 무찔렀다. 이때 패주하는 군대의 혼란 속에 프톨레아미오스도 나일강에서 익사하고 말았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 (그리스어: Πτολεμαῖος Σωτήρ, 기원전 367년 — 기원전 283년) 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의 마케도니아 왕국의 부하 장군으로 알렉산드로스의 사후 그의 뒤를 이은 이른바 디아도코이 중의 한사람으로 기원전 323년부터 이집트의 총독이 되었고 기원전 305년 통치자가 되었다. 이집트의 헬레니즘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창시자였다. 그의 별칭인 소테르는 "구원자"라는 뜻이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그리스어: Πτολεμαῖος Φιλάδελφος, 기원전 309년 - 기원전 246년)는 기원전 283년부터 기원전 246년까지 통치하였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집트의 왕이었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창시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의 아들이며, 코스의 필리타스에게 교육받았다. 그에게는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라는 배다른 형이 있었는데, 이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는 기원전 281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이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 에우에르게테스

프톨레마이오스 3세(그리스어: Πτολεμαῖος Εὐεργέτης, 기원전 284년경 ~ 기원전 222년)은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의 왕이다 (재위 기원전 246-기원전 221).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아들로 페르시아에 빼앗겼던 이집트의 보물들과 이집트 신들의 신상들을 다시 찾았으며, 신전들에게 기부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도서 수집에도 노력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 있어서 지리학·천문학이 가장 번영한 시기를 이루었다.

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토르

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토르(그리스어:Πτολεμαίος Δ' Φιλοπάτωρ, 영어:Ptolemy IV Philopator, ? - 기원전205년?)는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이다. 별칭은 필로파토르라고 불렸다. 그 뜻은 주인(아버지)을 좋아한다는 의미이다.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그리스어:Πτολεμαίος Ε' Επιφανής, 영어:Ptolemy V Epiphanes, 기원전 210년 - 기원전 181년)는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이다. 재위기간은 기원전 204년에서 기원전 181년이다. 에피파네스는 “현신(現神)왕”이라는 뜻이다.

프톨레마이오스 9세 라튀로스

프톨레마이오스 9세 소테르 2세 라튀로스(그리스어:Πτολεμαίος Θ' Σωτήρ Β' Λάθυρος, 영어:Ptolemy IX Soter II Lathyros, ? - 기원전 81년)는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이다. 아버지는 프톨레마이오스 8세 퓌스콘이며 어머니는 클레오파트라 3세이다. 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0세 알렉산드로스와 지속적으로 왕위다툼을 하였다. 여동생인 클레오파트라 4세, 그리고 클레오파트라 세레네 1세와 결혼했다. 프톨레마이오스 9세의 별칭인 라튀로스는 누에콩이라는 의미이다.

필리포스 3세

필리포스 3세(고대 그리스어: Φίλιππος Γ', 기원전 359년 - 기원전 317년 12월 25일)는 마케도니아 왕국 아르게아스 왕조의 왕(재위 : 기원전 323년 - 기원전 317년)이다. 본명은 아리다이오스(Αρριδαίος)이며, 필리포스 2세의 서자로 알렉산더 3세(알렉산더 대왕)의 이복형으로 알렉산더의 명목적인 후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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