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클라데스 문명

키클라데스 문명(Cycladic civilization), 키클라데스 문화 또는 키클라데스 시대에게 해에 있는 그리스의 군도인 키클라데스 제도에 기원전 3000년경부터 2000년경 동안 존재하였던 청동기 시대 초기의 문명이다.

Aegean Sea with island groups labeled
에게 해 지도 - 키클라데스 제도(지도에서 "Cyclades")가 지도의 가운데에 있다.
8월 4일 체제

8월 4일 체제는 요안니스 메탁사스의 권위주의 정권으로 1936년부터 1941년까지 그리스를 지배하였다. 이 정권이 프랑코의 스페인이나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이탈리아나 독일 나치즘 등 당시 타국 권위주의 정권과 연관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리처드 클럭은 이 정권이 "표면적으로 파시즘의 가면"을 썼으며 메탁사스는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한 동경을 숨기지 않았으나", "정확하게 보자면 파시스트가 아닌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분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Ancient Greece)란 그리스의 역사 가운데 기원전 1100년경부터 기원전 146년까지의 시대를 일컫는다. 기원전 1100년경은 미노스 문명(3650~1170 BC), 키클라데스 문명(3300~2000 BC), 그리고 미케네 문명(1600~1100 BC)으로 특징지어지는 에게 문명(3650~1100 BC) 즉 그리스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그리스 암흑기(1100~750 BC)가 시작되던 때로, 도리스인의 침입이 있었다고 보는 때이다. 기원전 146년은 코린토스 전투로 고대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때이다. 일반적으로 그리스 고전기(Classical Greece, 510~323 BC)를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시대로 본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동족 의식을 가지고 부분적으로 결합을 이루었으나, 폴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성이 강하여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려는 뜻이 없었고 필요시 여러 폴리스들 간에 동맹을 맺는 형식을 취하였다. 이러한 도시 국가 체제는 당시 세계의 다른 여러 지역에서는 거대한 제국 또는 왕국이 형성되었던 것과는 다른 그리스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323~146 BC) 이전까지 유지되었다.

보통 고대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기틀을 다지고 서남 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전역의 문화에 큰 영향을 준 풍부한 문화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리스 문화는 로마 제국(27 BC~476/1453 AD)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로마인들은 지중해 지역과 유럽에 그리스 문화를 발전하여 퍼뜨렸다. 고대 그리스 문명은 언어, 정치, 교육 제도, 철학, 과학, 예술에 크나큰 업적을 남겼고 이 지역들에서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이슬람 황금 시대(9~13/15 세기)와 서유럽 르네상스(14~16세기 말)를 촉발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또 18세기와 19세기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다양한 신고전주의 부활 운동에서도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되었다

고전기 그리스

고전기 그리스는 매우 발전된 문명으로서, 고대 로마와 서구 세계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현대 정치, 예술 사상, 과학 사상, 문학, 철학의 상당 부분이 그리스 고전기에서 유래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예술, 건축, 문화의 측면에서 고전기란 기원전 6세기 대부분, 5세기, 4세기의 시대를 이른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510년에 아테나이의 마지막 참주가 몰락한 시대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기원전 323년까지의 시대로 잡는다.)

그리스 군사 정권

그리스 군사 정권 또는 대령들의 정권(그리스어: Το καθεστώς των Συνταγματαρχών) 또는 "7년의 세월"(Η Επταετία)은 1967년부터 1974년까지 그리스를 지배한 우익 군사 정부를 일컫는다. 1967년 4월 21일 아침에 그리스 육군의 일부 대령들이 군사 정변을 일으키면서 시작됐으며, 1974년 7월 24일에 종식됐다.

그리스 암흑기

그리스 암흑기(기원전 1200년경~ 기원전 800년경)는 고대 그리스 역사상의 한 시대인 바다 민족의 분파로 추정되는 도리아인의 침략으로 인해 미케네 문명이 멸망한 기원전 12세기부터 새로운 도시 국가들이 형성되는 기원전 8세기까지를 말한다.

고고학적 증거를 살펴보면 같은 시기에 동부 지중해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문명이 붕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케네 문명의 거대한 궁전이나 대다수의 도시들이 이때 파괴되어 버려졌다. 또 취락의 규모가 크게 작아졌고, 취락의 숫자도 줄어든 것으로 보아 이민족의 침략 외에도 기근으로 인한 인구 감소도 극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케네 문명이 붕괴할 무렵에는 히타이트 문명도 완전히 분열되었고, 트로이아에서 가자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도시가 파괴되었다. 이 시기에는 그리스에서 문자가 쓰이지 않았으며, 의상들은 허름해졌으며 그리스 도기의 장식도 단순해지고 도기들의 대다수가 기하학 무늬를 띄고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기원전 750년까지 해외의 문명국과 모든 접촉이 끊겨져서 문화 발전도 퇴보했다고 여기고 있지만, 에우보이아의 레프칸디 유적에서 나온 유물들을 보면 기원전 800년경부터 이 지역이 동방 지역, 특히 레반트 해안과 문화적ㆍ상업적으로 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그리스 도기의 장식이 크게 화려해졌음을 알수 있으며 그리스 문자 역시 다시 사용되고 시작했음을 알수 있다.

그리스 왕국

그리스 왕국(그리스어: Βασίλειον της Ελλάδος 바실리온 티스 엘라도스[*])은 1832년 유럽 열강(대영 제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이 런던 회의로 그리스에 세운 나라이다. 그리스 왕국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조약에서 오스만 제국에서 완전히 독립을 확보하여 국제적으로 승인받았으며, 15세기 중반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한 이래 최초의 완전한 그리스의 독립 국가를 이루었다. 왕국은 그리스 독립 전쟁 당시 그리스 과도 정부를 계승하였으며, 1924년 왕정이 폐지되었다가(그리스 제2공화국) 1935년에 복고되었으며, 군사 정권의 7년 독재를 거친 후 1974년에 다시 폐지되어 오늘날의 그리스 제3공화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1832년부터 1863년까지는 독일계인 비텔스바흐 왕가의 오톤이 왕국을 다스렸으며, 그 이후부터 1974년까지는 덴마크계 글뤽스부르크 왕가 출신이 왕이 되었다.

그리스 제2공화국

그리스 제2공화국(-第二共和國 그리스어: Β' Ελληνικ? Δημοκρατ?α)는 1924년부터 1935년까지 그리스에 있던 정권을 이른다. 제2공화국 이전에는 글뤽스부르크 왕가의 "군주제 공화국"의 시대였으며, 제2공화국은 이후 군사 정변이 일어나 붕괴되고 군주정이 복고되었다. 제2공화국은 근대 그리스 역사에서 그리스 혁명 당시 의회와 임시 정부가 있던 그리스 제1공화국 이후 두 번째로 왕이 없던 시기이다.

그리스 제2공화국은 소아시아 작전에서 그리스가 터키에 패배하고 왕당파 정부가 매우 지탄을 받던 이후 1924년 3월 25일에 선포되었다. 오래 존속하지 못한 제2공화국은 불안정한 정권이었다. 그리스 사회는 국론 분열로 친공화파인 베니젤로스파와 더불어 공화국의 적법성도 인정하길 거부했던 인민당으로 대표되는 군주정파가 서로 갈등하였다. 그리스어 문제와 건축 양식 등 문화나 사회 문제에서도 양 세력은 서로 대립하였다. 사회 갈등에 군부의 정치 개입까지 더해져 몇 차례 쿠데타 시도가 일어났다. 당시 경제는 10년간의 전쟁으로 피폐해졌으며,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으로 국내에 들어온 150만 난민들을 원주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1928~1932년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의 개혁주의 정부가 노력했으나, 대공황으로 그리스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고 만다. 1933년 선거에서 인민당이 승리하고, 베니젤로스파의 쿠데타가 두 번 실패하면서 요르요스 2세가 복위하였다.

그리스와 그리스 세계의 경제사

그리스 세계의 경제사는 몇 천 년에 걸쳐 많은 현대의 민족 국가를 포함한다.

그리스 세계의 중심의 초점은 자주 바뀌기 때문에 시간과 같은 관련 모든 분야에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의 경제 역사는 1829년부터의 그리스 민족 국가의 경제 역사를 의미한다.

라틴 제국

로마니아 제국(라틴어: Imperium Romaniae) 또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라틴 제국(프랑스어: Empire latin de Constantinople)은 비잔티움 제국의 도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세워진 십자군의 제국을 말한다. 1204년에 제4차 십자군 원정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사주를 받고 이슬람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략하여 비잔티움 제국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제국을 세웠다. 십자군은 1204년 5월 16일 플랑드르 백작인 보두앵 1세를 초대 황제로 세웠고 이후 57년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지배했다. 라틴 제국의 황제가 직접적으로 통치한 지역은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보스포루스 해협연안으로 국한 되지만, 그리스 연안과 에게해지역에 여러 봉국을 두었다. 아테네 공국 등의 라틴 제국의 봉국들 또한 넓은 의미에서 라틴 제국의 일부로 여겨진다.

마케도니아 왕국

마케도니아 (그리스어: Μακεδονία) 는 그리스 반도의 최북방에 있던 고대 왕국으로, 서쪽으로는 에페이로스, 북쪽으로는 파이오니아, 동쪽으로는 트라케(트라키아), 남쪽으로는 테살리아 지방과 접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리스를 비롯하여 인더스 강까지 진출하면서, 마케도니아는 짧은 기간 동안 고대 근동에서 헬라스의 초강대국이 되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그리스 역사의 헬레니즘 시대가 시작된다.

미노스 문명

미노스 문명(Minoan civilization, 기원전 3650년경~기원전 1170년경), 미노아 문명 또는 크레타 문명은 그리스의 크레타섬에 있었던 그리스 청동기 시대의 고대 문명이다. 미노스 문명은 기원전 2700~1500년경 동안 번성했다. 그 후로는 미케네 문명이 크레타섬의 미노스 문명의 영역을 지배하였다. 미노스 문명은 20세기 초에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반스의 발굴에 의해 재발견되었으며, 1939년 윌 듀런트는 미노스 문명을 "연속된 유럽의 첫 고리"라고 하였다.미노스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칭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미노스의"를 뜻하는 "미노안(Minoan)"이라는 낱말은 아서 에반스가 크레타 섬의 전설적인 왕의 이름인 미노스(Minos)에서 만들어낸 말이다. 미노스는 그리스 신화의 미로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인데, 아서 에반스는 그 곳이 크노소스라고 비정했다. 혹자는 시리아 마리(Mari) 문서고에 나오는 고대 이집트의 지명 "케프티우"(Keftiu, *kaftāw)와 셈어 "카프토르"("Kaftor" 혹은 "Caphtor") 그리고 "카프타라"(Kaptara)가 크레테 섬을 이르는 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노스 문명이 멸망한 지 수 백년 뒤에 나온 오디세이아에는 크레테 원주민을 "에테오크레테 사람"(Eteocretans, "진짜 크레테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아마도 미노스인의 후손일 것이다.

미노스 문명의 궁전들은 이 섬에서 발굴된 유적 중 가장 유명한 건물이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거대한 장서고를 통해 이 곳이 행정 기능을 담당하는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발굴된 각 궁전은 제각각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다른 건물들과 분리되어 있다. 궁전은 내외부 계단, 작은 우물, 육중한 기둥, 창고와 정원을 갖춘 다층 건물도 있다.

미노스 사람들은 미케네 그리스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데, 가령 초기 그리스의 문자인 선형 B 문자는 미노스 문명의 선형 A 문자를 받아들인 것이다.

미케네 문명

뮈케나이 문명 또는 미케네 문명은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북동부 아르골리스의 미케네의 유적지에서 이름을 따온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일컫는다. 아테나이, 필로스, 테바이, 티린스도 미케네 문명의 주요 영역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청동기 시대 말기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등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신화가 탄생한 시기이며, 고대 그리스의 최대 전성기에 해당한다.

무역의 혜택을 입은 미노스 문명과 달리 미케네인들은 전쟁과 무역을 통해 발전했다.

비잔티움 그리스

비잔티움 그리스에서는 비잔티움 제국 지배 하의 그리스를 적는다.

에게 문명

에게 문명은 그리스와 에게 해에 있었던 청동기 시대 문명이다. 에게 문명은 서로 교류하던 크레타 섬, 키클라데스 제도, 그리스 본토 세 개별 지역의 문명을 이르는 말이다. 청동기 시대 초기에 크레타 섬에 미노스 문명—크레타 문명이라고도 한다—이 들어섰으며, 키클라데스 제도와 그리스 본토에는 각자 고유한 문화가 있었다. 초기 헬라딕 시대에 키클라데스 문명은 그리스 본토까지 영토를 확장하였고, 그리고 중기 미노스 시대에는 크레타 섬에도 영향이 미쳤다. 기원전 1450년(후기 헬라딕, 후기 미노스 시대)부터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이 크레타에 진출하였다.

오스만령 그리스

오스만령 그리스(터키어: Osmanlı döneminde Yunanistan)는 14세기부터 1821년 근대 그리스가 독립을 선언하기 전까지의 오스만 제국 영토를 말한다. 그리스에서는 이 시기를 투르크인의 지배(그리스어: Τουρκοκρατία)로 부른다.

1100년이 넘도록 그리스어권 세계 대부분을 지배하였던 비잔티움 제국은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약탈한 이후로 크게 약화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그리스에 진출하기 전에 북쪽의 세르비아인과 싸워 승리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1317년에 마리차 강에서 부카쉰 므르냐브체비치가 이끄는 세르비아 군대를 처음으로 무찔렀다. 또 1389년에 코소보 전투에서 오스만이 또 승리를 거두었다.

더 이상 세르비아인의 위협이 없어지자, 오스만 제국은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하였으며, 남쪽의 그리스 반도로 진출하여 1458년에 아테네를 함락하였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바깥의 그리스 사람들은 1460년까지 버텼으며, 일부 섬 지역은 베네치아인과 제노바인들이 지배하였으나, 1500년에 그리스의 평야와 섬 대부분의 땅이 오스만 제국의 손에 넘어갔다. 그리스의 산지 지방은 대개 손이 닿지 않았으며, 외국의 지배를 피해 달아난 그리스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키프로스는 1571년에 점령되었으며, 베네치아는 1670년까지 크리티 섬을 점유하였다. 이오니아 제도는 오스만의 지배 기간이 무척 짧았는데, 케팔로니아 섬은 1479년에서 1481년까지, 그리고 1485년에서 1500까지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으며, 대개 베네치아 땅으로 남았다.

카이로네이아 전투

카이로네이아 전투(기원전 338년)는 보이오티아의 카이로네이아 근교에서 벌어진 전투로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가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이 아테나이-테바이 연합군을 상대로 싸워 압도적으로 승리한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필리포스는 테살리아, 에페이로스, 아이톨리아, 북부 포키스, 에피네미디아 로크리스 등과 동맹을 맺어 아테나이와 테바이의 연합군을 물리쳐 그리스에서 마케도니아의 주도권을 잡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아테나이군과 테바이군은 전열의 중앙에 배치되었다. 필리포스는 마케도니아군의 우익을 지휘하고, 당시 18살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좌익을 지휘하였다. 유명한 기병대 헤타이로이는 마케도니아군 후위에 배치되었다.

테바이 패권

테바이 헤게모니(패권을 뜻함)는 테바이가 기원전 371년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시작되었고, 기원전 362년 만티네이아 전투에서 펠로폰네소스 연합군에 패배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비록 테바이가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결국에서는 기원전 346년 부상하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힘에 밀려 잠식당하고 말았다.

테바이가 이렇게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지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통해 아테네의 힘이 붕괴된 것과 스파르타의 인구 감소에 의한 약화를 통해, 그리고 결정타를 먹이지 못한 코린토스 전쟁(기원전 395년 - 386년)과 같은 외적인 요인이 컸다. 내부적으로 테베는 두 가지 한정적인 군사적 이익을 누렸다.

당시 과두정을 담당했던 에파메이논다스와 펠로피다스와 같은 테바이 지도자들의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시행하였고, 어떤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 두 지도자들은 테바이 중장보병에 대한 전술적 개선을 이뤄냈다. (더 길어진 창과 창병의 쐐기형 대형의 이용 등)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적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었다.

프랑크인의 지배

프랑크인의 지배(그리스어: Φραγκοκρατία, Frangokratia) 혹은 라틴인의 지배(그리스어: Λατινοκρατία, Latinokratia)는 그리스의 역사에서 제4차 십자군(1204년) 이후 그리스의 비잔티움 제국 영토에 여러 서유럽의 십자군 국가가 들어선 시대를 일컫는다. 이 용어는 정교도 그리스인(그리고 대부분의 동부 지중해 사람들)이 가톨릭 계통 서유럽인들을 "라틴인" 혹은 "프랑크인"으로 부른데서 나왔다. 프랑크인의 지배 기간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프랑크인 나라들은 여러 나라로 갈라져 주인이 바뀌면서 정치적 상황이 매우 불안정했으며, 대부분 그리스인의 후계 국가가 수복했다. 이오니아 제도와 베네치아 공화국이 지배하던 외지 항구 몇 곳을 제외하고는 프랑크인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 지역은 14~16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이후 시대를 "투르크인의 지배"(Tourkokratia)라고도 한다.

헬레니즘 제국

알렉산드로스 제국(The empire of Alexander the Great)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발전시킨 대제국을 말한다. 영토는 마케도니아 왕국 본토에서 인도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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