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크레타 (그리스어: Κρήτη)는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자, 지중해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고대 그리스부터 오늘날까지 역사, 신화, 음악, 방언 등 다방면에 있어 고유한 문화적 전통이 이 섬에 전해 내려왔다.

고대사에서 크레타는 유럽 문명이 시작한 장소로서 중요하게 여겨진다. 미노아 시대 크노소스 궁전과 페스토스 유적, 고르틴 유적, 말리아 유적 등 여러 고대 유적이 남아 있다. 또한 크레타에는 하니아 베네치아 항구, 레팀노의 올드타운, 프랑고카스텔로 등 베네치아 유적도 많이 남아 있다. 오늘날 크레타는 그리스에서 문화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며, 그리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이다. 매년 3~5백만 명의 외국 관광객이 크레타섬에 방문한다.

크레타섬의 경제는 오랫동안 농업과 목축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나 1970년대부터 관광업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 크레타 경제의 주축을 이루는 농업/목축업과 관광/서비스업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보완적이다. 이 섬의 1인당 소득은 그리스 평균치에 근접하나 실업률은 4% 정도로 국가 전체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리스의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올리브 농업이 크레타의 중요한 산업이다. 그리스 전체 면적의 약 4분의 1 가량을 올리브 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크레타
원이름: Κρήτη
Sfakia-dance
지도
지리
GR Kreta
위치 동부 지중해
좌표

북위 35° 12′ 동경 24° 54′  / 북위 35.200° 동경 24.900°

면적 8,303km2
최고점 프실로리티스 산 2,456m
행정 구역
그리스의 기 그리스
크레타주
중심 도시 이라클리오
인구 통계
인구 601,131 명 (2001 기준)

지리

크레타는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자 지중해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크레타섬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인데, 동에서 서까지 260km에 이르지만 남북으로 그 폭은 60km 정도이며, 폭이 12km에 불과한 레라페트라처럼 좁은 지역도 있다. 크레타의 면적은 8,303km2이다. 해안선의 길이는 1,046km로, 북쪽에는 크레타 해, 남쪽에는 리비아 해, 서쪽으로는 미르토아 해, 동쪽에는 카르파티온 해가 있다. 그리스 본토에서 남쪽으로 160km 정도 떨어져 있다. 크레타주에 속하는 가브도스 섬은 유럽 최남단에 위치한다.

크레타에는 산지가 매우 많으며, 동에서 서로 높은 산맥이 이어져 있으며 큰 산맥 세 곳을 이룬다 ( 레프카오리 산맥 : 화이트 마운틴, 2,452m, 이디 산맥 : 프실로리티스 산, 2,456m, 딕티 산맥). 오말로스 고원, 니다 고원 등 비옥한 고원이 있으며, 사마리아 협곡, 임브로스 협곡, 쿠탈리아티코 협곡, 아라데나 협곡, 아이아 이리니 협곡 등 많은 협곡이 있다. 사마리아 협곡은 유럽에서 가장 긴 협곡 중 하나로, 그 길이가 16km에 이른다.[1] 크레타섬은 엘라포니시 해변, 발로스 해변, 프레벨리 해변, 마탈라 비치, 팔라사나 해변, 등 해변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마리아 협곡은 크레타 야생 염소 키리-키리의 서식지이며, 크레타 산지와 협곡은 멸종위기종인 수염수리의 은신처이다.

크레타는 그리스의 행정 구역상 크레타 주에 해당한다. 하니아 현, 이라클리오 현, 라시티 현, 레팀노 현이 크레타 주에 속해 있다.

현재 크레타섬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중심 도시는 이라클리오이지만, 1971년까지 크레타섬의 중심 도시는 하니아였다. 크레타섬의 주요 도시는 다음과 같다.

  • 이라클리오 : 인구 173,993명[2]
  • 하니아 : 인구 108,642명[2]
  • 레팀노 : 인구 34,300명[2]

크레타섬은 지중해북아프리카 두 기후 지역에 속하는데, 주로 전자에 속한다. 그래서 크레타의 기후는 무척 온화하다.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아 겨울에도 꽤 따뜻하다. 11월에서 5월 사이 산에는 눈이 흔하지만, 특히 해안 등 낮은 지역에는 드물며 몇 분, 몇 시간만 지나도 땅에 금방 눈이 사라진다. 크레타의 여름은 평균 기온이 섭씨 20도 후반에서 30도 초반 정도이며, 가장 더울 때는 섭씨 30도 후반에서 40도 정도이다. 크레타 남부는 대추야자가 열매를 맺으며, 제비가 아프리카로 가지 않고 일 년 내내 이 섬에 남아있다. 지구 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올리브 나무가 크레타섬에 있다.

역사

크레타 섬에 최초로 사람이 산 것은 도기 이전(aceramic)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들은 소, 양, 염소, 개를 키웠고, 곡물과 콩을 재배했다. 고대 크노소스는 신석기(나중에는 미노아 문명) 유적지의 한 곳이다. 크레타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미노아 문명의 중심이었다. 초기 크레타의 역사는 미노스 왕, 테세우스, 다이달로스이카로스 같은 전설이 서려 있으며, 호메로스 같은 시인들의 입으로 전해졌다.

크레타는 미트리다테스 전쟁에 휘말려 기원전 71년에 로마 장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크레티쿠스의 침공을 처음에는 물리쳤으나, 뒤이어 삼개 군단을 이끌고 온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와 3년간 악명높은 전쟁을 벌이다 결국 기원전 69년에 로마에 정복되었다. 그리하여 메텔루스는 "크레티쿠스"(Creticus)란 칭호를 얻었다. 고르틴은 이 섬의 수도가 되었으며, 키레나이카와 더불어 크레타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이후 크레타는 비잔티움 제국의 일부로 남았다. 그러나 이베리아 무슬림 아부 합스 우마르 알 발로티가 826년 이 곳을 점령하여 크레타에 해적 토후국을 세웠다. 960년 비잔티움의 니케포로스 포카스가 다시 섬을 수복하여 1204년까지 비잔티움 영토로 남았다. 그러다가 4차 십자군 원정 때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는다. 베네치아는 이 섬을 4백여년간 지배했으며,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이 시기에 예술 작품이 많이 나왔다. 크레타 르네상스의 유명한 예술가로는 화가 엘 그레코와 작가 비첸초스 콜나로스가 있다.

베네치아 시대 칸디아 시는 지중해 동부에서 가장 요새화된 도시로 유명했다. 1492년 에스파냐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이 이 곳으로 와서 살았다. 1627년 칸디아 시에는 800여명의 유대인이 살았으며 도시 인구의 7%를 차지했다.

1669년 오스만 제국이 21년간의 칸디아 공성전을 벌인 끝에 크레타를 정복했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 시대에 많은 교회와 수도원이 모스크가 되었다. 그러나 자유와 권리는 계속 보장되었다. 17세기에 이 도시는 높은 성벽과 능보로 둘러싸여 서쪽과 남쪽까지 뻗어있었다.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은 북동쪽 지역으로, 이곳에 모든 상류층이 모여 살았다. 오스만 제국이 칸디아에 편 도시 정책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종교 재산이었다. 이를 통해 오스만의 지도층은 파괴된 도시를 재건할 수 있었다. 다른 방법으로는 인구를 늘리고 도시 재산을 팔아 도시 수입을 증대하는 것이었다. 몰리 그린(Molly Greene, 2001)에 따르면, 오스만 지배하에서 많은 부동산 계약 기록이 있었다고 한다. 파괴된 도시에서 소수자들도 재산을 구매하는 권리를 얻어, 그리스도 교도와 유대인들도 부동산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었다.

아랍인의 대정복 때부터 크레타에 이미 무슬림들이 살았지만,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무슬림이 더 늘어났다. 대부분의 크레타인 무슬림들은 크레타 그리스어를 쓰던 지역 그리스 개종자들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크레타의 정치 상황에서 그리스도 교도들은 이들을 터키인으로 치부하게 된다. 그리스 독립전쟁 직전에 크레타 섬 인구의 45%가 무슬림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크레타 그리스도 교도 출신이었다. 나중에 터키, 로도스, 시리아 등지의 사회 불안으로 많은 무슬림들이 섬을 떠나자 남은 자들은 다시 그리스도교로 돌아오게 된다. 1900년에 섬 인구의 11%만이 무슬림이었다. 남은 사람들은 1924년 터키-그리스 인구 교환때 섬을 떠나도록 강요받았다.

크레타는 1830년 런던 의정서로 근대 그리스 국가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얼마 안되어 이집트의 술탄이 섬을 침략하여 지배를 받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1840년 6월 3일 런던 회의로 오스만 제국 영토로 돌아온다.

1833년에서 1897년까지 그리스도교도의 반란이 몇몇 일어났다. 1898년 크레타는 오스만 제국 밑의 자치령으로 있었다. 결국 크레타는 1913년 12월 1일에 그리스 영토가 된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이 섬은 유명한 크레타 전투의 무대였다. 이 전투는 1941년 독일 낙하산 부대가 7,000여명의 전사자를 내며 지역 주민과 버나드 프레이버그 장군이 지휘하는 영연방군의 격렬한 저항을 받았다. 그리하여 아돌프 히틀러는 당초 대규모 공수 작전을 포기한다.

관광

크레타섬은 그리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로 손꼽힌다. 매년 3~5백만 명의 외국 관광객이 크레타에 방문한다.

크레타에서 여행객이 많이 방문하는 여행지로는 사마리아 협곡, 크노소스 궁전, 하니아 항구, 레팀노 올트다운, 엘라포니시 해변, 발로스 해변, 프레벨리 팜 비치, 아르카디우 수도원 등이 있다.

Chania - Venetian harbor 1

하니아 베네치아 항구

Samaria Gorge 09

사마리아 협곡

Knossos palace

크노소스 궁전

Preveli Palm Beach Panorama 02

프레벨리 팜 비치

현지 한인 여행사

  • 베스트크레타 : 그리스 크레타섬 현지 한인 여행사. 그리스 여행, 사진, 문화, 영화, 음식, 축제 정보.

출신 인물

크레타섬 출신 인물에는 다음과 같은 이들이 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 크레타섬에서 태어난 소설가이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대표작으로 <그리스인 조르바>, <최후의 유혹> 등이 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수차례 지명되었다.
  • 오디세아스 엘리티스 : 크레타섬에서 태어난 그리스의 시인으로, 그리스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7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 나나 무스쿠리 : 크레타섬 하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리스의 가수로, 당대 최고의 세계적인 스타였다. 여러 언어로 200개 이상의 앨범과 싱글을 발표했고, 약 3억 장의 음반 판매 기록을 갖고 있다.
  • 엘 그레코 : 크레타섬에서 태어난 화가이다. 그리스에서 태어나 비잔틴 양식을 익히고,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거쳐 이후 스페인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독창적인 화풍을 확립했다.
  • 아이네시데모스 : 크레타섬 크노소스에서 태어난 고대 그리스의 회의주의 철학자.
  • 에피메니데스 :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이 유명하다.
  •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 혁명가이며, 20세기 초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이자 뛰어난 정치가였다. 수 차례 그리스 국무 총리직에 선출되었다.
  •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 : 크레타 하니아 출신으로, 그리스 총리를 역임했다.
  • 제우스 : 그리스 신화 속 등장 인물로, 올림포스 신들의 왕이다. 크레타섬 동굴에서 자랐다고 전해진다.

출처

  1. 사마리아 협곡 – 그리스 크레타섬 하이킹 bestkreta.com
  2. 2001년 인구 통계
1906년 중간 올림픽 크레타 선수단

1906년 중간 올림픽 크레타 선수단은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된 1906년 중간 올림픽에 참가했다. 2개 종목과 5개 세부 종목에서 8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OFI 크레타

OFI(그리스어: Όμιλος Φιλάθλων Ηρακλείου Omilos Filathlon Irakleiou[*])는 그리스 크레타 섬의 이라클리오를 연고지로 한 축구 클럽이다.

그리스 전투

그리스 전투(영어: Battle of Greece)는 24일 동안 나치 독일이 그리스로 침략한 사건이다.

레아 (신화)

레아(고대 그리스어: Ῥέα Rhea[*])는 그리스 신화에서 대지의 여신이다.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크로노스의 누이 겸 아내이며 순서대로 헤스티아 · 데메테르 · 헤라 · 하데스 · 포세이돈 · 제우스의 여섯 자녀를 낳았다.

마리노 모로시니

마리노 모로시니 (Marino Morosini, 1181년 베네치아 – 1253년 1월 1일 베네치아)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제44대 도제이다. 그는 1249년부터 1253년까지 재임했다.

미노스 문명

미노스 문명(Minoan civilization, 기원전 3650년경~기원전 1170년경), 미노아 문명 또는 크레타 문명은 그리스의 크레타섬에 있었던 그리스 청동기 시대의 고대 문명이다. 미노스 문명은 기원전 2700~1500년경 동안 번성했다. 그 후로는 미케네 문명이 크레타섬의 미노스 문명의 영역을 지배하였다. 미노스 문명은 20세기 초에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반스의 발굴에 의해 재발견되었으며, 1939년 윌 듀런트는 미노스 문명을 "연속된 유럽의 첫 고리"라고 하였다.미노스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칭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미노스의"를 뜻하는 "미노안(Minoan)"이라는 낱말은 아서 에반스가 크레타 섬의 전설적인 왕의 이름인 미노스(Minos)에서 만들어낸 말이다. 미노스는 그리스 신화의 미로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인데, 아서 에반스는 그 곳이 크노소스라고 비정했다. 혹자는 시리아 마리(Mari) 문서고에 나오는 고대 이집트의 지명 "케프티우"(Keftiu, *kaftāw)와 셈어 "카프토르"("Kaftor" 혹은 "Caphtor") 그리고 "카프타라"(Kaptara)가 크레테 섬을 이르는 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노스 문명이 멸망한 지 수 백년 뒤에 나온 오디세이아에는 크레테 원주민을 "에테오크레테 사람"(Eteocretans, "진짜 크레테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아마도 미노스인의 후손일 것이다.

미노스 문명의 궁전들은 이 섬에서 발굴된 유적 중 가장 유명한 건물이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거대한 장서고를 통해 이 곳이 행정 기능을 담당하는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발굴된 각 궁전은 제각각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다른 건물들과 분리되어 있다. 궁전은 내외부 계단, 작은 우물, 육중한 기둥, 창고와 정원을 갖춘 다층 건물도 있다.

미노스 사람들은 미케네 그리스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데, 가령 초기 그리스의 문자인 선형 B 문자는 미노스 문명의 선형 A 문자를 받아들인 것이다.

서부 사막 전역

서부 사막 전역 혹은 사막 전쟁은 이집트 서부와 리비아 전체에서 일어난 2차 대전의 북아프리카 전역의 일부이다. 영국군이 크레타 전투, 그리스 공방전에서 독일군에서 패퇴한 후, 서부 사막 전역은 영국군에게 독일군을 공격할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고 전쟁 효과에서도 중추적인 지역이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쟁인 동부 전선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군은 이 전역에서 큰 중요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1940년 이탈리아 군단의 이집트 침공으로 서부 사막 전역은 시작된다. 이탈리아 군단은 리비아에서 이집트를 방어하는 영국군과 충돌했는데, 이탈리아 군단은 보급품 문제로 영국군에 의해 반격당함으로써 이집트 정벌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 무렵 영국군은 몰타와 알렉산드리아 공항에서 이탈리아를 공습했고, 베니토 무솔리니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독일군 기갑사단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에르빈 롬멜이 북아프리카에 파견되었고, 1942년까지 영국군은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에 의해 밀고 밀리는 공방전을 지속한다. 영국군은 이집트 국경까지 밀려났으나, 버나드 몽고메리의 등장으로 전세는 역전된다. 독일군은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영국군에게 격파당하고, 리비아를 빼앗긴 후 튀니지까지 밀리게 된다.

선문자 A

선문자 A(그리스어: Γραμμική Α, 영어: Linear A)는 크레타 섬에서 사용한 문자이다.

영국의 고고학자인 아서 에번스가 1900년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하다가 3종류의 문자군을 발견하였다. 선문자 A는 크레타 각지에서 넓은 범위에 걸쳐 출토되어, 크레타 공통의 문자로 추정된다. 같이 발견된 선문자 B는 1950년대 마이클 벤트리스에 의해 해독되지만 선문자 A는 조각된 점토판의 품질이 좋지 않고 발견된 수도 적어 아직 해독되지 않았다. 선문자 B와 공통되는 문자가 보이지만, 문장의 형식에 일정한 규칙이 보이지 않는 것도 해독이 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다.

선문자 B

선문자 B(그리스어: Γραμμική Β, 영어: Linear B)는 기록되어 전해지는 가장 이른 시기의 그리스어인 미케네 그리스어를 기록하는데 쓰인 음절문자이며, 기원전 15세기에서 13세기 경까지 크레타 섬과 대륙의 여러 도시에서 사용되었다. 선문자 B는 아직 해독되지 않은 선문자 A에서 유래한 문자이다. 아직까지 알려진 것이 없는 미노스 문명의 언어를 기록하고 있고 1700개의 문자 표본만이 전해지고 있는 선문자 A와는 달리, 선문자 B는 이미 알려진 미케네 그리스어를 기록한 문자인데 삼만개가 넘는 문자 표본을 바탕으로 영국의 건축가이자 독학의 언어학자인 마이클 벤트리스가 1952년에 해독한다.

스타토 다 마르

스타토 다 마르(Stato da Màr) 또는 도미니 다 마르(Domini da Mar)는 "해양 영토/국가"라는 이름을 지닌, 베네치아 공화국의 해양과 해외 영토에 붙여진 명칭이며, 그 영역에는 이스트리아, 달마티아, 알바니아, 네그로폰테, 모레아 (모레아 왕국), 낙소스 공국의 에게 해 제도, 크레타 (칸디아 왕국)와 키프로스의 섬들이 포함되었다. 스타토 다 마르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가진 세 개의 영토의 행정 구역 중 하나로, 나머지 두 개는 베네치아 본토인 도가도와 북부 이탈리아인 도미니 디 테라페르마이다.

야코포 티에폴로

야코포 티에폴로(Jacopo Tiepolo, 1249년 7월 19일 사망)는 자코모 티에폴로 (Giacomo Tiepolo)라고도 알려진 1229년부터 1249년까지의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이다. 그는 도제 이전에 초대 베네치아의 크레타 공작,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포데스타를 두 차례 (1218년-1220년, 1224년-1227년) 맡았다. 그의 첫 재임 기간에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과 피에르 2세 드 쿠르트네의 기이한 죽음으로, 티에폴로는 라틴 제국의 실질적인 통치자였으며, 제국을 대신하여 이집트와 셀주크 투르크등과의 조약들을 협상하였다.

에게 문명

에게 문명은 그리스와 에게 해에 있었던 청동기 시대 문명이다. 에게 문명은 서로 교류하던 크레타 섬, 키클라데스 제도, 그리스 본토 세 개별 지역의 문명을 이르는 말이다. 청동기 시대 초기에 크레타 섬에 미노스 문명—크레타 문명이라고도 한다—이 들어섰으며, 키클라데스 제도와 그리스 본토에는 각자 고유한 문화가 있었다. 초기 헬라딕 시대에 키클라데스 문명은 그리스 본토까지 영토를 확장하였고, 그리고 중기 미노스 시대에는 크레타 섬에도 영향이 미쳤다. 기원전 1450년(후기 헬라딕, 후기 미노스 시대)부터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이 크레타에 진출하였다.

에우로페

에우로페(그리스어: Ευρωπη, 영어: Europa)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성이다. 대륙 유럽의 이름과 위성 유로파의 이름은 그녀에게서 따온 것이다.

제164보병사단 (독일 국방군)

독일 164 보병사단은 1939년 11월에 창설되었다. 이 사단은 전쟁 중에 여러 번의 개편을 거친 관계로 이름도 여러 개가 있다.

164 보병사단 (최초 창설시)

요새사단 크레타 (1942년 1월 개편)

요새여단 크레타 (1942년 8월 크레타 요새사단을 개편하며 축소 편제)

164 경아프리카사단(1942년 8월 개편시)1942년 1월, 이 사단은 명칭을 "요새사단 크레타"로 바꾸었고, 같은 해 8월에 다시 보다 작은 규모인 요새여단 크레타와 164 경아프리카사단으로 분리하여 재편되었다. 전자는 크레타 섬에 주둔하였고, 후자는 북아프리카로 보내졌다.

164 경아프리카사단은 엘 알라메인 전투에 참가했다가 심각한 피해를 입고 서쪽으로 철수했다. 이 사단은 다시 트리폴리로 보내져 휴식과 재정비를 가졌으나 부족한 지원때문에 정상적으로는 불가능했다. 결국 병력과 장비가 부족한 상태로 튀니지아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동쪽에서 추격해오는 영국 8군과 서쪽에서 압박해오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지휘하는 미군 사이에서 격전을 벌이다가 괴멸되었고 남은 생존자는 1943년 5월 주축국이 항복할 때 연합군에 항복한다.

지중해긴귀박쥐

지중해긴귀박쥐(Plecotus kolombatovici)는 애기박쥐과에 속하는 박쥐의 일종이다. 알바니아와 알제리, 크로아티아, 키프로스, 그리스(크레타), 이탈리아, 레바논, 리비아, 몰타, 모로코, 세르비아, 튀니지 그리고 터키에서 발견된다.

크레타 전투

크레타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독일군이 그리스 공방전에서 그리스 본토를 점령하고 남은 동부 전선 지역의 근거지인 크레타 섬을 공략해 발칸 반도 지역을 완전히 점령한 전투이다.

크레타땃쥐

크레타땃쥐(Crocidura zimmermanni)는 땃쥐과에 속하는 포유류의 일종이다. 그리스 크레타 섬의 토착종이다. 자연 서식지는 온대 기후 지역의 관목 지대이다. 서식지 감소로 멸종 위협을 받고 있다.

크레타주

크레타주(그리스어: Κρήτης)는 그리스의 주 가운데 하나로, 주도는 이라클리오이며 면적은 3,808.10km2, 인구는 3,828,434명(2011년 기준), 인구 밀도는 1,000명/km2이다. 크레타섬의 이라클리오현, 라시티현, 레팀노현, 하니아현이 이 지역에 속한다.

크레타주는 크레타섬을 포함하여 가브도스섬, 가브도풀라섬, 디아섬, 흐리시섬, 쿠포니시섬, 디오니사데스섬 등 주변의 작은 섬들을 관할하며, 이라클리오를 비롯하여 하니아, 레팀노, 이에라페트라 등의 도시들이 위치하고 있다.

현대 ix25

현대 ix25(Hyundai ix25)는 현대자동차의 소형 SUV이자, 미스트라에 이은 현대자동차의 두 번째 중국 전략 차종이다. 2014년 4월에 개최된 베이징 모터쇼에 쇼 카가 처음 선보였고, 같은 해 10월에 출시되었다. 중국 외에 2015년 7월부터 인도를 비롯하여 러시아와 남아메리카 등에서도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차명은 크레타이다. 차체 33%에 초고장력 강판이 적용되었고, 저중심 설계를 통해 주행 안정성을 높였다. 1.4ℓ 가솔린 엔진 (전륜구동)과 1.6ℓ 가솔린 엔진 (전륜구동), 1.6ℓ 디젤 엔진 (전륜구동), 2.0ℓ 가솔린 엔진 (전륜구동, 4륜구동)이 장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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