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트인

카시트인(Kassites)은 근동 산악 종족으로 기원전 1600년에서 1200년까지 자그로스 산맥과 메소포타미아(현재의 도라우드)로 이동해 왔다. 언어는 고립으로 분류되며 이미 기원전에 사멸되었다. 그들은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고 바빌론을 지도에서 지워버려고 바빌로니아라는 국가는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다.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중간 연대기에 따르면 카시트는 바빌론, 니푸르 그리고 다른 중심들에 대한 패권을 기원전 1595년에서 1155년까지 지속하였다.

Kassite dynasty Babylonia locator map 2
바빌로니아, 기원전 13세기

역사

카시트의 원래 고향은 불명이며 로레스탄의 자그로스 산맥내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 최초의 역사적인 등장은 기원전 18세기였는데 그때 그들은 함무라비의 아들 삼수일루나(제위 기원전 1749~1712)의 치세 9년에 바빌로니아를 공격하였다. 삼수일루나는 그들을 물리쳤지만 그들은 결국 기원전 1595년 히타이트에 의한 바빌론 함락 얼마 후 북 바빌로니아의 지배권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기원전 1475년 왕국의 남부를 정복하였다. 히타이트마르둑 우상을 치웠지만 카시트 지배자는 소유권을 다시 얻어 마르둑을 바빌론으로 반환하였다. 그리고 히타이트는 카시트 수카무나를 환대했다.

초기 카시트

이들 지배자들은 바빌론을 다스린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대수 체계(numbering scheme)가 후에 바빌론의 카시트 왕들에 의해 계속되었다. 아래는 그 왕들의 목록이다.

  • 간다쉬
  • 아굼 1세
  • 카쉬틸리아쉬 1세
  • 우쉬쉬
  • 아비라타쉬
  • 카쉬틸리아쉬 2세
  • 우르지구루마쉬
  • 하르바쉬후
  • 팁탁지

카시트 왕조 (바빌론 제3제국)

여기에 따르는 연대기는 더 오래된 연대기이다.(Von Beckerath's Chronologie des pharaonischen Ägypten) 또 다른 보통 사용되는 연대기는 일반적으로 각 왕조를 위해 약 10년에서 20년 이른 연대를 준다. 그러나 이것은 이집트 신왕국의 보통 사용되는 연대기와 일치하지 않는다.

  • 아굼 2세 (재위: 기원전 1570년)
  • 부르나-부리아스 1세
  • 카스틸리아스 3세
  • 울람-부리아스
  • 아굼 3세
  • 카다스만-하르베 1세
  • 카라인다스
  • 쿠리갈주 1세 (재위 기원전 1377 )
  • 카다스만-엔릴 1세 (재위 기원전 1377-1361 )
  • 부르나 부리아스 2세 (재위 기원전 1361-1333 )
  • 카라하르다스 (재위 기원전 1333-1331 )
  • 나지부가스 (재위 기원전 1331 )
  • 쿠리갈주 2세 (재위 기원전 1331-1306 )
  • 나지마루타스 (재위 기원전 1306-1280 )
  • 카다스만-투르구 (재위 기원전 1280-1262 )
  • 카다스만-엔릴 2세 (재위 기원전 1262-1254 )
  • 쿠두르-엔릴 (재위 기원전 1254-1245 )
  • 사가락티-수리아스 (재위 기원전 1245-1232 )
  • 카스틸리아스 4세 (재위 기원전 1232-1224 )
  • 엔릴-나딘-수미 (재위 기원전 1224-1221
  • 아다드-수마-이디나 (재위 기원전 1221-1215
  • 아다드-수마-우수르 (재위 기원전 1215-1185 )
  • 멜리시팍 (재위 기원전 1185-1170 )
  • 마르둑-아팔-이디나 1세 (재위 기원전 1170-1157 )
  • 자바바-수마-이디나 (재위 기원전 1157-1156 )
  • 엔릴-나딘-아헤 (재위 기원전 1156-1153 )
고르 왕조

고르 왕조(Ghor王朝)는 아프가니스탄의 구르에 있던 투르크계의 이슬람 왕조이다. 구르 왕조라고도 불린다.

처음 가즈니 왕조에 예속되어 있었으나 차차 세력을 얻어 1186년에 기야스 웃딘 무함마드(재위 1163년~1202년)가 주가(主家)를 넘어뜨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서북인도에 걸친 영토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 왕의 치세(治世)중, 그의 아우 무함마드(무하마드 고리)가 인솔하는 구르군이 북인도 각지를 정복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무함마드 고리가 즉위 후 4년에 암살된(1206년) 다음, 부하 장군이 각지에 자립하였기 때문에 왕조는 멸망했다. 인도 역사상에 구르 왕조가 가져다 준 큰 역할은 인도에 있어서의 이슬람 정권 수립을 위하여 기반을 닦아놓은 데에 있다.

메디아

메디아는 현재의 이란 북서부에 있었던 고대 국가와 고대 이란인을 부르는 이름이다. 대체로 오늘날 케르만샤 일부와 아제르바이잔, 하메단, 테헤란, 쿠르디스탄 지방에 해당한다. 메디아 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 인들이 이 지역이 메디아 또는 메데아(Μηδία) 로 알려졌기 때문에 붙여졌다. 구약성서의 다니엘서에는 메대로 불린다.

아시리아가 멸망한 후 기원전 11세기 전반 무렵 메디아족(族)이 세웠다. 아시리아의 샬만에세르 3세(BC 858~824)의 문헌에는 '마다' 지역 사람들이라는 기록이 있다. 바로 이들이 뒤에 메디아인으로 알려졌다.

수도는 엑바타나(지금의 하마단)였다. 그 기원과 민족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란민족의 파(派)인 마다 또는 마타이 족으로 우르미아호(湖) 남쪽에서 말을 사육한 유목민이다.

이들은 엑바타나를 중심으로 강성해져 데이오케스 때에 왕국으로 건립되었으며, 그의 아들 프라오르테스 때는 이란의 대부분을 영유하게 되었다.

기원전 6세기까지 메디아는 흑해의 남부연안과 아란지방(오늘날의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서 페르시아를 포함한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메디아는 키루스 대왕에 의해 페르시아 제국과 병합 되기 전까지 이란의 첫 번째 국가를 형성하였다.

사만 제국

사만 제국(Samanid Empire, 875년 ~ 999년)는 중앙아시아의 트란스옥시아나와 이란의 호라산 지방에 있던 이슬람 왕조이다.

사파르 토후국

사파르 왕조(페르시아어: سلسله صفاریان, Saffārid dynasty)는 이란의 아바스 왕조 시대의 독립 왕조(861년 ∼ 903년)이다.

사파비 왕조

사파비 왕조(페르시아어: صفویه) 또는 사파위 왕조(صفويان)‎는 사파비 가(家)의 이스마일 1세를 시조로 하는 이란의 왕조(1501년~1736년)이다. 대부분의 이슬람 왕조들이 수니파를 믿은 것과는 달리 사파비 왕조는 파티마 왕조와 함께 대표적인 시아파 이슬람 왕조이다.

셀레우코스 제국

셀레우코스 제국(그리스어: Αυτοκρατορία των Σελευκιδών 아우토크라토리아 톤 셀류키돈[*])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토 가운데 헬레니즘의 계승 왕국중 하나이다. 제국의 명칭은 코이네 그리스어에서 유래하였고 원발음은 '셀류코스' 제국이다. 현재는 현대 그리스어 발음표기를 따라 '셀레우코스 제국'을 기준으로 한다. 제국의 최대 영토는 아나톨리아 중부와 레반트,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투르크메니스탄, 파미르, 인더스 계곡을 포함한다. 동방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여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계승국 중에서 가장 영토가 넓었다.

셀레우코스 왕조에는 기원전 323년부터 기원전 60년까지 30명의 왕이 있었다. 이 통치기 동안 지배계층은 헬레니즘 문화와 풍습을 잘 계승하여 셀레우코스 제국을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로 꽃피웠다. 하지만 관용을 베풀어서 수많은 호평을 받았던 아케메네스 왕조와는 다르게 심각할 정도로 헬레니즘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해서, 피지배계층의 문화를 탄압하고 그리스화(化)만을 강요해서 피지배민족과 잦은 갈등과 반란 진압을 겪어야 했고 날이 갈수록 제국의 동방 지배는 약해져 갔다.

제국의 6대 왕인 안티오코스 3세 대왕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자주 해외 원정을 벌였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국과 마우리아 왕조와의 전쟁에서는 패배했으나 파르티아 등 제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동방 민족들을 상대로 원정을 벌여 승리해 많은 영토를 회복하였다. 또한 프톨레마이오스 왕국과의 재대결에서도 승리해 우위를 확립했다. 그러나 제국이 다시 살아날 무렵 안티오코스 대왕은 로마과 충돌했고, 3번의 전투 끝에 완전히 패하면서 제국의 군사력과 패권이 사라지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안티오코스 대왕이 동방 재원정 중 암살당해 제국은 더욱 위기에 빠졌다.

이후 제국은 끝없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8대 왕인 안티오코스 4세는 제국의 재확장을 꾀했으나 로마의 견제에 계속 가로막혔고, 지나친 그리스주의 정책으로 유대인들이 독립 전쟁을 벌여 하스모니안 왕조를 세우는 등 영토는 계속 줄어들었다.

결국 동방에서 강성해지던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뒤 동방 대부분의 영토를 잃고 시리아만을 가진 소왕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후 대다수의 왕들이 살해당하는 혼란기가 찾아왔고, 결국 기원전 1세기에 로마에게 합병당해 멸망한다.

왕으로는 셀레우코스 1~7세, 안티오코스 1~13세, 알렉산드로스 발라스, 알렉산드로 2세 자비나스, 데메트리오스 2세 등이 있다.

아리아인

아리아인(영어: Aryan)은 인도와 이란,유럽,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며 인도·유럽계의 언어를 쓰고 있는 사람들의 총칭이다.

이것은 언어학적으로 분류된 것으로 인도유럽어족(인구어족)이라고 부른다.

아크 코윤루

아크 코윤루(Aq Qoyunlu, 페르시아어: آق قویونلو) 또는 백양(白羊) 왕조는 1378년부터 1501년까지 서아시아 북부의 캅카스 남동부에 있었던 나라 중 하나였으며, 흑양 왕조와 달리 수니파 국교인 나라였다. 이 나라의 초대 왕은 투르크멘계 출신이었던 카라 오스만이었다. 흑양 왕조를 통일하였으며, 훗날 사파비 왕조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오늘날의 아제르바이잔과 이란 북서부의 남아제르바이잔에 있었다. 수도는 처음에 디야르바키르였으나 나중에 1468년, 타브리즈로 옮겼다. 공용어는 아제르바이잔어였으며 페르시아어와 아랍어도 쓰였다. 국명 그대로 하얀 양을 상징으로 여겼다.

아프샤르 왕조

아프샤르 왕조(1736년 ~ 1796년, 페르시아어: افشاریان)는 나디르 샤가 시작한 왕조이다. 그 이름은 그가 속하고 있던 투르크계 아프샤르 족에 유래한다. 나디르 샤가 죽은 후 호라산 지방에 모여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1796년에 카자르 왕조의 공격을 받아 4대로서 멸망했다.

이란 과도 정부

이란 과도 정부(페르시아어: دولت موقت ايران, Dowlat-e Movaghat-e Irân)는 이란 혁명 이후의 이란에 설립된 과도기적 성격의 정부이다. 정부는 메흐디 바자르간이 이끌었다. 하지만 사실상 혁명을 이끈 루홀라 호메이니가 막후 권력을 행사했고 1979년 10월 24일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멸망됐다.

일 칸국

일 칸국(몽골어: ᠬᠦᠯᠦᠭ ᠦᠨᠤᠯᠤᠰ 훌레구인 울스, 페르시아어: سلسله ایلخانی, 영어: Ilkhanate)은 몽골 제국의 칸국 중 하나로 현재의 이란, 이라크에 걸쳐 있던 나라이다. 페르시아 칸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와 시리아의 영토를 두고 대립했으나 결정적인 승리를 얻지는 못했다. 1335년 9대 칸인 아부사이드 칸 사후 멸망하였으며 자라이르 왕조, 츄판 왕조 등 여러 왕조로 갈라져 몽골이 오기 이전의 상태로 회귀하였다.

잔드 왕조

잔드 왕조(1750년 ~ 1794년, 페르시아어: زندیان)는 이란에 일어났던 왕조이다. 아프샤르 왕조의 나디르 샤가 암살된 후 루르족(族)의 한 분파(分派)인 잔드 부족의 카림 칸은 여러 지방에 할거하는 군웅(群雄)을 제거하고 이란 전토(全土)를 통일하였다. 그는 선정(善政)을 베풀고 수도(首都)의 미화(美化)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후(1779), 동족(同族) 중에 왕위 쟁탈전이 격화되자 1794년 카자르 왕조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잘라이르 왕조

자라이르 왕조 또는 잘라이르 왕조(آل جلایر)는 일 한국의 분열 후에 나타난 왕조로 수도는 바그다드였다(하지만 근거지가 잠시 타브리즈나 이라크 남부로 옮겨진 적이 있다). 초대 지배자인 하산 부즈루그는 몽골 잘라이르 부족 사람으로 일 한국이 몰락한 후 권력의 공백을 틈타 1336년 자라이르 왕조를 건국한 뒤 여러 경쟁자들을 격파하고 바그다드에 자리를 잡았다. 2대 지배자인 우웨이스 1세 때에 강력한 경쟁자인 추판 왕조의 영토를 흡수하고 페르시아로 진출하여 최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자라이르 왕조는 우웨이스 1세 사후부터 흔들리기 시작하여, 5대 술탄인 아흐마드 때에는 티무르에 의해 수도 바그다드를 뺐기기도 하였다. 티무르 사후, 아흐마드는 바그다드로 복귀하였으나 투르크족 왕조인 흑양조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처형당했다. 아흐마드를 처형시킨 흑양조는 파죽지세의 기세로 바그다드를 점령했고 자라이르 왕조는 이라크 남부로 쫓겨 내려갔다. 이후 자라이르 왕조는 이라크 남부에서 20여년간 존속했으나 1432년에 흑양조에 의해 최종적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추판 왕조

추판 왕조(Chupanid Dynasty)는 일 한국이 멸망한 뒤 타브리즈와 현재의 아제르바이잔을 중심으로 세워진 국가로 일 한국이 멸망한 1335년부터 킵차크 한국에 의해 멸망당한 1357년까지 약 20여년간 존속했다.

카라 코윤루

카라 코윤루(Kara Koyunlu 혹은 Qara Koyunlu)는 흑양(黑羊) 왕조(Persian/Azeri: قرا قویونلو)라고도 하는 중세 아제르바이잔과 페르시아에 걸쳐 있던 나라이다. 시아파 이슬람 국가로서 민족적으로는 투르크계통이었다. 카라 코윤루는 1375년 무렵에 성립하여 1468년 멸망하였다.

카라 코윤루의 투르크멘(Turkoman) 부족들은 한때 헤라트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여 잘라이르 왕조의 속국으로 지냈다. 그러나 부족들은 곧 반기를 들고 타브리즈를 점령한 카라 유수프(Qara Yusuf)의 지도 하에 독립을 쟁취한다.

1400년 티무르의 군대가 침공하자 카라 유수프는 이집트로 망명하여 맘루크 왕조의 망명객이 되었다. 그는 세력을 끌어 모은 후 1406년 타브리즈를 탈환했다. 4년 후 카라 코윤루의 군대는 바그다드를 함락시켰다. 카라 코윤루의 성장은 한때 그들이 섬겼던 잘라이르 왕조의 몰락을 부추겼다. 1420년 카라 유수프 사후에 벌어진 권력 다툼과 티무르 왕조로부터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카라 코윤루는 영토에 대한 통제를 잃지 않았다.

카자르 왕조

페르시아 숭고국(페르시아어: دولت علیّه ایران‎‎)은 투르크계 카자르 족의 아가 모하마드가 잔드 왕조의 카림 칸이 죽은 후 독립하여 창건한 국가다. 그 왕조를 카자르 왕조(Qajar dynasty)라고 한다. 테헤란에 수도를 두었다.

티무르 제국

티무르 제국(페르시아어: تیموریان (Tīmūriyān), 우즈베크어 : Temuriylar)은 중앙아시아에 발흥했던 정권 중 하나로서, 중앙아시아부터 이란에 걸친 지역에 있었던 이슬람 왕조(1370년~1507년)이다. 전성기의 판도로 북동쪽은 동투르키스탄, 남동쪽은 인더스 강, 북서쪽은 볼가 강, 남서쪽으로는 역사적 시리아・아나톨리아 방면까지 이르러, 과거 몽골제국의 서남부 지역도 지배하였다. 창시자인 티무르 재위 중에 티무르 제국이라 불렸다. 왕조의 시조 티무르는 발라스부의 출신으로 언어적으로 투르크화하고, 종교적으로는 이슬람화했다. 15세기 후반에는 사마르칸트와 헤라트의 두 정권이 남았다. 결국 16세기 초에 우즈베크의 샤이반 왕조에 의해 정복당해 모두 살해당하게 되며 멸망했다.

파르티아



파르티아(페르시아어: اشکانیان Ashkâniân)는 오늘날의 이란 북동부에 해당하는 고대의 지역이다.

파르티아 제국의 전성기때에는 이란을 아울러 오늘날의 아르메니아를 비롯한 이라크, 조지아, 터키 동부, 시리아 동부,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쿠웨이트, 사우디 아라비아의 페르시아 만 해안 지역, 바레인, 카타르, 아랍 에미리트 연방까지 파르티아의 세력권에 있었다.

파르티아 제국

파르티아(Parthian) 또는 아르사크(Arsacid) 또는 아쉬카니아 제국(Ashkanian Empire)는 고대 이란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요 이란계 정치적 문화적 체제였다. 기원전 3세기 중반에 파르니 족장 아르사케스가 이란 동북부 파르티아 지방에서부터, 셀레우코스 제국에 반기를 들어 건국하였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후손을 자처하였으며 미트리다테스 1세의 치세 때는 셀레우코스 제국을 공격하여 메디아와 메소포타미아를 수복하면서 영토를 급격히 확장하였다. 서기 2세기 후반 전성기의 파르티아 제국은 남으로는 유프라테스 강 북안, 북으로는 현재의 터키 동남부, 동으로는 현재의 이란 동부에까지 걸쳐 있었다. 이 제국은 로마의 서양 동양을 잊는 비단길 무역로 한복판에 위치해 있었으며, 교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번창했다.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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