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중동(中東, Middle East)은 동지중해부터 페르시아 만까지의 영역을 포함하는 아시아의 중서부 지역이다. 서아시아북아프리카의 국가들을 포함한다. 어디까지가 중동이라는 정확한 경계선은 없지만 중동이라는 말은 보통 근동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며, 극동이라는 말과는 반대되는 의미를 가진다. ‘중동’이라는 용어는 1900년대에 들어서 영국이 사용하였다.

중동 지역의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까지 쭉 중동 지역은 세계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의 중심지였다. 또한 중동은 세계의 주요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역사적인 발원지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중동 지역은 건조하고 기온이 높으며, 몇 개의 강들에 농업을 위한 관개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다. 페르시아 만 주변에 위치한 많은 국가들은 대부분이 산유국이며, 현대 시대에서 중동은 전략, 경제, 정치, 문화, 종교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지역이다.

Greater Middle East (orthographic projection)
     전통적으로 인식되는 중동의 범위      G8에서 정의한 대중동 권역      중앙아시아 (때때로 대중동 권역에 포함)
Middle east graphic 2003
오늘날 중동의 정치와 운송 지도

어원

중동이라는 명칭과 중동 지역의 경계선은 뚜렷하지 않다. 지역상 서부 아시아(서남아시아)와 북동부 아프리카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중동이라는 용어’는 1850년영국동인도 회사에서 최초로 사용되었고, 미해군 전략가인 알프레드 테이어 마한(Alfred Thayer Mahan)이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 시기는 영국러시아 제국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으로 불렸던 시기이다. 마한은 이 지역의 전략적인 중요성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중심인 페르시아 만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그는 수에즈 운하와 페르시아만 사이에 위치한 지역을 ‘중동’(Middle East)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이러한 마한의 주장은 영국이 인도를 향한 러시아의 야욕을 저지하고 인도를 통제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마한은 1902년 9월에 영국의 《National Review》지에 기고한 《페르시아만과 국제 관계》(The Persian Gulf and International Relations)'라는 글에서 처음으로 ‘중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중양(中洋)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도 있으나 쓰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중동의 나라들

중동 국가는 다음과 같은 국가와 지역을 말한다.

G8 대중동 권역 나라들

조지 워커 부시 행정부에서 제안한 G8회의에 발표한 나라들은 다음에 포함된다.

나라

중동(Middle East)의 나라들 (표시한 위치는 각 나라의 수도이다)
라벨 색상      : 일반적인 정의에 따를 때 중동에 포함되는 나라
라벨 색상      : 확장된 정의(대중동 권역)에 따를 때 중동에 포함되는 나라 중 남아시아에 속한 나라
라벨 색상      : 확장된 정의(대중동 권역)에 따를 때 중동에 포함되는 나라 중 북아프리카에 속한 나라
라벨 색상      : 확장된 정의(대중동 권역)에 따를 때 중동에 포함되는 나라 중 중앙아시아에 속한 나라
라벨 색상      : 확장된 정의(대중동 권역)에 따를 때 중동에 포함되는 나라 중 아프리카의 뿔에 속한 나라
라벨 색상      : 확장된 정의(대중동 권역)에 따를 때 중동에 포함되는 나라 중 캅카스에 속한 나라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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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은 터키의 인터넷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이다. 중동 기술 대학교 컴퓨터 센터에 의해 관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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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2차 도메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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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고대 이집트 문명은 나일 강 하류에서 번성한 문명이었으며, 최전성기인 기원전 15세기에는 나일 강 삼각주에서 제벨 바르카까지 세력을 뻗쳤으며 이 시기에는 에티오피아와도 교류하기까지 했다. 기원전 3200년부터 기원전 332년까지 3천 년 동안 존재했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으로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집트는 원조 수로 제국으로서 관개 산업에 의존하였던 문명이다.

리첸시아 타워 (부천)

리첸시아 타워(영어: Richensia Tower) 혹은 부천 금호 리첸시아(영어: Bucheon Kumho Richensia)는 대한민국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위치한 주상복합 마천루 단지이다. 2012년 완공 당시 부천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되며 200m가 넘는 초고층 마천루 주상복합 단지이며 572세대의 규모로 구성되어 있다. 부천에서 부촌으로 가장 먼저 언급되는 지역이며 서울숲 갤러리아 포레를 지은 건축가가 중동 리첸시아도 같이 설계를 하고 실제로 사용된 건축자재도 동일해서 사실상 국내 최고급 주상복합 퀄러티라고 해도 무방하다.

부천원미경찰서

부천원미경찰서(富川遠美警察署, Bucheon Wonmi Police Station)는 경기도남부지방경찰청이 관할하는 경찰서 중 하나이다. 경기도 부천시 중부 지역 일대를 관할한다. 경기도 부천시 조마루로311번길 84 (중동)에 위치하고 있다.

서장은 경무관으로 보한다.

씨클라우드 호텔

씨클라우드 호텔(영어: Seacloud Hotel)은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287 (중동 1392-100)에 위치하고 있다.

욤키푸르 전쟁

욤키푸르 전쟁, 라마단 전쟁, 10월 전쟁 (מלחמת יום הכיפורים, Milẖemet Yom HaKipurim, or מלחמת יום כיפור, Milẖemet Yom Kipur; حرب أكتوبر, Ḥarb ʾUktōbar, or حرب تشرين, Ḥarb Tišrīn), 또는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1973년 10월 6일부터 10월 25일까지 이집트와 시리아가 주축이 된 아랍 연합군과 이스라엘이 치른 전쟁이다. 전투는 대부분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이집트의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는 수에즈 운하도 다시 이집트의 통제권에 두기를 원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확신하지 못했지만, 아랍군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격멸하려고 계획하지는 않았다.전쟁은 1973년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 점령지에 기습적인 합동공격을 개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때는 이스라엘의 휴일인 욤 키푸르이자 이슬람의 신성한 기간인 라마단이 동시에 있었던 달이었다. 이집트와 시리아는 휴전선을 넘어 각각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을 향해 진격했다. 미국과 소련은 전쟁 기간 동안 그들의 동맹국에 대량으로 물자를 보급했고, 이로 인해 이 전쟁은 두 핵보유 강대국의 대결 수준에 이르렀다.이집트의 바드르 작전이 성공적으로 개시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집트군은 휴전선을 건너 시나이 반도를 향해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진격했다. 3일 후 이스라엘은 병력 대부분을 동원해 이집트군의 공세를 정지시킴으로써 교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시리아군은 이집트의 공세에 발맞추어 골란 고원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고, 초기에 이스라엘 점령지를 위협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3일 후 이스라엘군은 시리아군을 휴전선 지역까지 몰아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4일 간 시리아 종심부를 향해 반격을 가했다. 이스라엘 포병이 다마스쿠스 외곽에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는 그의 주요 동맹과의 통합을 우려했다. 그는 시나이 반도에 위치한 2개의 전략적 고지를 점령하면 전후 협상에서 그의 위치가 강화될 것이라 여겼고, 이에 따라 이집트군에게 공세를 지속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이집트군의 공세를 저지했다. 이스라엘군은 다시 반격을 개시해 수에즈 운하에 주둔한 이집트군을 격퇴시켰고, 수에즈와 이스마일리아에서 격전을 벌였다. 1주 간의 격전으로 인해 양측은 모두 큰 피해를 입었다.

10월 22일, 유엔의 중재안이 발표되었고, 양측은 서로 중재안을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10월 24일, 이스라엘군은 거점을 강화해 이집트 제3군과 수에즈를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소련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게 되었고, 제2차 휴전안이 10월 25일 발표되어 욤키푸르 전쟁은 종결되었다.

이스라엘

이스라엘국(히브리어: מדינת ישראל 메디나트 이스라엘, 아랍어: دولة إسرائيل 다울라트 이스라일[*], 영어: State of Israel)은 서부 아시아의 남쪽, 이집트의 동쪽에 유대인들이 세운 국가이다. 비교적으로 작은 지역이지만 지리적으로 다채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기본법에서 스스로 민주 국가임을 정의하고 있다.

일요일

일요일(日曜日)은 토요일 뒤의 날, 월요일 앞의 날이다. 일요일은 대부분의 서방 국가에서 주말의 일부로 취급한다. 월요일을 우선으로 하는 국가에서는 ISO 8601의 권고에 따라 한 주의 마지막 날이다. 일요일을 우선으로 하는 국가에서는 한 주의 첫 번째 날이다. 대한민국에서는 한자인 해 일(日)을 따서 일요일이라고 부르는데, 영어권에서도 Sun을 따서 Sunday라고 부른다.

Sunday(일요일)의 유래는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 시이저가 제정한 율리우스력을 보완하여 7일이 기본이 되는 주(週) 제도의 개념을 도입하고 고대 영어의 day of sun 해(日)에게 바쳐진 날에서 유래되었다.

태양신의 날(Sunday)을 첫째 날로 정하여 휴일로 선포되었으며 전통적 기독교 달력에서는 한 주(週)가 시작하는 기준이 되는 날로 보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일부 국가들은 일요일을 일주일의 첫번째 날로 간주하기도 한다. 중동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요일은 공휴일로 달력에는 해당 요일의 날짜를 빨간색으로 표시한다.

제1차 중동 전쟁

제1차 중동 전쟁 또는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간의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의 통치권을 두고 벌어졌다. 1948년 팔레스타인 전쟁의 두번째 국면이다. 이슈프와 아랍 사이에는 긴장과 분쟁이 잦았으며, 각각의 군대와 영국군은 1917년 벨포어 선언과 1920년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의 수립 이후 빈번하게 충돌했다. 아랍인들의 반발은 팔레스타인 봉기로 확산되었으며, 유대인들의 저항은 팔레스타인 유대인 반란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분란은 1947년 11월 29일 유엔 팔레스타인 분할안 이후 팔레스타인 내전으로 확산되었다. 이 분할안은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지구와 아랍인 지구, 그리고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포함한 국제연합 통치령으로 분할하려는 것이었다.

1948년 5월 15일, 지속되던 내전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는데, 5월 14일 이스라엘 독립선언에 아랍 국가들이 반발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집트 왕국, 요르단, 시리아 공화국이 연합군을 결성해 이라크 왕국의 해외원정군과 함께 팔레스타인에 진입했다. 침공군은 아랍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고 유대인 정착지와 이스라엘 군을 즉각적으로 공격했다. 이 외에도 레바논, 앵글로-이집트 수단,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예멘 왕국, 모로코 등이 전쟁에 참전했다. 10개월 간의 전쟁은 팔레스타인과 시나이 반도, 레바논 남부에서 벌어졌고 중간에 평화협정도 있었다.전쟁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유대인 지구 전체와 아랍인 지구의 60%를 점령했다. 나머지 지역은 요르단이 요르단 강 서안 지구를 병합하고, 이집트 왕국이 가자 지구를 정복하였다. 1948년 12월 1일 예리코 회담에서 2,000명의 팔레스타인이 팔레스타인과 요르단의 통합을 요구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어떠한 국가도 수립하지 못했다.

제2차 중동 전쟁

제2차 중동 전쟁, 또는 수에즈 위기는 1956년 10월 29일부터 1956년 11월 3일까지 발생한 전쟁으로, 아랍권에서는 삼국 동맹 공격 또는 카데시 작전이라고 부르고 이스라엘에서는 시나이 전쟁이라 불린다. 이스라엘이 1956년 말 이집트 침공을 개시했고, 영국과 프랑스가 뒤이어 이집트에 선전포고를 했다. 전쟁의 목표는 수에즈 운하의 통치권을 영국과 프랑스가 회복하고,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를 권력에서 몰아내는 것이었다. 전투가 시작된 이후, 유엔과 미국, 소련이 동맹군에 정치적 압박을 가했고, 결국 동맹군은 물러났다. 이 사건은 영국과 프랑스에게 굴욕을 가져다 주었고, 나세르의 권력을 강화시켰다.

제3차 중동 전쟁

제3차 중동 전쟁 또는 6일 전쟁(히브리어: מלחמת ששת הימים, 아랍어: حرب ۱۹٦۷)은 6월 전쟁,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등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주변 이웃 국가인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이 연합하여 벌인 전쟁이다. 이 때 당시 이집트는 아랍 연합 공화국으로 불렸다.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 사이의 관계는 제1차 중동 전쟁 이후 안정화된 적이 없었다. 1956년 수에즈 위기 당시 이스라엘은 주요 목표 중 하나였던 티란 해협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시하게 여겼다. 이 지역은 1950년 이래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항해를 봉쇄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철수할 수 밖에 없었으나, 티란 해협을 다시 개방할 지도 모른다는 보장을 받게 되었다. 유엔 긴급군이 국경에 따라 배치되었지만 비무장 합의는 없었다.1967년 6월까지 이스라엘과 주변국 사이의 긴장은 높아졌다. 이스라엘은 티란 해협에 대한 봉쇄는 전쟁 명분이 될 것이라 말하며 1956년 이후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5월 말 가말 압델 나세르는 이스라엘 선박에 대해 해협들이 봉쇄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이집트는 이스라엘과의 국경을 따라 군을 전진시켰고, 6월 5일 이스라엘은 이에 대항해 이집트 공군기지에 예방적 공습을 가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은 제3차 중동 전쟁에 관한 논란 중 하나이다.

이집트는 기습에 당했고, 이스라엘군은 소수의 피해만 입은채 이집트 공군을 거의 궤멸시켰다. 이는 이스라엘에 공중우위권을 제공해주었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와 시나이 반도를 향해 공세를 개시했고, 이는 다시 이집트군을 놀라게 했다. 몇몇 초기의 저항이 있은 후, 이집트 지도자였던 나세르는 시나이 반도에서 이집트군을 철수시켰다. 이스라엘군은 서쪽으로 계속 진격하며 이집트군에 큰 손실을 입혔고 시나이 반도를 정복하는데 성공했다. 나세르는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공습을 물리쳤다고 주장하며 요르단과 시리아에게 이스라엘을 공격해달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과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서 요르단군을 축출했으며, 시리아군에게도 반격을 가해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6월 11일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아랍 연합군의 손실은 이스라엘의 손실치보다 훨씬 높았다. 1,000명 이하의 이스라엘군이 사망한데 비해 아랍 연합군은 20,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기습 공격과 혁신적이고 잘 수행된 전투 계획, 그리고 아랍 연합군의 낮은 전투 실력과 지도력이 원인이 되어 군사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로부터 가자 지구와 시나이 반도를, 요르단으로부터 동예루살렘과 요르단 강 서안 지구를, 시리아로부터 골란 고원을 획득했다. 이스라엘군의 사기와 국제적 우위는 전쟁의 결과로 인해 증가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영토는 3배나 커졌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승리로 인해 군사들은 자만감에 빠졌고, 이는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당시 아랍 연합군이 초기에 승리를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100,000명의 시리아인이 골란 고원을 떠났고, 300,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서안 지구를 떠났는데 이들은 모두 난민이 되었다. 아랍 세계에서는 소수의 유대 공동체가 축출되어 이스라엘이나 유럽으로 이동했다.

중동 전구 (제1차 세계 대전)

중동 전역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 및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아라비아 반도와 중동 및 코카서스 반도의 국가와 페르시아 등이 연합국과 공동으로 싸운 전쟁을 통칭하는 말로, 이 전역의 범위는 중동 및 코카서스, 이란 등을 포함한다. 1914년 10월 29일부터 1918년 10월 30일까지 전투가 일어났다. 이 전역으로 오스만 제국은 완전히 아라비아 반도 및 중동에서 주권을 잃은 신세가 되었고, 영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 등이 이 지방의 이권을 나누어 가진다.

중동 전구 (제2차 세계 대전)

중동 전구(영어: Middle East Theatre of World War II)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연합군에 의해 둘러싸여 생긴 영국의 일련의 중동에서 작전을 의미한다. 1943년부터, 작전과 관련된 병력 대부분은 인접한 지중해 전장에 있었다.

지방도 제1045호선

지방도 제1045호선(중동 ~ 부곡선)은 경상남도 창원시 중동과 창녕군 부곡면 온정리를 잇던 경상남도의 지방도이다. 2003년 2월 20일부터 폐지되어 국도 제79호선에 편입되었다. 차로는 전 구간이 왕복 2차로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중해 및 중동 전구 (제2차 세계 대전)

지중해 전구(영어: Mediterranean Theatre)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중요한 전구 중 하나였다. 지중해의 광대한 크기로 인해 이 전역에서는 해군, 공군, 육군의 상호작용으로 전역을 유지했고, 지중해, 북아프리카, 중동, 남유럽에서의 전투를 총괄한다. 이 전투는 이탈리아가 대전에 참가한 1940년 6월 10일부터 독일이 항복한 1945년 5월 2일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영국 부대가 그리스 정부를 돕기 위해 파견했던 그리스 전역에서는 그리스 내전 초기도 포함하기도 한다.

영국은 이 전구를 지중해 전구와 중동 전구로 구분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 위치를 최초로 전투를 지휘한 본부인 중동 사령부라는 이름을 따서 중동 전역 등으로 이름붙였다. 미국은 이 전역들을 한데 묶어 지중해 전구로 통일하여 지칭한다. 독일 공식 전투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이 전구를 "1939-42년 지중해, 남동유럽, 북아프리카 전구"라고 부른다. 전구의 크기와 관계 없이, 이 전구는 깔끔하게 서로 분리된 작전으로 구성된 전역이 아닌 여러 전역이 뭉쳐 있는 거대한 전구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새로운 로마 제국을 개척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영국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목표로 전투를 벌였다. 이탈리아가 시작한 지중해 전구의 몇몇 공격은 실패했다. 독일군의 개입으로, 유고슬라비아 침공과 그리스 공방전에서는 이길 수 있었다. 연합국과 추축국과의 전투는 북아프리카에서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으며, 추축국의 이라크, 시리아에 대한 간섭으로 중동에서도 전투가 확산되었다. 초반에는 많은 승리와 독일군의 정교한 공격으로 중동을 완벽히 점령할 것으로 생각되었고, 소비에트 연방의 남부에서 공격하자는 계획도 나왔다. 그러나, 전투 3년 후에는 추축국이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격퇴되었다. 연합군은 남부 유럽을 침공하면서 이탈리아를 침공하며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실각시켰다. 이탈리아에서는 장기간의 전투가 발발했으며, 전략적 이유로 인해 영국군은 동남쪽의 그리스로 보내졌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길었던 이 전구의 결과로 북아프리카의 이탈리아와 독일군의 손실은 총 50만명이 넘는다(최종 항복 및 포로 포함). 이 전구의 이탈리아군의 손실은 177,000명이 사망했고 주변 관련 전역 전투에서 수십만 명이 포로가 되었다. 영국군은 30만명이 사망, 부상, 또는 포로가 되었으며 미군의 손실은 13만명이다.

타임 (잡지)

《타임》(Time)은 미국의 주간지이다. 유럽판 타임지(Time Europe, 전에는 Time Atlantic이었음)는 영국의 런던에서 출판된다. Time Europe은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2003년부터는 라틴 아메리카까지 다룬다. 타임 아시아판은 홍콩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캐나다판은 토론토에 본부가 있다.

1989년부터 워너미디어 사의 소유가 되었다.

미국의 주간지 중 가장 판매량이 많은 잡지이다.

페르시아어

페르시아어(فارسی [fɒːr’siː] 혹은 پارسی [pɒːr’siː]) 간칭 파사어(波斯語)는 이란을 중심으로 한 중동 지역에서 사용되는, 인도이란어파에 속하는 언어이다. 표기에는 아랍어와 마찬가지로 아랍 문자가 사용되나 아랍어와는 전혀 다른 언어이며, 힌디어, 싱할라어, 디베히어, 영어, 러시아어, 프랑스어와 같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이란, 아프가니스탄, 바레인, 이라크,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러시아 남부(체첸 공화국, 인구시 공화국 등 이슬람 공화국) 및 인접한 나라들의 소수민족들을 비롯해 인도 일부와 파키스탄 일부에서 사용되며, 이란의 공용어이다. 모어 화자는 4600만 명을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중동의 나라와 지역
중동 관련 지역
일반적 정의
확장된 정의
(대중동 권역)
아시아의 나라와 지역
독립국
속령
미승인 국가
세계대륙과 지역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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