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 정치

전제주의(專制主義, 영어: despotism)는 단일 개체가 절대 권력으로 통치하는 정부 형태이다. 군주·귀족·독재자·계급 정당의 어느 것이나를 불문하고, 지배자가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아무런 제한이나 구속 없이 마음대로 그 권력을 운용하는 정치 체제를 말한다. 민주 정치·입헌 정치·공화 정치의 반대 개념으로서 권위주의, 독재 정치의 일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군주

군주(君主)는 군주제 국가의 국가원수이다.

군주제

군주제(君主制)는 소수자의 지배인 귀족제나 다수자의 지배인 민주제와 대비되는 세습적 단독수장에 의해서 통치되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노예제 사회 때부터 존재했었는데 그 내용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봉건제 말기의 절대군주제는 그 전형이며 19세기 이후에 그 권력을 제한한 입헌군주제가 있다.군주제에서는 ‘국왕’이나 ‘황제’ 또는 그밖에 군주에 해당하는 직위(예를 들면 술탄, 칸, 파라오 등)를 가지는 사람이 국가 원수가 된다. 왕위 계승률에 따라 세습하는 경우가 많으나, 군주를 선거로 뽑는 경우도 있다. 입헌 군주제와 절대 군주제로 나뉘는데, 입헌 군주제도 직접 투표에 의해 선출된 의회가 국정을 맡고, 군주는 상징에 머무르는 영국형과, 의회와 헌법은 있으나 군주의 권한이 강력한 프로이센형으로 나뉜다.

왕,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은 모두 황제가 아닌 국가의 원수를 말한다. 왕과 다른 영주와의 차이는 왕은 왕국에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의 작위를 줄 수 있으나 다른 영주들은 이러한 작위를 신하에게 줄 수 없다. 즉 상대적으로 왕국은 독립 국가이며, 공, 후, 백, 자, 남작은 예속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권에서는 이슬람 전체의 군주는 원래 칼리프였다. 칼리프는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전체 이슬람 세계의 군주이다. 칼리프 중에서 무함마드의 혈통만을 인정하는 시아파와 무함마드의 혈통이 아닌 칼리프도 인정하는 수니파가 있다. 술탄은 칼리프 제하에서 속령이나 제후국의 총독을 겸한 왕이었다. 왕이라고는 하나, 총독과 왕의 중간 성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칼리프가 언제든지 해임할 수 있는 왕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칼리프가 사라진 후에는 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이탈리아 등의 군주제가 타도되어 현재는 몇몇 국가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군주주의

군주주의(君主主義, Monarchism)는 군주제를 보호하거나 군주제의 근본을 추구하는 정치 운동, 이데올로기나 군주제의 복원을 옹호하는 의미 정치적 신념 등을 의미한다. 공화주의와는 이질적으로 반대된다.

니케아 제국

니케아 제국(그리스어: Βασίλειον τῆς Νίκαιας)은 제4차 십자군 이후 비잔티움 제국을 계승한 국가들 중에 가장 큰 계승국이었다. 1204년부터 1261년까지 존속했다.

대리청정

대리청정(代理聽政)은 동아시아의 전제군주제 국가, 특히 중국, 조선, 일본에서 임금의 재가(허락)를 받아 임금의 정치 등 여러 일을 대신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섭정). 보통 대리청정은 왕세자 및 왕세손이 하였으며, 가끔 왕세제가 할 때도 있었다.

대리청정할 때의 왕세자 및 왕세손, 왕세제를 소조(小朝)라 했고, 그 당시의 국왕을 대조(大朝)라 불렀다.

법실증주의

법실증주의 (法實證主義)는 광의로는 법의 실재면(實在面)을 경험적으로 고찰하는 경향의 법사상·법학이다.

콩트가 사회학을 처음 제창한 이래의 여러 경험 과학의 발달에 따라 19세기에 법의 영역에도 나타난 역사 법학·이익 법학·법사학 등이 이에 속한다. 협의로는 경험적으로 존재하는 법으로서의 실정법만을 법으로 하는 법사상·법학으로서, 법률 실증주의·실증법주의라고도 한다. 개념 법학(槪念法學)·일반 법학·분석 법학·방법론적 자각(自覺)을 가지고 행하여진 순수 법학 등이 이에 속한다. 국가의 법적 중앙 집권이 여러 실정법을 정비함으로써 확립된 때에 실정법 질서는 이성법 체계로서의 자연법의 구현을 위하여 완전무결이라 생각되었으며, 법률가는 주어진 이 실정법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하고 법조문의 개념 구성만을 일삼아, 여기에 법실증주의가 생기게 되었다.

법실증주의는 실정법과 그 이외의 정의, 자연법, 도덕률을 의식적으로 구별하고, 후자를 법의 고찰로부터 배제한다.

주권자의 명령에 구애받는 법과 그 이외의 규범을 분석한 오스틴의 분석 법학, 다시 여기에 더하여 역사·사회·정치 이데올로기 등의 실정법 이외의 일체를 배제한 켈젠의 순수 법학은 대표적인 것이다.

또한 법실증주의는 한때는 신(新)칸트파의 비판을 받았는데, 그것은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는 실정법주의이며, 독일에서는 나치 전제 정치(專制政治)에 봉사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전후 자연법 및 법사회학으로부터 법실증주의 극복의 소리가 높아졌다.

법실증주의에는 실정법에 의한 인권의 보호, 거래의 안전 등의 효용이 있다.

서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라틴어: Imperium Romanum Occidentale)은 395년부터 476년 또는 480년까지 유럽에 존재하던 제국이다. 395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완전 분할되어, 생겨난 옛 로마 제국의 서부를 통치하였다. 그러나 황제에게는 실권이 없었고 게르만족 군인들이 실권을 장악했다. 로마 제국은 동쪽 절반인 동로마 제국으로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어 멸망할때까지 존속하였다.

선거군주제

선거군주제(選擧君主制)은 군주를 선거에 따라 선출하는 제도이다. 선거 군주제에서는 왕위에 대한 피선거권과 선거권이 규정되어 있다. 세습군주제와 대비된다.

섭정

섭정(攝政)은 군주(군왕)가 통치하는 국가(군주국)에서 군주가 아직 어려서 정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거나 병으로 정사를 돌보지 못할 때 국왕을 대신해서 통치권을 받아 국가를 다스리던 사람이나 그 일을 가리킨다.

동양에서는 황태자나 왕세자가 다스리는 것을 대리청정, 황태후나 대왕대비 등 여자들이 다스리는 것은 수렴청정 그리고 신하 중 고명대신인 대신이 다스리는 것 또는 그 대신을 섭정승(攝政丞)이라 한다. 조선에서는 섭정이라는 용어가 거의 쓰이지 않았고, 수렴청정과 대리청정, 섭정승이라는 말이 주로 쓰였다.

동양에서는 다음과 같은 때에 섭정이 이루어졌다.

조선 왕조의 수렴청정

조선 왕조의 섭정승단종 :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했으나 수렴청정을 해줄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부재하여 영의정 황보 인의 1개월간 섭정승 체제를 거쳐 좌의정 김종서가 1년간 정사를 돌보았고 뒤이어 왕숙 수양대군이 영의정으로서 2년간 정사를 돌보았다.

예종 : 19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사촌 형 귀성군 이준이 영의정으로서 4개월 동안 섭정승을 맡았다. 당시 예종은 충분히 친정을 할 수 있는 나이였으나 몸이 병약하여 사촌 형의 도움을 받았었다.

연산군 : 19세에 즉위하고 영의정 이극배가 섭정승하였으나 명민한 덕에 즉위한지 불과 3개월만에 일찍 친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중종 : 19세에 즉위하고 우의정 박원종이 섭정승하였으나 명민한 덕에 즉위한지 불과 1년만에 일찍 친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숙종 : 14세에 즉위하였지만 영의정 허적의 섭정승 체제를 한 달 간 지냈으며 명민한 덕에 한 달 섭정기를 끝낸 후 친정하였다.

순조 : 영의정 심환지의 섭정승 체제를 3개월간 거쳐 계적증조모였던 정순왕후 김씨가 대왕대비로서 3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였고 이후 1년간 국구 김조순의 섭정승을 받았다.

헌종 : 나이가 아직 어려서 영의정 심상규의 1개월간 섭정승 체제를 거쳐 대왕대비인 할머니 순원왕후가 7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였으며 수렴청정 종료 후로도 영의정 조인영이 한 달 남짓 섭정승을 하였다.

철종 : 종숙모이자 양모인 순원왕후가 3년간 수렴청정을 하였다.

고종 : 양어머니이자 대왕대비였던 삼종숙모 신정익황후 조씨의 1년 동안 수렴청정을 거쳐 영의정 김좌근의 3일간 섭정승 체제 후 9년간 친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섭정승을 받았고 그 사이에 영의정 조두순과 영의정 이경재와 영의정 김병학과 영의정 정원용의 섭정승 체제를 각각으로 한 달 간 잠시 받기도 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이 섭정승에서 물러난 직후 영의정 이유원의 섭정승을 한 달 간 잠시 받았다. 1884년 갑신정변 실패 직후 영의정 겸 집정대신 심순택이 섭정승하였고 조선 시대 과도 개화기였던 1895년 내각총리대신 겸 영의정 권한대행 박정양이 섭정승하였으며 1895년에서 1896년까지 총리대신 겸 영의정 권한대행 김홍집이 잠시 섭정승하였다. 1901년에서 1902년까지 의정내각총리집정대신 윤용선이 섭정승하였으며 1904년에서 1905년까지 의정대신 이근명이 섭정승하였다.청나라의 섭정승순치제 : 6세에 즉위하자 황숙인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이 섭정승을 맡았다.

동치제 : 5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공충친왕과 동태후, 서태후가 공동으로 섭정했다.

선통제 : 3세에 즉위하자 큰어머니인 동시에 양어머니인 융유태후와 친아버지 감국섭정왕이 공동으로 섭정했다.일본 : 일본국 헌법 제4조 참고서양 국가에서는 다음과 같은 때에 섭정이 이루어졌다프랑스 : 루이 13세 왕의 왕비이자 스페인과 오스트리아의 공주인 안 도트리슈가 루이 14세의 어머니로서 섭정을 하였다.

영국 : 조지 3세 왕의 충신인 멜버른 총리가 빅토리아 여왕의 고명대신으로서 섭정을 하였다.

오스트리아 :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츠 1세 황제의 황후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 몸이 약한 남편을 대신해서 대리청정을 하였다.

수렴청정

수렴청정(垂簾聽政)은 동아시아에서 나이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 또는 큰어머니(적모, 백모)나 작은어머니(숙모)가 대리로 정치를 맡는 일을 말한다(→섭정). 본래 수렴청정이라는 말의 어원은 왕대비가 남자인 신하 앞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왕의 뒤에서 발을 내리고 이야기를 듣던 데에서 비롯하였다. 엄밀히 말해 수렴청정과 섭정은 다르지만, 한국에서는 섭정하는 사람이 여자이면 수렴청정으로 여긴다.

한국에서 수렴청정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구려 태조대왕이 7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모후인 태후 부여씨가 섭정하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다.

시역

시역(弑逆, regicide)이란 군주를 죽이는 행위 또는 이러한 행위를 실행한 사람을 일컫는 용어이다. 본래 영국에서 재판을 받아 사형이 선고된 국왕을 대상으로 한 용어였으나 용어의 확장으로 인해 영국 이외의 군주에게도 이 용어를 사용한다.

왕권신수설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 Divine Right of Kings)은 절대주의(絶對主義)시대에 왕권의 절대성을 주장한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국왕의 권력은 신(神)으로부터 받은 것이며, 지상의 여하한 것으로부터도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하여, 국왕권력의 정당성의 근거를 직접 신에게서 구하였다.

이에 따라 대외적으로는 로마 교황 및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국왕 권력에 대한 간섭을 배제하고, 대내적으로는 봉건제후(封建諸侯)의 국왕권력에 대한 간섭을 배제하고자 하였다.

왕권신수설을 주장한 유명한 사람으로는 장 보댕(Jean Bodin), 프랑스의 루이 14세,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 등이 있다. 보댕의 설은 프랑스 절대왕정 확립을 위해 유효 적절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기타 유럽 제국(諸國), 특히 튜더 절대 왕정의 옹호론으로서도 큰 역할을 하였다.

제임스 1세는 절대주의 국가에서 왕이 지나친 권력을 휘둘러 국민들의 저항이 높아지자 왕권을 뒷바침 하기 위한 설은 당시 영국에 있어서 절대주의의 기반이 흔들려 국왕의 권력 자체가 문제시되어 이를 보강할 목적에서 주장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정치철학은 당연히 절대주의의 정치이념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의회에 의한 왕정 비판이 왕의 대권(大權)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의회의 권한을 무시하고 독단 전행(專行)의 정치를 강행한 것이다.

왕당파

왕당파(王黨派, 영어: royalist)는 군주제의 유지나, 군주에 의한 통치(친정)를 주장하는 정치 당파이다. 근왕파라고도 한다. 반대어는 공화파(republican)이다.

시민 혁명에 대해서는 공화파와 대립하고 절대 왕정과 귀족제의 정비를 주장한다. 입헌군주제를 목표로 하는 입헌군주파도 광의의 왕당파에 포함될 수 있다. 국왕이 왕권을 강화하는 필수 세력이며 왕정을 유지하고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귀족만이 왕당파는 아니라, 부르주아 등 시민과 농민 지지에 의한 왕당파가 존재할 수 있다. 지금도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 왕정복고를 지향하는 왕당파가 활동하고 있다.

왕실

왕실(王室)은 군주제 국가에서 국왕의 일가족을 일컫는 총칭이다. 같은 뜻의 왕가(王家)가 있다.

입헌군주제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란 헌법 체계 아래서 세습되거나 선임된 군주를 인정하는 정부 형태이다. 즉 정치적 군주의 권력이 헌법에 의하여 제한을 받는 체제가 입헌군주제다. 현대의 입헌군주제는 보통 권력 분립의 개념을 충족하며, 군주는 국가원수의 역할을 한다. 군주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는 전제군주제에서의 법률과 입헌군주제에서의 법률은 보통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오늘날의 입헌군주제는 거의 대부분 간접 민주제와 혼합되어 있고,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 이론을 내세우기도 한다. 군주는 나라의 수장이다.

비록 현재의 입헌군주제가 대개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항상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이 군주제와 헌법이 공존하던 나라에서 권력자의 독재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며, 태국과 같이 정부가 군부 독재 치하에 있었던 경우도 있다.

일부 입헌군주제가 세습되는 반면에,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바티칸 시국 등은 선거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전제

전제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다.

전제(前提) 또는 전제조건은 논리학에서 새로운 판단을 도출시키는 미리 알려진 판단을 뜻한다.

전제(前提)는 언어학에서 진술에 명시되어 있지 않아도 아는 것으로 사실상의 약속이 되어있는 사항을 뜻한다.

전제(前際)는 불교 용어로, 과거를 뜻한다.

전제(田齊)는 중국 전국 시대의 나라이다.

전제(全霽, 1558년 - 1597년)는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전제(專制)는 자신의 생각대로만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전제 정치(專制政治)는 통치자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 제도이다.

전제군주제(專制君主制)는 군주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 제도이다.

전제군주제

전제군주제(專制君主制, despotic monarchy)는 이상화된 정부 형태로 통치자가 법률이나 합법적인 반대 세력의 의견에 상관없이 자신의 나라와 국민을 무제약적으로 통치하는 권력을 누리는 군주제이다. 공민학적 견해에 따르면, 전제 군주 국가는 태어날 때부터 통치를 위해 많은 교육과 훈련을 받는 군주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이론적으로 전제 군주는 자신의 국민, 영토와 귀족 계급, 때때로 성직자까지 포함해서 거느리는 절대적인 권력을 갖지만, 실제로는 전제 군주가 제한된 권력만을 누리도록 세워지는 경우도 있다.

유럽사에서는 18 ~ 19세기의 전제군주제를 따로 절대군주제(Absolute monarchy) 또는 절대왕정이라고도 부른다.

전제정

전제정(専制政, 라틴어: Dominatus 도미나투스[*])은 후기 로마 제정의 정치형태를 말한다. "지배자(라틴어: domius 도미누스[*])"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 도미누스라는 칭호는 신민이 황제를 지칭하는 용어지만, 그 사용 자체는 원수정 시기인 네르바-안토니우스조 시절에 이미 확인된다.

고대 로마는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제정으로 이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양부 카이사르가 암살된 경위에서 로마 시민의 군주제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잘 이해한 옥타비아누스는 실질적으로는 군주제이면서 표면적으로는 공화제를 준수하는 기만적 체제를 만들었고, 이후의 로마 "황제"들도 그것을 계승하였다. 이것을 원수정(프린키파투스)이라고 한다.

그러나 3세기의 위기 때 불과 1-2년에 한 번씩 황제가 교체되는 이상 사태가 일어나면서 로마 황제의 원수로서의 권위는 실추되었다. 군인 황제 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개혁을 실시했고, 이에 따라 디오클레티아누스 이후 로마는 명분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군주제 국가가 되었다. 이 후기 로마 제정을 후세에 전기 로마 제정의 원수정과 구분하여 전제정(도미나투스)라고 부른다.

기존의 로마 제국은 속주들로 분할되어 있으며, 그 중 절반의 속주의 총독은 원로원이 임명하는 체제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기존의 속주들을 100여개로 재분할해 속주총독의 권력을 삭감했다. 그리고 강력한 관료제를 만들어 독재적 황제가 관료를 통해 신민을 지배하는 체제가 완성되었다.

또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두 명의 정제(아우구스투스)와 두 명의 부제(카이사르)가 제국을 분할 통치하는 사두정치 제도를 만들었다. 정제는 20년의 임기가 정해져 있고, 임기가 끝나면 부제에게 승계하고 물러나야 했다. 이에 따라 기존에는 "존엄자"라는 명예 칭호에 불과했던 "아우구스투스"가 황제를 의미하는 정식 칭호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제위에 임기를 정한 것, 전국의 권력을 4분할한 것, 혈통에 무관하게 유능한 자에게 제위를 계승시키는 것은 공화제적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에 부제를 맡고 있던 콘스탄티우스 1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1세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한 뒤 발발한 내란을 수습하고 경쟁자인 다른 황제들을 물리치고 유일한 로마 황제가 되었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혁을 한층 더 추진해 관료제를 정비하고 기독교를 공인했다.

또 그전까지의 로마 황제는 군의 지휘관인 개선장군(임페라토르)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군인 황제 시대가 벌어진 것도 외적의 침입이 격화된 시대에 황제가 전선에 체류하는 일이 많아졌기 대문이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사두정치 제도를 만든 것도 전선 사령관으로서의 황제가 각 전선을 분담하기 위해 4명의 황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콘스탄티투스 1세는 최고위 군사사령관으로 군사사령관(라틴어: magister militum 마기스테르 밀리툼[*])을 신설하고 황제가 사령관을 임명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기존의 친위대장(라틴어: praefectus praetorio 프라에펙투스 프라에토리오[*])은 문관으로 전환되었다.

이후 테오도시우스 1세 때 군사사령관으로 임명된 스틸리코는 로마 제국의 동서 분열시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호노리우스의 후견인으로 흑막의 실세로 행동했다. 원수정 때였다면 무능한 황제가 암살이나 탄핵으로 제위와 생명을 박탈당했겠지만 이 시대에는 유능한 신하가 암군이나 유군을 대신해 실질적 정치를 거행했다. 황제의 능력에 무관하게 군주제 자체는 안정되었다는 것은 로마 제국이 완전한 독재정치로 전환된 것을 보여준다.

절대주의

절대주의(絕對主義, Absolutism)는 군주가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정치 체계를 일컫는 말로, 전제 정치의 한 형태이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를 특색지어 주는 독재정치 형태이다.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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