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장례(葬禮, 영어: funeral)는 사람이 죽은 후 치러지는 의식이다.

Korean funeral, Korea, (s.d.) (Taylor box45num18)
20세기 초 한국의 장례

역사

네안데르탈인은 이미 죽은 자들을 매장할 때, 생전에 직접 사용했던 것을 함께 묻어주었다.[1] 의도적인 매장이 분명한 최초의 흔적은 이스라엘의 카프제(Qafzeh)와 스쿨에 있는 12~9만 년 된 동굴에서 나왔다.[2] 신석기 시대 매장식 무덤에서 시신위에 꽃이 놓여 있었던 것이 발견되어 매장 의식이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영국의 스톤헨지는 거대한 축제의 장소이자 장례 의식이 행해진 곳이었다고 한다.[3] 고대 국가가 출현하면서 피라미드, 진시황릉, 고인돌, 장군총 등 거대한 통치자의 무덤이 건설되었다.

나라별 장례

미국

미국은 영토가 매우 넓어 일반적으로 나무 관에 시신을 안치하여 무덤을 만들어 봉분을 쌓아 시신을 땅에 묻는 매장 문화를 선호한다. 과거 원주민들은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화장 문화에 매우 반발하여 매장을 우선적으로 선호했고, 그 다음으로 시신을 바다나 강에 빠뜨리는 수장을 선호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도 인구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화장 문화를 장려하는 편이다.

중국

중국은 고대에서부터 나무 관에 시신을 안치하여 무덤을 만들어 봉분을 쌓아 시신을 땅에 묻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가 당나라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교류하는 과정에서 불교가 대세였고,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확산되었다. 하지만 송나라 시기에 화장이 유교적인 도리에 매우 어긋난다고 판단되어 다시 매장 문화가 확산되었다. 근대 시대부터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로 국토 문제가 심각화되어 중화민국 시기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화장을 장려하고 있으며, 문화대혁명 시기에 화장을 법으로까지 정했다. 이후 매장 문화는 점차 사라지게 되었지만, 권력이 많고 재력이 많은 황족과 왕족과 귀족과 같은 부유층들은 매장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신이 너무 뚱뚱하여 소각로에 못 들어가는 경우에도 예외적으로 매장을 허가한다. 중국에서 장례를 치르며 시신을 매장하는 문화가 거의 사라지게 중국 정부는 장려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매장 방식 장례가 지속돼 묘지 면적이 급증하고 심각한 묘지난까지 발생하면서 화장 문화를 적극 확산시키고 있다.[4]

영국

영국은 예로부터 섬나라였던 탓에, 시신을 매장하는 데 땅이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원주민들 대부분은 화장을 했지만, 화장이 기독교의 부활 사상 교리에 매우 어긋난다는 판단에 황실에서는 화장을 금지하고 매장을 장려하였다. 그리고 차선책으로 나무 관에 시신을 안치하여 바다나 강에 빠뜨리는 수장도 장려하였다. 한 때 영국은 대 영국 제국의 이름으로 전 세계의 대부분 식민지를 관할하여 영토가 매우 넓어졌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식민지를 모두 잃게 되었고, 결국 최근 화장이 기독교의 교리에 전혀 어긋나지 않다는 점을 들어 다시 화장이 장려되었고, 지금도 영국은 화장을 장려하는 편이다.

한국

한국의 사족(士族)은 10촌(五世) 이내의 친족을 의친(懿親), 유복친(有服親)이라 하여 한 가족으로 간주했다. 종형제(從兄弟: 4촌형제)·질부(姪婦:3촌 조카며느리)의 상사(喪事)에 대공복(大功服: 9개월 상복), 종조부모(從祖父母:조부의 형제부부)·재종형제(再從兄弟: 6촌형제)·종질(從姪: 5촌조카)·종손(從孫:6촌손자)의 상사에 소공복(小功服: 5개월 상복), 종증조(從曾祖:증조부의 형제부부)·삼종형제(三從兄弟: 8촌형제)의 상사에 시마복(緦麻服: 3개월 상복)을 입었다.[5] 장례방법이 매장(埋葬)을 하던 시대에서 화장(火葬)으로 바뀌었고 유골 처리도 자연으로 돌리는 자연장이 대세이며, 화장 및 납골문화가 확산되면서 묘지 증가에 따른 국토 훼손을 막을 수 있다.[6][7]

일본

일본은 섬나라였던 탓에, 시신을 매장하는 데 땅이 좁았다. 그리하여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화장을 선호하게 되었다. 하지만 왕족들과 귀족들 같은 부유층들은 화장 문화가 매우 사악하다고 판단하여, 화장을 꺼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일본은 땅이 좁아 매장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차선책으로 수장 또한 선호되었다. 이후 메이지 유신을 선포한 왕실에서는 국토 문제 해결책으로 화장을 법으로 정하였고, 모든 국민들은 지금까지도 화장을 한다.

문화

장례 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종교이다. 각 종교의 교의에 의해 선호되거나 금기시 되는 장례방식이 있었다.

불교

불교의 전통적인 장례 방식은 화장이다. 불교에서는 다비라고 한다. 불교의 화장은 장작 위에 시신을 안치하고 종이로 만든 연꽃 등으로 가린 후 불을 놓아 화장한다. 승려의 경우 화장 후에 유골을 부수어 유골함을 만들고 부도에 안치한다. 이때 사리를 수습하기도 한다.

  • 티베트 불교: 티베트 지역에서는 시신을 수습하여 특별한 대에 안치 한 후 들이 쪼아 먹도록 하는 조장을 하였다.

유교

조선 시대에 정착된 유교식 매장 의식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장례문화이다.

  • 부음: 조선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입었던 웃옷을 들고 지붕에 올라가 크게 소리쳐 죽음을 알렸다. 근래에는 그리 많이 행해지지 않는다.
  • 염습: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잘 씻기고 수의로 갈아 입힌 후 가지런히 수습하였다.
  • 입관: 염습한 시신은 3일 또는 5일 동안 살아있는 사람과 같이 대한 후 비로소 에 넣었다.
  • 초상: 입관 후에 처음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을 초상이라 한다.
  • 발인: 관을 상여에 옮기고 장지로 가기 전에 하는 의식을 발인이라 한다.
  • 노제: 죽은 사람과 깊이 관련이 있는 곳이 있을 경우 그 곳에 들러 제사를 지내는 것을 노제라 한다.
  • 달구질: 무덤을 파고 관을 넣은 뒤 흙을 다져 봉분을 만드는 것을 달구질이라 한다.
  • 소상: 죽은 뒤 1년이 지나 처음 돌아 오는 기일에 지내는 제사를 소상이라 한다. 대개 이 날을 기해 탈상한다.
  • 탈상: 죽은 뒤 1년 (12개월) 또는 3년 (36개월)간 음력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를 지냈다. 그 기간 동안 예전에는 베옷을 입었으나 최근에는 흰 천 등을 옷에 달아 상중임을 표시하거나 더욱 간소화 한 경우에는 초상까지만 표시한다. 더이상 상중임을 나타내지 않는 것을 탈상이라 하는데 대개 1년 지난 첫 제사 후 탈상 한다. 현재는 3년상을 거의 하지 않고 1년 혹은 49일 후에 탈상한다.

기독교

기독교에서는 각 교파별 의식에 따른 장례를 성직자가 집전한뒤 시신을 매장하고 묘비를 세우는 매장이 많았지만, 화장이 기독교의 부활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아서 최근에는 화장도 장례의 한 방법으로 존중받고 있다.각 기독교 교파별로 장례에 대한 명칭이 다른데, 성공회에서는 고별성찬례, 로마 가톨릭에선 장례미사, 개신교에서는 장례예배라고 한다.

조로아스터교

조로아스터교는 불을 더러운 것을 소멸하는 존재로 숭배하여 배화교라고도 불리는데 시신을 특별한 데에 놓아 두어 부패하거나 짐승들이 먹어서 자연히 없어지는 풍장 의식이 있다.하지만 현대 조로아스터교가 이슬람의 영향으로 쇠퇴하면서 풍장의식도 교세와 함께 쇠퇴하였다.

유대교

고대 유대교에서는 기원전 8세기 이후 부활 교리의 영향으로 동굴에 시신을 모신뒤, 시체가 썩으면 유골을 관에 담았다.실제로 마태복음을 보면 로마제국의 공권력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의 시신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자신의 동굴무덤에 모셨다는 이야기가 있다.[8]

이슬람

이슬람의 장례는 부활 신앙에 따라 땅에 시신을 모시는 매장이다. 염(殮)을 한 시신에 수의를 입히며 무덤안의 묘실에 모시며, 관을 사용하지는 않는다.[9]

기타

현대에 들어 숲의 나무 옆에 시신을 묻는 수목장이나, 시신을 화장하여 바다나 숲에 뿌리는 화수장 형태 등 다양한 방식의 장례 문화가 파급되고 있다.

같이 보기

각주

  1. 파울 프리샤우어 (1991년 1월 15일) [1968]. 《세계풍속사(상)》. 이윤기 번역. 서울: 도서출판 까치. 21쪽쪽. ISBN 89-7291-011-2. 그러므로 죽은 자의 유해는 죽은 뒤에도 방해받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대로 두거나 또는 생전에 직접 사용했던 것을 전부 함께 묻어주었다. ... 네안데르탈인은 이미 죽은 자들에게 애정을 담아 매장할 때 그렇게 했다.
  2.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1》(들녘, 2009) 50쪽 ISBN 978-89-7527-836-5 "의도적인 매장이 분명한 최초의 흔적은 이스라엘의 카프제와 스쿨에 있는 12~9만 년 된 동굴에서 나왔다." Paul Mellars, Chris Stringer, The Human revolution (Edinburgh University Press, 1989) ISBN 978-0-85224-646-7 214쪽에서 인용함.
  3. 스톤헨지 관련기사
  4. <중국서 매장 사라진다…"2020년 100% 화장 목표"> 2014-04-04
  5. 왕족은 지위와 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었고, 서민은 부모의 상에도 100일상을 치루는 경우가 많아 물의가 잦았다.
  6. 묘지로 쓰이는 국토면적은 ‘한해 여의도의 57%’2010-01-28
  7. 이천, 장례문화 매장서 화장으로 유도 2015-01-07
  8. 마태복음 27:57-60
  9. “이슬람 장례문화 소개글”. 2007년 9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7년 6월 18일에 확인함.
9월 13일

9월 13일은 그레고리력으로 256번째(윤년일 경우 257번째) 날에 해당한다.

검정

검은 또는 흑색(黑色)은 색의 하나로 빛이 없는 상태 또는 먹과 같은 색이다. 가시광선의 범위를 벗어나는 빛도 검게 느낀다.

고대 이집트 종교

고대 이집트 종교(古代-宗敎)는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첫 왕조부터 기독교 유입기까지 약 3천 년 넘게 유지한 다양한 신앙과 장례 의식을 포함하는 종교이다. 이 믿음의 중심에는 온갖 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다양한 신들이 있다. 이 신들은 각각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으나, 이집트 제18왕조에 들어서서는 아문과 같은 하나의 신이 다양한 인격체와 모든 신적 권능을 포함하는 것으로 고대 이집트 종교의 신학이 변해갔다 이집트의 신들은 각 가정집이나 지역의 중심 신전에서 재물 봉납과 기도로 숭배되었는데, 각 이집트의 왕조마다 몇몇 신들이 두드러지게 숭배되거나 신들이 연합되기도 하였으며 이는 각 왕조의 파라오 이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종교는 다양한 신념을 포함하고 있는데, 가령 파라오의 신성과 같은 교리는 이집트의 정치적 안정에 이바지하였다. 또한 사후 세계와 같은 신앙은 미라나 피라미드와 같은 독특한 매장방식을 탄생하게 하였다.

이집트 신화는 지중해 연안 나라들과 유대 민족의 종교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일컬어지며 로마 문자 또한 고대 이집트의 신화와 역사를 서술할 때 쓰이던 신성 문자에서 발전한 것으로 추측된다.

광희문

광희문(光熙門, 영어: KwangHeeMun)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소문(小門) 중의 하나로 남쪽의 소문이다. 오간수문·이간수문이 가까워 수구문(水口門)이라고 하였고, 도성의 장례 행렬이 통과하던 문이어서 시구문(屍口門)이라고도 하였다. 근대부터 남소문(南小門)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하나, 남소문이 따로 있었다.광희문은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문루가 망가졌다가 1975년 문을 남쪽으로 옮겨 문루와 함께 복원했다.

교황

교황(敎皇, 라틴어: papa, 그리스어: πάπας, 영어: pope)은 《교황청 연감》에 따르면 로마의 주교이자 가톨릭교회 전체의 영적 지도자이며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이다. 이는 기독교 전승에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교회의 첫 수장으로 임명되어 천국의 열쇠를 부여받았다는 성 베드로의 정통 후계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기독교 창시 이래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총 266대 교황이 재위하였으며, 현재 교황은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이다.

교황의 직위를 가리켜 교황직(敎皇職, papatia)이라고 부르며, 교황이 통치하는 세속적 영역은 ‘성좌’(Sancta Sedes) 또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가 순교한 로마에 세워진) ‘사도좌’로 불린다.

교황직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책 가운데 하나이며,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초기 교황들은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고 다양한 교리적 논쟁을 해결하는데 주력하였다. 중세에 들면서 종교 문제 뿐만 아니라 서유럽의 세속 문제에도 개입하여, 종종 기독교 군주들 간의 각종 분쟁에 개입하여 중재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는 기독교 신앙의 전파 및 정통 기독교 교리의 수호는 물론 교회 일치 운동과 종교 간 대화, 자선 활동, 인권 수호 등에 매진하고 있다.교황에게는 본래 세속적 권력이 없었지만, 중세기에는 세속의 통치자들이 가진 권력과 같이 광범위한 권력을 가진 때도 있었다. 최근 세기에 들면서 교황은 점차 세속 권력이 약해지면서, 오늘날 교황의 권위는 다시 본연의 임무인 종교적 문제들에 국한되어 있다. 수세기가 넘도록 교황의 종교적 권한에 대한 주장은 19세기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신앙이나 도덕에 관하여 엄중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교황 무류성 선언으로 최고조에 달했다.

국민장

국민장(國民葬)은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제정 법률 제1884호 1967년 1월 16일)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주관하는 장례 의전 가운데 하나였다. 과거 정부가 공식 주관했던 장례의식은 국장(國葬)과 국민장 두 가지로 구분하였으나, '국가장법'(전부개정 법률 제10741호 2011년 5월 30일) 시행령에 따라 국가장으로 통합되면서 폐지되었다.

국장 (장례)

국장(國葬)은 장례의 형식으로, 국가나 사회에 현저한 공적을 남긴 사람의 장례를 국비로 치르는 것을 말한다.

미국, 영국, 대한민국과 그밖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일본 등 많은 국가에서 이와 같은 장례 형식을 가지고 있다.

매장

매장(埋葬, 영어: burial)은 시신을 땅 속에 묻는 장례를 말한다. 전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장례의식이다.

배무덤

배무덤은 죽은 이와 죽은 이의 물건(부장품)을 같이 배나 보트등에 실어 장사지내는 것을 말한다. 앵글로색슨족, 매로빙거 왕조, 바이킹, 루스(Ros)등 게르만족에 속하는 집단들이 배무덤으로 장사를 지냈으며, 고대 이집트에서도 가끔 배무덤 풍속이 있었다. 게르만족에게 배무덤 풍속은 죽은 자를 그들의 이상향인 발홀로 떠나보내는 것으로 여겨졌고, 죽은 이에게 매우 영예로운 일이었다.

빙장

빙장(promession, 氷葬)은 시신을 액체 질소에 냉동시킨 뒤 동결 건조하는 장례 방법이다. 시신을 그냥 액체 질소에 넣어 냉동하면 세포가 깨져 일종의 가루가 되어 버린다. 이 시신을 유베생분해성 함에 넣고 흙 밑에 안장하면 시신의 유기물이 비료가 되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단순 화장이나 단순 화장 후 수목장에 비해 친환경 장례로 알려져 있다.

수장

수장(水葬, 영어: water burial)은 시신을 물에 빠뜨려 장사를 지내는 장례의 일종이다.

옛날 중국에서 묘지가 없는 사람들은 시체를 불사르지 않고, 유교 방식에 따라 황허 강이나 창 강에 시체를 물에 빠뜨려 장사를 지냈고, 미국 인디언들도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화장 장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강이나 바다에 관을 빠뜨려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남아메리카 일부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및 캐나다와 뉴질랜드 등에서도 쓰이며, 전통적으로 한국을 제외하고 세계 각 나라의 해군이나 바다에서 사망한 선원들에게서도 흔히 이용하는 장례 의식이다.

한국에서는 선원법 17조에 해당하는 사람만 수장이 가능하다.

선원법 제 17조 (수장) - 선장은 선박의 항행중 선박 안에 있는 자가 사망한 때에는 해양수산부령(국토해양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수장 할 수 있다.<개정 2013년 3월 23일.>

안드레아 벤드라민

안드레아 벤드라민(Andrea Vendramin, 1393년–1478년 5월 5일)는 1476–78년간 베네치아의 권력의 정점인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로 있었으며, 벤드라민 가문에서 유일한 도제이기도 하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 미키엘(Maria Michiel)과 그의 부인 레지나 그라데니고(Regina Gradenigo) 모두 도제들을 배출해낸 가문 출신이다. 그는 로마의 베네치아 대사로도 근무했었고, 그의 짧은 집권 기간은 2차 튀르크-베네치아 전쟁을 끝내는 것의 비중이 컸었다. 그는 페스트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제로서 그의 선출 과정은 의회가 분열하게 되는 결과를 일으켰으며, 그로 인해 악감정이 남았다: 1477년에 안토니오 펠레토(Antonio Feleto)가 수감되어 추방당했지만, 41인 위원회가 도제를 선출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고 대중들에게 기억되고 말았다. 일기작가 말리피에로는 안드레아 벤드라민이 선출될 당시에 재산이 사위들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구할 목적으로 6명의 딸들에게 각각 6-7000 두카트를 준 후, 160,000 두캇이라고 기록했다. 그의 젊은 시절, 그와 형제 루카(Luca)는 합작투자에서 갤리선에 충분한 상품들을 채우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에서 배를 사용했다고, 말리피에로는 그때의 회상을 기록했다: 그의 도매상들은 그의 업무를 관리하면서 부유해지기도 하였다.그는 일반적으로 도제들의 장례가 치뤄지는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에, 툴리오 롬바르도가 시작을 했지만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가 완성시켜낸 보통 "르네상스 베네치아의 가장 거대한 호화로운 장례 기념비"라고 받아들여지는 장례 기념비를 지녔다. 이는 본래 산타 마리아 데이 세르비 교회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프릭 컬렉션에서 젠틸레 벨리니가 그린 초상화를 벤드라민의 이름을 사용했었지만, 오늘날에는 그의 후임자인 도제 조반니 모체니고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도제들의 전통적인 장례식이 열리는 곳인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에 묻혔다. 안드레아 사망후 그의 미망인은 동생인 루카와 혼인했다.

안틸로코스

안틸로코스(고대 그리스어: Ἀντίλοχος)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필로스의 왕 네스토르의 아들이다. 헬레네의 구혼자 중에 한 사람이며 아버지 네스토르와 함께 그리스 진영으로 트로이에 대한 원정에 참가하였다. 그는 아주 아름다운 청년으로 유명했고 빠른 발과 전차를 잘 모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필로스 군을 지휘하였으며 올림포스 신들이 특별히 총애했다. 아킬레우스와는 절친한 사이였다. 파트로클로스를 추모하기 위한 장례 경기에서 안틸로코스는 전차경주에서 2등을, 달리기 경주에서는 3등을 했다.그의 죽음에 대하여는 이야기가 서로 다른데 핀다로스에 의하면 아버지 네스토르가 멤논의 공격을 받았을 때 안틸로코스가 아버지 대신 희생했다고한다.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했다거나, 혹은 아킬레우스와 함께 아폴론의 신전을 약탈하다가 파리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의 유해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유해와 함께 시게움의 곶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알칼리 가수 분해 장례

알칼리 가수 분해 장례는 시신에 알칼리를 넣어 가수 분해 하여 시신을 분해하는 장례이다. 친환경 화장이나 녹색 화장으로 불린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동물장례에 한해 사용할 수 있다.

엄흥도

엄흥도 (嚴興道, ?~?) 는 조선 전기의 문신, 충신이다. 본관은 영월이다. 강원도 영월(寧越) 호장(戶長)으로 있을 때, 세조의 명을 받은 금부도사에 의해 사사된 단종의 시신을 매장하였다. 단종이 세조에 의해 영월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사람들은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단종의 시신을 돌보지 않았다. 엄흥도는 관을 비롯한 장례 기구 일체를 혼자서 마련하여 정중하게 장사를 치른 후, 벼슬을 내놓고 아들을 데리고 숨어 살았다. 현종 때 송시열의 건의로 그의 자손이 등용되었고, 영조 때 그의 충성심을 기념하는 정문(旌門)이 세워졌고 공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사육신과 함께 영월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오환

오환(烏桓 또는 烏丸)은 허베이 성, 랴오닝 성, 산시 성, 베이징 근처와 내몽골 등 중국의 북부에 거주한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동호의 후손으로 흉노에 패하였다.

그들은 한 왕조의 후반에 활동적이었으며 한군의 정규군에 참여하였다. 중국 황제의 최전선의 주요 비중국 민족들과 같이, 오환은 황실과 상대적으로 협조적이었다. 190년경 후한이 멸망할 당시 오환은 중국의 반란과 내전에 참여하였다. 200년대에 오환의 3부는 황하 이북의 중요한 군주였던 원소를 지지하였다. 207년 조조는 오환의 영토로 깊숙이 행군해 들어오고 그들을 볼랑산(白狼山之戰)에서 격파하였다. 많은 오환의 기병이 그에게 투항하고 그는 천하의 가장 위대한 기병대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비록 다양한 오환 지도자들이 3세기에 산발적인 반란을 이끌었지만 4세기에는 선비나 한족에 흡수되었다.

죽음

죽음 혹은 사망(死亡, 영어: death, 의학: expire)은 생명체의 삶이 끝나는 것을 말한다. 죽음은 살아있는 유기체를 유지하는 모든 생물학적 기능의 중지이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자연적인 원인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죽지 않는 동물도 있다. 자연계에서 생명체들은 다른 생명체에게 잡아먹히거나, 병에 걸리거나, 대량으로 몰살당하거나 혹은 사고나 노화 등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 사람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거나 (살인), 스스로 죽거나 (자살), 혹은 법에 의해 정해진 형벌(사형)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인간의 가장 주요한 사망 원인은 노화, 질병, 사고이다.죽은 생물의 몸을 사체(死體)라고 하고, 사람의 경우에는 주검, 송장, 시체(屍體) 또는 시신(屍身)이라고 한다.

파트로클로스

파트로클로스(그리스어: Πάτροκλος)는 그리스 신화의 트로이 전쟁의 영웅으로 메노이티오스의 아들이며 아킬레우스가 매우 아꼈던 전우 또는 애인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중요한 인물로 나오는데 그의 죽음으로 인해 트로이 전쟁의 양상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화장 (장례)

화장(火葬, 영어: cremation)은 시체를 불에 살라서 그 남은 뼈를 모아 장사 지내는 것이다.

불교의 장례법으로 시신을 불에 태우고 남은 유골을 흰색 재로 만든 다음, 상자에 넣어서 보관하거나 묘지에 묻기도 하며 납골당에 안치하기도 한다. 또 바다나 강이나 산 같은 특별한 장소에 뿌리기도 한다.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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