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 문명

인더스 계곡 문명(Indus Valley Civilization)은 기원전 약 3300-1700년에 있었으며, 기원전 2600-1900년경에 흥했던 문명으로, 인더스 강과 현재 파키스탄과 북서쪽 인도에 걸쳐 있는 가가 하크라 강(Ghaggar-Hakra -)사이에 있었다. 처음 발굴된 유적지가 하라파에 있었기 때문에, 가장 부흥했던 시기는 하라파 문명이라고도 부른다. 기원전 1500년경부터 인더스 강의 범람, 삼림 파괴 등으로 쇠퇴하게 되었다.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발굴은 계속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활발히 교류해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인장 등 인더스 문명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때로는 인더스 가가 하크라 문명(Indus Ghaggar-Hakra civilization), 인더스 사라스바티 문명(Indus-Sarasvati civiliza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더스 사라스바티 이름은 가가 하크라 강을 리그 베다에 나온 사라바스티 강으로 판정하는 입장에서 부른다. 그러나 언어학적, 지리학적인 관점에서 이 이름이 적당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IVC Map
인더스 문명 도시 분포

유물

Mohenjodaro Sindh.jpeg
모헨조다로의 발굴된 유적

인더스 문명의 도시 유적에서는 많은 테라코타제의 토우, 석회암제의 상(像), 동석제(凍石製)의 호부(護符), 도장 그리고 귀금속으로 치장된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테라코타제의 토우는 신상, 동물, 완구류로 나뉘며, 그 어느 것이나 점토를 손으로 반죽하여 만든 단순, 소박한 조형(造形)이면서도 힘차고 늠름한 미의식을 엿볼 수가 있다. 신상(神像) 토우는 풍요와 다산(多産)의 기원 대상으로서, 유방이나 허리만을 과장한 지모신(地母神)의 부류가 많고, 눈과 코를 극단적으로 생략하며 두발의 상투나 장신구를 되는 대로 만들고 때로는 표정이 파충류와 흡사한 그로테스크한 것도 있다. 동물 토우는 그들이 일상 친근히 여기고 있었던 공작, 원숭이, 양 또는 거북 같은 것도 조형화(造形化)하였으며 그 조형 감각은 거칠고 소박하지만, 그런 동물들의 특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소박한 솜씨의 테라코타 토우에 비해서, 석회암제나 청동제의 조각상은 제작자와 주문자가 테라코타를 애호한 평민과는 이질적인 사람들로 보이며, 그 조형 감각이나 표현 기법도 놀랄 만큼 뛰어나다. 하라파에서 출토된 석회암제 토르소나 모헨조다로에서 출토된 청동제 무희상(舞姬像) 등을 보면, 양감(量感)의 파악 방식이나 육체의 사실적인 관찰에 의한 모델링의 적확한 표현 등은 현대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동석제(凍石製)의 호부(부적), 도장류는 거기에 표현된 인더스 문자가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용 목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판면(板面)에 크게 일각수(一角獸), 공작, 무소, 코끼리, 생명의 나무와 같은 주제가 치밀하고 정교하게 인각(印刻)되어 있다. 인더스 문명의 도장은 토테미즘에 의한 부적이라거나 소유권 주장의 도장이라거나 그 밖에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는데, 유품이 서아시아의 엘람 지방이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도 발견되어 그들이 평화로운 무역을 적극적으로 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인도 각지의 사금(砂金), 특히 남인도의 마이소르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등 각지의 금(金)이 물물교환으로 집적되어 호화로운 금제의 장신구나 은제의 뚜껑이 달린 용기(容器) 등으로 제작된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그 밖에 녹로를 사용하여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고 붉은 바탕 표면에 검은 무늬를 그린 뚜껑 달린 항아리 종류가 있는데, 이런 소성 채문 토기(燒成彩紋土器)는 이란의 채문 토기 문화와 유사한 조형, 채화 기법을 보인다.

Harappan small figures

하라파에서 출토된 토우.

Mohenjo-daro Priesterkönig.jpeg

모헨조다로에서 출토된 일명 제사장상

Red pottery, IVC

하라파에서 출토된 항아리 파편.

같이 보기

고대 인도

고대 인도(Ancient India)라고 할 때 대개 다음 항목들 중의 하나 혹은 다수를 의미한다.

고대 인도의 역사

인더스 문명

베다 시대

십육대국

마가다 제국

난다 제국

마우리아 제국

숭가 제국

사타바하나 왕조

고대 인도 왕국 또는 인도 서사 시대

인도 중왕국

쿠샨제국

굽타제국

인도 서사 시대 또는 고대 인도 왕국

굽타 왕조

굽타 왕조(힌디어: गुप्त राजवंश Gupta dynasty)는 쿠샨 왕조가 멸망한 후 4세기 초에 찬드라굽타1세가 건국하여 북인도를 지배하던 제국이었다. 이 가 치세에 십진법이 발명되었다. 찬드라굽타2세 때 쿠샨인과 샤카인, 투르크인과 같은 이민족들을 몰아내고 북인도를 통일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굽타 왕조에서 민족의식이 트이기 시작했었다.

그 결과 브라만교를 바탕으로 인도의 민간신앙과 불교를 융합한 힌두교가 왕과 백성들의 지지를 받게되었다. 힌두교도들의 일상생활에 마누 법전이 영향을 끼치게 된 것도 굽타 왕조 시기때부터였다. 또한, 아리아인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마하바라타'가 힌두교의 경전이 되었다.

그 이외에도 칼리다사의 희곡 '샤쿤탈라', 서사시 '라마야나'와 같은 작품이 탄생하며 산스크리트 문학이 발전하였다.

굽타 왕조는 여러차례에 걸쳐 백훈족(에프탈)의 침입으로 북인도 지방의 불교 교단이 크게 타격을 입어 민간의 불교신앙은 쇠퇴하였으나, 아잔타 석굴사원과 같은 굽타 양식의 불교 미술이 발달하였다.

기원전 31세기

기원전 31세기는 기원전 3100년부터 기원전 3001년까지를 말한다.

동경 (거울)

동경(銅鏡, bronze mirror)은 구리 또는 구리합금(청동)으로 만든 거울이다. 동경은 각 시대에 제작되었지만, 이집트, 인더스 문명, 중국, 베트남, 한반도, 일본 유적에서 폭넓게 발굴되었다.

메르가르

메르가르는 기원전 7000~3200년의 신석기 유적지이며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 주의 카치 평원에 있다. 인더스 강 계곡의 서쪽이며 현재 파키스탄의 쾌타, 칼라트와 시비사이에 위치한다.

메르가르는 1974년에 프랑스 고고학팀이 발견하였으며 1986년까지 발굴되었다.

남아시아에서 농경과 축산의 증거를 지닌 가장 오래된 곳이다. 메르가르의 최초 정착은 기원전 7000년에서 기원전 5500년으로 추정된다.

모헨조다로

모헨조다로(Mohenjo-Daro, 신디어: موئن جو دڙو)는 기원전 2600년경에 건설되었던 인더스 문명의 고대 도시로, 현재는 파키스탄 신드 라르카나에 위치해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모헨조다로는 고대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크레타 문명과 함께 번성했던 고대 도시로 잘 알려져 있으며, 때로는 인더스 문명의 수도로 언급되기도 한다. 한편, 도시의 이름인 '모헨조다로'는 '죽음의 언덕'(Mound of the Dead)을 의미한다.

모헨조다로 유적지는 1922년 인도인 라칼다스 바너지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비로소 1930년대에 이르러 영국인 고고학자 존 마샬에 의해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된다.

미해독 문자

미해독 문자는 아직 해독되지 않은 문자 체계를 말한다. 해독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많은 이유가 있지만 대부분 문헌이나 유적이 매우 적다는 것에 있다. 상형문자의 해독은 문자가 쓰인 문헌이 많으면 해독하는데 있어 매우 유리하지만 그 수가 적으면 해독하는데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이집트의 신성문자는 상형문자이지만 많은 유적을 통해서 결국 거의 해독되었다.

베다 시대

베다 시대는 BC 1500~BC 500의 인도 역사시대로, 시대로 힌두교의 가장 오래된 성스러운 경전 베다가 쓰인 시대이다. 학자들은 베다 시대를 문학적인 증거에 기초하여 기원전 6세기까지 계속된 시대로 보고 있다. 베다 문명이라 불리는 관련된 문명은 인도의 북부와 북서부에 중심했는데, 초기에 다양한 고대 인도의 왕국이 형성되었고 나중에는 마하자나파다스의 부상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320년경 마우리아 제국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때는 힌두교와 고전 산스크리트 문학의 황금기였다.

서양 미술사

서양 미술의 역사에 관하여 서술한다.

세계의 역사

세계의 역사, 혹은 세계사(世界史)는 선사 시대부터 이어져 온 지구상 모든 인류의 경험과 활동을 기록한 역사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같은 원인(原人)에서부터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현생 인류에 이르기까지 진화 과정 전체를 다루기도 한다.인류의 역사는 생활 양식에 따라 선사 시대, 고대, 중세, 근대, 현대와 같이 시기를 구분하며, 지역과 문화에 따라 서양사, 유럽사, 중동의 역사와 같이 구분하기도 하고, 한국사, 일본의 역사, 미국의 역사와 같이 나라별로 구분하기도 한다. 세계사는 이러한 시기와 지역 및 나라별 역사에 대하여 "하나의 전체로서 통일적인 연관성을 지닌 세계의 역사" 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역사

역사(歷史, 문화어: 력사, 영어: history)는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지난 시대에 남긴 기록물, 이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 등을 가리킨다. 또 인간이 거쳐온 모습이나 인간이 행위로 일어난 사실을 말하는 단어로도 쓰인다. 또한 역사는 시간의 흐름으로써 어떤 사람이 겪은 일에서 중요한 일들 중 후대에게 쉽게 잊히지 않는 과거의 사실을 의미하며 명예와는 미래에서 잊히지 않고 이어 전해진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역사라는 말은 객관적 사실과 서정적 표현, 주관적 기술의 세 측면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는데, 레오폴트 폰 랑케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를 밝혀내는 것이 역사가의 사명이라고 하여 객관적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에 비해 에드워드 핼릿 카는 과거의 사실을 보는 역사가의 관점과 사회 변화에 따라 역사가 달리 쓰일 수 있다고 하였다. 역사 연구란 이야기(narrative)를 통해 연속된 사건들을 검증하고 분석하며 종종 인과 관계를 객관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역사학은 고고학, 사회학 등의 주변 학문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역사라는 개념은 또한 넓은 의미에서 사건이나 사물의 자취를 총칭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역사학자들은 과거를 연구하기 위하여 많은 역사적 자료를 탐색한다. 이 자료들은 1차 사료와 2차 사료로 구분되는데, 1차 사료는 어떤 사건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이 남긴 문서, 기록 등이다.

요가

요가(산스크리트어: योग yóga)는 힌두교의 종교적 · 영적 수행 방법의 하나다. 산스크리트어 요가(Yóga)의 뜻은 다양한데 제어(Control) · 합일(Union) · 수단(Means) · 방편(Means) 등의 의미가 있다. 힌두교에서는 "요가란 실천 생활 철학에 철저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힌두교의 정통 육파철학 중 하나인 요가 학파의 주요 경전인 《요가 수트라》의 제일 첫머리(정확히는 두 번째 구절)에서는 요가를 "마음의 작용(心作用 · Citta-Vṛtti)의 지멸(止滅 · Nirodha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요가는 또한 인도에서 발생한 여러 종교의 믿음과 수행과도 관련이 있다. 인도 밖에서 요가는 흔히 하타 요가의 아사나 수행(자세 취하기)이나 운동의 한 형태로 알고 있다. 최근 뉴욕에서는 요가가 크게 유행했다.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 《하타 요가 프라디피카》, 《시바 삼히타》 등의 힌두교 경전은 요가의 여러 측면을 기술하고 있다.

요가의 주요 분류로는 하타 요가 · 카르마 요가 · 즈나나 요가 · 박티 요가 · 라자 요가 등이 있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카르마 요가 · 즈나나 요가 · 박티 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티 요가에 대한 최고의 힌두교 경전은 《바가바드 기타》와 《바가바타 푸라나》인데, 둘을 비교하면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박티가 보다 이론적으로 다루어져 있는 반면,《바가바타 푸라나》에서는 박티가 보다 실천적으로 다루어져 있다. 라자 요가는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에 의해 확립되었다. 파탄잘리에 의해 성립된 요가 학파는 《요가 수트라》를 주요 경전으로 하고 라자 요가를 수행법으로 한다.

인더스 문자

인더스 문자는 인더스 문명의 Mature Harappan 기간 (기원전 2600년 ~ 기원전 1900년)에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등 문명의 중심 도시에서 사용된 상형문자이다. 인장, 도장류의 인더스 문자는 아직까지 완전히 해독되지 않고 있다.

인더스강

인더스 강(티베트어: ཧིན་དའུ, 힌디어: सिंध, 우르두어: سندھ, 문화어: 인두스 강)은 파키스탄 중앙을 관통하는 강으로 상류인 인더스 계곡에서는 인류 초기문명인 인더스 문명이 발생하였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기 전에는 갠지스 강과 함께 이 지역에서 문화적, 상업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했고, 인도의 명칭도 인더스 강에서 유래한 것이다.

티베트에서 발원해서 히말라야와 카슈미르를 거쳐 파키스탄에 이르러서는 남쪽으로 흘러 아라비아 해로 흘러들어 간다. 강의 총 길이는 2,900km ~ 3,200km정도이다.

장난감

장난감(문화어: 놀음감) 또는 완구(玩具)는 놀이에 사용되는 물건이다. 장난감들은 주로 어린 아이들과 가정동물에 관련된 물건으로 여겨지지만 어른들과 야생 동물들도 장난감과 놀기도 한다. 어떤 장난감들은 오직 수집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포유류에 속하는 어린 동물들은 솔방울, 음식이나 돌을 장난감으로 삼으며, 애완견도 인형이나 공같은 장난감을 갖고 놀 수 있다. 인간들은 선사 시대때 부터 장난감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인더스 문명,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돌과 찰흙으로 만들어진 장난감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장난감은 아이들에게 인지력과 창조력을 길러 주는 역할을 한다. 인형, 장난감 차, 퍼즐, 수집용 장난감과 육체적 활동을 할 때 사용되는 장난감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촐라 왕조

촐라 왕조 (타밀어: சோழர் குலம், IPA: ['ʧoːɻə])는 타밀 왕조로 남부 인도에서 13세기까지 지배하였다. 왕조는 카베리의 비옥한 계곡에서 시작되었다.

촐라 왕조는 9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초까지 지속적으로 그들의 권력이 유지되었다. 라자라자 촐라 1세와 그의 아들 라젠드라 촐라의 시대에 왕조는 아시아의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강대국이되었다. 서기 1010년에서 1200년까지 촐라의 영토는 남쪽으로 몰디브 섬까지 북쪽으로는 안드라프라데시 주의 고다바라 강의 제방까지 팽창하였다.

라자라자 촐라는 남인도의 반도를 정복하였고 스리랑카의 일부를 병합하였다. 그리고 몰디브 섬을 점유하였다. 라젠드라 촐라는 북인도로 승리의 원정을 보냈는데 강가 강까지 닿았다. 그리고 파탈리푸트라, 마히팔라의 팔라 지배자를 격파하였다. 그는 역시 말레이 아르키펠라고의 왕국을 공략하였다.

촐라의 권력은 12세기 판드야의 부상으로 쇠퇴하였다. 호이살라는 결국 13세기 말경에 끝났다. 그들의 타밀 문학과 사원 건설은 약간의 위대한 작품을 낳았다. 촐라 왕들은 사원을 건설하였는데 그곳은 숭배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그들은 정부의 중앙집권을 개척하였고 사제 관료를 세웠다.

하라파

하라파 (우르두: ہڑپہ) 는 북동 파키스탄 펀자브 주의 도시로 사히와에서 남서방향으로 35km 지점이다.

현재의 도시는 라비 강의 이전 경로 근처에 위치하며 고대 요새 도시의 유적 옆이며, 인더스 계곡 문명의 부분이다. 고대 도시는 기원전 3300년부터 기원전 1600년까지 존재하였고 그 시대의 세계 최대로 생각되는 4만명의 주민이 있었다고 믿어진다. 비록 하라파 문화는 현재 파키스탄 너머에까지 뻗어나갔지만 그 중심은 신드와 펀자브였다.

2005년 논란이 많던 공원 계획이 포기되었다. 그때 건설자들이 건설 작업의 조기 단계에 많은 고고 미술품을 발굴하였다. 파키스탄의 유명한 고고학자 아흐메드 하산 다니의 탄원이 문화부에 접수되어 그 위치의 복원이 결정되었다.

힌두교의 역사

힌두교는 인도 아대륙에서 기원한 다양한 종교 전통들을 포괄하는 낱말이다. 역사적으로, 힌두교는 철기 시대 이래의 인도 종교들의 발달사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러한 힌두교 역사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되는 철기 시대 인도의 베다 종교, 즉 브라만교는 그 기원이 청동기 시대 인더스 문명의 종교와 같은 선사시대 종교에 있다.

기원후 초기 몇 세기에 이르렀을 때, 인도 철학은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 가의 여부에 따라 정통파를 뜻하는 아스티카와 비정통파 또는 이단을 뜻하는 나스티카로 나뉘어 있었다. 아스티카 그룹은 대략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 동안 더 분화하여 여섯 정통파 힌두 철학 학파, 즉, 삼키아 · 요가 · 니야야 · 바이셰시카 · 미맘사 · 베단타 학파로 나뉘었다. 불교 · 자이나교 · 차르바카파와 더불어 기타 다른 종교 또는 학파들은 나스티카로 분류되었다. 이 시기 동안 이들 학파들은 지지자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였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한편,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동안 탄트라와 탄트라 수행들이 아스티카 형태와 나스티카 형태의 두 형태로 출현하였다. 또한 같은 시기 동안 박티 운동을 통해 시바파 · 샥티파 · 비슈누파와 같은 일신교적 종교 또는 종파들이 발달하였다. 지금의 힌두교, 즉 고전 힌두교는 베다 전통이 지역 민간 전통들과 융합하면서 고대의 베다 종교가 새로운 모습으로 부흥한 형태로, 시기적으로는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였던 8세기경에 출현하였다.인도이슬람 제국(1206~1596) 시대 동안 힌두교에서는 박티 운동이 가장 유력해졌으며, 오늘날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식민지 시기(1600/1757~1947) 동안에는 부분적으로 신지학을 비롯한 스피리티즘(spiritism: 영성주의)과 같은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다양한 힌두교 개혁 운동이 발생하였다. 1947년에 종교적 이유로 인해 힌두교도가 대다수인 인도 공화국과 이슬람교도가 대다수인 파키스탄으로의 분리가 일어나면서 인도 공화국에서는 힌두교가 다수의 종교가 되었다.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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