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스라엘국(히브리어: מדינת ישראל 메디나트 이스라엘, 아랍어: دولة إسرائيل 다울라트 이스라일[*], 영어: State of Israel)은 서부 아시아의 남쪽, 이집트의 동쪽에 유대인들이 세운 국가이다. 비교적으로 작은 지역이지만 지리적으로 다채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2] 기본법에서 스스로 민주 국가임을 정의하고 있다.

이스라엘국
히브리어: מְדִינַת יִשְׂרָאֵל‎
아랍어: دَوْلَة إِسْرَائِيل‎
영어: State of Israel
Flag of Israel Emblem of Israel
국기 국장
표어없음
국가희망
Israel on the globe (de-facto) (Europe centered)
수도텔아비브(사실상)
(정부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주장1) 북위 32° 04′ 00″ 동경 34° 47′ 00″ / 북위 32.066667° 동경 34.783333°
정치
공용어히브리어
정치체제공화제, 단일국가, 내각제
대통령
총리
레우벤 리블린
베냐민 네타냐후
역사
독립 
 • 독립영국으로부터 독립
1948년 5월 14일
지리
면적20,770 km2 (150 위)
내수면 비율약 2
시간대IST (UTC+2)
DSTIDT (UTC+3)
인구
2015년 어림8,309,400명 (97위)
인구 밀도333명/km2 (19위)
경제
GDP(PPP)2012년 어림값
 • 전체$2,528억 (49위)
 • 일인당$32,200[1] (30위)
HDI0.900 (16위, 2012년 조사)
통화신 셰켈2 (ILS)
기타
ISO 3166-1376, IL, ISR
도메인.il
국제 전화+972
1현재 예루살렘 서부는 이스라엘, 동부는 팔레스타인(요르단 강 서안 지구)이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실질적인 수도 역할은 최대 도시인 텔아비브가 맡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 수립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가 영국의 위임 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강제적인 분할 계획을 채택하여 실행을 추진하였으나, 유대인의 국가가 생긴다는것 자체에 만족한 유대인과 달리, 유대인을 축출코자 하였던 아랍인은 분할안을 부정하여 추후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된다. 1948년 5월 14일, 세계 시오니즘 단체 경영이사, 그리고 팔레스타인 유대인 기구의 대통령 다비드 벤 구리온은 "에레츠 이스라엘에서 유대 국가를 수립하고 이스라엘 국가로 한다"고 선언했다.

독립

1948년 5월 14일, 영국의 위임통치 종료와 함께 독립이 되었다.[3][4] 영국군이 철수한 다음날 동시에, 근처의 아랍 군대는 팔레스타인을 침공하고, 이스라엘 군대와 싸웠다. 이스라엘은 여러 번의 중동 전쟁을 하는 동안[5] 요르단 강 서안 지구, 시나이 반도 (1967년 ~ 1982년 사이), 남레바논(1982년 ~ 2000년 사이), 가자 지구골란 고원을 점령했다.[6][7][8][9][10]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지역을 부분 합병했지만, 요르단 강 서안 지구와의 국경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요르단과 평화 조약을 체결했지만,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은 여전히 이 지역의 갈등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인구

이스라엘의 금융, 경제 중심지이자 수도는 텔아비브이다.[11] 예루살렘(동예루살렘을 포함할 시)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다엘 중앙국의 통계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인구는 8,051,200 명인걸로 2013년에 추산되었다. 그 중 6,045,900 명은 유대인이며, 아랍인(드루즈파와 동예루살렘 포함)은 1,663,400 명으로 두번째로 큰 그룹을 형성하고있다.[12] 이스라엘은 다민족국가로서 대부분의 이스라엘의 아랍인들은 이슬람교도이며, 네게브 사막베두인족과 같이 비교적으로 적지만 중요한 집단이다. 나머지는 기독교인들과 드루즈인이다. 그 외의 다른 소수자들은 마론파, 사마리아, 아프리카계 히브리인,[13] 아르메니아인, 체르케스인 등이 있다. 이스라엘은 또한 비시민권자 외국인 노동자들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망명 신청자들로부터 이민을 받는다.

역사

고대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위치하는 지역은, 고대에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알려진 지역이며, 가나안의 땅이라고도 불려, 가나안인을 비롯한 여러 민족이 살고 있었다. 성경의 기술에 의하면, 유대인의 선조에 해당하는 히브리인 또한 이 지역에 거주를 위해 이동해왔으나, 그 자손은 이집트로 이주하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집트인의 노예 취급을 받았다. 이윽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이 지역으로 돌아온 히브리인(이스라엘인)은, 이 지역을 정복하여 기원전 11세기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14]:8~20다윗솔로몬을 거쳐, 기원전 930년 경, 내란으로 인해 이스라엘 왕국은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멸망당하며, 남쪽의 유다 왕국기원전 586년신바빌로니아에 멸망당했다.[14]:24~37[15] 신바빌로니아 또한 페르시아 제국에 멸망하며,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황제에 의해 신바빌로니아의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다수 돌아와 터전을 재건하게 된다. 그 후 이 지역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중에 정복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 마케도니아는 분열하여, 이곳은 셀레우코스 왕조(시리아 왕국)의 지배하에 놓이나, 마카베오 전쟁을 거쳐 유대인의 왕국 하스몬 왕조가 세워졌다.[14]:53~59

기원전 1세기 경 하스몬 왕조는 로마 제국의 보호국이 되며, 그 후 로마 제국의 속주인 유다 속주가 된다.[14]:63~64 기원후 66년 제1차 유다 전쟁이 발발하나, 70년 로마 제국에 의해 진압된다.[14]:75~79 132년 바르 코크바의 난(제2차 유다 전쟁)이 일어나, 135년 다시 로마 제국에 진압되어, 시리아의 속주가 되었다.[14]:82~89[16][17] 이후 유다인들은 중동 전역으로 흩어지며, 난민들이 세운 디아스포라가 다수 발생하게 된다.[14]:98~99

중세

1099 Siege of Jerusalem
예루살렘 공방전(1099년)

636년 동로마 제국정통 칼리파에 패배한 이래, 오스만 제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의 패권은 거의 이슬람 국가 밑에 놓이게 된다. 1099년 제1차 십자군 전쟁 시기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 국가 예루살렘 왕국이 세워지기도 하였으나, 1187년 하틴 전투에서 아이유브 술탄국에 의해 예루살렘은 다시 점령되어, 1200년 즈음에는 예루살렘 왕국의 세력은 지중해 연안으로 국한되게 된다. 예루살렘 왕국은 1291년 맘루크 술탄국에게 패하여 멸망하며, 1517년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 술탄국을 멸망시키고 이 지역을 지배한다.[18]

현대 이스라엘

Declaration of State of Israel 1948 2
1948년 텔 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한 다비드 벤구리온. 그는 이스라엘의 총리였다.

제1차 세계 대전에 동맹국으로 참전하여 패전한 오스만 제국은, 현재의 터키를 제외한 중동 지역 대부분을 영국과 프랑스에 내주게 되며, 트랜스요르단 (지금의 이스라엘이 위치한 곳. 지금은 팔레스타인으로 불림) 지역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오스만의 세금 정책에 의해 황무지가 되었던 트랜스요르단은 유대인들과 아랍 유민들이 유입되어 여기저기 공동체 마을들이 형성되었다.

현대 이스라엘은 19세기의 시온주의 운동과 20세기 제 2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유대인 학살을 배경으로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을 위임 통치하던 영국은 이중적으로 아랍 측에게 맥마흔 선언을 하여, 샤리프 후세인에게 아랍인들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면 칼리프 중심의 아랍인의 나라를 이 땅에 지어주겠다는 보장을 하였고, 1916년 6월 5일을 기하여 봉기를 일으켜 스스로 아랍의 왕임을 자처했다. 이후 1917년, 유대인의 지원을 받기 위하여 영국의 외무장관 밸푸어가 가나안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밸푸어 선언을 하여, 1920년 영국의 공식 외교 정책이 되었다. 하지만 아랍과 유대인에게 이중적인 약속을 함에 따라, 추후에 유대인과 아랍인 간의 갈등을 유발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영국군이 위임통치령 지역을 철수하기 이전부터 이주 유대인과 아랍인 간 테러와 학살같은 국지적인 충돌이 있었고, 유대인과 아랍인들은 자치 민병대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후, 영국의 공식적인 철군이 이뤄진 다음날, 이스라엘은 공화국을 선포하였고 그 동시에 아랍인들의 물리적인 침공을 받게 된다. 이것이 제1차 중동 전쟁이다. 이후 유대인들은 기존 이르군과 하가나 등 극우 시온주의 민병대를 확대하여 방위력을 증강시켰다. 이스라엘은 서방으로부터의 무기지원을 받아 아랍 연맹을 물리치고 제1차 중동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제 1차 중동 전쟁의 경우에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의 지원은 없었고, 되려 전후 피로감에 영국, 프랑스, 미국 어느 나라도 이스라엘에 무기 지원은 커녕 판매조차 소극적이었던 탓에 쏟아지던 전후 물자들을 매입하여 방위력 공백을 메꾸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후 제2차 중동 전쟁(시나이 전쟁)과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차후 중동 전쟁들에서 서방의 지원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국가들은 아라비아 지역에서의 유대인 국가 건설에 부정적이었고, 이후 유대인-아랍인 간의 충돌은 지속되었다. 한편, 팔레스티나 지역(가나안 연안)의 아랍인들은 스스로를 팔레스타인 주민, 그들의 거주 구역을 팔레스타인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팔레스타인이라는 공동체가 본래 토착민으로서 거주하고있던 것이 아니라, 20세기 유대인들의 이주와 동시에 이 지역으로 밀려들어온 아랍인들을 뜻한다. 장기간에 걸친 팔레스타인과의 분쟁 결과, 1993년에 PLO와 자치에 합의하여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자 지구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 세워졌으나 현재까지도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에 복수를 다짐하던 안와르 사다트가 이집트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다시 중동에는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1973년 10월 6일, 드디어 이집트는 유대인들의 속죄일 욤키푸르 당일 이스라엘이 점령중이던 시나이 반도를 기습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제 4차 중동전쟁)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집트 방면으로는 본토까지 시나이 반도 지역이 완충지 역할을 하였으나, 북부 골란 고원을 넘어서는 시리아군은 바로 본토로 들어오기 때문에, 전략상 시리아군이 포진한 곳을 공습하면서 전세를 역전하기에 이르렀으며 끝내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까지 승리로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 또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자연 환경

Israel
이스라엘 지도

지리

이스라엘은 북쪽으로는 레바논, 북동쪽으로는 시리아, 동쪽으로는 요르단, 남서쪽으로는 이집트, 서쪽으로 지중해와 접해 있다. 이스라엘은 지리적 특징상 아시아아프리카에 가까우며 민족적 특성상으로도 오히려 아프리카인 이집트에 가깝다. 바다와 사막의 사이에 펼쳐진 지역으로 특이한 기후로 인하여 이웃 민족 간에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팔레스틴은 여러 작은 지역들로 나뉘어 있는데 이 작은 지역들은 서로 전혀 판이하다. 이들은 해안평야 지대, 구릉 지대, 중앙 산맥 지대, 요르단 계곡 지대, 트랜스요르단 지대, 그리고 북쪽과 남쪽의 이스르엘 평야 지대와 네게브 광야 지대 등이다.

기후

이스라엘의 기후는 작은 면적에 비해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이스라엘의 기후 분포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이 열대성 기후와 온대성 기후의 교차 지점에 있고, 지중해와 아라비아 사막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여러 지역간의 지형적인 차이점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이스라엘의 기후는 열대성 기후온대성 기후로 뚜렷하게 교체되는 계절현상을 보여준다. 연중 4월에서 10월 사이엔 덥고 건조한 긴 여름이 계속되며,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의 겨울은 온난하고 다습하다. 이스라엘은 일년이 여름과 겨울로 양분되는 지역이다.

이스라엘 기후는 계절이 뚜렷하게 교차되는 특성으로 인해 더위, 추위, 이슬, 서리, 바람, 눈, 얼음 등의 다양한 기후 현상을 보인다. 해안은 전형적 지중해성 기후여서, 여름에는 32 ~ 37℃까지 올라간다. 한편 고원지대는 더욱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를 보여서 여름에도 지내기 쉽고, 겨울에도 간간이 내리는 비 사이에 밝은 태양이 비치기도 한다. 남부 네겝 지방은 사막 기후이기에 여름에도 밤에는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며 대체로 겨울에 지내기 좋은 기후이다. 예루살렘 등의 고원지대는 더욱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를 보이며, 겨울에도 비와 밝은 태양을 볼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지정학적으로 서쪽의 지중해라는 큰 바다와 동쪽의 거대한 아라비아 사막 사이에 끼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열대성 기후와 지중해성 기후가 교차하는 독특한 기후조건을 지니고 있다. 여름철에는 건조하고 뜨거운 열기의 바람으로 견디기 힘든 여름철 기후를 형성한다. 그리고 겨울철에는 건조하고도 차가운 바람으로 체감 온도를 더욱 낮게 만든다. 유다 광야와 사해 주변 지역은 사막기후의 영향력이 크게 나타나는 대표적 지역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목축문화가 발달했다.

이스라엘의 기후를 결정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이스라엘 각 지역의 지형적 차이다. 지형의 높고 낮음의 차이는 이스라엘에서 강우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약 9개월 동안의 건기 때는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는 날씨가 계속된다. 바다에 가까운 해안 평야나 중앙 산지의 서편 곧 바다 쪽에 연한 기슭에는 농경에 충분한 양의 비가 내리며, 여름철에도 다른 어느 지역보다 많은 양의 이슬이 내린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는 바다에 가까울수록 비옥한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우기철은 이른비, 겨울비, 늦은비가 내리는 세 시기로 구분된다. 이른비는 겨울철이 시작기인 10월 ~ 11월경에 내리는 비다. 그 양은 여름 동안 극도로 건조해진 땅에 물기를 뿌려주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른비로 인하여 여름철 동안 마른 땅은 부드러워 지고, 농부들은 땅을 기경하여 파종할 수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는 이른비가 적당한 시기에 내려야 파종을 제때에 할 수 있다. 사막이나 광야지역에도 이른비가 내림으로 목축을 위한 초지가 형성되기 때문에 이른비는 유목민들에게도 매우 중요하였다.

장마비 또는 겨울비는 12월에서 2월 사이에 내리는 본격적인 비이다. 일년 중에 내리는 강우량의 대부분이 이 기간 동안에 내린다. 때로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낙비가 내려 계곡에는 갑작스럽게 급류가 흐른다. 고대 이스라엘은 장마비를 방수가 잘 되어있는 저수조에 모아 여름철 급수를 대비하였다.

‘봄비’라고도 명명되는 늦은비는 3월-4월경에 내린다. 늦은비는 겨울동안 자란 농작물의 마지막 결실을 충실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늦은비는 곡식의 결실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늦은비를 축복의 단비라 불렀다.

강우량은 지역별로 다른데, 중앙산지는 다른 지역보다 많은 비가 집중적으로 내린다. 산간지역에 내리는 대부분의 겨울철 빗물은 석회암층을 침투하여 땅 깊은 곳에 형성된 지하수층으로 내려가며, 이러한 지하수들은 곳곳에서 샘을 이루어 땅 위로 분출한다. 이스라엘에서의 강우량과 비가 내리는 날수는 남쪽보다 북쪽으로 갈수록 많아진다. 또 산지에서의 강우량은 사막에 인접한 동편 기슭보다 바다에 인접한 서편 기슭이 언제나 많다. 그리고 물의 증발 정도는 태양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는 남쪽에서 보다 더 크다. 이 세 가지 요소를 종합하여 볼 때, 이스라엘에서의 서쪽지역과 북쪽지역은 남쪽지역과 동쪽지역보다 강우량이 더 많고 농작물의 재배에도 적합한 지역이다.

정치 및 외교

Foreign relations of Israel (map)
Wilders
유럽의 대표적인 친 이스라엘파, 헤이르트 빌더르스

이 나라는 공화정이며 의원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의례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스라엘의 정당 참조) 현재 총리는 2009년 3월 31일 취임한 베냐민 네타냐후이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 161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94개의 대사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와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으며, 상당수 이슬람 국가들과는 외교 관계도 없고 이들 국가는 이스라엘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아랍 연맹 회원국 중에서는 이집트, 요르단과만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이집트와는 1979년에, 요르단과는 1994년에 평화조약을 각각 체결하였고, 모리타니1999년에 이스라엘과 완전한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으나 최근 단교했다. 역시 이슬람 국가인 이란과도 외교 관계가 없으며,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파키스탄 등 일부 남아시아·동남아시아의 이슬람 국가와도 외교 관계가 없다. 비이슬람권 국가 중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쿠바(쿠바 혁명 이후)와만 전통적으로 외교 관계가 없어왔으며, 최근 가자 지구 사태로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정권 국가인 니카라과·베네수엘라·볼리비아 그리고 쿠바와 외교관계가 단절되었다. 이스라엘 주변의 이슬람교 국가들이 엘알 이스라엘 항공 등 이스라엘 국적 항공사대한항공 등 제3국가 국적의 항공사 소속 비행기들이 자국 영공 통과를 금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이스라엘 관계

대한민국과는 1950년 한국 전쟁에서 의료 부대를 파병한 이후, 1962년 4월 수교하여 지금까지 계속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62년 5월 7일경, 이스라엘은 주일 이스라엘 대사 다니엘 레빈을 한국 대사직(비주재)에 겸임하도록 임명하였다.[19] 그러나 대한민국이 원유 수급과 건설시장 확보를 위하여 아랍 국가와의 관계를 강화하자,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위축되었다. 이스라엘은 1978년 주한 대사관을 폐쇄하고, 주일 대사관에서 대한민국 관련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여 양국의 관계는 다소 소원해졌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커져, 양국은 1992년1993년 상주 대사관을 각각 재개설하였고, 다시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대한항공이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주 3회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취항하며 이 때는 이스라엘의 적국 영공을 통과하지 않기 위해 지중해 쪽으로 돌아가는 항로를 이용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

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팔레스타인, 이란, 이라크, 파키스탄, 시리아, 방글라데시, 요르단, 그리고 레바논의 헤즈볼라 세력과 예멘의 후티 반정부군 밑 기타 아랍 국가들을 지지 및 지원하고 있어서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으며, 서로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20]

최근 르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의 방한 제안을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가 거절했다고 이스라엘 언론이 보도해서 관계가 악화된 거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이스라엘 언론의 오보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이스라엘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현재까지 양국간의 외교관계가 없다. 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이스라엘의 적국인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며 국교를 수립하였고 아랍-이스라엘 분쟁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이스라엘의 적이었던 이집트, 시리아 등에 군사지원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서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적국으로 보고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시 현재까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이스라엘은 미국과 더불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적국으로 여기는 나라이기도 하며 이스라엘이 미국의 동맹국이기도 하여서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

이스라엘과 미국은 건국 이래로 최대이자 친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스라엘과 아랍의 문제에서도 이스라엘을 적극지지하는 노선을 취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유엔 정회원 가입여부에 대해서도 양국은 반대 입장을 나타냈으며 정치 외에도 군사면에서 상호간의 교류를 통해서 동맹을 과시하였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이스라엘을 적극 지지하며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공식 수도로 인정하고 주(駐)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선언하였다.[21][22]

시리아와의 관계

이스라엘과 시리아 양국 정부는 2008년 5월 이후, 터키의 중재로, 간접 평화교섭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여름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가 사의를 표명하여 교섭도 중단되었고 게다가 같은 해 말,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을 이유로 시리아는 교섭 동결을 표명하였다. 최대의 쟁점은 골란고원의 귀속문제인데, 시리아와 이란 간의 관계, 시리아가 지원하는 레바논의 시아파 조직 헤즈볼라와 예멘의 시아파 조직 후티 반정부군과의 무장문제, 그리고 친 이스라엘 성향을 지닌 시리아의 마론파 단체의 탄압문제 등도 교섭 과제이다. 미국의 오바마 정권은 시리아와의 관계 수복을 도모하여, 평화교섭재개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열의를 보이고 있다. 또한 2009년 3월에 발존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도 교섭재개의 원칙을 향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골란 고원 반환에 소극적이고, 시리아도 또한 이 정권에 강한 불신감을 표명하고 있는 등, 교섭재개를 향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없다.[23]

행정 구역

자국 헌법상의 수도예루살렘(히브리어로는 '예루샬라임', 아랍어로는 '알 쿠드스')이지만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텔아비브가 사실상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국방

Flickr - Israel Defense Forces - Female Soldiers Unload their Weapons
이스라엘의 여군

이스라엘은 인접 아랍국가들과 팔레스타인과의 잦은 분쟁 때문에 징병제를 채택한 국가로서 남자와 여자 모두 병역 의무를 지고 있고 병역 기간은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에서 3년 동안 복무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특히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과 드루즈교를 믿는 사람들은 군에 복무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과는 달리, 1995년부터 폭력에 반대하는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를 허용하고 있는데 정부의 까다로운 검증을 거쳐야 한다. 본인이 이슬람교 신자이거나 무종교인 사람이라면 징집이 되지 않으나 자원입대는 허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방위군(약칭 IDF)은 미국제 최신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오랜 기간동안 미국의 묵인 혹은 지원하에 핵무기를 개발하여 주변 국가들을 겨냥해 네게브 사막 깊숙한 곳에 수백기의 핵탄두를 숨겨놓았다. 비공식 핵 보유국이다.

이스라엘은 선진국들 중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와 오만 다음으로 가장 높은 GDP 대비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는 나라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이스라엘의 보안 조직들 중 유일한 군사 조직이며 내각에 속한 참모총장의 지휘를 받고 있다. IDF는 육군, 해군, 공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기간 동안 건국 이전부터 존재했던 하가나 같은 준군사조직들이 통합되면서 세워졌다. IDF는 또한 군 정보부에 많이 의지하며 짧은 역사 속에서 여러 주요 전쟁들과 국경 분쟁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실전에 능숙한 군대가 되었다.

경제

Bursa07

초기에는 미미 하였지만, 이스라엘의 경제는 오히려 주변 아랍국가를 뛰어넘고 있는 실정이다. 이스라엘은 종횡단거리가 짧아서 자동차, 버스, 트럭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도 쉽게 갈 수 있게 해주는 광범위한 도로망이 주요한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 철도는 전국으로 예루살렘, 텔아비브, 하이파, 나하리야를 오가고 있다.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주요 국제 공항이다.[24]

무역

2017년 기준으로 이스라엘의 주요 수출 상대국은 미국(27.89%), 영국(8.45%), 홍콩(6.9%), 중국(5.41%)이다. 주요 수입 상대국은 미국(11.7%), 중국(9.44%), 스위스(7.96%), 독일(6.83%), 영국(6.23%)로 주요 수출입 상대 국가는 근방국인 아랍국가에 대비하여 제1세계의 비중이 높다.

2017년 기준으로 총수출액은 61,150백만 달러, 총수입액은 69,116백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가공 다이아몬드(12,294백만 달러, 약 구성품(3,841백만 달러), 의약품(3,091백만 달러), 모놀리식 회로, 디지털 제품(2,711백만 달러), 비가공 다이아몬드(2,396백만 달러)이다. 주요 수입 품목은 석유(4,490백만 달러), 비가공 다이아몬드(3,447백만 달러), 가공 다이아몬드(3,289백만 달러), 석유(1,933백만 달러), 사진 장비(1,863백만 달러)이다.[25]

사회

국민

국민의 4분의 3 이상이 유대인, 20%가 팔레스타인인이며[26], 그 외에 많은 소수민족이 있다. 한국인은 유학이나 사업 관계로 소수가 거주한다. 유대인은 건국 이후 주변 아랍 국가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유입되어 그 수가 크게 불어났으나, 최근에는 팔레스타인인의 출생률이 높아 팔레스타인인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 국적의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 국민으로서 법적으로 유대인과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으며(단, 무슬림인 경우 군복무 의무는 없음), 국회에는 의석의 일정 비율은 팔레스타인인에게 의무적으로 배당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소수인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고, 교육과 취업의 기회도 적기 때문에 유대인에 비해 사회·경제적 조건이 열악하다[27][28].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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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고속도로 표시판 - 히브리어, 아랍어 및 영어 표기

히브리어공용어이다. 히브리 문자와 아랍 문자 표기 방식은 모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특히, 히브리어는 이스라엘의 국가 언어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약 30년에 걸친 영국의 신탁 통치와 미국에서 건너온 많은 이주민의 영향, 정부의 영어 교육으로 영어도 제2언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그래서 모든 도로 및 공공장소의 표지에는 히브리어, 아랍어, 영어를 함께 표기한다. 아랍어는 2018년 7월 19일 까지 공용어로 지정 되었는데, 유대민족법이 제정되면서 특수지위의 언어로 격하되었다. 요르단, 이집트, 레바논계 유대인은 아랍어 사용을 많이 한다. 한편 소련에서 건너온 유대인도 많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아랍어 다음으로 많다.

교육

문맹률은 중동 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29] 의무교육은 1학년에서 12학년까지다. 나라 전체에 여덟 개 대학이 있고 여러 단과 대학이 있다. 예루살렘에 위치한 히브리 대학교는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킹사우드대학교와 함께 200위 안인 대학교다.

문화

종교

Temple Mount Western Wall on Shabbat by David Shankbone
유대교의 성지인 성전산 아래 통곡의벽

수도인 예루살렘에는 수많은 유대교, 이슬람교기독교 성지가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유대교가 약 80% 이상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종교이며, 수니파 이슬람교, 기독교, 메시아닉쥬, 신약성서에도 등장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믿는 사마리아 종교 드루즈교(이슬람과 기독교가 혼합된 사상) 등이 존재한다.[30]

관광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기독교이슬람교의 성지로 세계 3대 종교의 성지순례객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베들레헴, 나사렛, 갈릴리 지역들은 예루살렘과 함께 종교 관광지로서 각국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단, 레바논 접경지역과 가자지구는 군사적 분쟁과 테러 위험이 존재한다.

스포츠

이스라엘은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위치한 나라이지만 아랍권 국가들, 이슬람권 국가들과의 정치적 분쟁으로 인해 아시아의 여러 스포츠 기구에서 축출되었고 현재는 유럽의 여러 스포츠 기구에 가입한 상태이다.

음식

Food in Israel

이스라엘 요리는 현지 음식뿐만 아니라 디아스포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유대인 음식을 포함한다. 1948년에 국가가 수립된 이후로,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 이스라엘 퓨전 요리가 개발되었다. 이스라엘 요리는 미즈라힘, 스파라딤아슈케나짐 형식의 요리 요소를 채택하여 계속 적용하고 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팔라펠, 후무스, 샤크슈카, 쿠스쿠스자타르와 같은 레반트, 아랍, 중동 및 지중해 요리에서 먹는 많은 음식을 포함한다. 슈니첼, 피자, 햄버거, 감자 튀김, 샐러드도 이스라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출처 및 주해

  1. Israel's per capita GDP adjusted for purchasing power parity (PPP)
  2. 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is.html
  3. http://www.mfa.gov.il/mfa/foreignpolicy/peace/guide/pages/declaration%20of%20establishment%20of%20state%20of%20israel.aspx
  4. http://www.mfa.gov.il/mfa/aboutisrael/history/pages/zionist%20leaders-%20david%20ben-gurion.aspx
  5. Gilbert, Martin (2005). The Routledge Atlas Of The Arab–Israeli conflict (8th ed.). Routledge. ISBN 0-415-35900-7.
  6. 〈The status of Jerusalem〉 (PDF). 《The Question of Palestine & the United Nations》. United Nations Department of Public Information. East Jerusalem has been considered, by both the General Assembly and the Security Council, as part of the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y.
  7. BBC News (2006년 3월 29일). “Analysis: Kadima's big plans”. 2010년 10월 10일에 확인함.
  8. Kessner, BC (2006년 4월 2일). “Israel’s Hard-Learned Lessons”. Homeland Security Today. 2012년 4월 26일에 확인함.
  9. Kumaraswamy, P. R. (2002년 6월 5일). “The Legacy of Undefined Borders”. Tel Aviv Notes. 2013년 3월 25일에 확인함.
  10. “Israel Journal: A Land Without Borders”. 《The Epoch Times》. 2012년 3월 20일에 확인함.
  11. http://www.lboro.ac.uk/gawc/world2008t.html
  12. http://www.jewishvirtuallibrary.org/jsource/Society_&_Culture/newpop.html
  13. http://www.globalpost.com/dispatch/israel-and-palestine/090430/israels-black-hebrews
  14. Cecil Roth(長谷川真・安積鋭二 번역) (1997년). 《ユダヤ人の歴史》. みすず書房. ISBN 978-4622049081.
  15. 이스라엘 외무성. “History-BibleTimes”.
  16. Shimon Applebaum (1989). 《Judaea in Hellenistic and Roman Times: Historical and Archaeological Essays》. Brill Archive. 93쪽. ISBN 978-9004088214.
  17. イスラエル外務省 『イスラエルの情報』 p.20
  18. イスラエル外務省 『イスラエルの情報』 pp.22-25
  19. “駐韓이스라엘大使...레駐日大使가兼任”. 동아일보. 1962년 5월 9일. 【예루살렘7日로이타同和本社特約】 駐日 이스라엘 大使 다니엘 레빈 博士는 한국대사직 (비주재)을 겸임토록 임명되었다고 예루살렘에서 발표되었다.
  20.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이스라엘 Archived 2013년 10월 4일 - 웨이백 머신 참조.
  21.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1&aid=0003554228
  22.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5&aid=0001183828
  23. 다테야마 료오지 (立山良司) 외 1. 〈中東〉. 《현대용어의 기초지식(現代用語の基礎知識)》 (일본어). 지유고쿠민샤(自有国民社). 555쪽. ISBN 978-4-426-10128-2. |id=에 templatestyles stripmarker가 있음(위치 1) (도움말)
  24.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이스라엘의 교통·도시
  25. World Integrated Trade Solution Worldbank
  26. Israeli Arabs: 'Unequal citizens' BBC
  27. 차별에 우는 아랍계 이스라엘인 주간동아 2007년 2월 13일
  28. 이스라엘 아랍인 사면초가 서울신문 2009년 4월 22일
  29.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Report 2005
  30. “세계기도정보”. 2006년 12월 2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6년 8월 14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이스라엘

대한민국

12월 15일

12월 15일은 그레고리력으로 349번째(윤년일 경우 350번째) 날에 해당한다.

나크바

나크바(아랍어: النكبة‎)는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약 7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추방당한 사건이다.

다윗

다윗 왕(영어: David, 히브리어: דָּוִד, 아랍어: داود)(생애기간 : 기원전 1107년 - 기원전 1037년)은 이스라엘 왕국의 제 2대 왕으로서 40년 간(기원전 1077년 - 기원전 1037년) 통치하였다. 그는 이스라엘 유다 지파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목동, 음악가, 시인, 군인 ,정치가, 예언자, 왕이었으며, 히브리어 성경(구약성경)에서 매우 탁월하게 두드러져 언급되고 있는 사람이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 왕가의 자손으로 언급하고 있다.

동부바르바스텔레박쥐

동부바르바스텔레박쥐 또는 아시아바르바스텔레박쥐(Barbastella leucomelas)는 애기박쥐과에 속하는 박쥐의 일종이다. 서식지는 온대 기후 지역 숲과 동굴이다. 서식지 감소로 멸종 위협을 받고 있다. 이집트(시나이 반도)와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에리트레아, 아프가니스탄, 아르메니아, 조지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인도, 파키스탄, 부탄, 네팔, 중국(윈난 성, 쓰촨 성, 간쑤 성, 산시 성, 칭하이 성, 내몽골 자치구, 신장 위구르 자치구), 중화민국, 일본(호카이도, 혼슈, 시코쿠)에서 발견된다.

보타문둥이박쥐

보타문둥이박쥐(Eptesicus bottae)는 애기박쥐과에 속하는 박쥐의 일종이다. 문둥이박쥐속에 속하는 25종의 하나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견되며, 지부티와 이집트, 이란, 이라크, 이스라엘, 요르단, 카자흐스탄, 몽골, 오만,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타지키스탄, 터키,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예멘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암반 지역과 온대 사막에서 발견된다.

사막집박쥐

사막집박쥐(Hypsugo ariel)는 애기박쥐과에 속하는 박쥐의 일종이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수단 그리고 예멘에서 발견된다. 자연 서식지는 아열대 또는 열대 기후 지역의 건조 관목 지대와 암반 지대 그리고 무더운 사막 지역이다.

예루살렘

예루살렘(히브리어: יְרוּשָׁלַיִם 예루샬라임, 아랍어: القدس 알쿠드스[*], 영어: Jerusalem, 문화어: 꾸드스)은 예로부터 종교 분쟁에서 불씨가 되어온 중동에 있는 도시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중심부의 지중해 연안 평야와 요르단 강에서 이어지는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낳고 있으며 도시가 행정상 동과 서로 나뉘어 있는 상태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이를 수도로 삼고 있으나, 국제 사회상 인정하지 않고 텔아비브를 사실상 수도로 삼았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

요르단강 서안 지구(요르단 江 西岸 地區, 영어: West Bank 웨스트뱅크[*], 히브리어: הגדה המערבית / יהודה ושומרון 예후다 베 숌론 / 하-가다 하-마아라비트, 아랍어: الضفة الغربية 알-라파 이-가르비야[*], 문화어: 요르단강 서안 지역)는 중동에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지역이자 팔레스타인의 행정 구역이다. 가자 지구와 함께 잠재적으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의 영토로 상정되어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요르단강 서쪽에 있는 둑'이라는 의미로 서안 지구(West Bank)로 불리며 제3차 중동 전쟁(1967년)을 계기로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됐다. 남쪽·북쪽·서쪽으로는 이스라엘 영토로 둘러싸여 있고, 동쪽으로는 요르단과 접한다. 동예루살렘을 포함하는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면적은 5,640 km2이며, 2012년 6월 현재 인구는 260만 명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 80% 이상인 약 210만 명은 팔레스타인인이며, 약 50만 명은 유대인이다.서안 지구는 국제법상으로는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니나, 사실상 이스라엘의 군사 통제 아래에 놓여 있다. 서안 지구 내부에는 동예루살렘·베들레헴·예리코주 등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정착촌이 여러 군데 산재해 있으며, 약 50만 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는 이들 정착촌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이스라엘군이 곳곳에 상주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 정착촌 확대와 8m 높이의 분리 장벽 설치를 강행해 국제적 비난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이 무력 점령 중인 서안 지구 일대의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 국민으로서 어떠한 권리도 없으며, 이스라엘의 주권이 이스라엘 정착촌의 유대인 외에 서안 지구 주민을 보호해주는 일도 없다.

욤키푸르 전쟁

욤키푸르 전쟁, 라마단 전쟁, 10월 전쟁 (מלחמת יום הכיפורים, Milẖemet Yom HaKipurim, or מלחמת יום כיפור, Milẖemet Yom Kipur; حرب أكتوبر, Ḥarb ʾUktōbar, or حرب تشرين, Ḥarb Tišrīn), 또는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1973년 10월 6일부터 10월 25일까지 이집트와 시리아가 주축이 된 아랍 연합군과 이스라엘이 치른 전쟁이다. 전투는 대부분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이집트의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는 수에즈 운하도 다시 이집트의 통제권에 두기를 원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확신하지 못했지만, 아랍군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격멸하려고 계획하지는 않았다.전쟁은 1973년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 점령지에 기습적인 합동공격을 개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때는 이스라엘의 휴일인 욤 키푸르이자 이슬람의 신성한 기간인 라마단이 동시에 있었던 달이었다. 이집트와 시리아는 휴전선을 넘어 각각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을 향해 진격했다. 미국과 소련은 전쟁 기간 동안 그들의 동맹국에 대량으로 물자를 보급했고, 이로 인해 이 전쟁은 두 핵보유 강대국의 대결 수준에 이르렀다.이집트의 바드르 작전이 성공적으로 개시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집트군은 휴전선을 건너 시나이 반도를 향해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진격했다. 3일 후 이스라엘은 병력 대부분을 동원해 이집트군의 공세를 정지시킴으로써 교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시리아군은 이집트의 공세에 발맞추어 골란 고원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고, 초기에 이스라엘 점령지를 위협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3일 후 이스라엘군은 시리아군을 휴전선 지역까지 몰아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4일 간 시리아 종심부를 향해 반격을 가했다. 이스라엘 포병이 다마스쿠스 외곽에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는 그의 주요 동맹과의 통합을 우려했다. 그는 시나이 반도에 위치한 2개의 전략적 고지를 점령하면 전후 협상에서 그의 위치가 강화될 것이라 여겼고, 이에 따라 이집트군에게 공세를 지속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이집트군의 공세를 저지했다. 이스라엘군은 다시 반격을 개시해 수에즈 운하에 주둔한 이집트군을 격퇴시켰고, 수에즈와 이스마일리아에서 격전을 벌였다. 1주 간의 격전으로 인해 양측은 모두 큰 피해를 입었다.

10월 22일, 유엔의 중재안이 발표되었고, 양측은 서로 중재안을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10월 24일, 이스라엘군은 거점을 강화해 이집트 제3군과 수에즈를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소련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게 되었고, 제2차 휴전안이 10월 25일 발표되어 욤키푸르 전쟁은 종결되었다.

유대인

유대인(히브리어: יהודי 예후딤[Yehudim]) 또는 유태인(猶太人), 유다인은 고대 근동의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기원한 민족적, 종교적, 문화적 집단이다.

히브리 성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족의 가계는 기원전 18세기경에 가나안과 그 주변 지역에 살았던 성서 속 족장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그 부인들인 사라, 리브가, 레아, 라헬로 거슬러 올라간다. 야곱은 자신의 아들이자 당시 이집트의 고관이었던 요셉과 고센 지역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파라오가 초청하여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이집트로 이주하였다. 하지만 이들 족장들의 후손들은 나중에 이집트의 노예로 전락했으며 이후 모세의 지도 하에 이집트를 탈출하게 된다. 보통 이 당시 이스라엘인들의 탈출 시기를 기원전 13세기로 본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주로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의 후손이며 부분적으로는 베냐민 지파와 레위 지파의 후손이기도 하다. 이들 지파는 고대 유다 왕국을 형성했었으며 이 중 유다 지파가 주류였고 베냐민과 레위 지파는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에도 속했었다. 유대인과 가장 가까운 민족은 사마리아인인데, 이들은 연합 왕국 분열 이후 형성된 이스라엘 왕국의 후손이며 그들의 전승에 따르면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이들의 조상이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유대 민족성과 종교는 매우 밀접한 관계인데 이는 유대교가 유대 민족의 전통적인 신앙이기 때문이다. 유대교로의 개종자들은 보통 유대인 사회 내에서 태어날 때부터 유대인이었던 이들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 주류 유대교에서 개종은 권장되는 것은 아니며 어려운 일로 여겨지며 주로 유대인과 비유대인과의 결혼이 이에 해당된다.

현대 국가 이스라엘은 유대 국가로 수립되었으며 기본법에서 스스로를 유대 국가로 규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귀환법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요구하는 모든 유대인에게 국적 취득을 승인한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유일한 나라이다.

성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족은 고대에 두 번 정치적으로 독립을 달성했었다. 첫번째 시기는 판관 시대와 이후 이어지는 연합 왕국 시대였으며 연합 왕국의 몰락 이후 그 영토는 이스라엘과 유다로 분열된다. 유대인이라는 용어는 로마 시대의 유다의 지명이었던 유대아(Judea)에서 유래되었으며 남유다 왕국 출신의 사람을 의미한다. 기원전 587년에는 신바빌로니아의 왕이었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제1차 성전을 파괴하였으며 유다의 지배층을 추방하였다. 기원전 586년엔 유다가 신바빌로니아의 일부가 되었으며 유다에 남은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게 되었다. 바빌론 유수는 기원전 539년에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정복하고 추방된 유대인들이 유다로 돌아와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끝났다. 제2차 성전은 기원전 515년에 건설이 끝났다. 페르시아령 유다는 페르시아 제국이 알렉산드로스 대제에게 멸망하는 기원전 333년까지 제국에서 평화로운 지역에 속했다. 유대인들은 이후 다시 기원전 140년에서 36년까지 하스모니안 왕조 아래에서 정치적으로 독립을 유지한다.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National Library of Israel, NLI, 히브리어: הספרייה הלאומית, 옛 이름 유대인 국립 대학 도서관(Jewish National and University Library, JNUL, 히브리어: בית הספרים הלאומי והאוניברסיטאי)은 이스라엘의 국립 도서관이다. 5백만 권을 소장하고 있고,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의 기바트람 캠퍼스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히브리어 문헌과 유대인 문헌, 희귀하고 독특한 원고, 책, 공예품을 보유하고 있다.

이스라엘 요리

이스라엘 요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현지 요리를 제공하고 디아스포라에서 유대인에 의해 이스라엘에 가져온 요리를 포함한다.

이스라엘 축구 국가대표팀

이스라엘 축구 국가대표팀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축구 국가대표팀이다. '파란색과 하양색'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사미 오페르 스타디움, 테디 스타디움, 투르네르 스타디움, 네타냐 스타디움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1934년 3월 16일 이집트와의 1934년 FIFA 월드컵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 영국령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으로 A매치 데뷔전을 치뤘고 1948년 9월 29일 미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개명 후 첫 국제 경기 데뷔전을 가졌다.

이츠하크 라빈

이츠하크 라빈(히브리어: יִצְחָק רַבִּין Yitzhak Rabin, 1922년 3월 1일 ~ 1995년 11월 4일)은 이스라엘의 군인·정치가이자, 2차례의 총리(1974년 ~ 77년, 1992년 ~ 95년)를 지냈다.

1941년에 유대인 방위 특공대인 팔마츠에 입대하였다. 팔마츠에 입대한 라빈은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비시 프랑스에 맞서 싸웠으며 1947년 팔마츠의 부사령관이 되었다. 이스라엘 독립전쟁 당시에 정전협정 대표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석하여 이스라엘의 독립에 기여했다. 1964년부터 1967년까지 이스라엘 육군을 지휘하여 적의 항공기를 파괴하자는 작전으로 6일 전쟁의 승리를 이루어 가자 지구의 아랍인 거주 지역들과 요르단 강 서안 지구를 점령하였다.

이스라엘 육군 중장 예편 이후 라빈은 1968년부터 1973년까지 주미 이스라엘 대사를 지내고, 귀국 후 노동당의 당원이었던 라빈은 크네세트(이스라엘 국회)에 선출되었다.

1974년에 골다 메이어 총리가 사임하자 그 뒤를 이어 이스라엘 본토 태생으로는 최초로 총리가 되었으며, 노동당의 당수를 지내기도 하였다. 시나이 반도의 이스라엘군 철수를 지지했고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과 협정을 맺었다. 이 협약의 대가로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하고 그 대신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의 이스라엘 상품 통과를 허용했다. 1977년에 여러 문제로 총리직을 사임하고 시몬 페레스에게 넘겨주었다(페레스는 권한 대행을 맡다가 총선에서 리쿠드의 메나헴 베긴에게 패하였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 국방부 장관을 지내다가 1992년 2월에 다시 노동당의 당수가 되어 6월 23일 총선에서 승리해 다시 총리로 취임했다. 1993년 라빈 정부와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는 가자 지구와 요단강 서안 지역을 위한 자치적 정부 계획의 시작과 그 지역들로부터 이스라엘이 물러남을 포함한 동의서를 서명하여 양국은 또한 자신들의 분쟁들을 풀리는 데 노력하는 데 동의하기도 하였다.

오슬로 협정을 맺어 중동의 평화를 이룬 공으로 1994년 10월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와 외무장관 시몬 페레스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라빈 총리와 요르단의 후세인 1세 국왕 사이의 회담이 1948년 이래 양국 사이에 기술적으로 존재했던 전쟁을 끝내는 데 평화 협정으로 이끌었다.

1995년 11월 4일 텔아비브에서 열린 중동평화회담 지지집회 연설 후 차에 타려던 중 유대인 극우파 청년 이갈 아미르의 총을 맞고 암살되었다.

인간 개발 지수

인간개발지수(人間開發指數, 영어: Human Development Index, HDI)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하는 인간개발보고서(HDR) 중의 인간의 삶과 관련된 지표 중 한 항목이다.

제1차 중동 전쟁

제1차 중동 전쟁 또는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간의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의 통치권을 두고 벌어졌다. 1948년 팔레스타인 전쟁의 두번째 국면이다. 이슈프와 아랍 사이에는 긴장과 분쟁이 잦았으며, 각각의 군대와 영국군은 1917년 벨포어 선언과 1920년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의 수립 이후 빈번하게 충돌했다. 아랍인들의 반발은 팔레스타인 봉기로 확산되었으며, 유대인들의 저항은 팔레스타인 유대인 반란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분란은 1947년 11월 29일 유엔 팔레스타인 분할안 이후 팔레스타인 내전으로 확산되었다. 이 분할안은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지구와 아랍인 지구, 그리고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포함한 국제연합 통치령으로 분할하려는 것이었다.

1948년 5월 15일, 지속되던 내전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는데, 5월 14일 이스라엘 독립선언에 아랍 국가들이 반발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집트 왕국, 요르단, 시리아 공화국이 연합군을 결성해 이라크 왕국의 해외원정군과 함께 팔레스타인에 진입했다. 침공군은 아랍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고 유대인 정착지와 이스라엘 군을 즉각적으로 공격했다. 이 외에도 레바논, 앵글로-이집트 수단,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예멘 왕국, 모로코 등이 전쟁에 참전했다. 10개월 간의 전쟁은 팔레스타인과 시나이 반도, 레바논 남부에서 벌어졌고 중간에 평화협정도 있었다.전쟁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유대인 지구 전체와 아랍인 지구의 60%를 점령했다. 나머지 지역은 요르단이 요르단 강 서안 지구를 병합하고, 이집트 왕국이 가자 지구를 정복하였다. 1948년 12월 1일 예리코 회담에서 2,000명의 팔레스타인이 팔레스타인과 요르단의 통합을 요구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어떠한 국가도 수립하지 못했다.

제2차 중동 전쟁

제2차 중동 전쟁, 또는 수에즈 위기는 1956년 10월 29일부터 1956년 11월 3일까지 발생한 전쟁으로, 아랍권에서는 삼국 동맹 공격 또는 카데시 작전이라고 부르고 이스라엘에서는 시나이 전쟁이라 불린다. 이스라엘이 1956년 말 이집트 침공을 개시했고, 영국과 프랑스가 뒤이어 이집트에 선전포고를 했다. 전쟁의 목표는 수에즈 운하의 통치권을 영국과 프랑스가 회복하고,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를 권력에서 몰아내는 것이었다. 전투가 시작된 이후, 유엔과 미국, 소련이 동맹군에 정치적 압박을 가했고, 결국 동맹군은 물러났다. 이 사건은 영국과 프랑스에게 굴욕을 가져다 주었고, 나세르의 권력을 강화시켰다.

제3차 중동 전쟁

제3차 중동 전쟁 또는 6일 전쟁(히브리어: מלחמת ששת הימים, 아랍어: حرب ۱۹٦۷)은 6월 전쟁,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등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주변 이웃 국가인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이 연합하여 벌인 전쟁이다. 이 때 당시 이집트는 아랍 연합 공화국으로 불렸다.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 사이의 관계는 제1차 중동 전쟁 이후 안정화된 적이 없었다. 1956년 수에즈 위기 당시 이스라엘은 주요 목표 중 하나였던 티란 해협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시하게 여겼다. 이 지역은 1950년 이래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항해를 봉쇄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철수할 수 밖에 없었으나, 티란 해협을 다시 개방할 지도 모른다는 보장을 받게 되었다. 유엔 긴급군이 국경에 따라 배치되었지만 비무장 합의는 없었다.1967년 6월까지 이스라엘과 주변국 사이의 긴장은 높아졌다. 이스라엘은 티란 해협에 대한 봉쇄는 전쟁 명분이 될 것이라 말하며 1956년 이후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5월 말 가말 압델 나세르는 이스라엘 선박에 대해 해협들이 봉쇄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이집트는 이스라엘과의 국경을 따라 군을 전진시켰고, 6월 5일 이스라엘은 이에 대항해 이집트 공군기지에 예방적 공습을 가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은 제3차 중동 전쟁에 관한 논란 중 하나이다.

이집트는 기습에 당했고, 이스라엘군은 소수의 피해만 입은채 이집트 공군을 거의 궤멸시켰다. 이는 이스라엘에 공중우위권을 제공해주었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와 시나이 반도를 향해 공세를 개시했고, 이는 다시 이집트군을 놀라게 했다. 몇몇 초기의 저항이 있은 후, 이집트 지도자였던 나세르는 시나이 반도에서 이집트군을 철수시켰다. 이스라엘군은 서쪽으로 계속 진격하며 이집트군에 큰 손실을 입혔고 시나이 반도를 정복하는데 성공했다. 나세르는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공습을 물리쳤다고 주장하며 요르단과 시리아에게 이스라엘을 공격해달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과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서 요르단군을 축출했으며, 시리아군에게도 반격을 가해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6월 11일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아랍 연합군의 손실은 이스라엘의 손실치보다 훨씬 높았다. 1,000명 이하의 이스라엘군이 사망한데 비해 아랍 연합군은 20,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기습 공격과 혁신적이고 잘 수행된 전투 계획, 그리고 아랍 연합군의 낮은 전투 실력과 지도력이 원인이 되어 군사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로부터 가자 지구와 시나이 반도를, 요르단으로부터 동예루살렘과 요르단 강 서안 지구를, 시리아로부터 골란 고원을 획득했다. 이스라엘군의 사기와 국제적 우위는 전쟁의 결과로 인해 증가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영토는 3배나 커졌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승리로 인해 군사들은 자만감에 빠졌고, 이는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당시 아랍 연합군이 초기에 승리를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100,000명의 시리아인이 골란 고원을 떠났고, 300,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서안 지구를 떠났는데 이들은 모두 난민이 되었다. 아랍 세계에서는 소수의 유대 공동체가 축출되어 이스라엘이나 유럽으로 이동했다.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아랍어: فلسطين 필라스틴[*], Filasṭīn), 또는 공식 명칭인 팔레스타인국 (아랍어: دولة فلسطين 다울라트 필라스틴[*], Dawlat Filasṭīn)은 명목상 주권 국가로 서아시아에서 요르단강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있는 국가이다. 수도는 예루살렘으로 지정했지만, 현재 행정중심지는 라말라이다. 팔레스타인이 주장하고 있는 영토는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요르단강 서안 지구는 이스라엘 및 요르단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가자 지구는 이집트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인구는 2016년을 기준으로 4,816,503명이다.

1947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엔은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할안을 채택했다. 이 분할안에서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와 아랍인 국가를 형성하며 예루살렘은 국제 공동통치지역으로 설정하기로 되어있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수립된 이후, 이웃 아랍 국가들은 다음 날 이스라엘을 침공해 이스라엘 군과 싸웠다. 이후 팔레스타인 정부가 1948년 9월 22일 아랍 연맹에 의해 창설되었고, 이 정부는 트란스요르단을 제외한 아랍 연맹 전 회원국에게 인정받았다. 정부의 행정구역은 옛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 전체를 포함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가자 지구에 영토가 한정되어 있었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는 1948년 전쟁 이후 요르단에 귀속되어 있었다. 1967년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 및 가자 지구를 병합했다.

1988년 11월 15일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의 수장이었던 야세르 아라파트가 알제에서 팔레스타인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오슬로 협정의 A 및 B 구역과 가자 지구를 다스리게 되었다. 이후 가자 지구는 2007년 하마스의 통치 하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이스라엘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가자 지구에서 철수했다.

팔레스타인은 현재 유엔 회원국 136개국으로부터 승인받았으며, 2012년부터 유엔 총회 옵서버가 되어 국가임을 인정받았다. 팔레스타인은 아랍 연맹. 이슬람 협력 기구, G77, 국제 올림픽 위원회, 이슬람 대테러 군사 동맹, 유네스코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의 회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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