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르투

우라르투는 현재 터키 동부와 아르메니아에 걸쳐 있던 고대 왕국이다.

우라르투는 기원전 860년에서부터 기원전 585년까지 존속하였으며, 후기 청동기 시대 나이리 부족에서 부상하였다. 우라르투 왕국은 소아시아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코카서스 산 사이의 후에 아르메니아 고원으로 알려진 산악 고원에 있었다.

우라르투의 역대 왕

초기 왕들

  • 아라무(Aramu, 재위 858 BC-844 BC), 나이리족을 통일하였다.
  • 루티프리(Lutipri, 재위 844 BC-834 BC)

패권 획득

  • 사르두리 1세 (Sarduri I, 또는 Sarduris I, 재위 834 BC-828 BC) 도읍을 투쉬파로 옮기고 반 요새로 확장하였다.
  • 이쉬푸이니스 (Ishpuinis, 재위 828 BC-810 BC) 창건자, 팽창과 무샤쉬르의 정복
  • 메누아스 (Menuas, 재위 810-785 BC.) 정복자
  • 아르기쉬티스 1세 (Argishtis I, 또는 Argishtish I 재위 785-753 BC) 국경을 요새화하다. 예레반의 창건자
  • 사르두리스 2세 (Sarduris II, 재위 753 BC-735 BC) 최대로 팽창, 우라르티아 권력의 절정기
  • 루사스 1세 (Rusas I, 재위 735 BC-714 BC); 아시리아킴메르의 공격

쇠퇴기

  • 아르기쉬티스 2세 (Argishtis II, 재위 714-680 BC)
  • 루사스 2세 (Rusas II, 재위 680 BC-639 BC)
  • 사르두리스 3세 (Sarduris III, 재위 639 BC-635 BC)
  • 에르메나 (Ermena, 재위 635-629 BC) 아르메니아 왕조의 시작
  • 루사스 3세 (Rusas III, 재위 629 BC-590 BC 또는 아마도 629 BC-615 BC)
  • 사르두리스 4세 (Sarduris IV, 재위 615 BC-598 BC)
  • 루사스 4세 (Rusas IV, 재위 598 BC-590 BC)

아시리아, 메데스 그리고 스키티아의 습격

아르메니아의 반전설적인 왕들의 계보가 우라르티아 의 마지막 왕의 재위가 끝난 지 20년 후에 오론테스 1세 사카바키아츠(재위 570-560 BC)와 함께 시작한다.

갤러리

Urartu743

우라르투의 최대 판도 기원전 743년

Urartu860-840

아라무 아래의 우라르투

Urartu 610 585-en

후기 우라르투, 루사 III 와 IV 시절 (610-585 BC)

Erebuni

에레부니 요새,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의 우라르투 성

Urartian language stone, Erebuni museum 3

우라르투 설형문자 판 아르기시티스 1세의 에레부니 요새 창건을 기록

니푸르

니푸르(Nippur)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이다. 현재 이라크의 바그다드 남동부에 위치한다.

만나이인

만나이인(아카드어: Mannai, 영어: Mannaeans)은 기원전 10세기경부터 7세기경까지 오늘날의 이란 북서부의 우르미아 호의 남쪽 지역에 살았던 고대 민족이다. 만나이인이 살았던 이 지역을 만나(Manna)라고 한다. 만나이인의 나라를 통상적으로 만나이 왕국(Kingdom of Mannai)이라 하는데, 《구약성경》에 나오는 민니(히브리어: מנּי Minni: 예레미아 51:27)가 만나이 왕국일 가능성도 있다.

당시에 만나이 왕국은 아시리아 제국(신 아시리아 제국: 911~612 BC 또는 934~605 BC)과 우라르투 제국(1350~590 BC 또는 860~585 BC)과 이웃하고 있었으며, 또한 이 두 제국 사이에 존재한 무사시르(Musasir)와 지키르타(Zikirta)와 같은 작은 완충국들과도 이웃하고 있었다.

메디아

메디아는 현재의 이란 북서부에 있었던 고대 국가와 고대 이란인을 부르는 이름이다. 대체로 오늘날 케르만샤 일부와 아제르바이잔, 하메단, 테헤란, 쿠르디스탄 지방에 해당한다. 메디아 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 인들이 이 지역이 메디아 또는 메데아(Μηδία) 로 알려졌기 때문에 붙여졌다. 구약성서의 다니엘서에는 메대로 불린다.

아시리아가 멸망한 후 기원전 11세기 전반 무렵 메디아족(族)이 세웠다. 아시리아의 샬만에세르 3세(BC 858~824)의 문헌에는 '마다' 지역 사람들이라는 기록이 있다. 바로 이들이 뒤에 메디아인으로 알려졌다.

수도는 엑바타나(지금의 하마단)였다. 그 기원과 민족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란민족의 파(派)인 마다 또는 마타이 족으로 우르미아호(湖) 남쪽에서 말을 사육한 유목민이다.

이들은 엑바타나를 중심으로 강성해져 데이오케스 때에 왕국으로 건립되었으며, 그의 아들 프라오르테스 때는 이란의 대부분을 영유하게 되었다.

기원전 6세기까지 메디아는 흑해의 남부연안과 아란지방(오늘날의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서 페르시아를 포함한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메디아는 키루스 대왕에 의해 페르시아 제국과 병합 되기 전까지 이란의 첫 번째 국가를 형성하였다.

미탄니

미탄니(Mitanni) 또는 하니갈바트(Hanigalbat)는 기원전 1500년경부터 1300년경 동안 고대 근동의 지금의 시리아 북부 지역과 아나톨리아 남동부 지역(대략 오늘날의 쿠르디스탄 지역에 해당한다)을 지배하였던 온건성향의 국가이다. 미탄니 왕국은 중앙아시아의 아리아인계의 지배 계층이 후르리인 민중을 지배하는 형태로 성립되었으며, 히타이트 제국에 의해 아모리인계의 바빌론(Amorite Babylon)이 멸망하여 역사속으로 사라져 메소포타미아에 권력 공백이 생기자 이를 기회로 지역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미탄니의 역사의 초기에서 미탄니의 주요 경쟁자는 고대 이집트의 투트모세 왕조, 즉 이집트 제18왕조(1550?~1292? BC)의 파라오들이었다. 그러다가 히타이트 제국(18세기~1180 BC, 전성기는 기원전 14세기)이 강성해지면서, 미탄니와 고대 이집트는 히타이트 제국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의 미래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동맹하였다. 히타이트 제국과 마찬가지로 미탄니의 최절정기도 기원전 14세기였는데, 당시에 미탄니는 카부르 강 상류에 위치한 수도 와슈칸니를 중심으로 그 둘레에 군대 주둔 기지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미탄니는 히타이트 제국에 굴복당하였으며, 이후 히타이트의 지원을 받은 아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중기 아시리아 제국의 한 지방으로 전락하였다.

미탄니는 후르리어를 사용하였는데 후르리어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두 어족인 셈어족과 인도유럽어족 둘 모두와 연관성이 없는 후르리우라르투어족에 속한다. 고대 근동에 미친 미탄니의 영향은 후르리어로 된 지명과 인명이 사용된 것과 그리고 미탄니의 독특한 도기 양식이 시리아를 통해 퍼진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반 (터키)

반(Van, 아르메니아어 Վան, 쿠르드어: Wan, 문화어: 완)은 동 터키의 도시이면서 반 주의 주도이다. 반 호의 동쪽 연안에 위치한다. 도시의 인구는 387,766명(2014년 기준)이다.

반은 기원전 9세기에 우라르투의 수도였는데 당시 이름은 '투쉬파'였다. 고대의 주민은 스스로를 '나이리'라 불렀고 도시는 아르메니아의 중심이었다. 그들은 반 호 근처의 반 성('반 칼레시')에 정착하였다. 그곳은 현재 도시의 서쪽 수 km에 위치하였다. 여기에서 우라르투어 설형문자 비문이 발견되었다.

2011년 10월 23일 이 도시에서 규모 7.3의 지진이 일어나 최대 1,000명이 사상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신아시리아 제국

신아시리아 제국(Neo-Assyrian Empire)은 메소포타미아의 역사에 등장하는 한 제국으로, 서로 기원이 다른 여러 민족들과 부족들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였으며 기원전 934년부터 기원전 609년까지 존재하였다. 이 기간 동안 아시리아는 지구 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는데, 바빌로니아, 이집트, 우라르투/아르메니아, 엘람을 성공적으로 제압하여 근동, 아나톨리아, 캅카스,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동부의 패권을 잡고 지배하였고, 특히 기원전 8세기의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 때에 이르러서는 광대한 제국이 되었다. 하지만 1400년전의 왕인 사르곤의 정책과 매우 유사한 피정복민에 대한 가혹한 정책으로 인해 기원전 612년 메디아, 신바빌로니아 제국, 스키타이, 킴메르를 포함한 모든 서아시아 국가들의 연합군들에게 멸망한다.아시리아는 원래 기원전 25세기에 성립된 아카드인의 왕국들 중 하나였다. 투디야(Tudiya)와 같은 초기의 아시리아 왕들은 부족 수준의 비교적 소국의 군주였다. 그러다가, 아카드 제국(2334~2154 BC)의 성립 후에 아카드의 사르곤에게 복속되어 아카드 제국의 속국이 되었다. 사르곤은 메소포타미아에 살고 있던, 아카드어와 수메르어를 말하는 민족들을 모두 통일하여 단일한 지배하에 두었다. 하지만 가혹한 정책으로 인해 불과 200년만인 2154년 멸망한적이 있으며, 중기 아시리아 제국도 고 아시리아 제국 멸망 이후 900년 후인 기원전 1270년 건국하였지만 고 아시리아 제국과 마찬가지로 가혹한 통치로 인해 기원전 934년 왕조가 교체된 바 있었다. 신아시리아 제국은 앞서 존재했던 고 아시리아와 중기 아시리아의 멸망에서 교훈을 찾지 못했고 결국 멸망하게 된 것이다.

아르마비르 (러시아)

아르마비르(러시아어: Армави́р)는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 쿠반 강과 접하며 인구는 188,286명(2009년 기준)이다.

1839년 아르먄스키아울(Армя́нский ау́л)이라는 이름으로 신설되었으며 1848년 아르메니아의 옛 수도인 아르마비르를 따서 변경되었다. 1914년 1월 18일 시로 승격되었다.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 공화국(아르메니아어: Հայաստանի Հանրապետություն 하야스타니 한라페투티윤), 줄여서 아르메니아(아르메니아어: Հայաստան 하야스탄, 문화어: 아르메니야)는 캅카스 지방에 있는 내륙국이다. 수도는 예레반이며, 공용어는 아르메니아어이다.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터키, 이란, 아르차흐 공화국(아르메니아의 부속국)과 국경을 접한다. 1921년 예레반을 수도로 하는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고, 이듬해 소련에 가입했다. 1990년 8월 주권을 선언하고 1991년 12월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하였다. 남캅카스의 산국(山國)으로, 강수량이 적고 기후는 건조하다. 산업의 기초는 세반 호(해발 1,900m)의 물에 의한 수력전기로서, 화학·야금공업(인조고무, 질소, 과린산 비료, 플라스틱, 도료, 동, 알루미늄)이 발달해 있다.

아르메니아 왕국

아르메니아 왕국(Kingdom of Armenia)은 기원전 190년에서 서기 387년까지 독립 왕국이었다. 그리고 서기 428년까지 카스피 해에서 지중해까지 걸쳐 있는 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의 속주였다.

아슈르-벨-칼라

아슈르-벨-칼라(Ashur-bel-kala、재위: 기원전1074년 - 기원전1056년)는 중아시리아 왕국시대의 아시리아의 왕이었다. 그는 아람인의 침입 때문에 혼란에 빠진 국내 통합에 부심하였다.

티그라트-필레세르 1세의 왕자로 태어나 형 아샤리드-아팔-에쿠르의 후사를 이어서 아시리아 왕이 되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우라르투 지방에 원정하여 승리하여, 많은 전리품을 획득하였다. 그는 치세의 많은 부분을 티글라트・필레세르 1세 시절에 영내에 침입해 있던 아람인과의 전투로 소비하였다. 그는 비상한 노력으로 많은 승리를 얻었음에도 부왕의 시대에 획득한 영토의 통합은 용이하지 않았고 아시리아 자체의 정치 혼란에 종지부를 치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아완 왕조

아완 왕조는 엘람의 첫 왕조로 건국자는 펠리이다. 아완 왕조는 초기에 수메르에서 문화적인 영향을 받았다.

아완은 엘람의 고대 도시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사의 북쪽으로 추정된다.

예레반

예레반(아르메니아어: Երևան / Yerevan)은 아르메니아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이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인간이 살아온 도시 중 한 곳이다. 예리반(Erivan), 예레브니(Erebuni)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었다. 흐라즈단 강을 끼고 발달한 도시이며, 아라쿠스 강의 지류가 시내를 흐른다. 예레반은 아르메니아의 행정, 문화, 산업의 중심지이다. 기계 제조나 금속업, 포도주, 브랜디 제조, 담배 제조업이 발달해 있다. 1918년 이래 아르메니아의 수도가 되었으며, 아르메니아의 역사상 열세 번째 수도이다. 2011년 인구조사 결과, 예레반은 106만 0138명의 인구를 포용하며, 이는 아르메니아 공화국 인구의 35%에 해당한다.

우르

우르(아랍어: أور, 히브리어: אור כשדים)는 메소포타미아지역 남부에 수메르문명 시기에 세워진 도시이다.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들어가는 하구에 위치하였으며 인근에 에리두가 있었다. 우르는 역사상 매우 오래된 도시의 하나이다. 우르의 유적은 해안선의 상승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사라졌으며 오늘날에는 일부 유적이 이라크 남부의 텔엘무카야 근처에 남아있다.

수메르 신화에서 달의 신으로 기리는 난나를 위한 거대한 지구라트가 현재에도 우르의 유적으로 남아있다. 이 지구라트는 벽돌로 건축되었으며 두개의 층으로 구분된다. 아랫층의 벽돌은 역청으로 이어 붙였으며 위층의 벽돌을 잇는 데에는 회반죽을 사용하였다. 우르는 수메르어로 우림이라 불렸다.

우르두어

우르두어 (اُردو) (Lashkari 로서의 연사들에게도 알려져있다; 로컬로 작성된 لشکری) 는 인도의 고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에 이슬람의 진출로 인한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의 영향을 받아 발달한 인도-셈족-아리안계의 독특한 언어이다.

약 6100만 명이 우르두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어 모어 화자가 전세계에서 21번째로 많으며, 제2외국어 화자까지 포함할 때 우르두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1억 4백만 명에 달한다. 그리고, 우르두어를 힌디어의 하나로 보기도 하는데 이때는 힌두스탄어라고 불리며,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된다.

현재 파키스탄에서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인도에서도 22개의 공용어 중 하나로 되어 있다.

인도에서 우르두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4,810만 명으로 전체 우르두어 사용인구의 80% 가까이 된다.

키시

키시(Kish 수메르어 KIŠKI, 현재의 Tall al-Uhaymir)는 수메르의 고대 도시이다. 바빌론에서 동쪽으로 12km 현재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80km 의 이라크의 바빌 주에 있다. 델루게(Deluge) 다음으로 집권한 도시이다. 도시의 수호신은 자바바(Zababa)다.

킴메르

킴메르인은 (그리스어: Κιμμέριοι, 킴메리오이)는 고대 유목민들로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원래 코카서스와 흑해의 북쪽 영역에 기원전 8세기와 기원전 7세기에 살았는데 그곳은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이다.

그들의 근원은 불분명하지만 인도유럽어족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이란어, 소아시아어와 관련되어 있다. 또 그들의 이란의 지배 계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스루브나 문화와 관련있으며 그것은 그 이전의 지하묘지(catacomb)문명(기원전 2000년 ~ 기원전 1200년)을 대체하였다.

약간의 비석이 우크라이나와 북 코카서스에서 발견되었는데 킴메르인들과 관련된다. 그들은 후의 스키타이인과 이전의 얌나/케미-오바 비석과 양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터키의 역사

이 문서는 기원전 6,500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터키의 역사에 대해 서술한다. 하티, 히타이트, 프리기아, 우라르투, 리키아, 리디아, 이오니아, 페르시아 제국, 마케도니아 왕국, 로마, 비잔티움 제국, 셀주크 제국, 오스만은 터키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고대 유적은 나라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각각의 문화의 특징이 존재한다.

후르리어

후르리어는 후르리인이 쓴 언어이다. 공용어로서는 북서 메소포타미아의 미탄니에서 사용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시리아에 후르리인의 정착 초기에는 사용되었다.

후르리인

후르리인은 고대 소아시아 지역에 살았던 민족이다. 북부 메소포타미아와 동양과 서양의 경계의 지역에 기원전 2500년경부터 살았다. 그들은 아마도 코카서스에 근원이 있었으며, 명확하지는 않지만 북쪽에서부터 진입하였다. 그들의 알려진 고향의 중심은 카부르 강 계곡의 수바르투이며, 후에 북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전역에 걸쳐있는 작은 왕국의 지배자로 스스로 일어났다. 후르리인이 세운 가장 강력한 국가는 미탄니 제국이었다.

후르리인은 히타이트 역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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