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

왕조(王朝)는 같은 왕가에 속하는 군주의 가족 또는 그 계열이 지배하는 시대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상속세습에 의해 행해지지만, 맘루크 왕조처럼 실력자가 뒤를 잇는 체제의 경우도 있었다. 왕조의 이름은 왕조가 있을 때부터 그 이름으로 알려져있는 경우도 있지만, 후에 역사학자에 의해 명명되어 일반적으로 인식된 것도 많다.

같이 보기

간다라

간다라(산스크리트어와 힌디어: गन्धार, 우르두어: گندھارا)는 현재의 파키스탄 북부와 아프가니스탄 동부에 자리하였던 고대 왕국(마하자나파다스) 가운데 하나의 이름이다. 간다라는 주로 페샤와르 계곡, 포토하르 고원과 카불 강 유역에 위치하였다. 그 주요 도시로는 '인간의 도시'란 뜻의 푸르샤푸라(현대의 페샤와르)와 탁샤실라(현대의 탁실라)가 있다.

간다라 왕국은 기원전 6세기에서 서기 11세기까지 지속했는데, 1세기에서 5세기까지 불교도였던 쿠샨 왕조의 왕들 아래서 전성기를 누렸다. 서기 1021년 가즈나 왕조의 마흐무드가 정복하고서 간다라라는 지명은 사라졌다. 무슬림 시대 이 지역은 카불 또는 라호르의 통치자가 지배했고, 무굴 제국 시대에 카불 주 일부가 되었다.

리 왕조

이조(李朝, 1009년 ~ 1225년)는 베트남 대구월(1009년 ~ 1054년)과 대월(1054년 ~ 1225년)의 황조이다. 수도는 하노이이다. 이조는 9대 217년에 이르는, 베트남 사상 최초의 장기 정권이었다.

부르봉가

부르봉 가(프랑스어: Maison de Bourbon)는 카페 왕조의 한 계열로 루이 9세의 마지막 아들 클레르몽의 백작 로베르 드 프랑스(Robert de France)로부터 시작되었다. 부르봉(Bourbon)의 어원은 켈트어로 ‘진흙(Borvo, 혹은 Borbo)’을 뜻한다.

상나라

상(商, 기원전 1600년경 ~ 기원전 1046년경)나라는 역사적으로 실제 했다고 여기는 최초 중국 왕조다. 반경(盤庚)이 마지막으로 옮긴 수도가 은(殷)이기 때문에 은나라로 부르기도 한다.

신나라

신(新, 8년 ~ 23년)은 왕망이 전한의 뒤를 이어 창건한 왕조이다.

신성 로마 황제

신성 로마 황제(라틴어: Electus Romanorum Imperator, 독일어: römisch-deutsche Kaiser, 이탈리아어: Imperatore del Sacro Romano Impero)는 신성 로마 제국을 통치하는 군주이다. 그가 다스리는 영토는 자신의 원래 직할 영지와 신성 로마 제국의 구성국인 작센, 슈바벤, 바이에른, 프랑켄, 케른텐, 오스트리아, 헝가리 그리고 북부 이탈리아 등이다. 기타 이탈리아 내 제후가 다스리는 영토에서도 일부 종주권을 인정받았다.

황제위는 호엔슈타우펜 왕조 까지는 로마 교황이 제관을 수여하였고, 대공위 시대 이후 선제후라고 부르는 황제 선출권을 가진 제후들에 의해 선출되었다. 1530년 한때 프랑스의 프랑수아 2세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후보자로 입후보하기도 했다.

아바스 왕조

아바스조(아랍어: لعبّاسيّون)는 아랍 제국의 두 번째 이슬람 바그다드 칼리파왕조의 이름이다. 아바스 왕조는 750년 초대 칼리프 왕조인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왕조를 세웠고 1258년 몽골족이 바그다드를 함락시킬 때까지 아랍 제국을 다스렸다. 바그다드가 무너진 이후에는 이집트로 옮겨서 종교적인 권위를 내세웠다. 아바스라는 이름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숙부인 알아바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아케메네스 제국

아케메네스 제국(Achaemenid Empire)은 아케메네스(Archaemenes)의 아들 테이스페스(Teispes)를 시조로 하는 페르시아 제국이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페르시아에서 역사상 등장한 제국 중 가장 거대한 제국이며 최대 판도였을 당시 3개 대륙에 걸친 대제국이었다.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일부에서부터 이란, 이라크 전체 흑해 연안의 대부분의 지역과 소아시아 전체, 서쪽으로는 발칸 반도의 트라키아, 현재의 팔레스타인 전역과 아라비아 반도, 이집트와 리비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 아케메네스 왕조의 영토였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페르시아 제국은 거의 아케메네스 제국을 의미한다.

알제리

알제리 (아랍어: الجزائر 알자자이르[*] 베르베르어: ⴷⵣⴰⵢⴻⵔ, 프랑스어: Algérie 알제리[*]), 또는 알제리 인민민주공화국 (아랍어: الجمهورية الجزائرية الديمقراطية الشعبية, 프랑스어: République algérienne démocratique et populaire 헤퓌블리크 알제히엔 데모크하티크 에 포퓔래흐[*])는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주권 국가이다. 알제는 알제리 인구 최대의 도시이자 수도이며, 알제리의 북쪽 끝에 위치하여 있다. 알제리의 총면적은 2,381,741 km2 (919,595 sq mi)로, 세계에서 10번째로 넓은 국가이자,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국가이다. 알제리는 북동쪽으로 튀니지, 동쪽으로 리비아, 서쪽으로 모로코, 남서쪽으로 서사하라, 모리타니, 말리, 남동쪽으로 니제르, 그리고 북쪽으로 지중해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알제리는 48개의 주와 1,541개의 지방 자치체로 구성되어 있는 이원집정부제 국가로, 1999년부터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가 알제리의 대통령직을 맡아오고 있다.

고대부터 알제리에는 누미디아, 페니키아, 카르타고, 로마, 반달족, 비잔티움 제국, 우마이야 왕조, 아바스 왕조, 이드리스 왕조, 아글라브 토후국, 루스탐 왕조, 파티마 왕조, 지리드 왕조, 함마디드 왕조, 무라비트 왕조, 무와히드 칼리파조, 스페인 제국, 그리고 프랑스 식민제국 등 수많은 제국들과 왕조들이 거쳐갔다. 베르베르인은 알제리의 토착민이다.

알제리는 지역 강국이자 미들 파워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알제리를 포함한 여러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유럽에 막대한 양의 천연 가스를 공급하고 있으며, 에너지 수출은 이들의 국가 경제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다. OPEC의 자료에 따르면, 알제리는 세계 16위, 아프리카 2위 규모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며, 세계 9위 규모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기록하고 있다. 알제리의 국영 기업인 소나트래치는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기업이다. 알제리는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군대와 국방 예산을 운용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무기는 알제리와 협력 관계에 있는 러시아에서 수입해온다. 알제리는 아프리카 연합, 아랍 연맹, OPEC, 유엔의 회원국이자, 아랍 마그레브 연합의 창립국 중 하나이다.

야기에우워 왕조

야기에우워 왕조 (폴란드어: Jagiellonowie, 리투아니아어: Jogailaičiai 요가일라 왕조)는 리투아니아 대공 요가일라가 세운 폴란드의 왕조이다. 1386년 리투아니아 대공 요가일라는 폴란드의 여왕 야드비가와 결혼하여 폴란드 왕 브와디스와프 2세라 칭하고 양국은 연합했다. 이 연합은 양국의 독립성을 인정한 다음 공통의 군주를 섬기는 왕조적 연합에 불과하며, 국내에서 소귀족이 독립하여 국가의 통일성은 결여되어 있었으나 독일 기사단을 격파하고 발트 해의 출구를 확보하여 15세기의 카지미에시 4세 때에는 최성기를 이룩했으며, 보헤미아와 헝가리 왕위까지 장악해, 야기에우워 왕가는 폴란드-리투아니아계와 헝가리-보헤미아계로 분열된다. 그러나 헝가리-보헤미아 왕가는 모하치 전투에서 러요시 2세(루드비히 2세)가 전사하면서 단절 되고 합스부르크 왕가로 넘어가게 된다.

폴란드-리투아니아계열 최후의 왕 지그문트 2세 때 폴란드-리투아니아 양국은 단일이며 분할되지 않는 국가로서의 방향을 결정했으나 그의 죽음과 함께 야기에우워 왕조는 단절되고, 이후 폴란드 왕은 선거에 의해서 선출되게 되어 분열을 더해갔으며, 보헤미아-헝가리계 역시 합스부르크 왕가에 흡수되었다.

응우옌 왕조

응우옌 왕조(베트남어: Nhà Nguyễn, 1558년 ~ 1777년, 1802년 ~ 1945년) 또는 완조(베트남어: Nguyễn Triều)는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이다. 1802년부터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떠이선 왕조(베트남어: Tây Sơn)에 의해 멸망 당한 광남 완씨 중 응우옌 아인이 살아남아, 떠이선 왕조를 타도하고 건국했다. 후에에 수도를 건설하였다.

이란

이란(페르시아어: ایران)은 서아시아에 있는 이슬람 공화국이다. 공식 국명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페르시아어: جمهوری اسلامی ایران 좀후리-예 에슬라미-예 이란)이며, 1935년에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국호를 변경하였다. 1979년에 이란 혁명으로 군주제를 폐지하였고, 현재는 공화제 국가이다.

이란에 사는 소수 민족 그룹은 주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페르시아인 (페르시아어를 말하는 사람들 : 41 %), 아제르바이잔 인 (아제르바이잔 어를 말하는 사람들 : 35 %), 쿠르드 (쿠르디스탄) (30 %)

이란 혁명

이란 이슬람 혁명(페르시아어: انقلاب ۱۳۵۷, 영어: Islamic Revolution) 또는 이란 혁명(영어: Iranian Revolution of 1979)은 1979년 이란에서 발생한 혁명으로 입헌 군주제인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가지는 정치체제로 변화되는 결과를 낳은 사건이다(사실상 신정 체제). 호메이니의 이슬람 공화국으로 정부가 교체되었다. 이 운동은 서방 세력(미국과 영국 등)의 지원을 받는 팔라비 왕조에 반대하는 다양한 좌파와 이슬람단체, 학생운동으로 지지를 받았다.[2] 그러나 혁명 직후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으며 친 팔라비 파, 좌파인사가 탄압당하는 새로운 국가폭력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란 현대사에서 이란 혁명은 민중의 투쟁으로 독재정권이 물러나게 한 시민혁명이라는 의미가 있다.

팔라비 샤(Mohammad Reza Shah Pahlavi)에 대한 시위는 1977년 10월에 시작되어 세속적인 요소와 종교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시민 저항 운동으로 발전하였고, 1978년 1월에 더욱 격화되었다.[3] 1978년 8월에서 12월 사이에 파업과 시위가 전국이 마비되었다. 팔라비 샤는 1979년 1월 16일, 마지막 페르시아 군주로서 이란을 망명지로 떠나, 그의 임무를 재위 의회와 야당에 기반을 둔 수상이었던 샤푸르 바크티아르(Shapour Bakhtiar)에게 맡겼다.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페르시아어:آیت‌الله روح‌الله خمینی, 영어: Ruhollah Khomeini, 문화어: 아야톨라흐 이맘 코메이니)는 정부에 의해 이란으로 다시 초청되었고 수 백만 명의 이란인들에 의한 인사로 테헤란으로 돌아왔다. 2월 11일, 무장 거리 전투에서 게릴라들과 반란군이 샤에 충성하는 군대를 압도하여 호메이니를 공식 권좌에 앉히자 왕권이 붕괴되었다.이란은 1979년 4월 1일 이슬람 공화국이 되고 1979년 12월 호메이니가 최고 지도자가 된 새로운 신민주의 공화국 헌법을 제정하고 승인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조선

조선(朝鮮, 중세 한국어: 됴션 근대 한국어: 져션, 문화어: 조선봉건왕조(朝鮮封建王朝) 또는 리조조선(李朝朝鮮), 1392년 ~ 1897년)은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아 한반도를 518년 간 다스렸던 왕조이다. 고려 말 신진 사대부의 지지를 등에 업어 무관 이성계가 건국하였고, 고종이 선포한 대한제국으로 계승되었다.

이자춘의 아들이자 고려의 신흥 무인세력이었던 이성계는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그는 창왕·공양왕을 왕위에 올렸다가 신돈의 사생아라고 사건을 조작하여 폐위하는 등 정권·군권·경제권을 행사하였고, 전제 개혁을 단행했다. 1392년 음력 7월 17일에는 공양왕이 왕대비에게 준 옥새를 이성계가 받아들어 주변 측근들의 추대로 왕위에 오르면서 조선왕조는 막을 올린다. 1393년 2월 15일에는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였고, 1394년에는 한양을 도읍으로 하여 '재상 중심 정치'를 꿈꾸던 정도전을 중심으로 고려의 기존 제도를 급진적으로 고쳤다.

형 정종을 꼭두각시로 세웠다가 곧 왕권을 양위받은 태조의 아들 이방원은 특권층이 소유하고 있는 개인 사병들을 강제 해산하여 조선군에 편입하고 호패법을 실시하는 등 왕권을 대폭 강화하였고, 정도전을 암살한 뒤 관료 제도를 재상 중심 의정부서사제에서 임금 중심인 육조직계제로 개편하였다. 세종대왕은 1443년 집현전을 궁내에 설치하여 학문을 장려하고, 장영실을 등용하여 아들 문종과 함께 과학 발전에도 힘썼으며,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등 애민정치를 펼쳤다. 조카 단종을 계유정난으로 몰아낸 세조는 정통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세력을 제거한 뒤 태종처럼 육조직계제를 채택, 왕권을 강화하였고, 《동국통감》, 《국조보감》 등을 짓기도 했다. 단명한 예종에 뒤이어 즉위한 성종은 치국의 근본이 되는 《경국대전》을 편찬하는 등 문물 제도를 정비했다.

15세기 말부터 지방의 사림 세력이 정계에 등장하고 기존 대신인 훈구와 대립하면서 정치는 혼란해졌다. 사림과 훈구를 모두 배척하고 독단적으로 정치를 한 연산군을 중종반정으로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조광조를 중용하는 등 사림 공신에게 휘둘리지 않으려 애를 썼으나, 이렇다 할 치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인종과 명종 역시 사림과 훈구의 공방 속에서 요절했다. 선조 대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훈구파가 정계에서 물러나고 사림파가 정계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후 사림이 붕당을 형성하여 대립각을 세우면서 붕당정치가 탄생한다.

200년 간 평화로이 지내다가 16세기에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은 국토가 쑥대밭이 되고, 재정이 바닥났으며, 백성이 도탄에 빠졌다.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친 광해군은 서인이 인조반정으로 왕좌에서 끌어내렸는데, 그로써 권력을 쥔 인조는 친명배금을 표방하다가 병자호란에서 참패를 당했다. 이 양난을 기점으로 유학의 영향력이 공고해지고, 조선의 역사는 후기로 접어든다. 삼전도의 굴욕을 맛본 조정에서는 청나라에게 당한 수치를 씻자는 북벌론과 청나라를 본받자는 북학론이 대두되었으나 효종이 의료사고로 숨지면서 북벌론이 흐지부지되고, 북학론도 여전히 청나라를 오랑캐로 치부하는 관료들 때문에 국정에 반영되지 못하였다.

이후 권좌에 오른 현종은 경신대기근에도 불구하고 전쟁으로 고갈된 재정을 수습하고 황폐화된 조선을 복구하며 서인을 견제하는 데 힘을 썼다. 이즈음 붕당이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환국'을 숙종이 빈번하게 일으키면서, 붕당정치는 견제와 균형을 통한 상호 공존 및 부패 방지라는 원칙은 퇴색되고 정권을 잡을 때마다 다른 붕당을 모조리 축출하는 일당 전제화의 경향을 띠게 되었다. 숙종이 총애하던 장희빈의 소생 경종은 소론과 노론의 알력다툼에 지쳐 재위 4년 만에 승하했다.

영조는 당쟁을 혁파하기 위하여 탕평책을 폈으나 붕당정치를 완전히 청산하지는 못했고, 오히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임오화변이 일어났다. 이때를 전후하여 천주교가 조선 사회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영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정조 역시 탕평책을 폈을 뿐만 아니라 정약용과 같은 실학자들을 발굴하여 수원 화성을 축성하는 등 개혁 정치를 시도했지만 1800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이후 세도 정치가 시작되어 19세기 순조·헌종·철종 3대에 지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조선은 급격한 쇠퇴를 맞이했다. 외척가문은 왕위 임명에도 손을 대는 등 부정부패 속에서의 절대권력을 누렸다. 그러던 가운데 흥선군 이하응이 풍양 조씨의 대표 조대비와 결탁하여 둘째아들 명복을 조선 국왕 자리에 올리는데, 바로 고종이다.

흥선군은 흥선대원군이 되어 고종을 배후에서 조종하였다. 그는 붕당의 근원인 서원을 철폐하고 외척 가문인 안동 김씨 세력들을 축출하는 등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다. 프랑스와 미국의 통상 강요와 협박에는 통상수교 거부정책으로 응수했다. 1873년에 최익현이 흥선대원군을 탄핵하였고, 이로서 고종의 친정이 시작되나 실권자는 고종의 부인 민비였다.

민비는 민씨 일가를 국가 요직에 대거 임명하여 조정을 장악한 뒤, 대외적으로 문호를 개방했다. 1876년에는 조선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일본 제국과 체결하였다. 1882년에는 구식 군인들이 별기군과의 차별대우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고(임오군란), 1884년에는 김옥균 등이 주도하여 개화정권을 수립했다가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갑신정변). 1894년에는 농민 수탈에 저항하여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한때 농민 자치를 실현했고, 이어서는 친일 성향이 짙은 갑오개혁이 발표되었다. 1895년에 일제가 친러파 민비를 암살하자(을미사변)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몰래 아관파천을 감행하여 러시아 주한 공사관에 1년 동안 피신했다. 1897년 11월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이 경운궁의 편액을 덕수궁으로 고쳐 쓰고, 원구단과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조선왕조 오백년

《조선왕조 오백년》(朝鮮王朝 五百年)은 MBC에서 1983년 3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방영된 대하 드라마 시리즈이다. 제목 그대로 조선왕조 519년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큰 주제를 고정하고 내부 시리즈를 구성하는 시즌제를 채택하였으며, 따라서 아래의 제목은 단발성 에피소드의 제목이 아니라 각 시즌의 제목과 방송 기간을 나타낸 것이다.

청나라

대청국(大淸國, 만주어: ᡩᠠᡳᠴᡳᠩᡤᡠᡵᡠᠨ Daicing Gurun, 1616년 2월 17일 또는 1618년 또는 1636년 6월 5일 ~ 1912년 2월 12일 또는 1924년 1월 5일)은 대청국(大淸國, 만주어: ᠠᠮᠪᠠᠠᠴᡳᠩᡤᡠᡵᡠᠨ Amba Cing Gurun),ᡩᠠᡳ대청제국(大淸帝國) 청조(淸朝)이라고도 한다.

1618년에, 여진의 (만주어: ᠵᡠᡧᡝᠨᡤᡠᡵᡠᠨ Jušen Gurun)의 영명한(英明汗, 만주어: ᡤᡝᠩᡤᡳᠶᡝᠨᡥᠠᠨ Genggiyen Han)이었던 누르가치가 건국한 대금(만주어: ᠠᠮᠪᠠᠠᡳ᠌ᠰᡳᠨ Amba Aisin)을 근간으로, 아들 태종 숭덕제는 대금에서 대청(만주어: ᡩᠠᡳᠴᡳᠩ Daicing)으로 국호를 바꾼 뒤, 중국 대륙을 대표적으로 지배하는 육상 제국이 됐다.

만주족이 통치한 제국이자, 중국 역사에거 근대식 공화정 수립 이전 마지막 전제군주정으로 본다.

1635년 10월 13일, 탄생한 만주족의 청 제국은 광대하였으며 융성했었다 또 인구도 증가하였다. 청 초기에는 훌륭한 황제들(강희제, 옹정제)이 통치했다. 한족의 중국 명나라뿐 아니라 주변의 몽골, 위구르, 티베트를 모두 정복하여, 유라시아 육상 제국을 이룩하였다. 중에서, 심지어 원나라보다 큰 영토를 이루게 되며, 1689년에는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루스 차르국의 침입을 저지하였다. 1683년부터 1830년까지는 그야말로 청 제국의 평화시대(팍스 시니카)였다. 이민족으로서는 가장 오랫동안 중국을 지배하였다. 제8대 도광제부터 말대 선통제 대에서 서구열강 세력 등의 영향으로 국력이 약해져 1912년에 선통제가 퇴위하였고, 1924년에, 공식적으로 황실이 해체되어 육상 제국의 종말과 동시에 중국 역사에서 2천여 년 넘게 이어졌던 봉건 왕조가 끝나게 된다.

카롤루스 왕조

카롤루스 왕조(Carolingian dynasty)는 프랑크족 카롤루스 일족이 세운 왕조이다. 카롤링 가문은 아우스트라시아 출신으로 프랑크 왕국의 전 왕조인 메로빙거 왕조에 종사하는 궁재이었으나, 점차 실권을 잡아 프랑크 왕국의 2번째 왕조를 열었다. 덧붙여 "카롤링"은 현대와 같은 성씨는 아니고 "카를의 후손"이라는 의미이다. 당시 프랑크족을 비롯한 유럽의 민족들은 성씨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였다.

751년에서 987년까지 프랑크 왕국이나 그것이 갈라진 동 프랑크 왕국·서 프랑크 왕국·중 프랑크 왕국의 왕을 배출했다. 987년, 서프랑크 왕국의 왕가가 단절되면서 소멸했다.

페르시아 제국

페르시아 제국은 오늘날 이란의 영토에 근거한 여러 개의 제국을 서양에서 일반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기원전 550년 - 기원전 330년)를 페르시아 제국이라고 부르지만, 넓은 의미로는 1979년까지 이 지역에서 일어났던 여러 개의 제국들을 모두 페르시아 제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본래 남부 이란의 한 주(州)인 파르스에서 유래했는데 그 곳에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가 있었다. 이 때문에 고대 그리스 인들은 이 왕조를 그 지역 이름으로 불렀으며, 오늘날의 유럽 언어도 그것을 따랐다. 그래서 영어를 비롯한 유럽 어에서는 이 나라를 페르시아라 통칭했다.

합스부르크로트링겐가

합스부르크로트링겐가(Habsburg-Lothringen)는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1세의 혼인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와 로트링겐 공가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가문이다. 합스부르크 왕가를 계승하였다.

후 레 왕조

후 레 왕조(베트남어: Nhà Hậu Lê/ 家後黎, 전기: 1428년 ~ 1527년, 후기: 1533년 ~ 1788년)는 레러이에 의해 건국된 대월의 왕조이다.

베트남의 역사에서 두 개의 레 왕조가 존재했기 때문에 980년에 레호안이 세운 여조를 전 레 왕조로 하고, 1428년에 세워진 여조를 후여조라고 불러 구별한다. 또한 막 왕조의 찬탈에 의한 공백 기간(1527년 ~ 1533년을 경계로 하여 전기(1428년 ~ 1527년)와 후기(1533년 ~ 1788년)로 나눈다.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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