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당

열심당(熱心黨), 젤롯당(Zealot黨), 시카리당[1], 혁명당로마제국의 통치에 폭력항쟁으로 맞설 것을 주장한 유대의 종교민족주의 정치 운동이다.

이념

종교적 신념

로마 제국하나님을 믿는 유대에 죽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황제 숭배를 강요하자 이에 반발한 유대인들이 항쟁을 일으켰다가 진압된 바 있었는데, 열심당원들은 이스라엘다윗 왕의 자손으로 기름부음 받은 유대인[2] 만이 다스릴 수 있다고 주장하며 로마 제국에 계속해서 대항하였다. 그들은 66년에서 70년에 걸친 대대적인 유대인 반란인 제1차 유대-로마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66년 예루살렘을 장악하여 4년간 버텼으나 70년에 로마 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파괴하는 것으로 전쟁이 끝났다.

테러리즘

열심당원들은 40년말에 가뭄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던 갈릴리유대민중들의 비폭력 투쟁이 대제사장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비폭력투쟁에 가담한 민중을 로마의 평화를 위협하는 비적(匪賊)으로 본 로마제국폭력으로 진압당한 모습[3] 을 보면서, 대항폭력테러리즘으로 투쟁함으로써 지배계급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자 하였다. 식민지에서의 테러리즘은 지배계급보다는 지배계급에 협조하는 특권계급을 공격하는 것이 특징인데, 열심당원들도 로마제국에 협조하던 대제사장을 공격하였다.

시골에서 (로마제국에 비폭력투쟁으로 저항하던 비적들이 로마제국폭력으로)사라진 반면에, 예루살렘에서는 소위 시카리파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비적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축제기간에 단검 속에 숨겼다가 적들을 살해했다. 그들이 쓰러지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분개하는 행동을 해서 자신을 숨겼다. 그들이 처음 암살한 사람은 대제사장이었다. 그 뒤에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었다.[4]

요약해서 말한다면 열심당원들의 테러리즘은 로마의 평화 유지를 위한 로마제국의 착취, 제국에 기생하는 대제사장, 가뭄으로 인한 굶주림과 로마의 평화를 위협하는 민중운동을 레기온십자가형으로 탄압하는 폭력에 대한 갈릴리유대 민중들의 시위이다.

1세기 유대인들의 사상분류

이 전쟁에 유대인 편에서 참전했다 로마 군의 포로가 된 뒤 당시 상황에 대해 기록을 남긴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요세프 벤 마티탸후)는 1세기 당시 유대인들이 4개의 중요한 집단, 즉 바리새인, 사두개파, 에세네파, 그리고 혁명론자들로 나누어졌다고 했는데 열심당은 혁명론자들에 속한다. 에세네파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비정치적으로 은둔에 가깝게 신앙을 지켜갔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파는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한 종교 문제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로마 제국에 어느 정도 타협하며 유대교 신앙과 율법에 관한 논쟁을 벌였지만(사도행전 23:6-9,사도행전 25:13-19) 열심당원들을 비롯한 혁명론자들은 로마에 대한 정치적 투쟁을 우선으로 여겨 과격한 방법도 서슴지 않았다. 따라서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였던 이스라엘 사회에서 지배계급들이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대립하였으나 로마 제국의 수탈과 폭력에 고통받던 민중들에게는 많은 지지를 받았다.

반(反)로마활동

열심당은 유대인 정착촌을 습격하여 로마의 지배에 협력하는 이들을 죽이거나,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하여 필요하면 동족과도 싸우도록 선동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래서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이 성전의 파괴로 이어지기까지 열심당이 죽임을 일삼는 ‘공포의 지배’를 펼쳤다고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당시 사료들도 열심당원들을 '유대민족의 적'으로 판단되는 이들을 공개적으로 죽일 정도로 과격한 민족주의 전사로 묘사한다.[5] 로마제국은 이들을 십자가형으로 공개처형 했는데, 예수의 양옆 십자가에서 처형된 '강도 두 사람'[7]도 실제로는 강도가 아니라, 열심당원이었거나 적어도 로마제국에 반대하여 십자가형에 처해진 자들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서 15장 27절에 나오는 강도 두 사람은 헬라어 레스타이(lestai)를 번역한 말인데,이 단어는 열심당원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8] 예수의 12제자 중 가나나인 시몬(Simon the Zealot)은 열심당원이었다.[9]

각주

  1. 시카리우스에서 나온 말. 시카리우스는 을 소지한 자라는 의미이므로, 열심당과 시카리당은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2. 메시아, 그리스도 참조
  3. 리처드 호슬리. 김준우 옮김, 편집. 《예수와 제국》. 한국 기독교 연구소. 80쪽. 요세푸스유대독립전쟁사에 의하면, 펠릭스 총독(52년-60년)은 기근으로 늘어가는 비적들과 동조자들을 수없이 십자가형으로 죽였다고 한다.
  4. 같은 책, 81쪽
  5. 오경준. 〈애국자 유다는 없다.〉. 《우리가 아는 것들, 성경에는 없다.》. 홍성사.
  6.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성경 번역은 s:성서/신약성서/마르코 복음서#15장 27절 참조
  7. 예수와 함께 강도 두 사람도 십자가형을 받았는데 하나는 그의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왼편에 달렸다.

    — 마르코 복음서 15:27[6], 공동번역성서, 대한성서공회, 1979년

  8. 김득중. 《주요 주제를 통해서 본 복음서 신학》. 한들출판사. 320쪽.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마가복음서 15:27)에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두 '강도들'을 헬라어로 lestai라고 하였는데,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에 의하면 'lestai'는 '젤롯당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9. 마태복음 10장 4절
기독교 속 예수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생각하며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이 하느님과 화목하여 구원과 영생의 약속을 제공 받았다고 믿는다. 이런 가르침은 "하느님의 대리인이자 종"으로서, 예수가 영원한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완전한 순종의 표시로 골고타의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기로 결정한,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나섰음을 강조한다. 그 선택은 예수를 아담의 불순종에 대비되는, 도덕성과 순종의 새 사람이라는 역위치에 두었다.

니가노르

니가노르/naɪˈkeɪnər/는 일곱 부제의 한 사람이다. 76년에 키프로스에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순교되었다고 여겨지는데, 이 전승은 현재 신빙성이 의심되고 있다.

님파

님파(공동번역), 눔바(개신교)는 님프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헬라어 악센트에 따라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나뉘는데, 신약성경에서 바울로가 그의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라오디게이아 교회의 구성원으로 안부를 전한 인물이다(골 4:15). 지역 교회가 그의 가정에서 모였다고 언급된다.

데메드리오

데메드리오(공동번역, 개신교)는 신약성경의 두 군데에서 등장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아르테미스 여신을 숭배하는 은장이로, 사도 바울로를 대적해 선동한 사람.

요한의 세째 편지 1:12에서 언급된 제자. 요한 서신의 운반자일 가능성이 있으며, 사도 요한은 초기 교회의 지도자중 한 명인 가이오(요한3 1:1)에게 데메드리오가 복음을 지탱하는 사람들 중 한명으로 그를 잘 맞이하라고 권하고 있다.

로마의 마리아

로마의 마리아는 바울로 서신 중 하나인 로마서 16:6에서 언급되는 사람이다. 바울로는 그녀가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위해 "많이 수고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요한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와 동일인물이라는 추측도 존재하나 증거는 없다. 그녀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전승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라바

바라바(Barabbas, 바라파스) 또는 예수 바라바(Jesus Barabbas, 예수 바라파스) 는 신약성서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대신, 석방된 유대 민족주의 지도자를 말한다. 공동번역성서에서는 바라빠, 한글개역판에서는 바라바로 번역했다.

바라파스, 바라빠, 예수 바라바로 불리기도 한다.

바르나바의 사촌 마르코

바르나바의 사촌 마르코 (개신교: 바나바의 사촌 마가)는 신약성경의 인물로, 요한 마르코, 복음사가 마르코와 동일인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로마의 히폴리투스는 이 둘이 다른 사람이라는 의견을 기록으로 남긴 바 있다.

바르메나

바르메나(공동번역), 바메나(개신교), 파르메나(가톨릭)은 일곱 보조자의 한 명으로, 소아시아지방에서 복음을 전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바르메나는 98세에 트라야누스 황제로부터 순교당했다고 전해진다.전승에 의하면 그는 솔리(Soli)의 감독이었다고 전해지는데, 일부는 이 지역을 키프로스의 솔리로, 다른 사람들은 실리시아의 솔리로 비정한다.

소바드로

소바드로(공동번역), 소바더(개신교), 소파테르(가톨릭)/ˈsɒpətər, ˈsoʊpətər/[1]은 비로(개신교:부로, 가톨릭:피로스)의 아들[2]로, 베레아 사람이라고 사도행전 20:4에서 언급된다. 소바드로와 다른 사람들(데살로니카 사람 아리스다르코와 세군도, 데르베 사람 가이오와 디모테오, 아시아 사람 디키고와 드로미포)은 바울로가 자신을 해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를 알아차리고서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 동행했다. 소바드로와 다른 사람들은 알렉산드리아 트로아스에 미리 도착해서 필립비로부터 오는 바울을 맞이했다.

소바드로는 로마서 16:21에 바울의 친척으로 등장하는 소시바드로와 동일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3]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비로의 아들"이라는 구절이 소바드로와 소시바드로를 구분하기 위해 추가된 구절로 생각하고 있다.

소스테네

소스테네(공동번역), 소스데네(개신교), 소스테네스(가톨릭)/ˈsɒsθə.niːz/(헬라어: Σωσθένης, Sōsthénēs, "힘 안에서 안전함")는 코린토스의 시나고그의 지도자로, 사도행전에 의하면 회중들에게 붙잡혀 로마 총독 갈리오의 묵인하에 폭행당했는데, 이 갈리오라는 사람은 사도행전 18장 12-17절에서 유대인들의 바울로 고소를 거부한 사람이다. 소스테네가 이와 같은 습격을 당한 이유는 전해져오지 않으나, 몇몇 사본들은 이 회중들이 헬라인이었다고 하기도 하고, 유대인이었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이 회중들에 대한 설명이 없으므로, 이는 후대에 가필된 것으로 보인다.일부 역사학자들은 사도 바울로가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회심한 소스테네를 "형제 소스테네(고대 그리스어: Σωσθένης ὁ ἀδελφός, Sōsthénēs ho adelphos)"라고 부르며, 고린도전서 1장 1-2절에서 공동저자로 언급하기 때문에, 그를 바울로의 동역자로 분류한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여러가지 반론이 따른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하인리히 마이어(Heinrich Meyer)는, 테오도레투스를 비롯하여 플랫(Flatt), 빌로스(Billroth), 에발트(Ewald), 메이어(Maier), 호프만(Hofmann) 등 많은 주석가들이 고린도전서의 소스테네를 사도행전의 인물과 동일한 사람으로 분류하지만, 미카엘리스(Michaelis), 포트(Pott), 뤼케르트(Rückert), 그리고 데 베테는 이를 부정한다고 말한다.또한 일부 학자들은 사도행전 18장 8절과 고린도전서 1장 14절에 언급되는 그리스보가 소스테네의 성씨라고 주장한다.전승에서 그는 누가복음 10:1의 70인의 제자로 분류된다.

시므온 니게르

시므온 니게르(공동번역, 개신교)는 신약성경의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사람으로, 사도행전 13:1에서 "안티오키아 교회"에 있는 "예언자와 교사"들 중 하나로 언급된다.그 때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와 교사 몇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와 니게르라고 불리는 시므온과 키레네 사람 루기오와 영주 헤로데와 함께 자라난 마나엔과 사울이었다.

그의 애칭인 니게르는 "검정색"이라는 의미로, 아프리카 출신의 검은 안색을 빗대어 쓰는 표현이다.

신약 속 예수의 이름과 칭호

두 개의 이름과 다양한 칭호는 신약에서 예수를 가리키는 데 쓰인다.

예수의 공생애

기독교 복음서에서, 예수의 공생애는 요르단 강 근처, 로마 유대와 트랜스요르단의 시골에서 그의 세례로 시작하고, 그의 문도들과의 최후의 만찬을 따라 예루살렘에서 끝난다. 누가 복음 (3:23)은 예수가 자신의 공생애의 시작 부분에서 "30세에"라고 말한다. 예수의 연대기는 일반적으로 약 그의 공생애의 시작의 날짜가 기원후 27-29년이며 기원후 30-36년에 끝나는 것으로 추정한다.

올림파스

올림파스(공동번역, 가톨릭), 올름바(개신교)는 로마인 기독교인으로, 바울로가 서기 65년경에 쓴 로마서 16:15에서 안부인사를 묻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이름은 헬라어로 "하늘의 것"을 의미한다.

정교회에서는 올림파스를 70인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축일은 11월 10일이다.

유니게

유니게(공동번역, 개신교), 에우니케(가톨릭)은 디모테오의 어머니이자 로이스의 딸이며, 유대인 집안에서 자랐다.

그녀는 디모데후서 1:5에서만 언급되는데, 저자는 디모테오에게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개역개정)"한다고 말한다. 많은 주석가들은 유니게를 딤후 3:15와도 연관짓는데, 여기서 디모테오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고 소개된다. 앨버트 반즈는 "디모테오의 어머니는 경건한 히브리인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녀의 아들을 교육하는것을 하나의 의무로 여겼다"고 말한다.

유다 바르사빠

유다 바르사빠(공동번역), 유다 바사바(개신교)는 신약성경의 예언자로, 서기 50년 즈음의 예루살렘 공의회 시기의 초기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다.

이집트 사람 (성경)

이집트 사람, 에집트 사람(공동번역), 애굽인(개신교)는 메시아닉 유대인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 사람이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유대 전쟁사 (2.261-262)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있던 로마 수비대의 지휘관(천부장)이었던 클라우디우스 리시아는 이 이집트 사람을 사도행전 21:38에서 언급하고 있다.

켈리도니우스

켈리도니우스는 예수가 요한의 복음서 9:1-38에서 치유된 소경으로 태어난 이의 이름으로 동방 정교회와 가톨릭 교회의 전승에 전해져온다.

한 전승에서는 성 켈리도니우스가 갈리아의 님 (Nîmes) 교회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데메드리우스의 성 로스토프의 저작 위대한 성인전(Synaxarium)에서도, 예수님이 치유한 그 소경의 이름을 켈리도니우스라고 언급하고 있다.동방 정교회에서는 부활절 이후 여섯번째 주일을 "소경의 주일"로 켈리도니우스의 치유를 기념하고 있다. 부활절 기간의 전례서인 오순경(Pentecostarion)에 있는 많은 찬송가가 이 치유 사건을 다루고 있다.

헤로데 빌립보

[[파일:Tiberius of a coin by Herod Philip.jpg|섬네일|동전에 그려져 있는 헤로데 빌립보 2세(분봉왕 빌립보)

헤로데 빌립보 2세(기원전 26년~34년)는 헤로데 대왕과 그의 다섯 번째 부인인 예루살렘의 클레오파트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이두래와 드라고닛의 분봉왕이었다(성경의 누가복음 3장1절을 보십시오). 헤로데 빌립보 1세(헤로데 2세)(기원전 27년~34년)는 헤로데 대왕과 대제사장 시몬의 딸 마리안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헤로디아의 첫번째 남편이었다.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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