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시대

역사 시대(歷史時代, 영어: recorded history, written history)는 역사의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서 문자로 기록되어 문헌상으로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역사를 말한다. 그 반대로, 문헌상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고, 고고학적인 방법, 가령 유물 등을 사용해 알아낼 수 있는 시대를 선사 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구분에 대해서는, 인류가 살아온 모든 과거가 역사인데,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나눈 점을 들어 비판하는 소리도 있지만, 상당히 보편화 된 시대 구분의 기준이다.

문자 문화의 발전 정도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르기 때문에, 통일된 연대나 절대 연대로 나타낼 수 있는 용어는 아니다. 또한 잉카 제국에 볼 수 있듯이, 문자 문화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천문학이나 건축술 등 다른 분야가 고도로 발달한 예도 볼 수 있으며, 결줄과 같은 문자에 의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과 기록 방법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문자의 유무로 시대를 단락지을 수는 어렵다는 생각도 있다.

인류 역사의 구분


역사 시대
철기 시대
청동기 시대
    동기 시대    
  신석기 시대
중석기 시대





    후기 구석기  
    중기 구석기
    전기 구석기
  구석기 시대
석기 시대

같이 보기

외부 링크

구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舊石器時代)는 선사 시대의 시대 구분으로 석기 시대 초기를 말한다. 돌을 깨서 만든 뗀석기(타제석기)를 도구로 사용했다. 시대적으로는 12,000년 전 플라이스토세 말기에 해당한다.,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와 같은 유사 인류가 석기를 사용한 것까지 구석기로 분류한다면, 250만년~260만 년 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석기(Paleolithic)라는 용어는 1865년 고고학자인 존 러벅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다. 이것은 그리스어: παλαιός 와 (palaios, old를 뜻한)+ 그리스어: λίθος (lithos, 돌)을 뜻하는 합성어이다.

구석기 시대는 전기 구석기, 중기 구석기, 후기 구석기로 구분되며, 시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리스 암흑기

그리스 암흑기(기원전 1200년경~ 기원전 800년경)는 고대 그리스 역사상의 한 시대인 바다 민족의 분파로 추정되는 도리아인의 침략으로 인해 미케네 문명이 멸망한 기원전 12세기부터 새로운 도시 국가들이 형성되는 기원전 8세기까지를 말한다.

고고학적 증거를 살펴보면 같은 시기에 동부 지중해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문명이 붕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케네 문명의 거대한 궁전이나 대다수의 도시들이 이때 파괴되어 버려졌다. 또 취락의 규모가 크게 작아졌고, 취락의 숫자도 줄어든 것으로 보아 이민족의 침략 외에도 기근으로 인한 인구 감소도 극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케네 문명이 붕괴할 무렵에는 히타이트 문명도 완전히 분열되었고, 트로이아에서 가자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도시가 파괴되었다. 이 시기에는 그리스에서 문자가 쓰이지 않았으며, 의상들은 허름해졌으며 그리스 도기의 장식도 단순해지고 도기들의 대다수가 기하학 무늬를 띄고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기원전 750년까지 해외의 문명국과 모든 접촉이 끊겨져서 문화 발전도 퇴보했다고 여기고 있지만, 에우보이아의 레프칸디 유적에서 나온 유물들을 보면 기원전 800년경부터 이 지역이 동방 지역, 특히 레반트 해안과 문화적ㆍ상업적으로 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그리스 도기의 장식이 크게 화려해졌음을 알수 있으며 그리스 문자 역시 다시 사용되고 시작했음을 알수 있다.

깔라신주

깔라신 주(태국어: กาฬสินธุ์)는 태국 북동부의 주(창왓)의 하나이다. 이웃한 주는 북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꼰나콘 주, 묵다한 주, 로이엣 주, 마하사라캄 주, 콘깬 주, 우돈타니 주이다.

낭만주의

낭만주의(浪漫主義, 영어: romanticism, 문화어: 랑만주의)는 서유럽에서 발생한 미술적, 문학적, 지적 사조(思潮)이다. 18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1800년~1850년 사이에 정점을 찍었다.

동고트족

동고트족(라틴어: Ostrogothi 또는 Austrogothi)은 동부 게르만족 중 하나인 고트족―다른 일파는 서고트족이다―의 일파(一派)로서, 로마 제국의 마지막 시기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민족이다. 이들은 타키투스 시대에 비스와 강 하류(下流)지방에 단일 부족 국가를 형성하고, 3세기까지 동남방으로 이동한 고트족 가운데 흑해 서북안(西北岸)에 정착한 게르만족의 일파이다. 4세기 후반 헤르만리크 밑에서 전성기를 이루고 370년경 동방으로부터 이동한 훈족의 지배하에 들어가지만, 아틸라의 죽음에 의하여 훈 제국이 와해되자 독립하여 457년 판노니아로 이주했다. 이어서 483년 테오도리쿠스 대왕 아래서 다키아, 모에시아로 옮기고, 488년 이탈리아에 들어가 전(全)반도를 정복, 동고트 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동고트 왕국은 552년 동로마에 의해 멸망당했다.

랑고바르드족

랑고바르드족 (라틴어: Langobardī, 이탈리아어: Longobardi 롱고바르디[*])또는 롬바르드족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기원한 게르만족의 하나로서, 1세기에는 수에비 족의 일부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도나우 강 연안에 살다가, 568년에 알보인왕의 지휘아래 당시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인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왕국을 세웠다. 그들이 세운 왕국은 774년 프랑크족에게 정복될 때까지 이탈리아를 지배했다.

무어인

무어인(Moor)이란 용어는 이슬람계인으로서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으며, 그들은 아랍계와 베르베르족의 후손들이다. 현재까지도 스페인의 이슬람계는 무어인을 닮은 흔적 있다.

바이킹 시대

바이킹 시대(영어: Viking Age)는 유럽사의 시기 중 하나이며(793년–1066년), 특히 게르만족의 철기 시대 이후 북유럽과 스칸디나비아의 역사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드인들이 교역, 약탈, 식민지화, 정복을 위해서 바다와 강을 건너 유럽을 탐험한 때이다. 이 당시 노르드인들은 그린란드, 뉴펀들랜드, 오늘날 페로 제도,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노르망디,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맨섬, 네덜란드, 독일, 우크라이나, 러시아, 터키, 이탈리아 등에 정착했다.

바이킹 탐험가들과 개척가들은 과거 많은 곳에서 잔혹한 약탈자로서의 모습을 보였다. 많은 역사적 사료들은 바이킹들의 다른 지역 침략이 기독교 선교 활동이 이들 부족들의 영토를 칩입한 것과, 남쪽에서 샤를마뉴와 그의 일족들이 벌인 색슨 전쟁에 대한 보복 또는 인구 과다, 불공정한 교역, 농지 부족으로 촉발된 것임을 암시한다.

바이킹 시대에 대한 정보는 바이킹들을 적으로 대한 이들이 기록한 것과 아이슬란드 사가 같은 2차 사료로 보충된 고고학적 1차 자료에서 온 것들이다.

반달족

반달족(Vandals)은 동부 게르만족의 일파로, 오늘날 폴란드 남부 지역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역사에서 처음 등장하며, 이후 유럽 여기저기로 이동하여 서기 5세기에는 스페인과 북아프리카에 성공적으로 왕국을 세웠다.

서고트인

서고트족(Visigothi, Wisigothi, Vesi, Visi, Wesi, Wisi)은 고트족의 중요한 두 분파 중의 하나로 동고트족과 함께 동부 게르만족의 일파이다. 동고트족과 서고트족은 로마 제국 후기 게르만 민족의 대 이동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서고트족은 알라리크의 지도아래 410년 로마를 침공해 함락시켰으며 갈리아와 히스파니아에 이르는 거대한 왕국을 세웠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서고트 왕국은 약 2세기 반에 걸쳐 서유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선사 시대

선사 시대(先史時代, prehistory)는 인류가 문자를 발명해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의 시대이다.

역사

역사(歷史, 문화어: 력사, 영어: history)는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지난 시대에 남긴 기록물, 이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 등을 가리킨다. 또 인간이 거쳐온 모습이나 인간이 행위로 일어난 사실을 말하는 단어로도 쓰인다. 또한 역사는 시간의 흐름으로써 어떤 사람이 겪은 일에서 중요한 일들 중 후대에게 쉽게 잊히지 않는 과거의 사실을 의미하며 명예와는 미래에서 잊히지 않고 이어 전해진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역사라는 말은 객관적 사실과 서정적 표현, 주관적 기술의 세 측면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는데, 레오폴트 폰 랑케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를 밝혀내는 것이 역사가의 사명이라고 하여 객관적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에 비해 에드워드 핼릿 카는 과거의 사실을 보는 역사가의 관점과 사회 변화에 따라 역사가 달리 쓰일 수 있다고 하였다. 역사 연구란 이야기(narrative)를 통해 연속된 사건들을 검증하고 분석하며 종종 인과 관계를 객관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역사학은 고고학, 사회학 등의 주변 학문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역사라는 개념은 또한 넓은 의미에서 사건이나 사물의 자취를 총칭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역사학자들은 과거를 연구하기 위하여 많은 역사적 자료를 탐색한다. 이 자료들은 1차 사료와 2차 사료로 구분되는데, 1차 사료는 어떤 사건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이 남긴 문서, 기록 등이다.

역사지진

역사지진(歴史地震, historical earthquake)은 역사 시대에 일어난 지진 중 지진계를 비롯한 현대 관측기기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일어났던 지진을 의미한다. 역사지진은 고문서나 재해기념비 등 고고학, 역사학적 유물로 남아 전해내려오는 기록으로 추정한다. 역사 시대 이전의 선사 시대의 지진과 같이 묶어서 고지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역사지진을 연구하는 역사학 및 고고학 분야를 지진고고학이라 부른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인 1885년부터 지진계를 비롯한 관측기기를 통한 근대적 지진관측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일본 지진학계에선 일반적으로 1884년 이전에 일어난 지진을 역사지진이라 부른다. 대한민국에선 한반도에서 1905년 최초로 지진계를 도입하여 관측을 시작하여, 이 이전 지진을 역사지진이라 통칭한다.

원자시대

원자시대(原子時代, Atomic Era, Atomic Age)란 최초의 원자폭탄 트리니티가 기폭된 1945년 1월 16일 이후의 시대를 말한다. 물론 그보다 앞선 1933년에 핵연쇄반응의 원리 자체는 이미 이론화되었고(리제 마이트너), 최초의 인공 핵연쇄반응 실험(시카고 파일 1)이 있었던 것은 1942년 12월이다. 하지만 트리니티 핵실험과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야말로 핵기술의 최초의 거대한 사용이었으며 그 기술이 인류의 심성에 사회정치적 변환을 일으켰기 때문에 원자폭탄들이 터진 1945년을 기준으로 삼는다.

원자력은 진보와 근대성의 상징이었고, 원자력 발전이나 핵의학처럼 직접적으로 인간의 복리에 도움이 되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핵전쟁, 냉전, 상호확증파괴, 핵확산, 원자력 사고의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핵기술의 평화적 이용을 군용 핵무기나 테러리스트의 사용에서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원자력 발전산업이 흥성하던 1973년, 미국 원자력 위원회는 21세기가 되면 1천 대의 핵반응로가 돌아가며 미국 전역의 모든 가정과 사업체에 전기를 공급할 것이라 장담했다. 하지만 핵기술이 핵무기 경쟁이나 노심융해와 같은 광범위한 사회적 문제도 야기함에 따라 이런 장밋빛 전망은 좌절되었다. 1973년 이후 전력수요가 떨어지고 건설비용은 상승하면서 핵반응로 건설명령은 급감했다. 많은 명령들이 취소되거나 이미 착공한 발전소들도 부분 완성한 채 확장이 중단되었다.1970년대 말이 되면 국제정세의 불안, 경제적 타산, 대중 사이에 널리 퍼진 혐오 등으로 인해 원자력 기술은 침체를 맞고, 1976년의 스리마일섬원자력발전소사고, 1986년의 체르노빌 참사로 치명적 타격을 받는다. 이 두 사고는 핵발전 산업에 수십 년 간 지속될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토리노 파피루스

토리노 파피루스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연대기로, 람세스 2세 시대 정도에 작성된 것이다. 이 문서는 토리노의 한 박물관에서 발견된 것으로, 이후 운송 도중의 실수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이 문서에는 300명이 넘는 파라오의 이름과 그들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문서 초기에는 신들의 연대기와 신화적인 파라오들의 기록이 나오며, 이후에는 역사 시대 파라오들의 이름이 나온다. 또한, 이 문서에서 몇몇 파라오들을 한데 묶은 경우가 종종 있는데, 마네토도 토리노 파피루스를 참고로 해서 기록을 남긴 것으로 보이며 마네토의 왕조 구분과 대체로 일치하지만, 완전히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토리노 파피루스는 다른 파라오 목록들과는 달리 재위 기간은 물론, 몇 개월 몇 일을 통치하였는지까지도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보존 상태가 매우 나빠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이 문서에만 언급된 파라오가 있는가 하면, 다른 문서에서는 의도적으로 삭제되거나, 단명한 군주, 힉소스인 군주들까지 기록되어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프랑크인

프랑크인(라틴어: Franci 프랑키[*]) 또는 (gens Francorum 겐스 프랑코룸[*])은 게르만 무리의 일파이며, 이 명칭은 3세기의 로마 사료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고, 로마 제국의 경계인 라인강 하류와 중류에 있는 게르만 부족들과도 관련이 있다. 시간이 흘러, 이 용어는 로마 제국 붕괴 시기에 로마화된 게르만족 왕조와도 관련이 있으며, 이들은 결국엔 루아르강과 라인강 사이에 영토 전역을 다스렸고, 로마 이후의 많은 왕국들과 게르만족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에는 서로마 제국의 옛 통치자들의 계승자로 가톨릭 교회의 공인을 받았다.프랑크인이라는 명칭이 3세기까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일부 본래의 프랑크인 부족들은 로마인들에게 병사들을 제공해주는 동맹이자 적들 모두로서, 자신들의 부족들의 명칭으로 오랜 기간 알려졌다. 로마와 이들의 동맹이 라인강 지역의 지배권을 상실할 때, 그 새로운 명칭이 등장했다. 프랑크인들은 로마의 영토를 함께 약탈할 때 처음으로 기록되었지만, 이 약탈의 시작은 색슨인/작센인들 그리고 수 세기간 밀접한 접촉을 가졌고, 로마의 영토로 이주하길 열망하던 변경 부족들이 프랑크인들의 변경 지역에서 프랑크인들을 공격한 것과 연관이 되어있었다.

라인강에 있는 로마 국경 지역내에 살던 프랑크인들은 로마 영토내에서 거주하는 것이 최초로 허용되면서 처음으로 출현한 잘리어 프랑크인/살리이족과 수 많은 시도 끝에 로마의 국경 도시 쾰른을 정복하고 라인강 서부 기슭을 차지한 리푸아리인/라인란트 프랑크인이었다. 이후, 지방 세력들 간의 분쟁의 시기인 450년대와 460년대에, 프랑크인 출신인 킬데리크 1세는 로마령 갈리아 (대략 오늘날 프랑스)에서 다양한 민족군들로 이뤄진 동맹군과 로마군을 지휘하던 몇몇 군 지휘관 중 한 명이었다. 킬데리크와 그의 아들 클로비스 1세는 루아르 세력과 관련된 프랑크인의 ‘왕위’를 두고 로마인 아이기디우스의 도전에 직면했다. (투르의 그레고리우스에 따르면, 아이기디우스는 킬데리크가 추방당한 8년 동안에 프랑크인의 왕위를 지녔다고 한다.) 알라리크 1세에게서 영감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이 새로운 왕위는 라인강 변경의 모든 프랑크족 계열의 왕국들에게 지배권을 행사했을 뿐이 아니라, 6세기에 갈리아 전역을 정복한 메로빙거 왕조의 시작을 상징한다. 800년에 서유럽의 새로운 황제로 여겨지던 카롤링거 왕조는 메로빙거 제국에 토대를 두었다.

중세 시대에서 프랑크인이라는 단어는 카롤링거 제국의 프랑크인들이 서유럽의 대부분의 지배자였기에, 서유럽인의 동의어로 사용되었으며, 프랑스 혁명 시기에 들어서야 막을 내린, 유럽의 앙시앵 레짐의 기초가 된 정치적 질서를 확립했다. 서유럽인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프랑크인들의 믿음을 공유했고 유럽 대륙 너머 레반트에서 일어난 십자군 전쟁의 동맹으로 활약했으며, 그곳에서 서유럽인들은 그들 스스로와 그들이 세운 공국들을 프랑크인, 프랑크인들의 것으로 나타냈다. 이 명칭은 많은 언어들에서 서유럽인들에 대한 명칭으로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졌다.프랑크인 계열 왕국들이 시작되면서 동부 지역의 프랑크인 및 게르만인 지역과 메로빙거 제국이 로마의 영토에 세운 서부 지역 사이는 정치적, 법적으로 분리되었다. 프랑크 왕국의 동부는 새로히 “신성 로마 제국”으로 여겨졌고, 근세 시기에 때로는 “독일”이라 불렸다. “프랑크인”들의 서유럽에서는 메로빙거나 “잘리어” 서프랑크 왕국이 로마령 갈리아에서 세워졌고 로망스어군으로 소통했으며, 프랑크인에서 직접적으로 전래된 명칭인 “프랑스”로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플라이스토세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는 약 258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의 지질 시대를 말한다. 홍적세(洪積世) 또는 갱신세(更新世)라고도 한다. '플라이스토세'라는 명칭은 그리스어: πλεῖστος pleistos[*](가장)와 그리스어: καινός kainos[*](새로운)에서 비롯되었다.

2009년 IUGS(International Union of Geological Science)는 플라이스토세의 시작 시기를 기존의 180만 년에서 258.8만 년으로 정정했다.

플라이스토세는 신생대 제4기에 속하며, 플리오세에서 이어진 시기이다. 지구 위에 널리 빙하가 발달하고 매머드 같은 코끼리류가 살았다. 플라이스토세가 끝나는 시기는 고고학에서 구석기 시대의 끝으로 본다.

할레

할레(독일어: Halle) 또는 할레 (잘레)(독일어: Halle (Saale)), 할레안데어잘레(독일어: Halle an der Saale)는 독일 동부 작센안할트주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 234,295(2007).

엘베 강의 지류인 잘레 강 연안에 위치한다. 라이프치히에서 서북쪽으로 40km 떨어져 있다. 독일에서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이 곳을 중심으로 청동기와 철기 문화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염이 풍부하여 소금을 얻기 쉬워 정착이 일렀다.

역사 시대 이후로는 9세기에 처음 문헌에 언급되었고, 10세기에 마그데부르크의 대주교 관할하에 들어갔다. 할로렌(Halloren)으로 불리는 소금 제조업자와 일반인들 사이에 대립이 있었으나, 마그데부르크 대주교 관할에서 벗어나 중세 시대에는 자유 한자 동맹 도시로 특권을 누렸다. 16세기에 비텐베르크에서 일어난 루터의 종교 개혁을 받아들였다. 그 후 1694년 할레 대학교가 개교하였고, 이 대학은 비텐베르크의 대학과 합병하여 현재 할레 비텐베르크 마르틴 루터 대학교로 이어져오고 있다.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 1685년 이 곳에서 태어나 할레는 헨델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홀로세

홀로세(Holocene)는 약 1만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지질 시대를 말한다. 충적세(沖積世) 또는 현세(現世)라고도 부른다. 지질 시대의 마지막 시대 구분이다. 플라이스토세 빙하가 물러나면서부터 시작된 시기로, 신생대 제4기의 2번째 시기이다.

마지막 빙기가 끝나는 약 1만년 전부터 가까운 미래도 포함하여 현재까지이다. 그 경계는 유럽의 대륙빙상의 소멸을 가지고 정의되었다. 이 시기가 시작된 이후 인류의 발전과 전파로 인하여 홀로세 절멸이 일어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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