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츠야

아마츠야(재위 기원전 796년경 ~ 781년경)는 분열 유다 왕국의 9대 왕으로 처음에는 옳은 일들을 많이 했으나 에돔을 무찌른 뒤에는 교만해져 우상 숭배를 하고 북왕국 이스라엘에 싸움을 걸었다가 화를 자초했다.

Amasias

왕위

예루살렘 출신의 어머니 여호아딴에게 태어나 25살에 왕위에 올랐다. 그는 하나님의 눈에 옳을 일들을 많이 해 왕권이 튼튼해지고 부왕 요아스 왕을 살해한 이들을 죽였다.

그리고 군사력 강화에도 힘을 기울여 유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온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을 집안별로 세워 천인대장들과 백인대장들의 지휘 아래 두었다. 그리고 20살 이상 된 사람들을 사열해 보니 모두 30만 명이나 되었는데 창과 큰 방패로 무장해 군대에 나갈 수 있는 정병이었다. 그리고 은 100탈렌트를 주고 이스라엘에서 용사 10만 명을 고용하기도 했다.

에돔 공격

어느 날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 에프라임 자손과 함께 하지 않는다 하여 에프라임 자손들을 돌려보내었다. 그 후 담력을 내어 공격해 소금 골짜기에서 세이르의 자손 1만 명을 쳐죽이고 유다의 자손이 또 1만 명을 붙잡아 바위 꼭대기로 끌고 가 내던졌다. 그리고 아마샤가 자기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돌려보낸 군사들이 사마리아에서 벳 호론에까지 유다의 성읍들을 공격해 주민 3000명을 죽이고 물건을 약탈했다.

우상 숭배와 북왕국과의 싸움

아마샤는 에돔인들을 무찌르고 오자 세이르 자손들의 신상을 가져와 자기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예배하며 향을 피웠다. 그러자 하나님이 크게 노해 예언자 한 사람을 보내 경고했으나 아마샤는 이를 무시했다.

아마샤는 사람들과 의논해 예후의 손자이자 여호아하스 왕의 아들 이스라엘 왕국의 왕 요아스에게 사람을 보내 싸움을 걸었고 그리하여 요아스가 올라와 유다 왕국의 벳 세메스에서 겨루었다. 유다군은 이스라엘군에게 크게 패배해 도망쳤고 요아스는 아마샤를 사로잡아 예루살렘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유다 왕궁의 보물들을 빼앗고 인질을 잡아 사마리아 성으로 데리고 갔다.

살해

아마샤는 여호아스 왕이 죽은 뒤 15년을 더 살았으나 예루살렘에서 모반이 일어났고 아마샤는 라키스로 도망쳤으나 모반자들이 거기까지 쫓아가 아마샤를 살해했다.

다윗가

다윗가(히브리어: מלכות בית דוד, Malkhut Beit David)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인 다윗을 시조로 하는 왕가이다.

르하브암

르하브암(재위 기원전 931년경-913년경)은 분열 유다 왕국의 첫 왕이다. 솔로몬 왕의 아들로 여호와를 저버리고 우상 숭배를 시작했다.

연합 이스라엘 왕국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솔로몬 왕이 죽자 르호보암이 분열 전 스켐으로 갔을 때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집트에서 돌아오고 북쪽의 10개 지파들이 반기를 들어 여로보암 1세를 새 왕으로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고 남쪽의 2지파는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을 왕으로 유다 왕국을 세워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르호보암은 18만 대군을 이끌고 맞서려 했으나 선지자 스마야의 경고로 그만 두었다. 그의 재위기 동안 유다 역시 큰 죄를 저질렀고 높은 언덕과 푸른 나무 아래마다 산당과 기념 기둥, 아세라 목상들을 세웠다. 제오년에는 이집트 임금 사삭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왔는데 병거 1200대와 기병 6만, 수없이 많은 리비아군과 수키군, 에티오피아군을 이끌고 올라왔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와 성전과 왕궁의 보물들을 모조리 가져가 버렸다.

메나쉐

메나쉐(재위 기원전 687년경-642년경)는 분열 유다 왕국의 14대 왕으로 전왕 히스키야와는 달리 처음에는 악한 짓들을 저질렀다. 공동번역성서와 가톨릭 성경의 표기는 므나쎄, 개신교 성경의 표기는 므낫세이다.

사울

사울(שאול המלך), (영어: Saul) (B.C1020년∼1010년)은 이스라엘 왕국의 첫 번째 왕이다.

아비얌

아비얌(재위 기원전 913년경-911년경)은 분열 유다 왕국의 2대 왕으로 북왕국 이스라엘과 자주 싸움을 벌였다.

기브아 출신 우리엘의 딸 미카야의 아들로 태어나 왕위에 올랐다. 그위 재위 기간 동안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1세와 전쟁을 벌여 아비암은 에프라임 전투에 능한 정예군 40만 명을 이끌고 싸우러 나갔고 이에 맞서 여로보암 1세는 80만 정예병을 이끌고 나갔다. 이때 아비얌이 에프라임 산악 지방의 츠마리임 산 위에서 사기를 올리려 연설을 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이미 복병을 유다군 뒤로 돌아가게 하였고 이스라엘군은 유다군 뒤에 복병을 숨겨 두고 정면 충돌했다. 유다군이 돌아보니 전투가 앞뒤에서 벌어져 여호와를 부르짖었고, 사제들이 쇠 나팔을 불자 유다군이 함성을 지르고 신이 아비암과 유다군을 도와 온 이스라엘을 쳤다. 결국 이스라엘군은 50만 명의 정예군을 잃고 도망치고 유다군이 승리했다. 아비암을 계속 추격해 이스라엘의 성읍들인 베텔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여사나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 에프론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을 점령했다.

여로보암을 생전에 이 전투의 패배를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고 아비암은 세력이 커졌다. 그는 아내 14명을 거느리고 아들 22명과 딸 16명을 두었다.

아사 (유다 왕국)

아사(재위 기원전 911년경-870년경)는 분열 유다 왕국의 3대 왕으로 그의 재위 기간 내내에도 역시 전왕 아비암 때처럼 전쟁 중이었으나 모두 승리했다. 그러나 말년에 벌인 일로 인해 벌을 받았다.

아자르야

아자르야(재위 기원전 791년경-739년경)은 분열 유다 왕국의 10대 왕으로 그도 다른 왕들처럼 처음에는 옳은 일을 했으나 점차 교만해져 결국 벌을 받았다.

아탈야

아달랴(재위 기원전 841년경-835년경)는 분열 유다 왕국의 7대 왕이자 전왕 아하시야의 어머니로 이스라엘 유일의 여왕이다. 구약 성서의 기록에서 아달랴는 자신의 아들 아하시야가 예후의 혁명으로 살해당한 것을 보고 유다 집안의 왕족들을 모두 죽여버렸으나 전왕 여호람의 딸이자 여호야다 사제의 아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숨겨주었다. 아달랴가 6년째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그들은 성전에 숨어 지냈다. 7년째 되는 해에 여호야다 사제가 용기를 내어 백인대장 여로함의 아들 아자르야, 아타야의 아들 마아세야, 지크리의 아들 엘리사팟과 계약을 체결했고 유다 땅을 돌아다니며 유다의 모든 성읍에서 레위인들과 이스라엘 가문의 우두머리들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오게 했다. 그리고 여호야다 사제는 백인 대장들로 하여금 궁궐 주변을 지키게 하고 숨겨둔 왕족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게 했다. 이를 본 아달랴는 반역이라고 소리쳤으나 여호야다 사제의 명령으로 백인대장들에 의해 끌려가 '말 문' 입구에서 살해당했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역대 왕들 가운데 유일한 여왕이다.

아달랴는 북 이스라엘 왕 아합과 이세벨의 딸로서 남 유다 왕국의 5대 왕이었던 여호람과 결혼하여 왕비가 되었다.

이렇듯 분단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서로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왕가끼리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하즈

아하스(재위 기원전 736년경-716년경)는 분열 유다 왕국의 12대 왕으로 자신의 아버지와는 달리 옳은 일들을 하지 않았다.

아하즈야 (유다 왕국)

아하즈야는 분열 유다 왕국의 6대 왕으로 여호람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러나 우상 숭배를 하여 큰 죄를 짓다가 예후의 혁명 때 암살당했다. 그는 또한 여호아하스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었다.예루살렘 주민들은 여호람의 막내아들 아하즈야를 임금으로 내세웠는데 아하즈야의 형들은 아랍인들과 함께 쳐들어온 약탈대에게 학살당해 아들이 아하시야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하즈야는 42세에 임금이 되었는데 어머니가 고문관이 되어 악을 저지르게 하였고 신의 뜻에 거슬리는 짓을 많이 하여 그도 아합 집안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이스라엘 임금 요람과 함께 아람 임금 하자엘에 맞서 전에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전사했던 라못 길앗으로 가서 아람인들과 전투를 치렀다. 이때 요람이 부상을 당하자 이스르엘 성으로 들어갔고 그도 요람을 보러 이스르엘 성으로 갔다.

그러는 사이 예후 장군이 혁명을 일으켜 이스르엘 성으로 진군했고 요람과 아하시야는 이를 구원군이 오는 것으로 오인해 마차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가 예후의 군사들이 쏜 화살에 맞아 암살당했다.

예호람

예호람(재위 기원전 848년경-841년경)은 분열 유다 왕국의 5대 왕으로 아버지 여호사밧과는 다르게 큰 죄악을 저질렀다.

예호람은 전왕 여호사밧의 아들로 여러 동생들이 있었는데 아자르야, 여히엘, 즈카르야, 미카엘, 스파트야 등 이들 모두 여호사밧의 아들이었다.

왕위에 오른 여호람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이들 동생들을 모두 쳐 죽이고 이스라엘의 대신들도 죽였다. 그리고 여호람은 아합 집안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여 큰 악한 짓들을 많이 저질렀다.

그의 시대에 에돔이 유다의 지배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켜 여호람은 모든 병거대를 이끌고 차이르로 갔으나 오히려 에돔군에게 크게 패해 도망쳤다. 또한 그의 시기에 리브나도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선지자 엘리야가 그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고 곧 블레셋 인들과 에티오피아인들 곁에 살던 아라비아인들이 쳐들어와 왕궁의 모든 재산과 임금의 아들들과 여자들을 모두 데려갔고 남은 것을 막내 아들 여호아하스뿐이었다.

이 일어 예호람은 불치병에 걸쳐 2년 뒤 창자가 빠져 고통 속에 죽었다.

예호샤팟

예호샤팟(재위 기원전 870년경-848년경)은 분열 유다 왕국의 4대 왕으로 신을 잘 숭배하고 옳은 일을 해 히스기야 다음으로 유다에서 위대한 왕으로 꼽힌다.

예호아하즈 (유다 왕국)

예호아하즈 ([Jehoahaz]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붙드셨다', 재위는 기원 전 609년경-609년경)의 통치 기간은 '3개월' 가량이다. 이스라엘 분열왕국 시대 유다 왕국 제 17대 왕으로 자기 아버지 요시야와는 달리 악한 짓을 저질렀다. 여호아하스의 다른 이름은 '살룸'이다(대상3:15 ; 렘22:10-12).

선왕 요시야와 리브나 출신 예레미야의 딸 하무탈의 아들로 23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결국 재위 3개월만에 이집트의 왕 느코가 쳐들어와 하맛 지방의 리블라에서 그를 잡아 가두어 그의 형제 여호야김을 새 왕으로 세우고 끌고 갔다. 그리고 그 유다에 은 100탈렌트와 금 1탈렌트를 배상금으로 바치게 하였다.

예호야킨

예호아킨 (히브리어: יְכָנְיָה‎‎ Yəḵānəyāh [jəxɔnˈjɔː], 그리스어: Ιεχονιας; 라틴어: Iechonias, Jechonias), 혹은 고니야, 여호아긴 (히브리어: יְהֹויָכִין‎‎ [jəhoːjɔːxiːn]; 라틴어: Ioachin, Joachin),는 여호아김과 예루살렘 출신 엘나탄의 딸 느후스타의 아들이자 유다 왕국의 19대 왕으로, 바벨론 왕에 의해 폐위당하고 포로로 끌려간 왕이다. 여호아긴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히브리어 성경에서 발견된다. 그의 존재에 대한 기록은 이라크의 예호아킨의 식량배분 석판을 통해 증명되었다. 이 석판은 바벨론의 이슈타르의 문 근처에서 발견된 것으로, 기원전 592년에 설형문자로 기록된 것인데, 그 석판은 예호아킨("Ia-'-ú-kinu")과 그의 다섯 아들을 바벨론에서 식량배분을 받는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바벨론측의 기록과 히브리어 성경기록을 비교하여 그의 포로생활의 길이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선왕인 여호아김때 바벨론이 유다 왕국을 침략해왔는데, 597년의 예루살렘 공성전 도중 여호아김이 죽고 그의 뒤를 이어 18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재위 3달 만에 예루살렘은 결국 바빌론 제국에게 함락당했고 당시 바벨론의 왕이었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예루살렘의 기물들을 약탈하고 그를 폐위시켜 백성들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고 갔으며 그의 삼촌이었던 치드키야를 유다 왕국의 다음 왕으로 세웠다.

예호야킴

예호야킴(재위 기원전 609년경-598년경)은 분열 유다 왕국의 18대 왕으로 그도 역시 악한 짓을 저질렀다. 본명은 엘야킴이다.

전왕 요시야와 루마 출신 프다야의 딸 즈비다의 아들로 본명은 '엘야킴' 이었으나 이집트의 왕 느코가 쳐들어와 형제이자 왕이었던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엘야킴을 왕으로 세워 이름을 '예호야킴' 이라 바꿨다. 그리고 이집트에게 배상금을 물었다.

25세에 왕위에 오른 예호야킴은 다른 왕들과 다름 없이 악한 짓들을 저질렀다. 그러나 바빌론 제국의 왕 네부카드레자르 2세가 쳐들어와 그를 끌고 가 3년 동안 신하로 두었다.

그 후 다시 돌아와 바빌론에 반역을 하였으나 칼데아와 아람과 모압, 암몬 등의 약탈대가 쳐들어왔다.

요아스 (유다 왕국)

요아스(재위 기원전 835년경-796년경)는 분열 유다 왕국의 8대 왕으로 처음에는 신의 뜻에 맞는 일을 했으나 후에는 변절하여 악한 일을 저지르다가 죽었다.

브에르 세바 출신의 어머니 치브야의 아들로 태어나 7살에 왕이 되었다. 처음에 요아스는 여호야다 사제가 살아있는 동안 내내 옳은 일을 했다. 한때는 요아스와 여호야다가 성금으로 돈을 모아 성전 보수를 맡은 이들에게 주고 석수들과 목수들을 고용해 성전을 고치게 했다.

성전 복구가 끝난 뒤 남은 돈은 그것으로 집을 위한 기물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 내내 신에게 번제물을 바쳤다.

그러나 여호야다 사제가 130살로 죽자 유다의 대신들의 말을 듣게 되었고 신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수많은 예언자들이 그에게 경고를 하였으나 말을 듣지 않았고 신의 영에 사로잡혀 경고하던 여호야다의 아들 선지자 스갸라를 살해했다.

이 해가 끝날 무렵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러 올라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들어와 백성들 가운데 관리들을 모두 죽이고 전리품들을 가져갔으며, 요아스는 큰 부상을 입었다. 결국에는 암몬 출신 여자 시므앗의 아들 자밧과 모압 여자 시므릿의 아들 여호자밧이 일으킨 모반으로 밀로 궁의 침상에서 살해당했다.

요탐

요담(재위 기원전 740년경-736년경)은 분열 유다 왕국의 11대 왕으로 다른 왕과는 달리 하나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만 한 왕이었다.

차독의 딸 여루사의 아들로 자기 아버지 웃시야가 하는 그대로 하나님을 섬겼으나 아버지와는 달리 성전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백성들은 여전히 타락해 있었다.

요담은 성전에 '윗대문'을 세웠고 오펠의 성벽 위에 많은 것을 지었으며 유다의 산악 지방에도 성읍들을 세우고 산림 지대에 성채들과 탑들을 세웠다. 또한 암몬군과도 싸워 승리해 암몬에게서 은 100탈렌트와 밀 10000코르, 보리 10000코르를 바쳤다. 암몬은 두 번째 해에도 세 번째 해에도 같은 양을 가져왔다.

이렇게 요담은 하나님을 굳건하게 섬겨 강해졌다.

유다 왕국

유다 왕국(기원전 931년경~기원전 587년경)은 연합 이스라엘 왕국이 기원전 931년 무렵 분열되어 12개 지파 가운데 두 지파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지지로 세워진 왕국이다.

왕국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유다 지파의 이름을 따 유다 왕국이라 불렀고, 344년 동안 20명의 임금이 재위하였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히스기야, 여호사밧, 아사, 요시야, 요담 등 몇몇 외에는 유대교 신앙 외에 다른 신앙에 호의적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심지이자 수도는 예루살렘이었다.

기원전 587년 무렵 바빌로니아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유다 왕국의 군주

아래는 유다 왕국의 역대 군주 목록이다. 르호보암 때에 연합 이스라엘 왕국이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으로 각각 분열되었으며, 여기서는 연합 왕국 시절부터 유다 왕국으로 분리된 이후까지의 역대 왕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왕
왕조시대 이전
통일 이스라엘 왕국
이스라엘 북왕국
유다 남왕국
하스모니안 왕조
헤로데 왕조
제2성전시대 이후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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