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아

아나톨리아(Anatolia, 터키어: Anadolu, 그리스어: Aνατολή, 문화어: 아나또리아)는 서남아시아의 한 지역으로, 오늘날 터키 영토에 해당하는 반도(半島)를 말한다. 아나톨리아는 이전에는 소아시아(Asia Minor, 그리스어: Μικρά Ασία)라고 불렸다. 한글성서에서는 소아시아를 아시아라고 번역했다. 이 지방의 북쪽에는 흑해, 북동쪽에는 캅카스, 남동쪽에는 이란 고원, 남쪽에는 지중해, 서쪽에는 에게 해가 있다. 아나톨리아는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문명의 터전이었다. 아카드, 아시리아, 히타이트, 아르메니아, 로마, 셀주크 투르크, 오스만 제국은 아나톨리아에 있었던 중요한 나라들이었다. 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어 수많은 문화적 교류와 충돌의 장(場)이 된 곳이기도 하다.현재 터키령의 아시아흑해와 에게 해, 동지중해로 둘러싸여 서쪽으로 돌출한 대반도이다. 지리상으로 아나톨리아 반도의 삼면은 흑해, 에게 해, 지중해와 접하고 있고, 지역의 대부분은 넓은 고원 지대이다. 아나톨리아의 북쪽과 동쪽에는 산이 더 험하다. 흑해와 에게 해가 이어지는 보스포루스 해협다르다넬스 해협 사이에 마르마라 해가 있다. 마르마라 해 북쪽은 유럽 대륙이며, 보스포루스는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던 지점이다.

이 지역의 유구한 역사 덕분에 인구 역시 매우 다양하다. 아나톨리아 남동부에 주요 무슬림 소수 집단을 이루고 있는 쿠르드족이나 아나톨리아 남쪽에 주로 사는 아랍인 외에도 아나톨리아 각지에 알바니아인, 보스니아인, 유대인, 조지아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이 소수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다.

아나톨리아는 그리스어 Anatole <태양이 솟는 곳>에서 유래되었다.

Turkey topo
아나톨리아의 지형도
Map Anatolia ancient regions-en
고대 아나톨리아의 지방들

지도

아시아의 주요 지리

이름

'아나톨리아'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아나톨레'(Aνατολή)에서 나온 말로, "동쪽" 혹은 문자 그대로 "해돋이"를 뜻하는 말이었다.[1] 이 말이 지칭하는 정확한 범위는 시대에 따라 달랐으나, 원래 소아시아 해안의 이오니아 식민지만 일컫는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잔티움 제국 시대에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에는 아나톨리콘 테마가 있었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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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리아 지방에 사람이 거주하여 살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약 9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 아나톨리아 지방의 꼰야 시 근처에 위치한 도시 차탈휘위크의 발굴로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초기 도시 취락이 발달하였음이 드러났다. 약 9000년 전에 돌연히 등장한 차탈휘위크인들은 선사시대 초기에 해당하는 농경 정착민으로 당시 그들은 가축을 사육하는 동시에 차탈휘위크 일대의 풍요로운 늪지대에서 수렵과 채집을 병행하였으며 기원전 약 6000년 경 이후에는 흑요석을 가공하여 광역적인 판매망을 형성하였다. 또한 그들은 공동체를 형성하였는데 100년 이상 된 가옥을 매몰하고 그 위에 새로운 집을 짓고 지붕으로 출입하는 방식의 주택과 취락을 건설하였다.

아나톨리아 지방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양탄자를 짜고, 토기 및 공예품을 제조하는 기술 뿐 아니라, 물자 운반과 관련된 표시물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인근의 발전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고고학계에서는 추측하고 있다. 기원전 약 3000년을 전후로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에게해와 그리스 북부 지역을 거쳐 발칸반도에 이르기까지 이주해 갔으며, 청동기시대 (기원전 약 2000년)을 전후로 도시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아마 히타이트 왕국이 융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철기 전기시대 (기원전 약 1200년 경)에 이르러 히타이트 문명의 도시들은 북쪽에서 들어온 다른 부족들에 의해 정복되거나 파괴되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으며 기원전 10세기 이후에는 고대 그리스의 동북부 지역의 프리기아소아시아의 패권을 잡은 것으로 여겨지며, 기원전 7~8세기부터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이 소아시아의 에게해 연안에 숱한 식민 도시를 건설함으로써 고대 그리스 문명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페르시아 제국은 소아시아 내륙으로부터 세력을 확장하여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패권을 다투게 된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나톨리아 지방을 통하여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를 정복하게 된다. 이후 헬레니즘 세계에서 편입되어, 아탈로스 왕조 또는 셀레우코스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기원전 1세기 경부터 로마의 정복 활동이 시작되었으며, 아나톨리아 대부분은 로마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게 된다. 동서 로마 분열 이후 아나톨리아는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1071년만지케르트 전투 이후에 투르크족이슬람 문화가 점점 유입되어, 점차 투르크화가 진행되게 된다. 1299년 쇠위트에서 건국된 오스만 제국이 건국되었다.

1923년 오스만 제국이 멸망되었으며,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그리스터키 간에 맺어진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에 따라, 아나톨리아에 살던 그리스인들이 추방되게 되었다.

각주

  1. “Henry George Liddell, Robert Scott, A Greek-English Lexicon”.
갈라티아

고대 갈라디아는 현재 터키의 중앙 아나톨리아 고지대 지역이다. 갈라티아는 고대 소아시아의 영역으로 트라키아에서 이주해 온 갈리아(Gauls)족의 이름을 따라서 명명되었다. 그들은 지금의 터키 중부 고원지대에 정착하고 기원전 3세기에는 그 지배 계급이 되었다. 그곳은 동쪽의 갈리아라 불리어 왔으며 로마 작가들은 그 주민을 '갈리'라 불렀다.

동남아나톨리아 지역

동남아나톨리아 지역(터키어: Güneydoğu Anadolu Bölgesi)은 터키 남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면적은 76,509km2, 인구는 7,958,473명(2012년 기준)이다. 서쪽으로는 지중해 지역, 북쪽으로는 동아나톨리아 지역과 접하며 남쪽으로는 시리아, 남동쪽으로는 이라크와 국경을 접한다.

동아나톨리아 지역

동아나톨리아 지역(터키어: Doğu Anadolu Bölgesi)은 터키 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면적은 146,330km2, 인구는 5,775,225명(2010년 기준)이다. 터키 전체 면적의 21%를 차지한다.

아나톨리아 동부 지역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흑해 지역, 서쪽으로는 중앙아나톨리아 지역과 지중해 지역, 남쪽으로는 동남아나톨리아 지역과 이라크, 동쪽으로는 이란과 아제르바이잔(나히체반 공화국), 아르메니아와 접한다. 터키에서 평균 고도가 가장 높고 면적이 가장 넓은 지역이지만 터키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지역이기도 하다.

리디아

리디아 (아시리아어 : 루두, 그리스어: Λυδία)는 서부 아나톨리아(소아시아) 역사상의 한 지방으로 터키의 현대 이즈미르 주, 마니사 주에 해당한다.

그 전통적인 수도는 사르디스였지만 리디아 왕국은 한때 서 아나톨리아 전체를 확보하기도 하였다. 리디아는 후에 로마 속주의 이름이었고 리디아에서는 주화가 기원전 660년경에 발명되었다.

역사적인 리디아의 경계는 수세기 동안 변하였다. 그것은 미시아, 카리아, 프리기아와 해안의 이오니아와 경계하였다.

그 후 알리아테스와 크로이소스 왕의 군사력으로 리디아는 제국으로 팽창하였는데 그 수도는 사르디스가 되었다. 사르디스는 리키아를 제외한 소아시아의 할리스 강 서쪽 모두를 통제하였다.

리디아는 원래의 크기로 결코 돌아가지 않았다. 페르시아 제국의 정복 후 매산더는 그 남쪽 경계로 여겨졌으며, 로마 치하에서는 리디아는 프리기아와 에게해 연안의 미시아와 카리아 사이의 나라를 구성하였다.

리디아의 언어는 인도 유럽어족으로 루위어와 히타이트어와 관련되어있다.

스카만데르

스카만데르(Σκάμανδρος, Skamandoros)는 그리스 신화의 신이다.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아이로, 소아시아의 트로아스 지방을 흐르는 스카만드로스 강의 하신이다. 호메로스에 의하면 신들은 크산토스라고 불러, 인간은 스카만데르라고 부른다고 여겨져 트로이의 사람들은 스카만데르를 깊게 신앙했다고 한다.

스카만데르는 님프 이다이아와의 사이에 테우크로스와, 딸 칼리크로, 스트류모, 그라우키아가 있다. 태우크로스는 다르다노스 이전에 트로아스 지방을 지배했다고 여겨져 칼리크로는 그 자손인 트로이 왕 트로스의 아내, 또 스트류모도 트로이 왕 라오메돈의 아내가 되었다.

트로이아 전쟁에서는 아킬레우스가 스카만데르 강에서 트로이군을 살륙했을 때, 스카만데르는 화내 파이오니아의 무장 아스테로파이오스에 용기를 주고 아킬레우스를 토벌하게 하려고 했지만, 반대로 아킬레우스는 아스테로파이오스를 토벌해, 한층 더 파이오니아세를 살륙했다. 이 때문에 스카만데르는 사람의 모습이 되어 나타나 강이 시체로 넘치고 있는 것을 비난해, 강의 밖에서 싸우도록 말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듣지 않았기 때문에, 홍수를 일으키고 아킬레우스스를 흘러가게 하고, 트로이의 군사에게는 물로 가려 보호했다. 아킬레우스는 물의 기세에 견디지 못하고 신들에 도움을 요구해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아킬레우스를 격려했다. 이것에 의해서 아킬레우스는 강으로부터 빠져 나가 평야로 향했지만, 이 홍수로 평야는 침수가 되어, 시체가 떠 감돌았다고 한다. 아킬레우스에게 차일 것 같게 된 스카만데르는 시모에이스에 조력을 요구했지만, 헤라는 헤파이스토스에 명해 격렬한 대화재를 일으키게 했다. 이것에 의해서 평야의 물은 말라, 시체가 불타 한층 더 강의 물이 익혀 끓어올랐으므로, 스카만데르는 참지 못하고 항복했다고 한다.

아시아

아시아(영어: Asia, 음역: 亞細亞 아세아) 또는 아주(亞洲)는 지구에서 가장 넓고 인구가 많은 대륙으로, 면적은 44,579,000km²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수에즈 운하를 경계로 만난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는 다르다넬스 해협, 마르마라해, 보스포루스 해협, 흑해, 코카서스, 카스피해, 우랄강 (혹은 엠바강), 그리고 우랄산맥과 노바야제믈랴 제도까지를 경계로 한다. 세계 인구 전체의 60% 정도가 아시아에 거주한다.

아시아의 지역은 대륙과 인도양 및 태평양의 인접 군도를 포함한다.

아시아 (신화)

아시아 또는 클리메네는 그리스 신화에서 오케아노스와 테튀스의 딸로 오케아니데스의 일원이다. 티탄족인 이아페토스의 배우자가 되어 아틀라스, 프로메테우스, 에피메테우스, 메노이티오스 등 4명의 아들을 낳았다고 전한다.

헤시오도스는 《신통기》에서 이 여신의 이름을 클리메네 라고 하고 있으나, 아폴로도로스와 다른 그리스 문헌에는 아시아 라고 한다. 헤시오도스 이후의 문헌에서 이 여신의 이름이 클리메네 에서 아시아로 바뀐 것은 또 다른 오케아니스인 파에톤의 어머니 클리메네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아시아 대륙의 이름이 프로메테우스의 아내 아시아 에서 따왔다고 전하고 있으나, 이는 프로메테우스의 어머니인 이 여신 아시아 와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문헌에서 프로메테우스의 아내는 헤시오네라고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아이올리스

아이올리스(Αιολίς, Aeolis) 또는 아이올리아(Αιολία) 는 소아시아의 서부와 북서부의 해안 지역과 약간의 섬(특히 레스보스 섬)으로 구성되는 지역이다. 그곳에는 그리스 도시국가 아이올리스가 있었다. 아이올리스는 미시아(Mysia)의 남부를 포함하며 북부는 뮈시아, 남부는 이오니아(Ionia), 동부는 리디아(Lydia)와 경계하였다.

아카이아인

아키이아인(고대 그리스어: Ἀχαιοί, Achaioi)은 기원전 2000년때 테살리아 방면에서 남하하여 펠로폰네소스 반도 일대에 정착했다는 고대 그리스의 집단이다. 후에 그 일부는 이오니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앙카라

앙카라(터키어: Ankara, 문화어: 앙까라)는 터키의 수도이다. 이스탄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앙카라 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인구는 4,587,558명이고(2014년 통계), 앙카라 주의 인구는 5,150,072명(2015년 통계)이다.

앙카라는 터키의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정치적 중심지로, 1923년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터키 공화국이 세워지자, 이스탄불을 대신해 수도로 지정됐다. 앙카라는 공무원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이지만, 아나톨리아 지역의 상공업의 중심지이며, 도로와 철도 교통의 중심지다.

앙카라에는 중동전문대학(Hacettepe Üniversitesi)와 앙카라대학(Ankara Üniversitesi)이 있다. 또 국립도서관, 고고학박물관, 민속학박물관과 국립극장, 대통령 관현악단이 앙카라에 있다.

앙카라가 수도가 된 이후의 개발로 옛 도심지였던 울루스(Ulus)와 신 개발지대인 예니세히르(Yenisehir)로 구분된다. 울루스는 로마·비잔틴·오스만 양식의 옛 건물과 좁은 도로로 대표되는 데 반해 예니세히르에는 넓은 도로, 호텔, 극장과 아파트 건물이 들어차 더 현대도시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정부 청사와 외국 공관도 예니세히르에 소재해 있다.

오스만 제국

오스만 제국(오스만 터키어: دَوْلَتِ عَلِیَّهِ عُثمَانِیَّه 데블레티 알리예이 오스마니예, 터키어: Osmanlı İmparatorluğu 오스만르 임파라토르루우[*])은 오스만 가문을 왕가로 하여, 현재 터키 최대의 도시인 이스탄불에 도읍하여 서쪽의 모로코부터 동쪽의 아제르바이잔에 이르러 북쪽의 우크라이나에서 남쪽의 예멘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제국이다. 터키 제국, 오스만 튀르크 또는 단순히 터키라고도 불렸다.

아나톨리아(소아시아)의 한구석에서 나온 소 군후국으로부터 발전한 이슬람 왕조인 오스만 왕조는 이윽고 동로마 제국 등 남동유럽의 기독교 제국, 맘루크 왕조를 포함한 서아시아·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제국을 동시에 정복하면서 지중해 세계의 과반을 차지한 세계 제국인 오스만 제국으로 발전하였으나, 18세기 이후 쇠퇴하여 그 영토는 다른 나라에 점령되거나 독립하여 20세기 초반에 마침내 마지막에 남은 영토 아나톨리아로부터 새롭게 건국되어 나온 국민 국가인 터키 공화국으로 교체되었다. 이 당시 식민지 지역의 종교는 이슬람교에 인해 억눌리기도 했다.

이오니아

이오니아(그리스어: Ιωνία)는 에게 해와 면한 아나톨리아(현재의 터키의 아시아 부분)의 서남부를 이르는 고대의 지명이다. 현재 터키의 이즈미르가 가장 가까운데 역사적으로 이 도시의 그리스식 이름은 스미르나였다. 이오니아 연맹의 최북단 영토이기도 했다.

통일 국가가 아니었던 이오니아는 이오니아 부족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그들은 고대에 에게 해의 연안과 섬을 주로 점유하였다. 이오니아는 동부 그리스어의 사용과 그리스 전통으로 특징지어진다.

이오니아는 포카이아의 헤르무스 강 어귀(현재 게디즈)에서 매안더 강의 어귀 근처의 남쪽 밀레토스에 이르는 좁은 해안지대와 키오스와 사모스 섬으로 구성된다. 그것은 북쪽으로는 아이올리아, 동쪽으로는 뤼디아, 남쪽으로는 카리아와 경계한다. 이들 도시들은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의 경계 지역이었다.

그리스 전통에 따르면 이오니아의 도시들은 에게 해 맞은 편 도시들의 식민지로 건설되었다. 식민지는 아테네의 마지막 왕 코드로스의 아들인 넬레우스와 안드로크루스가 이끌었다. 이오니아인 이동은 트로이아 전쟁 후 140년이 지난 후이며 헤라클레스 가문이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돌아온 지 60년이 지난 후였다.

중앙아나톨리아 지역

중앙아나톨리아 지역(터키어: İç Anadolu Bölgesi)은 터키에서 인구 조사, 통계 목적으로 사용되는 7개 지역 가운데 하나로 면적은 151,000km2이며 터키 전체 면적의 21%를 차지한다. 북쪽으로는 흑해 지역, 동쪽으로는 동아나톨리아 지역, 남쪽으로는 지중해 지역, 서쪽으로는 에게해 지역, 북서쪽으로는 마르마라 지역과 접한다.

킬리키아

킬리키아(그리스어: Κιλικία, 아르메니아어: Կիլիկիա) 또는 기뤼시아는 소아시아의 남동쪽 해안, 키프로스 북쪽의 해안지역을 말하는 고대의 지명이다.

북쪽과 서쪽은 타우루스 산맥이 아나톨리아의 고원지대와 경계를 이루고, 동쪽으로 안티타우루스 산맥이 있다. 남쪽으로는 지중해와 만나는데 고대에는 소아시아와 시리아를 잇는 유일한 통로, "킬리키아 문" 이 이곳에 있었다. 히타이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특히 키루스 2세의 정복 당시 도움을 주어서 키루스로부터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킬리키아의 문 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수스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알렉산드로스의 사후 잠시 프톨레마이우스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곧 셀레우코스 왕조로 넘어갔고 기원전 67년 폼페이우스의 동방원정때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었다. 이후로 로마 제국시대에 몇번 속주로 재조정하였다가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로 승계되었다.

7세기 이슬람교도의 정복전쟁때 이슬람에게 복속되었다가 965년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니케포루스 포카스가 다시 복속시켰으며 1080년 아르메니아인들이 킬리키아의 아르메니아 왕국을 세웠다. 1265년 이집트 맘루크 왕조에 떨어졌으며 1515년에는 오스만 제국에게 정복되었다. 현재는 터키의 영토이다.

터키

터키 공화국(터키어: Türkiye Cumhuriyeti 튀르키예 줌후리예티[*]) 또는 단순히 터키(터키어: Türkiye 튀르키예[*], 영어: Turkey, 문화어: 뛰르끼예)는 서남아시아의 아나톨리아와 유럽 남동부 발칸 반도의 동트라키아에 걸친 나라이다. 수도는 앙카라이며, 공용어는 터키어, 국교를 명시하지는 않고 있으나 국민의 절대 다수가 이슬람교를 신봉한다.

사실상 이슬람교가 국교나 마찬가지다.

터키 독립 전쟁

터키 독립 전쟁(터키어: Kurtuluş Savaşı 쿠르툴루쉬 사와시으[*], 1919년 5월 19일 ~ 1923년 10월 29일)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여 연합국이 제국을 분리하려 하는데 반발한 터키 민족주의자들이 일으킨 정치 및 군사적 저항이다. 아나톨리아에서 터키의 민족 운동은 새로운 터키 대국민의회의 창설로 절정에 이르렀는데, 대국민의회는 무스타파 케말의 지도하에 자국의 자원을 성공적으로 동원하였다. 그리스-터키 전쟁, 터키-아르메니아 전쟁, 프랑스-터키 전쟁 이후 터키 혁명주의자들은 1923년 7월에 연합국이 세브르 조약을 폐기하고 새로이 협상하여 로잔 조약을 도출하게끔 하여, 1923년 10월에 아나톨리아와 동트라키아 지방은 터키 공화국의 영토로 보전할 수 있었다. 터키 민족 운동이 성립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밀레트 체제가 무너지고, 아타튀르크의 개혁으로 터키에 근대적이고 세속화된 국민 국가가 들어섰다.

폰토스

폰토스(그리스어: Πόντος)는 흑해 연안 아나톨리아 지방 북동부에 있던 옛 왕국의 이름이다. 오늘날 터키의 영토에 위치한다.

폰투스는 원래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 아나톨리아 북동부 지역을 부르는 지명이었으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이후 왕국의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기원전 30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이후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중 하나인 미트리다테스 1세가 왕국을 세웠고 이후 기원전 64년 로마에 의해 멸망할때까지 독립적인 왕국이었다.

원래 헬레니즘계열의 왕국이었으나 실제통치 제도는 페르시아적인 색채가 강했다. 기원전 3세기와 기원전 2세기에 폰투스는 그 세력을 점점 확장하였고 마지막 왕인 미트리다테스 6세의 치세때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미트리다테스 6세의 팽창정책은 로마 공화정과 대립했고 세차례의 전쟁을 거쳐 기원전 64년에 폼페이우스에게 완전히 정복당했고 폰투스 왕국은 사실상 멸망하고 로마 제국의 영토로 합병되었다.

이후 비잔티움 제국 시대에도 자치 지역으로 명목을 유지했고 나중에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제 1차 세계 대전 중 폰토스의 그리스인들을 중심으로 폰토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증폭되어 폰토스 공화국의 건국 코앞까지 가게 되지만, 그리스와 협상국의 무관심 내지 반대로 인해 1923년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 협정이 체결되면서 폰토스의 그리스인들은 그리스로 이주하게 되었다.

프리기아

고대의 프리기아(그리스어: Φρυγία, Phrygia)는 아나톨리아의 중서부에 있었던 왕국이다. 프리기아인들은 초기 역사에 브루게스(브리게스)라는 이름으로 마케도니아 지방에 살았다. 그들은 그리스어를 민족어로 채용하기 전에 프루게스로 진화하였다. 여러 민족들이 그곳에서 비 그리스어계 또는 그리스어 이전의 인도 유럽어에서 나온 발칸어를 사용하거나 초기의 그리스어를 사용하였다.

트로이 번영 시대에 브루게스의 일부가 트로이의 보호 아래 트로이 연맹 아나톨리아로 이동하였다. 트로이어는 사멸하여 결과적으로 프리기아어와의 정확한 관계와 프리기아 사회와의 친화도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비슷하게 이동의 연대와 프리기아와 히타이트의 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기원전 1200년에 히타이트 제국이 끝났다. 프리기아는 현재의 앙카라가 있는 할리스 강이 있는 곳에 위치하였고, 히타이트 소속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나 히타이트 권력의 중심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프리기아 국가는 기원전 8세기에 고르디움을 수도로 부상하였다. 이 시기 동안 프리기아인은 동쪽으로 팽창하여 후르리인의 후손이며 이전 히타이트의 경쟁 상대였던 우라르투와 부딪혔다.

기원전 690년 한때 프리기아 왕국은 이란의 킴메리아 침입자로 넘쳐났고 그 후 이웃 리디아에 의해 잠시 점령되었다. 그것이 키루스의 페르시아 제국으로 성공적으로 넘어가기 전에 알렉산더와 그의 계승자의 제국은 페르가몬의 왕에 의해 점유되었고 결국 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프리기아어는 서기 6세기까지 남아 있었다. 발칸 반도에서 브루게스는 그리스 마케도니아에 흡수되기 전에 오래 버티었다.

히타이트

히타이트(기원전 18세기경 ~ 기원전 1180년 또는 기원전 8세기) 또는 히타이트 제국은 고대 근동의 청동기 시대(3300~1200 BC) 중 기원전 18세기경에 아나톨리아 북중부의 하투샤를 중심으로 형성된 왕국으로, 히타이트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히타이트 제국은 기원전 14세기경에 최절정기에 들어섰는데, 당시에 아나톨리아의 대부분, 시리아 북서부(레반트의 북부), 남쪽으로는 리타니 강의 하구(지금의 레바논)까지,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 북부까지 장악하였다. 히타이트의 군대는 전쟁시에 전차를 잘 사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기원전 1180년 멸망하고 이후 히타이트 제국은 분열되어 여러 독립된 도시 국가로 나뉘었으며, 기원전 8세기까지 존속하였다. 이 도시 국가들을 네오히타이트(Neo-Hittite) 도시 국가라고 한다.

"히타이트" 라는 낱말은 구약성경의 "헷 사람들(sons of Heth, 헷 족속)"에서 유래하였다.

19세기에 아나톨리아에서 히타이트를 발굴한 고고학자들은 처음에 이들을 성경에 등장하는 히타이트와 동일시하였다. 현재는 성경에 등장하는 히타이트인이 하투샤를 수도로 한 히타이트 제국(기원전 18세기경 ~ 기원전 1180년경)의 히타이트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그 이후의 신히타이트 도시 국가들(기원전 1180년경 ~ 기원전 8세기경)의 히타이트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나톨리아의 역사적 영역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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