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사마리아, 또는 소므론 (히브리어:שומרון, 아랍어: سامريّون, 또는 ألسامرة, 그리스어: Σαμάρεια)는 전통적으로 현재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북쪽으로는 갈릴리와 남쪽으로는 유대와 경계를 나누는, 산지가 많은 지방을 일컫는 지리적 용어이다. 역사적, 정치적, 자연적으로 다른 지방과 구분되는 지역이며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땅의 중앙부분이다.

사마리아라는 이름은 구약성경 열왕기상 16:24 에서 유래한다. 구약성경의 그 기록에 따르면, 북이스라엘 왕국의 여섯 번째 왕인 오므리가 원래 그 땅의 주인인 "세멜"로부터 사마리아의 산지를 샀는데 사마리아라는 이름은 그"세멜"에서 따왔다고 한다.

지리적 위치

북쪽은 갈릴리, 서쪽은 지중해, 동쪽은 요단강, 남쪽은 유대와 경계를 이룬다. 사마리아는 대부분이 그렇게 높지 않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간간히 해발 800m를 넘는 부분도 있다. 산지는 남쪽 유대까지 특별한 경계를 이루지 않고 이어져 있다.

Geo NewTestament
신약시대의 유대지방

역사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이 죽은 후 그의 왕국은 남쪽의 유다 왕국과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의 여섯 번째 왕인 오므리가 원래 "세멜"(세멜이 개인인지 어떤 부족인지는 확실치 않다)로부터 이 지역을 은화 두달란트에 사들여 사마리아라는 도시를 세우고 그곳을 수도로 삼았다. (기원전 884년경) 이 도시는 바위산의 정상에 세워졌는데, 교통의 요지이면서 외적을 방어하기도 좋은 천연 요새지였으며, 고대의 포도주와 기름의 생산지로 현대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실체가 밝혀졌다. 북이스라엘 왕국의 마지막왕인 호세아왕 때 앗시리아가 사마리아를 침공해 도시를 점령하고 모든 사마리아 지역의 거주민을 앗시리아로 포로로 강제이주시켰고 바빌론과 쿠다(Cuthah)등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사마리아에 거주시켰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자신들과 구별해 쿠다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쿳팀" 이라고 부르며 이는 경멸적이고 모욕적인 표현이다.)

이후 바빌론시대와 페르시아 시대를 거치면서 사마리아는 도시로 존재했고 기원전 332년경 수천명의 마케도니아병사들이 반란을 진압하러 와서는 그곳에 정착해 헬레니즘의 도시가 되었다. 그 시대에 성전과 거대한 도시성벽이 보강되었는데 기원전 108년 유대의 왕인 요한 히르카누스가 침공하여 성벽을 깨뜨리고 파괴하였다. 기원전 63년 사마리아는 로마에 의해 시리아 속주로 병합되었다.

기원전 30년 헤로데 대왕은 사마리아를 새로이 재건하여 크게 확장하고 도시 이름을 세바스테로 개명하고 아우구스투스에게 헌정했다. (세바스테라는 이름 자체가 그리스어로 아우구스투스를 뜻한다) 헤로데는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위한 웅장한 사원을 비롯해 약 4km 길이의 성벽과 요새를 새로 세웠으며 헬레니즘 도시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한 대 사업이었다.

사마리아에는 세례자 요한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믿어져 왔고 나중에 세례자 요한을 위한 교회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고대 히브리 문자

고대 히브리 문자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현재 아람 문자 계통의 히브리 문자가 사용되기 이전에 히브리어를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페니키아 문자에서 분화되었다. 또한 사마리아 히브리어를 표기하는 사마리아 문자가 이 문자에서 파생되었다.

국경없는의사회

국경없는의사회(MSF,國境없는醫師會, 영어: Doctors without Borders 닥터스 위드아웃 보더스[*])는 1971년 12월 20일 프랑스의 베르나르 쿠슈네르 등 청년 의사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된 비정부기구(NGO)로, 나이지리아의 비아프라 전쟁에서 국제 적십자사 활동을 하다가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이 단체는 1996년 서울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199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노벨 평화상 수상 당시 회장이었던 제임스 오빈스키 박사가 국경 없는 의사회 대표로 상을 수상했다. 1990년대 초등학교 6학년 도덕교과서에 국경없는 의사회 이야기가 알베르트 슈바이처, 신약성서 루가복음서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와 함께 인도주의의 예로 나오기도 했다.

기독교 연표

기독교의 연표는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사용하고 있는 서력기원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레고리력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것을 서력기원 0년으로 정하여 날짜를 정하였다. 그러나 현대 대부분의 학자들은 기원전 6세기에서 4세기로 추측 하고 있다.

김기덕 (1960년)

김기덕(金基德, 1960년 12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이자 각본가, 제작자, 배우이다.

사도 요한

요한((히브리어: יוחנן, 그리스어: Ιωάννης, 음역: 요한), (6년경 ~100년경))은 사도이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대야고보와 형제 관계로 알려져 있다. 이름의 뜻은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시다’이다. 복음서를 기록한 인물로서 요한의 기쁜 소식와 요한 서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저자로도 알려져 기독교의 성인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의 축일은 12월 27일이며, 동방 정교회에서의 축일은 5월 8일이다. 요한의 상징은 독수리인데, 그 이유는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구세 사업만 기술한 반면, 그의 저서 요한의 기쁜 소식에서는 예수에 관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을 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는 인간의 탈을 쓰고 온 것이지 인간이 아니라는 이단자 마르키온의 주장인 가현설을 반박하기 위해서 예수의 죽음을 자세히 묘사하는 등 인성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요한의 복음사가로서의 저술 활동은 하늘 높이 나는 독수리에 빗대었다. 이 밖에도 책, 뱀이 기어나오려고 하는 컵 등이 그의 상징이다.

요한은 제베대오의 둘째 아들로, 초기에는 형인 야고보와 함께 가파르나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와 더불어 어부로서 생활했다. 어느 날 게네사렛 호수에서 배를 타고 그물을 손질하다가 우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그들은, 예수의 부름을 받고 아버지와 삯군들을 남겨둔 채 그를 따라 나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마태 4,21-42).

하루는 요한과 야고보 형제는 예수에게 예수제국 에서 자신들이 각각 예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예수가 그들에게 자신이 마실 잔을 마실 수 있으며 자신이 받을 고통의 세례도 받을 수 있겠느냐며 묻자 그들은 자신있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에 예수는 자신의 잔을 나누어줄 수는 있지만 하늘 나라의 영예로운 자리에 앉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가 미리 마련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줄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요한과 야고보 형제와 다를 게 없었던 다른 사도들은 이 형제의 야심을 불쾌히 여겼으며, 예수는 그들에게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라고 훈계하여 제자들이 섬김을 실천할 것을 촉구하였다.(마태 20,27-28) 또한 두 형제는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신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 감히 주제넘게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불친절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내며 저들에게 하늘에서 불을 내려 벌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예수는 나는 사람을 구원하러 온 것이지, 지금 당장 멸하려 온 것은 아니라면서 잠시 거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날에 완전한 심판을 이루시기까지 그분의 모든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하기 때문이었다.(루카 9,54)

타고난 과격한 성격 때문에 예수는 요한과 야고보 형제를 아울러 ‘천둥의 아들’이라는 뜻의 보아네르게스(Boanerges)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지만(마르 3,17), 요한은 야이로의 죽은 딸을 되살리는 기적, 타볼 산에서의 변모,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와 같이 예수의 중요한 행적마다 수제자 베드로와 함께 예수와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더욱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임종하기 직전에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있던 마리아와 요한을 보고 먼저 마리아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고, 요한에게는 “이 분이 너의 어머니이시다”하고 말하며,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하였다. 이때부터 요한은 임종 때까지 평생 마리아를 곁에서 모시고 섬겼다(요한 19,26-27).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 후 마리아 막달레나로부터 예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사도들 중 가장 먼저 예수의 빈 무덤으로 달려갔으며, 뒤따라오는 베드로를 기다려서 그가 먼저 들어가게 했다. 그제야 요한을 비롯한 다른 제자들도 차례대로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었으며(요한 20,1-5),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부활한 예수를 제일 먼저 알아보았다(요한 21,7).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사도 3,1)과 사마리아(사도 8,14)에서 포교 활동을 벌였다. 그러한 요한을 바울로는 야고보, 베드로와 함께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다(갈라 2,9). 전승에 의하면 44년 헤로데스 아그리파 1세의 박해를 피해 소아시아로 피신했으며 그 곳의 일곱 교회, 즉 에페소스, 스미르나, 베르가모, 티아디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및 라오디게이아 교회를 지도했다고 한다. 95년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 때 요한은 군병들에게 붙잡혀 파트모스 섬으로 유배되었는데 그 곳에서 요한계시록을 저술하다가, 96년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되자 사면받아 에페소스로 귀환하여 요한 복음서와 요한 서신을 저술하였다. 그때 그는 너무 노쇠하여 제대로 설교를 할 수 없어 항상 신도들에게 부축을 받았다고 한다. 요한은 항상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쳤는데, 매일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에 대해 신도들이 불평을 하자 요한은 “사랑은 그리스도 교회의 기초요, 사랑만 있으면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서기 100년경에 94살의 나이에 사도들 중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았다고 전해 내려온다.

사마리아 (영화)

《사마리아》는 2004년 3월 5일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10번째 작품이다. 원조 교제를 하는 여고생과 자신의 딸이 원조 교제를 하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54회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수상작이다.

사마리아 문자

사마리아 문자는 사마리아 히브리어를 표기하기 위한 문자이다.

사마리아인

사마리아인 (사마리아 히브리어: ࠔࠠࠌࠝࠓࠩࠉࠌ)은 고대 근동의 이스라엘인, 혹은 히브리인에게서 기원한 레반트 지역의 민족종교 집단이다.

예부터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이 가나안 지역으로 이주한 때부터 고대 사마리아 지역 (오늘날에는 웨스트 뱅크라고 알려진 지역의 대부분을 구성)과 관련된 레위인뿐만 아니라 에브라임 지파와 므나쎄 지파 (두 명 모두 요셉의 아들들)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반면에, 일부 정통 유대인들은 바빌론 유수부터 시작되어 바바 랍바 시기의 사마리아인 정치까지 시기에 사마리아인들이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이 베냐민 지파를 후손들을 포함하곤 했지만, 이 가계는 1960년대에 단절되고 만다. 사마리아인의 전승에 따르면, 사마리아인들과 남이스라엘인들이 이끈 유다이아 간의 분리는 자신들은 알아차렸지만, 남이스라엘인들이 정통 전승에서 분리되어버린, 사제 엘리가 있던 기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시몬 마구스

시몬 마구스(라틴어: Simon Magus, 그리스어: Σίμων ὁ μάγος 시몬 호 마고스[*])는 마법사 시몬(Simon the Sorcerer) 또는 기타의 시몬(Simon of Gitta)이라고도 한다. 시몬 마구스는 사마리아 사람으로 기원후 1세기에 생존하였던 나스티시즘(Gnosticism, 영지주의) 교부들 중의 한 명이었으며, 나스티시즘의 일파인 시몬파(Simonians · Simonianism)의 창시자라고 전통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경에서는 시몬 마구스가 사도행전 8:9-24에서 언급되는데, 이 구절이 시몬 마구스가 언급되는 유일한 구절이다. 하지만 시몬 마구스는 여러 신약성경의 외경들과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의 이단에 대한 서술들에서 자주 언급된다. 이들 저술가들 중 몇몇은 시몬 마구스를 기독교의 모든 이단적 교의들의 시원이 되는 인물이라고 여겼다. 이들 중에는 특히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AD 100-165)이 있는데, 순교자 저스틴은 시몬 마구스의 사후 약 100여년 후에 그에 대하여 저술하였다.시몬 마구스는 도시테오스(Dositheos)의 제자이자 스승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시몬 마구스의 제자들과 지지자들은 그를 "신의 위대한 화신(Great Power of God)"이라고 존중하였다. 시몬 마구스는 후대의 기독교인들에 의해 인간의 형상을 한 악마라고 여러 번 비난받았으며, 또한, 특히 공중부양하여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다. 마법사 시몬에 대한 판타지적인 이야기들은 중세 시대까지 계속되었는데, 이 이야기들은 파우스트부흐(Faustbuch)와 괴테의 《파우스트》에 영감을 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예수 관련 신약 장소

예수의 삶의 신약 성경의 이야기는 거룩한 땅과 이집트로의 여행에서의 몇 개의 장소를 가리킨다. 이 계정에서 예수님의 공생애에서의 주요한 위치는 페레아와 사마리아 등의 주변 지역에서 일어난 활동을 포함, 갈릴래아와 유대이다.

오므리

오므리(재위 기원전 884년경-873년경)는 분열 이스라엘 왕국의 6대 왕으로 시므리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우상 숭배와 큰 죄악을 저질렀다.

시므리가 엘라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둘로 나뉘었는데 백성의 절반은 기낫의 아들 티브니를 임금으로 세워 따르고 다른 절반은 군대에 세운 오므리를 임금으로 따랐다. 그러나 오므리를 따르는 백성들이 많아 마침내 티브니가 죽었고 오므리는 티르차를 포위한 후 임금 자리에 올랐으며 시므리는 자살했다.

그는 사마리아 산에서 세메르에게 2탈렌트로 산을 사고 그 산을 요새로 만들고 자기가 세운 성읍의 이름을 본래 소유자인 세메르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 하였고 주변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이스라엘은 중흥의 길을 걸었다.

유대사마리아구

유대사마리아구(히브리어: אֵזוֹר יְהוּדָה וְשׁוֹמְרוֹן, 아랍어: اليهودية والسامرة‎)는 이스라엘의 행정구로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6일 전쟁) 이후부터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 지구(동예루살렘 제외)를 가리킨다. 행정 중심지는 아리엘, 최대 도시는 모디인일리트이며 인구는 304,569명(이스라엘 정착촌 거주 인구에 한함), 면적은 5,878km2이다.

음소문자

음소문자(音素文字, alphabet)는 하나하나의 문자가 원칙적으로 하나의 자음 또는 모음의 음소(音素)를 나타내는 문자 체계이다. 자음과 모음에 대응하는 각각의 문자가 따로 존재하는게 다른 종류의 문자와의 다른 점이다. 로마 문자, 키릴 문자, 그리스 문자, 한글 같은 것들이 음소 문자 중 하나다.

이스라엘

이스라엘국(히브리어: מדינת ישראל 메디나트 이스라엘, 아랍어: دولة إسرائيل 다울라트 이스라일[*], 영어: State of Israel)은 서부 아시아의 남쪽, 이집트의 동쪽에 유대인들이 세운 국가이다. 비교적으로 작은 지역이지만 지리적으로 다채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기본법에서 스스로 민주 국가임을 정의하고 있다.

이스라엘 왕국

이스라엘 왕국(기원전 931년경~기원전 722년경)은 연합 이스라엘 왕국에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르우벤, 스불론, 시므온, 므낫세, 단, 잇사갈, 아셀, 에브라임, 납달리, 갓 등 이렇게 열 부족을 규합, 독립한 왕국이다. 209년간 존속해 19명의 임금이 나라를 다스렸다.

왕조의 교체가 빈번하여 정정(政情)이 불안하였다. 벧엘 이북을 영토로 하고 오므리 왕조 시대에 남쪽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에 대항하기 위하여 수도 사마리아를 건설하였다. 유다에 비하여 땅이 비옥하였으므로 농경적 성격이 강하고 종교적으로도 토착종교 또는 이민족의 신앙이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구약 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예후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여호와의 계명을 잊고 우상 숭배를 하여 하느님의 분노를 샀다.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아시리아 제국은 단호하게 통혼 정책을 펴 '동화'시켰다.

이스라엘의 역사

거룩한 땅 또는 팔레스타인으로 알려진 이스라엘 땅은 유대인의 출생지이고 마지막 형태의 히브리어 성경이 엮인 장소이며 유대교와 기독교가 탄생한 장소이다. 유대교, 사마리아 신앙, 기독교, 이슬람교, 드루즈, 바하이 신앙에 성스러운 지역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행정 구역

이스라엘은 6개 행정구(히브리어: מחוזות, mahoz)와 15개 군(히브리어: נפות, nafa), 50개의 자연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서에서는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골란 고원(골란 군과 이에 속해 있는 4개의 자연 지역)과 요르단 강 서안 지구(유대 사마리아 구)를 제외한 행정 구역에 한해서 다룬다.

크레타

크레타 (그리스어: Κρήτη)는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자, 지중해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고대 그리스부터 오늘날까지 역사, 신화, 음악, 방언 등 다방면에 있어 고유한 문화적 전통이 이 섬에 전해 내려왔다.

고대사에서 크레타는 유럽 문명이 시작한 장소로서 중요하게 여겨진다. 미노아 시대 크노소스 궁전과 페스토스 유적, 고르틴 유적, 말리아 유적 등 여러 고대 유적이 남아 있다. 또한 크레타에는 하니아 베네치아 항구, 레팀노의 올드타운, 프랑고카스텔로 등 베네치아 유적도 많이 남아 있다. 오늘날 크레타는 그리스에서 문화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며, 그리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이다. 매년 3~5백만 명의 외국 관광객이 크레타섬에 방문한다.

크레타섬의 경제는 오랫동안 농업과 목축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나 1970년대부터 관광업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 크레타 경제의 주축을 이루는 농업/목축업과 관광/서비스업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보완적이다. 이 섬의 1인당 소득은 그리스 평균치에 근접하나 실업률은 4% 정도로 국가 전체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리스의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올리브 농업이 크레타의 중요한 산업이다. 그리스 전체 면적의 약 4분의 1 가량을 올리브 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헤로데 아르켈라오스

헤로데 아르켈라오스(Herod Archelaus, 기원전 23년 – 18년경)은 기원전 4년부터 6년까지 사마리아, 유대, 이도메이아지방을 다스린 분봉왕으로 로마 제국에 의해 임명되었다. 헤로데 대왕과 사라미아 출신의 말테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아버지 헤로데 대왕으로부터 가장 넓은 지역을 다스릴 왕으로 상속되었지만 형제인 헤로데 안티파스와 다른 유대인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로마의 아우구스투스는 그를 왕으로 세우지 않고 유대, 사마리아, 이도메이아의 분봉왕으로 세웠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바라사이파유대인들이 일으킨 소요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는데 그때 죽은 자가 3,0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왕으로 책봉된 이후에도 그는 끊임없이 다른 유대인과 마찰을 일으켜 결국 6년 왕위에서 폐위되고 갈리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그가 다스리던 지방은 유대아 속주로 로마의 직할령이 되었다.

기독교의 신약성서에 잠깐 아르켈라오스가 언급되는데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헤로데 대왕의 유아살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돌아와서, 아르켈라오스의 폭정을 피해 갈릴리의 나자렛으로 가서 살았다고 한다. 혹자는 헤로데 대왕의 유아대량학살의 전승은 헤로데 아르켈라오스가 죽인 3,000명과 그의 아버지 헤로데 대왕을 혼동한 것이라고 한다.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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