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절(復活節, Easter, 그리스어: Πάσχα, 라틴어: Pascha, 러시아어: Пасха) 또는 부활절기(復活節氣)는 십자가에 달려 사망한 예수가 사흘(3일)만에 부활했음을 기념하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축일 가운데 하나이다. 이 날에는 그리스도교의 많은 교회에서 특별한 예배가 열리며, 여러가지 행사가 벌어지며, 부활절에 유래하는 관습 및 풍속이 존재한다.

춘분 후의 첫 보름 발생 후의 일요일을 많은 교회에서 부활절로 정하나, 그리고리력(16세기)를 쓰는 서방 교회인 천주교회와 개신교회들과 율리우스력(기원전 1세기)를 사용하는 동방교회인 정교회 간에는 역법의 차이로 부활절의 기준이 다르므로, 대한민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하는 태양력인 그레고리력의 날짜와 차이가 난다.[2]

부활절
부활절
부활절 계란에 색을 칠하는 어린이
공식이름부활절
다른이름주님 부활 대축일[1]
장소전세계 기독교를 믿는 곳
형태축제
중요도교회력 중 예수 부활일
시작부활절
성령 강림 대축일
날짜춘분 후 첫 만월(보름) 다음에 오는 일요일
2020
2021
2022
2023
2024
4월 12일
4월 4일
4월 17일
4월 9일
3월 31일
빈도매년
축제행진, 모닥불 피우기
행사미사, 예배, 달걀, 빵
관련재의 수요일, 사순절, 성지주일, 성주간, 성금요일, 성령강림주일
부활절 찬양
부활절에 찬양하는 모습 수원 사명의 교회

어원

부활절은 성경을 쓴 고대 그리스어 일종인 헬라어의 단어 '파스카'(그리스어: Πάσχα) 에서 나왔다. '파스카'는 유대력의 주요 절기인 '유월절'인 '페사흐'(히브리어: פסח)를 헬라어식으로 음차한 단어이다. 라틴계 언어인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칼어 등과 프랑스 영향을 많이 받은 네덜란드어 등과 정교회 영향을 받은 러시아, 체코, 폴란드 지역은 '파스카'에서 비롯된 부활절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스도교가 늦게 전파된 게르만족 계열인 독일과 영국 등은 게르만 튜튼족의 고대 종교에서 '봄의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한 단어로 영어 'Easter'와 독일어 'Ostern' 게르만 전통 단어를 사용한다.[3]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에서의 부활절은 교회력 절기 중 하나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를 가리킨다.

초창기의 부활절은 3월 ~ 4월 경에 불규칙하게 위치하였다. 이는 부활절이 페르시아 음력에 근거한 태음력히브리력유월절을 기준으로, 다음 날인 무교절로부터 첫 안식일(요일로는 토요일) 다음 날인 초실절(요일로는 일요일)에 지켜졌기 때문이다.[4]

그러나 초기 교회가 325년니케아 공의회에서 유월절 준수가 아닌 그리스도부활을 준수해야 한다는 신학적 이유를 제시하였다. 부활의 날짜를 춘분 이후 첫 보름 이후 안식일 다음 날(일요일)에 지키기로 정해졌고, 이에 따라 태양력 기준으로 3월 22일부터 4월 25일까지 사이에 위치하게 되었다. 부활은 죄로 인해 죽은 성도가 다시 살아나는 소망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이므로, 부활절 또한 교회력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크다.

유래

부활절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지 3일 째 되는 날, 구약의 초실절의 예언에 따라 그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신약성서의 복음서 중 마르코, 마태오, 루가, 요한 복음서의 기록을 따른다. 각 복음서의 기록에는 약간이 차이가 있지만 전체를 통합하여 부활절의 전승으로 이해하고, 그 전승에 따라 부활절 예배와 예식, 행사 등이 생겨났다.복음서가 작성된 1세기와 2세기인 초대교회에서도 예수의 부활에 대한 강한 신념을 지녔으며, 부활절은 구약성서를 통한 전승과 예수가 복음으로 전한 하늘나라에세네파가 중요시했던 몸의 부활과 묵시론반제국주의 사상과 평화주의 사상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사건으로 본다.

1세기에서 3세기 경의 부활절은 성찬을 통한 그리스도교 복음의 완성을 확인하는 예배로 발전하였다. 초기 교회의 3대 신학 사상인 칼케돈(카르타고)과 안디옥(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하는 초대 신학 학파의 부활절 이해는 차이를 보였다. 칼케돈 학파는 회개를 위한 시건으로 부활절을 보았고, 안디옥 학파는 새로운 해방을 위한 사건으로 부활절을 보았으며,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인간이 진정한 진리를 알게 하는 사건으로 부활절을 보았다. 이런 세 가지 부활절의 이해는 복합적으로 변화하여 초기의 부활절과 차이를 지니게 되었다.[5]

313년 그리스도교 공인 이후에 칼케돈이 콘스탄티노플로 흡수되면서 부활절의 개념은 칼케돈 학파를 중심으로 하는 부활절의 개념으로 변화하였다.[6] 창조주의 완전한 질서로 창조된 세상이 인간의 죄악으로 분리되었고, 완전한 질서인 창조질서를 완전히 따른 것, 즉 율법으로서 복음을 따르는 질서적 교회의 모습과 예전(전례)을 구성하게 되었다. 점차 부활절 예식은 부활의 기쁨과 성찬의 나눔의 소박한 예전에서 점차 위와 아래가 구분되고, 예전 순서와 음악, 예법이 중요시되는 종합적 예식으로 발전하였다.

시기

부활절은 매년 그 날짜가 달라진다. 이르면 3월 넷째 일요일, 늦으면 4월 넷째 일요일에 올 수도 있는데, 이는 부활절이 음력을 고려하여 지켜지기 때문이다. 초기 교회는 유월절을 기준으로 부활절을 지켰다. 그러나, 기원 후 4세기에 접어 들면서 부활절을 언제 지켜야 할 지에 관한 의견충돌이 생겼다. 부활절을 히브리력의 유월절에 따라 정해야 한다는 지역 교회들과 이에 반대하는 지역 교회들 간의 대립은 결국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부활절 보름달'(Paschal full moon: 325년 당시 춘분이었던 3월 21일 이후 첫 보름달) 다음의 일요일로 부활절을 정하면서 정리되었다. '부활절 보름달'이 일요일인 경우에는 그 다음 주 일요일이 부활절이다. 오늘날에도 이 방법으로 날짜가 계산된다.

부활절 보름달은 3월 21일 ~ 4월 18일 사이에 위치하며, 이에 따라 부활절은 3월 22일 ~ 4월 25일 사이에서 정해진다.

동방 정교회

그레고리력교회력으로 채택하고 있는 서방 교회(로마 가톨릭교회, 성공회, 개신교)와 달리 동방 정교회는 여전히 기원전 45년부터 시행된 율리우스력을 교회력으로 삼으므로, 동방 교회의 부활절은 율리우스력3월 22일 ~ 4월 25일 사이이며, 이를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면 4월 4일 ~ 5월 8일 사이가 된다.

따라서, 서방 교회의 부활절이 4월 4일 ~ 4월 25일 사이이면 동방 교회의 부활절도 대체로 같지만, 4월 3일 이전이면 동방 교회의 부활절은 서방 교회보다 최대 35일까지 늦어질 수 있다.

상징물

부활절의 상징물은 성서에 기록한 바와 같이 초대교회 시절에 떡을 떼서 나누었다. 그러나 전해져 내려오면서 부활절 달걀부활절 토끼 두 가지로 바뀌게 되었다. 이 풍습은 부활절 토끼가 초콜릿, 캔디, 부활절 달걀 등을 착한 아이들에게 준다고 여겨 아이들이 토끼를 위해 집을 만드는 것이다. 18세기독일 이민자들이 미국에 오면서 함께 이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풍습

부활절의 풍습은 달걀 굴리기(Egg Rolling), 달걀 찾기(Egg Hunt), 부활절 퍼레이드(Easter Parades), 그리고 부활절 카드(Easter Cards) 교환이 있다.

우선 달걀 굴리기는 19세기 초, 미국 4번 째 대통령인 제임스 메디슨(James Madison)의 부인인 돌리 메디슨(Dolly Madison)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녀는 국회의사당에 아이들을 초대했고 잔디밭에서 달걀 굴리기 이벤트를 열었다.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 긴 수저 모양의 막대기로 가장 멀리 가장 빨리 굴리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 달걀 굴리기의 규칙이다. 1880년부터는 장소가 바뀌어 백악관에서 열렸는데, 이는 국회의사당 정원이 망가진다는 의원들의 항의 때문이었다. 이 이벤트가 계속되어 남북전쟁 때를 제외한 매년 열리고 있다. 12살 이하의 아이들이 참가할 수 있으며, 어른들은 아이들과 동반 시에만 입장 할 수 있다. 부활절 월요일은 여행객들이 백악관 마당을 지나다닐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두 번째로 달걀 찾기는 단체 또는 마을단위로 이루어지는데, 많은 달걀을 부활절 아침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곳곳에 숨기고 아이들이 그것들을 찾게 하는 것이다. 가장 많이 달걀을 찾은 아이가 상품을 받는데 이 상품은 주로 달걀모양의 초콜릿이다. 세 번째로는 부활절 퍼레이드가 있다. 이 퍼레이드는 부활절 아침 사람들이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교회에 갔다가 마친 후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퍼레이드로는 뉴욕시의 오번가(Fifth Avenue) 퍼레이드를 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부활절 카드가 부활절의 풍습으로 정착되었다. 미국의 카드회사인 아메리칸 그리팅스(American Greetings)에 따르자면 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 어머니의 날 다음으로 가장 많은 카드를 보내는 날이 부활절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부활절 햄, 부활절 빵 등 다양한 형태의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같이 보기

각주

  1.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는 2017년까지는 '예수 부활 대축일'을 사용 “cpbc.or.kr”. 《기획특집 신자들이 응답할 때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 새 「로마 미사 경본」(한국어판) 살펴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0월 22일. 2017년 12월 13일에 확인함.
  2. 復活祭の日付の問題名古屋ハリストス正教会
  3. Barnhart, Robert K. The Barnhart Concise Dictionary of Etymology (1995) ISBN 0-06-270084-7.
  4. 대한성서공회. 《새번역 성경》, 고린도 전서 15장 20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초실)가 되셨습니다.
  5. 후스토 곤잘레스. 《기독교사상사: 그 세가지 신학의 유형으로 살펴본》. 이후정 옮김. (서울: 컨콜디아사, 1991)
  6. 후스토 곤잘레스. 《기독교사상사: 그 세가지 신학의 유형으로 살펴본》. 이후정 옮김. (서울: 컨콜디아사, 1991)
3월

3월(三月)은 그레고리력에서 한 해의 세 번째 달이며, 31일까지 있다. 북반구에서는 3월이 되면서 날씨가 풀리기 때문에, 대체로 이 달을 봄의 시작으로 본다. 남반구는 가을이 된다. 이 달과 그 해의 6월은 항상 같은 요일로 종료한다. 또한, 이 달과 그 해의 11월은 항상 같은 요일로 시작하며, 평년인 경우 그 해의 2월과도 같은 요일로 시작한다. 윤년의 경우에는 작년 12월과 같은 요일로 시작하고 끝난다. 올해의 3월 1일과 내년의 2월 28일은 요일이 항상 같다.

400년 동안 이 달은 화요일, 목요일, 일요일에 58번, 금요일과 토요일에 57번,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56번 시작한다.

화요일로 시작하는 윤년(2008년, 2036년, 2064년, 2092년)과 수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윤년(2003년, 2014년, 2020년, 2025년, 2031년, 2042년, 2048년, 2053년, 2059년, 2070년, 2076년, 2081년, 2087년, 2098년)일 경우에는 3월의 공휴일이 대통령 선거일이 3월 초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는 경우도 있다. 북한의 경우 정월 대보름이 3월 초가 아닌 경우에는 3월에 공휴일이 없다.

음력 1월과 음력 2월이 이 달에 있으며 3월에는 음력 1월 15~16일, 2월 15~16일의 보름달을 관측할 수 있다. 이 달에 윤달이 낄 경우 춘분 이전은 윤1월, 춘분 이후는 윤2월이 된다.

4월

4월(四月, 영어: April)은 그레고리력에서 한 해의 네 번째 달이며, 30일까지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4월이 과학의 달이다. 이 달과 그 해의 12월은 항상 같은 요일로 끝난다. 또한, 이 달과 그 해의 7월은 항상 같은 요일로 시작하며, 윤년인 경우 그 해의 1월과도 같은 요일로 시작한다.

400년동안 이 달은 수요일, 금요일, 일요일로 58번, 월요일, 화요일로 57번, 목요일, 토요일로 56번 시작한다.

중국은 청명절, 일본은 쇼와의 날, 베트남은 훙왕 기일로 인해 4월에는 반드시 공휴일이 있으나 대한민국에서 4월의 공휴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 4월 말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2006년 이후로 없으나, 4년에 한 번씩 하는 총선의 선거일이 4월로 잡히기 때문에 4년에 한 번씩 공휴일이 생긴다. 또한 식목일이 공휴일이던 2006년 이전에도 식목일이 주말과 겹쳐 공휴일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대표적인 예로 1981년, 1987년, 1992년, 1998년 등) 반면 북한은 청명절과 태양절, 인민군 창건일 중 어느 하나가 주말에 겹치더라도 반드시 공휴일이 있다.

음력 2월과 음력 3월이 이 달에 있으며 4월에는 음력 2월 15~16일, 3월 15~16일의 보름달을 관측할 수 있다.

4월 24일

4월 24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14번째(윤년일 경우 115번째) 날에 해당한다.

그레고리력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은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양력(陽曆)으로, 1582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율리우스력을 개정하여 이 역법을 시행했기 때문에 그레고리력이라고 부른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에 제정한 율리우스력은 4년마다 2월 29일을 추가하는 윤년을 두었는데, 율리우스력의 1년 길이는 365.25일이므로 천문학의 회귀년 365.2422일보다 0.0078일(11분 14초)이 길어서 128년마다 1일의 편차가 났다.

그레고리력은 율리우스력의 이러한 단점을 보완한 역법으로, 1582년 10월 4일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율리우스력의 400년에서 3일(세 번의 윤년)을 없애는 방법으로 이를 해결했다. 그레고리력의 1년 길이는 365.2425일이므로, 천문학의 회귀년보다 0.0003일(26초)이 길고 약 3,300년마다 1일의 편차가 난다.

금요일

금요일(金曜日)은 목요일 뒤의 날, 토요일 앞의 날이다. 월요일을 우선으로 하는 국가에서는 ISO 8601의 권고에 따라 한 주의 5번째 날이다. 일요일을 우선으로 하는 국가에서는 한 주의 6번째 날이다.

전통적 기독교 달력에서는 일요일을 기준으로 한 주의 여섯째 날로 보는데, 대한민국의 일상에서 쓰이는 달력에서는 기독교와 일본의 영향으로 목요일에 이어 여섯번째에 배치된다.

부활절 봉기

부활절 봉기(Easter Rising 이스터 라이징[*], 아일랜드어: Éirí Amach na Cásca 에어리 아마흐 너 카스카)는 1916년 4월 부활절 주간에 아일랜드인들이 영국에 대항해 일으킨 무장항쟁이다.

부활절 봉기는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의 주도하에 무력을 통해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성취하기 위해 일으켰다. 이 사건은 아일랜드 독립 운동에서 1798년의 '청년 아일랜드인 협회'의 항쟁 이후 가장 중요한 항쟁로 여겨지고 있다. 봉기는 비밀조직인 '아일랜드 공화주의 형제단'에 의해 계획되었으며, 1916년 부활절 주간의 월요일인 4월 24일부터 4월 30일까지 지속되었다.

주도 세력은 교사이자 변호사였던 패트릭 피어스가 이끈 아일랜드 의용군이었고, 좀 더 작은 규모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바란 사회주의자 제임스 코놀리가 이끈 아일랜드 시민군도 연합작전을 펼쳤다. 이들은 기습작전을 통해 더블린의 주요 거점을 점령하고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아일랜드 공화국'을 선언했다. 부활절 선언은 더블린 중앙 우체국에서 패트릭 피어스가 낭독했다.

더블린 외에 아일랜드의 다른 지역에서도 봉기가 있었으나, 카운티 메스의 애쉬본을 제외하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봉기는 영국군과의 6일간의 교전 끝에 진압되었으며, 지도자들은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처형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무장투쟁 전통의 공화주의를 아일랜드 정치의 전면으로 부각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봉기에서 선언된 '아일랜드 공화국'은 약 3년 후인 1919년 1월에 아일랜드 초대 의회에 의해 승인되며 다시 선언되었다.

사순절

사순 시기(四旬時期, 그리스어: Τεσσαρακοστή, 라틴어: Quadragesima, 영어: Lent)는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교회력 절기를 말한다. 사순절의 이름은 성서 그리스어인 헬라어로 40을 의미하는 어원에서 나온 '테사라코스테'(그리스어: Τεσσαρακοστή)의 번역 단어이다. 재를 머리에 얹거나 이마에 바르며 죄를 통찰하는 재의 수요일로 시작되며, 부활절 전 40일(사순,四旬) 기간 동안 지킨다. 기독교에서 동방전통과 서방전통의 사순절의 차이가 있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매주간 5일만을 기간으로 여기고, 토요일과 주일을 40일 날짜에 포함하지 않는다. 부활절 이전 8주간이 사순절이 된다. 서방 기독교인 천주교에서는 주일을 포함하여 사순 시기가 성주간 목요일까지이다. 40일 날수는 전례대혁 후에상징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개신교에서는 주일을 제외하고 토요일을 포함한 40일을 사순절로 지킨다. 부활절 이전 6주와 4일이 사순절이 된다. 즉, 재의 수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 주일을 제외시키고 날수를 세면 40일이 된다. 이날에는 금식 등의 자기 절제와 회개를 한다. 부활절 이전에 예수의 십자가상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절기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성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은 후 40일 동안 광야에서 시험 받았던 사건을 떠올리기도 한다. 부활절 바로 전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도 한다.

한국 교회로는 로마 가톨릭교회는 물론이며, 개신교인 대한성공회, 루터교, 감리교,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그리고, 한국 정교회 등에서 지키고 있다. 또한 개신교 계통의 장로교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의 경우 사순 시기 대신 주님 부활 대축일 전 한 주간을 고난주간으로 지키고 있다.

전통적으로 사순 시기의 의식 색깔은 자색이며,다만 주님 수난 성지주일과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는 붉은색을 사용한다。

서력기원

서력기원(西曆紀元), 약칭 서기(西紀)는 예수 탄생을 기원(紀元)으로 한 서양 기독교 문화권에서 사용해 온 기년법의 책력으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서기는 일반적인 다른 역법·연호 체계와 마찬가지로 0년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레고리력의 1년을 기원, 곧 ‘시작하는 해’로 삼는다.

로마자 약어로 기원후는 AD(라틴어: Anno Domini 아노 도미니[*] ‘주의 해(年)에’)로, 기원전은 BC(영어: Before Christ 비포 크라이스트[*] ‘예수 이전에’)를 주로 써왔다. 이 말의 기원은 라틴어로, 현재 라틴어 문장 내에서 쓸 때에는 주로 장음 표시 악센트인 마크론(¯)을 덧붙인 ‘annō Domini’로 표기한다. 반면에 영어에서는 앞서 보인 바와 같이 마크론을 떼는 게 일반적이며, 인쇄물이나 컴퓨터 문서에서는 이탤릭체로 입력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영어권 국가에서는 ‘(in) (the) year of our Lord (Jesus Christ)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해에)’와 같은 표현이 대신 쓰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 종교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기 위해 CE(Common Era 커먼 이라[*] ‘공통 시대’, 또는 드물게 Christian Era 크리스천 이라[*])와 BCE(before Common Era 비포 커먼 이라[*] ‘공통 시대 이전’, 또는 드물게 before Christian Era 비포 크리스천 이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Common Era’라는 표현은, 이 역법이 현재 종교와 지역에 무관하게 전 세계에 퍼졌다는 점을 감안, 종교적 의미를 완전히 제거하기 의해 붙여진 호칭이다. 반면에 ‘Christian Era’라는 표현은 anno Domini 같은 특정 종교에서만 사용되는 숭배의 뉘앙스를 배제한 채 ‘기독교의 책력’이라고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어에서도 비슷하게‘공력기원(公曆紀元)’, ‘공력(公曆)’, ‘공원(公元)’과 같은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에서는 Anno Domini를 간혹 주후로 번역한다.

성서정과

독서집(Lectionary) 또는 성서일과(聖書日課)는 기독교에서 교회력에 따라 배치한 전례 성서를 말한다.

대림절(Advent), 성탄절(Christmas),공현절(Epiphany),사순절(Lent),성 주간(Holy Week), 부활절(Easter), 연중주일(Season after), 성령강림절(Pentecost)등의 교회력 절기에 맞추어 성서 말씀이 배치되어 있다. 1년을 기준으로 313년 공인 이전부터 성경을 절기에 맞추어 읽는 관례가 있었으며,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에서 각자의 성경 일독을 지침으로 하는 독서집이 있었다. 근대에 와서 천주교회와 정교회, 개신교회는 각각의 교회 절기에 맞춘 하루 성서 독서(성서정과, 성서일과)를 개별적으로 교파별로 가지고 있었다.

수난

수난(受難, 영어: Passion, 라틴어: Passio)은 본래 버티기 힘든 어려운 일을 의미하나, 신학 용어로서 예수의 재판과 처형의 정신적 및 육체적인 고통을 위한 기간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기독교의 교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다.

신 페인

신 페인(아일랜드어: Sinn Féin [ʃiːɲ fʲeːnʲ])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모두에서 활동 중인 정당이다. 1947년 더블린 태생의 아서 그리피스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현재의 당 대표는 게리 애덤스이다. 1970년 북아일랜드 통일운동에 대한 의견차이로 기존의 신페인당이 분리될 때, 무장투쟁 지속을 주장한 아일랜드 공화국군 임시파(PIRA)를 지지한 측이 오늘날의 신페인당이 되었다. 신페인당은 PIRA의 우당으로 상호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당시 무장투쟁 중단을 주장한 아일랜드 공화국군 공식파(OIRA)를 지지한 측은 "신페인노동자당"으로 분리되었으며, 그들은 현재의 아일랜드 노동자당으로 계승되었다.

"신페인"은 아일랜드어로 '우리 스스로(we ourselves)', '우리들' 등을 의미하는 낱말이다.

아일랜드 자유국

아일랜드 자유국(아일랜드어: Saorstát Éireann 시르스타트 에이런, 영어: Irish Free State 아이리시 프리 스테이트[*], 1922년 ~ 1937년)은 아일랜드 섬의 32개 주 가운데 26개 주가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로부터 분리되어 성립된 대영 제국의 자치령이다. 1921년 12월 6일 런던에서 영국과 아일랜드 공화국 대표들이 서명한 아일랜드 자유국 협정(일명 영국-아일랜드 조약)에 의해 성립되었다.이 조약으로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아일랜드 섬은 아일랜드 자유국의 영토가 되었다. 아일랜드 독립운동 세력은 아일랜드 자유국을 1919년 1월 21일 스스로 선포하였던 독립 공화국과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새로운 정부인 아일랜드 자유국은 독립전쟁 기간동안 존재하였던 두 개의 정부를 대치하였다. 영국의 아일랜드 정부법(1920년)에 의해 출범된 1922년부터 마이클 콜린스를 수반으로 하는 임시 정부의 유명무실한 남아일랜드와 1919년 다일 에이렌(아일랜드 의회)에 의해 출범하여 다일 에이렌의 의장으로서 아서 그리피스가 이끌던 아일랜드 공화국은 아일랜드 자유국이 성립되면서 해체되었다. 1922년 8월, 윌리엄 토마스 코즈그레이브가 아일랜드 자유국 집행평의회의장으로 취임했다. 1934년 아일랜드 자유국은 잉글랜드 런던에서 열린 코먼웰스 게임에서 선수단을 파견했다.

에이먼 데 벌레라

에이먼 데 벌레라(아일랜드어: Éamon de Valera [e:mˠɔn̪ˠ dʲɛ vʲal̪ʲɛɾʲa], 영어: George de Valero 조지 데 발레로[*], 1882년 10월 14일 ~ 1975년 8월 29일)는 아일랜드의 교사, 정치인이다. 미국 뉴욕 출신인 그는 영국에 대항해 아일랜드 독립에 힘썼으며 아일랜드 임시정부의 수반을 맡았다.

그는 아일랜드 자유국의 대통령, 아일랜드 공화국의 대통령을 역임했다. 또한 아일랜드 제헌의회의 의장이었으며 아일랜드의 총리(티셔흐)를 3번(1937년 12월 29일 ~ 1948년 2월 18일, 1951년 6월 13일 ~ 1954년 6월 2일, 1957년 3월 20일 ~ 1959년 6월 23일) 역임했다. 데 발레라는 20세기 아일랜드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예수의 부활

예수의 부활(resurrection of Jesus, 復活)은 안식일 전날(현재의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안식일 다음날(현재의 일요일)에 무덤에서 되살아 난 것을 말한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의 가장 중심적인 신앙 내용을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인간이 죽음에서 되살아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고 되살아 난 것으로 스스로 하느님이자 인간임을 보여 주는 것이며 나아가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이 됨 보여주는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인간의 죄과(罪過)를 씻기 위한 죽음이지만, 부활은 인간의 죄와 그 결과인 죽음을 이겼다는 것을 나타내며, 이로써 하느님 스스로가 생명과 죽음의 주(主)임을 계시했다고 성경에서는 말한다. 바울 도 "만일 예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들의 선교(宣敎)는 헛된 일이며, 또한 여러분의 신앙도 헛된 것이다"(고린도 전서 15:14)라고 말했으며, 또한 그 스스로가 부활한 그리스도와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듯이,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엇보다도 신앙적인 계기가 되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의 십자가형

예수의 십자가형과 잇따르는 죽음은 기원 후 1세기 동안 벌어진 사건이다. 복음서마다 예수가 처형된 날과 십자가에서 한 말에서 차이가 있지만,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보도한다. 기독교인들이 성자, 메시아(그리스도)로 여기는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마친 후 성전의 경비병들에게 체포되어 유대인들의 자치적 종교기구인 산헤드린 의회에서 심문을 받았다. 로마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에게 채찍질로 고난을 받았으며, 십자가형을 언도받아 처형되었다. 이러한 수난에서 십자가형으로 인한 예수의 고통과 죽음은 신학적으로는 구원론과 속죄와 더불어 그리스도론의 중대한 면모를 보여 주며, 역사적으로는 예수가 로마제국과 종교권력의 결탁에 의해 위험인물로 여겨져 처형된 이야기이다. 기독교의 공통된 성사(성례전)인 성만찬은 이러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성만찬에 임재한 예수와 연합하는 성사이다.

제임스 코널리

제임스 코널리(영어: James Connolly 아일랜드어: Séamas Ó Conghaile 세마스 오 콩갈러, 1868년 6월 5일 - 1916년 5월 12일)은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이며 아일랜드의 사회주의 지도자이자 혁명가이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출생했다. 11세 때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했는데 이것은 그가 사회주의자로 성장하게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1912년에 제임스 라킨과 함께 아일랜드 노동당을 창당했으며 이듬해에 노동자 파업을 주도하였는데 그가 주도한 파업은 유혈사태로 번져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었다.

1916년에 더블린에서 발생한 부활절 봉기는 막바지에 취소될 위기에 놓였으나 그는 봉기를 강행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조지프 메리 플렁켓과 봉기 계획을 수정하며 다듬었다. 그는 아일랜드 민병대의 지휘관으로서 봉기를 주도했으나 도중 총상을 입었고 결국 영국군에게 붙잡혀 총살당했다.

그는 존 맥클렁과 같은 사회주의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기념비는 더블린의 독립기념관에 있다.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에 대한 영화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이 인용되어있다.

"우리가 내일 당장 영국군을 몰아 내고 더블린 성에 녹색기를 꽂는다 해도 사회주의 공화국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노력은 모두 헛될 뿐이며 영국은 계속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지주와 자본가, 상권을 통해"

춘분

춘분(春分)은 24절기의 하나로, 3월의 중기이다. 태양 황경이 0°가 되는 때를 말한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로, 이 날 이후부터 하루 중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길어진다.

양력으로 3월 21일(윤년: 3월 20일)이다. 서양에서는 대체로 춘분 이후부터를 봄으로 보며, 기독교에서는 부활절 계산의 기준점이 되는 역법상 매우 중요한 날이다.

일본에서는 24절기 중 춘분과 추분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이란에서는 누루즈라고 불리며 이란 및 서아시아 북부와 투르키스탄 일대의 투르크 문화권에서는 대표적인 행사이다.

패트릭 피어스

패트릭 헨리 피어스(Patrick Henry Pearse, 아일랜드어: Pádraic Anraí Mac Piarais 파드라크 안라 막 피어라스. 1879년 11월 10일 - 1916년 5월 3일)는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자,교사,시인,혁명가이다. 더블린에서 출생하였으며 열렬한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이다. 평범한 인문학도의 길을 걸은 그는 20대 초반에 An Claidheamh Soluis의 편집장을 맡았다. 30대가 되자 아일랜드 무장독립투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열렬한 민족주의자가 되었다.

1916년 더블린에서 발생한 부활절 봉기를 이끈 지도자들 중 한 명이며 더블린 중앙 우체국 앞에서 부활절 선언으로 알려져있는 아일랜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였다. 영국군에게 체포되어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총살당하였다. 그는 아일랜드 독립의 위대한 공헌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아일랜드인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아일랜드 현대 포크송인 'Oro se do Bheatha Bhaile' 를 작사하기도 했다.

피어너 에런

피어너 에런(아일랜드어: na Fianna Éireann)은 1909년에 불머 홉슨과 마르키에비츠 백작부인이 설립한 아일랜드 국민주의 청년단체다. "피어너 에런"은 "아일랜드(=에린)의 전사들(=피어너)"이라는 뜻이다. 아일랜드 공화주의 형제단(IRB) 및 그 군사행동대인 아일랜드 의용군의 설립에 피어너 에런 단원들이 많이 가담했다. 1914년 호스 총기 밀반입 사건과 1916년 부활절 봉기에도 참여했다. 독립전쟁 때도 활발히 움직였으며 내전 때는 조약 반대파에 섰다.

1931년 조약 찬성파가 승리해 수립된 아일랜드 자유국 정부는 피어너를 불법화했다. 1932년 피어너 팔이 집권하면서 불법화가 해제되었지만 1938년 다시 불법화되었다. 20세기 하반기에 아일랜드 공화주의 운동이 분열되는 가운데 피어너 에런은 아일랜드 여성평의회와 함께 1969년에 신페인당(PIRA)을, 1986년에는 공화 신페인당(CIRA)을 지지했다.

피어너 에런은 영국의 2000년 테러법에 따른 금지 단체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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