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케네 문명

뮈케나이 문명 또는 미케네 문명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북동부 아르골리스미케네의 유적지에서 이름을 따온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일컫는다. 아테나이, 필로스, 테바이, 티린스도 미케네 문명의 주요 영역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청동기 시대 말기는 호메로스서사시 등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신화가 탄생한 시기이며, 고대 그리스의 최대 전성기에 해당한다.

무역의 혜택을 입은 미노스 문명과 달리 미케네인들은 전쟁과 무역을 통해 발전했다.

Sites mycéniens
미케네 문명의 주요 지역

설명

MaskAgamemnon
미케네의 장례 가면
하인리히 슐리만은 이것이 "아가멤논의 마스크"라고 주장했다.
La Dame de Mycènes, fresco
미케네의 프레스코

미케네 문명은 헬라도스 문화(Helladic culture)가 미노스 문명의 영향으로 발달하던 기원전 17세기에서 동부 지중해에서 청동기 문명이 쇠퇴하던 기원전 12세기까지 번성했다. 미케네의 멸망은 흔히 도리아인의 침략 때문이라고 보는데, 그 밖에 자연 재해나 기후 변화같은 가설도 제기되고 있다.

미케네 문명의 주요 도시는 아르골리스의 미케네와 티린스, 메세니아의 필로스, 아티카의 아테네, 보이오티아의 테베와 오르코메노스, 테살리아의 이올코스이다. 크레타에서 미케네인들은 크노소스를 정복했다. 또 전형적인 가내 성소의 형태인 레르나 신앙 같은 의식이 치러진 지역도 있는데, 미케네인들은 일반적인 형태의 신전 건물을 건설하지 않았다. 미케네의 취락은 에페이로스[1], 마케도니아[2], 에게 해의 섬들, 소아시아 해안, 키프로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선형문자 B로 비문이 쓰인 미케네의 유물은 심지어 독일[3]에서도 발견되며, 조지아에서 미케네의 검이 발견되기도 했다.[4]

미케네 문명은 귀족 전사 계급들이 통치했다. 기원전 15세기 경에 미케네인들은 미노스 문명의 크레테 섬까지 진출했으며, 미노스 문자(선형문자 A)를 받아들여 선형문자 B로 차용했다.

미케네인들은 미노스인들을 패배시켰을 뿐 아니라, 그리스 전설에 따르면 미케네의 강력한 적수였던 도시국가 트로이아를 두 번이나 패퇴시켰다고 한다. 이 멸망의 증거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그 밖에 신화에 경도된 사료에서만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에, 트로이아와 트로이아 전쟁의 존재는 확실하지 않다. 1876년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은 소아시아(터키) 서부 히사리크에서 유적을 발굴하고, 이 지역을 트로이아라고 주장했다. 다른 증거에 따르면, 이 유적은 트로이아에 대한 호메로스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5]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6]

미케네의 귀족들은 아치형으로 된 높은 천장에 크고 둥근 매장실이 있고, 돌로 만든 직선 통로가 있는 벌집 무덤(tholoi)에 매장되었다. 미케네인들은 이런 무덤에 망자와 함께 검이나 다른 무구들을 함께 묻었다. 귀족들은 으레 황금 가면, 관, 갑주, 보석 박힌 무기 등도 부장품으로 묻었다. 망자는 앉은 자세로 묻혔으며, 호메로스의 기록에서 철기 시대식으로 아킬레우스파트로클로스처럼 화장(火葬)되어 황금 항아리에 담긴 것이 아니라 미라로 매장된 귀족 무덤도 있다.

사제 계급은 존재하지 않았다. 도장, 반지, 이들의 몸짓을 묘사한 봉납한 조상(彫像)을 통해 신과 숭배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조상을 보면 숭배자들은 팔을 접거나 오른팔을 들거나 혹은 한 손은 이마에 얹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신은 예수가 나타날 때 취하는 자세처럼 두 손을 들거나 팔을 뻗어 무언가를 주거나 받는 모양이다. 미케네의 범신전에는 필로스와 미케네 시대의 크노소스에서 나온 선형문자 B 비문이 모여있다. 몇몇 신의 이름은 신화 기록의 올림포스의 신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가령 아레스 신은 별명인 에니알리오스(Enyalios)로 나온다. 아폴론은 크노소스에서 "PA-JA-WO"(Paian)이라고 나온다. 더 유명한 것으로는 "A-TA-NA PO-TI-NI-JA"(Athena Potnia, 여신 아테나), "E-RE-U-TI-JA"(Eileithyia, 나중에는 그저 출산 때 숭배되던 신이다), 디오뉘소스, 포세이돈도 있다. 포세이돈의 경우 이미 "지구를 뒤흔드는 신"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고전기 그리스에는 전해지지 않는 배우자 포세이다(Poseida)와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또 필로스에서는 분명 데메테르페르세포네로 보이는 "두 신"이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도 등장한다.

미케네의 궁정 프레스코[7]도 발견되었는데, 특히 필로스, 미케네, 오르코메노스, 테바이, 티린스가 유명하며, 궁정이 아닌 개인 소유의 것도 일부 있다. 초기 프레스코 장식은 LH IIA 시기(기원전 1,500년경)의 것이다. 이것들은 키클라데스의 영향을 받은 것과 미노스에서 직접 유래된 것 모두 미노스 전통을 고수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장식을 줄이고 자신들의 지역에 맞는 주제로 꾸민 것도 있다. 가령 알현실 안에 사자나 날개 없는 그리핀을 두거나, 복도에 조상을 줄 지어 놓거나 하는 식이다. 미노스식의 동물 장식과 달리, 미케네는 자연에 대해서도 동물을 묘사할때 오직 인간에 중점을 두거나, 사냥물로서만 나타내고 있다. 황소가 뛰는 프레스코판은 미케네와 티린스에서 발견된다.

Bronze-age-collapse
청동기 시대 붕괴기(Bronze Age collapse: 1206~1150 BC)의 고대 근동과 고대 그리스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1180년 무렵에 멸망한다. 수많은 도시들이 약탈되고 학살의 흔적이 있었으며고, 이 지역은 역사가들이 그리스 암흑기로 부르는 시대로 넘어가며, 어떤 미케네인들은 아나톨리아나 다른 그리스 섬들 혹은 키프로스로 도주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그리스는 인구는 엄청난 감소를 겪었으며, 궁정과 관련된 제한적인 문자도 사라지고 말았다. 역사가들은 전통적으로 이 쇠퇴의 원인을 외부나 다른 그리스인(이 지역 주민을 복속게 했다는 도리아인)의 침략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일련의 지진이나 대규모 가뭄과 같은 자연 재해나 기후 변화와 같은 가설도 제기되고 있다.

각주

  1. Tandy, p. xii. "Figure 1: Map of Epirus showing the locations of known sites with Mycenaean remains"; Tandy, p. 2. "The strongest evidence for Mycenaean presence in Epirus is found in the coastal zone of the lower Acheron River, which in antiquity emptied into a bay on the Ionian coast known from ancient sources as Glykys Limin (Figure 2-A)."
  2. Aegeobalkan Prehistory - Mycenaean Sites
  3. Bernstein Linear B in Germany{{ Archived 2016년 8월 30일 - 웨이백 머신
  4. Boston University - The Historical Society
  5. Burkert, Walter. Greek Religion, p. 121; Meyer, E. RE Suppl. XIV, pp. 813–815.
  6. See sources cited at Homeric Troy.
  7. For a fuller synopsis of Mycenaean frescoes, see the relevant section of Prehistoric Archaeology of the Aegean, Dartmouth College.
8월 4일 체제

8월 4일 체제는 요안니스 메탁사스의 권위주의 정권으로 1936년부터 1941년까지 그리스를 지배하였다. 이 정권이 프랑코의 스페인이나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이탈리아나 독일 나치즘 등 당시 타국 권위주의 정권과 연관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리처드 클럭은 이 정권이 "표면적으로 파시즘의 가면"을 썼으며 메탁사스는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한 동경을 숨기지 않았으나", "정확하게 보자면 파시스트가 아닌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분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Ancient Greece)란 그리스의 역사 가운데 기원전 1100년경부터 기원전 146년까지의 시대를 일컫는다. 기원전 1100년경은 미노스 문명(3650~1170 BC), 키클라데스 문명(3300~2000 BC), 그리고 미케네 문명(1600~1100 BC)으로 특징지어지는 에게 문명(3650~1100 BC) 즉 그리스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그리스 암흑기(1100~750 BC)가 시작되던 때로, 도리스인의 침입이 있었다고 보는 때이다. 기원전 146년은 코린토스 전투로 고대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때이다. 일반적으로 그리스 고전기(Classical Greece, 510~323 BC)를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시대로 본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동족 의식을 가지고 부분적으로 결합을 이루었으나, 폴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성이 강하여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려는 뜻이 없었고 필요시 여러 폴리스들 간에 동맹을 맺는 형식을 취하였다. 이러한 도시 국가 체제는 당시 세계의 다른 여러 지역에서는 거대한 제국 또는 왕국이 형성되었던 것과는 다른 그리스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323~146 BC) 이전까지 유지되었다.

보통 고대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기틀을 다지고 서남 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전역의 문화에 큰 영향을 준 풍부한 문화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리스 문화는 로마 제국(27 BC~476/1453 AD)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로마인들은 지중해 지역과 유럽에 그리스 문화를 발전하여 퍼뜨렸다. 고대 그리스 문명은 언어, 정치, 교육 제도, 철학, 과학, 예술에 크나큰 업적을 남겼고 이 지역들에서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이슬람 황금 시대(9~13/15 세기)와 서유럽 르네상스(14~16세기 말)를 촉발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또 18세기와 19세기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다양한 신고전주의 부활 운동에서도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되었다

고대 테베

테바이(Θῆβαι)는 보이오티아의 도시국가(폴리스) 중 하나이다. 현재 중앙그리스 주 보이오티아 현의 현도 티바에 해당한다.

보이오티아와 아티케 지방을 가르는 키타이론 산맥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보이오티아 평원의 남쪽 끝을 이룬 곳이다. 이 도시는 그리스 신화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카드모스, 오이디푸스, 디오뉘소스 등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스 군사 정권

그리스 군사 정권 또는 대령들의 정권(그리스어: Το καθεστώς των Συνταγματαρχών) 또는 "7년의 세월"(Η Επταετία)은 1967년부터 1974년까지 그리스를 지배한 우익 군사 정부를 일컫는다. 1967년 4월 21일 아침에 그리스 육군의 일부 대령들이 군사 정변을 일으키면서 시작됐으며, 1974년 7월 24일에 종식됐다.

그리스 암흑기

그리스 암흑기(기원전 1200년경~ 기원전 800년경)는 고대 그리스 역사상의 한 시대인 바다 민족의 분파로 추정되는 도리아인의 침략으로 인해 미케네 문명이 멸망한 기원전 12세기부터 새로운 도시 국가들이 형성되는 기원전 8세기까지를 말한다.

고고학적 증거를 살펴보면 같은 시기에 동부 지중해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문명이 붕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케네 문명의 거대한 궁전이나 대다수의 도시들이 이때 파괴되어 버려졌다. 또 취락의 규모가 크게 작아졌고, 취락의 숫자도 줄어든 것으로 보아 이민족의 침략 외에도 기근으로 인한 인구 감소도 극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케네 문명이 붕괴할 무렵에는 히타이트 문명도 완전히 분열되었고, 트로이아에서 가자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도시가 파괴되었다. 이 시기에는 그리스에서 문자가 쓰이지 않았으며, 의상들은 허름해졌으며 그리스 도기의 장식도 단순해지고 도기들의 대다수가 기하학 무늬를 띄고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기원전 750년까지 해외의 문명국과 모든 접촉이 끊겨져서 문화 발전도 퇴보했다고 여기고 있지만, 에우보이아의 레프칸디 유적에서 나온 유물들을 보면 기원전 800년경부터 이 지역이 동방 지역, 특히 레반트 해안과 문화적ㆍ상업적으로 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그리스 도기의 장식이 크게 화려해졌음을 알수 있으며 그리스 문자 역시 다시 사용되고 시작했음을 알수 있다.

그리스의 역사

그리스의 역사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리스인이 살았던 지역의 역사에서부터 현재의 그리스의 역사까지 폭 넓은 범주를 지니는 역사이다. 역사상 그리스인이 거주하거나 통치하였던 지역은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특정 시기 그리스의 역사에서 다루어지는 지역 역시 변화가 심하다.

최초로 초기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부족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천년에서 기원전 2천년 사이로 추정된다. 고대 그리스의 문명은 이집트에서부터 파키스탄의 힌두쿠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 오늘날 그리스인의 대부분은 1821년 독립한 그리스와 키프로스에 거주하고 있다.

도리스인

도리스인( -人, 그리스어: Δωριεῖς)은 기원전 16세기에서 기원전 12세기 무렵에 그리스 반도로 남하하여 스파르타, 코린토스 등의 폴리스를 건설한 민족이다. 기원전 1200년 그리스 남부로 이동하여 미케네 문명을 파괴하였다. 인도유럽어 분파 중에서 원시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언어를 사용한 아카이아인이 남부 그리스에 정착해 미케네 문명을 새웠다면, 나머지 그리스 분파는 북부에 남아 도리스인이 되었다. 기원전 1200년경 펠로폰네소스 반도(그리스 남부)로 남하하여 미케네 문명을 멸망시킨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선형문자들의 해석으로, 미케네 문명의 몰락 이전에 이미 도리스인 다수가 남하하여 미케네인과 공존했단 설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스 암흑시기인 기원전 8세기|-6세기경 급격한 인구증가로 다른 그리스 종족들과 함께 흑해 북부, 터키 남부, 스페인,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등지에 도시를 건설한 세력으로서, 아카이아인들과 함께 가장 큰 세력을 이룬 민족이다. 그들이 세운 폴리스 중 스파르타가 대표적이다. 스파르타인들은 매우 엄격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스파르타 아이들은 7세 쯤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나 또래 집단들과 공동생활의 하면서 신체 단련과 군사 훈련을 받았다. 훈련 과정에서는 심지어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 용납되기도 하였는데, 그 또한 생존 능력의 하나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육된 시민 전사를 바탕으로 강한 군사력을 가진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의 침략을 막아 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페르시아 전쟁)

미케네

미케네 (Μυκῆναι 뮈케나이)는 그리스의 고고학적인 장소로 아테네의 남서쪽 90km가량 떨어져 있다. 미케네에서 아르고스는 남쪽으로 6km, 코린토스는 북쪽으로 48km 떨어져 있다. 왕궁이 있는 언덕에서는 아르고스 너머에 사로니코스 만이 보인다.

기원전 두 번째 천년, 미케네는 그리스 문명의 주요 중심이었고 남부 그리스의 군사적인 강자였다. 기원전 1600년부터 기원전 1100년까지의 기간은 미케네 문명이라고 불린다.

미케네 그리스어

미케네 그리스어는 기록된 가장 오래된 형태의 그리스어이다. 아직까지 가설로 남아 있는 도리스인의 침입 이전 기원전 16 ~ 12세기 미케네 문명기에 그리스 본토와 크레타섬, 키프로스섬에서 쓰였다. 미케네 그리스어는 기원전 14세기 이전 크레타섬에서 처음 나타나는 선문자 B로 된 기록으로 남아 있다. 대부분의 기록은 크레타섬 중부의 크노소스와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남부의 필로스에서 출토된 점토판에 새겨져 있다. 그 밖에 미케네, 티린스, 테베, 크레타섬 서부의 하니아에서도 점토판이 발견되었다. 미케네 그리스어라는 이름은 미케네 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도시인 미케네에서 따왔다.

선문자 B 점토판은 오랫동안 해독되지 않았으며 어떤 언어로 적혔는지를 두고 추측이 난무했다. 마침내 1952년에 마이클 벤트리스가 선문자 B 해독에 성공한다.

점토판에 새겨진 글은 대부분 목록과 물자 분류표이다. 산문, 신화, 운문은 전혀 남지 않았다. 그렇지만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서도 점토판을 만든 사람들과 그리스 암흑기 이전 미케네 문명기 그리스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서양 미술사

서양 미술의 역사에 관하여 서술한다.

선문자 B

선문자 B(그리스어: Γραμμική Β, 영어: Linear B)는 기록되어 전해지는 가장 이른 시기의 그리스어인 미케네 그리스어를 기록하는데 쓰인 음절문자이며, 기원전 15세기에서 13세기 경까지 크레타 섬과 대륙의 여러 도시에서 사용되었다. 선문자 B는 아직 해독되지 않은 선문자 A에서 유래한 문자이다. 아직까지 알려진 것이 없는 미노스 문명의 언어를 기록하고 있고 1700개의 문자 표본만이 전해지고 있는 선문자 A와는 달리, 선문자 B는 이미 알려진 미케네 그리스어를 기록한 문자인데 삼만개가 넘는 문자 표본을 바탕으로 영국의 건축가이자 독학의 언어학자인 마이클 벤트리스가 1952년에 해독한다.

에게 문명

에게 문명은 그리스와 에게 해에 있었던 청동기 시대 문명이다. 에게 문명은 서로 교류하던 크레타 섬, 키클라데스 제도, 그리스 본토 세 개별 지역의 문명을 이르는 말이다. 청동기 시대 초기에 크레타 섬에 미노스 문명—크레타 문명이라고도 한다—이 들어섰으며, 키클라데스 제도와 그리스 본토에는 각자 고유한 문화가 있었다. 초기 헬라딕 시대에 키클라데스 문명은 그리스 본토까지 영토를 확장하였고, 그리고 중기 미노스 시대에는 크레타 섬에도 영향이 미쳤다. 기원전 1450년(후기 헬라딕, 후기 미노스 시대)부터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이 크레타에 진출하였다.

이도메네우스

이도메네우스 (그리스어: Ἰδομενεύς)는 그리스 신화에서 크레테의 왕으로 미노스의 손자이자 데우칼리온의 아들이다.

그는 헬레네의 구혼자 중에 한 사람이었으며 트로이아 전쟁에서 80척의 배로 크레테군을 이끌고 메리오네스와 함께 그리스 동맹군으로 참전했다. 그는 아가멤논의 충실한 조언자 중 한 사람으로 창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그리스 군의 중요한 장군 중 하나였다. 트로이아 목마를 타코 트로이 성으로 들어간 40명의 용사 중에 한 사람이기도 하다.

트로이아 전쟁이 끝나고 귀환하는 길에 그의 배가 무서운 폭풍우를 만났다. 그는 포세이돈에게 자신의 배와 병사들의 목숨을 살려주면 고향으로 돌아와서 처음 보는 살아있는 것을 포세이돈에게 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약했다. 그러자 폭풍우가 걷히고 그는 무사히 고향 크레테로 돌아왔는데, 고향에서 이도메네우스가 처음 본 살아있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그의 아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쳤는데, 아들을 희생한 것에 신들의 분노를 사서 크레테에 역병이 돌았다. 크레테 인들은 그를 이탈리아의 칼라브리아로 유배하였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1780년 오페라 이도메네오는 바로 이 이도메네우스의 이야기에 기초한 것이다. 오페라에서 ‘바다의 신’(오페라에서는 넵투누스)이 이도메네우스의 아들을 살려주는 대가로 그에게 왕위를 포기하도록 요구한다.

이타카 섬

이타카(그리스어: Ιθάκη) 또는 이타키는 그리스 이오니아 제도에 있는 한 섬으로, 3천 여명 정도 주민이 살고 있다. 케팔로니아 현(케팔로니아 이타카 현)의 독립 지방자치단체로, 케팔로니아 북쪽 해안과 가깝다. 이타카 시는 이타카 섬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타카를 호메로스의 책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고향인 이타카는 이 곳으로 추정된다.

키클라데스 문명

키클라데스 문명(Cycladic civilization), 키클라데스 문화 또는 키클라데스 시대는 에게 해에 있는 그리스의 군도인 키클라데스 제도에 기원전 3000년경부터 2000년경 동안 존재하였던 청동기 시대 초기의 문명이다.

트로이아

트로이아(고대 그리스어: Τροία, 라틴어: Trōia)는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언급되는 지명이다. 호메로스는 Τρωία 외에 이오니아방언 Τρωίη를 더러 쓰기도 하며 혹은 시운 때문에 Τρωες라고 쓰기도 한다. 호메로스는 자주 트로이아를 일리오스 (Ίλιος 혹은 드물게 Ίλιον)라고 부르기도하며 라틴어로는 일리룸(라틴어: Ilium)이라고 쓰인다. 영어식 발음을 따서 트로이(Troy)라고도 하며, 표준어도 트로이로 등재되어 있다.트로이아 유적은 1998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다.

팔레스타인인

팔레스타인인(아랍어: الشعب الفلسطيني, ash-sha`b al-filasTīni)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는 아랍인과 이 지역 출신의 이주민과 그 후손을 별개의 민족으로서 부르는 명칭이다. 팔레스타인인은 전체의 93%가 이슬람교 신자이고, 6%는 기독교 신자이다.

팔레스타인의 어원은 '필리시테인(Philistine, 블레셋 사람)'인데, 로마 제국 지배 이후에 팔레스타인 지방의 지역명이 되었다. 그러나, 필리시테(블레셋) 사람은 미케네 문명 당시 남부 그리스에서 이주한 그리스계 종족으로 현대의 팔레스타인 사람과는 혈통적으로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을 '아랍인'으로만 부르지만, 모어(母語)가 아랍어였던 아랍인이라 하더라도 유대교도라면 유대인으로 구분한다.

프랑크인의 지배

프랑크인의 지배(그리스어: Φραγκοκρατία, Frangokratia) 혹은 라틴인의 지배(그리스어: Λατινοκρατία, Latinokratia)는 그리스의 역사에서 제4차 십자군(1204년) 이후 그리스의 비잔티움 제국 영토에 여러 서유럽의 십자군 국가가 들어선 시대를 일컫는다. 이 용어는 정교도 그리스인(그리고 대부분의 동부 지중해 사람들)이 가톨릭 계통 서유럽인들을 "라틴인" 혹은 "프랑크인"으로 부른데서 나왔다. 프랑크인의 지배 기간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프랑크인 나라들은 여러 나라로 갈라져 주인이 바뀌면서 정치적 상황이 매우 불안정했으며, 대부분 그리스인의 후계 국가가 수복했다. 이오니아 제도와 베네치아 공화국이 지배하던 외지 항구 몇 곳을 제외하고는 프랑크인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 지역은 14~16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이후 시대를 "투르크인의 지배"(Tourkokratia)라고도 한다.

호메로스

호메로스(고대 그리스어: Ὅμηρος 盲人[*], 그리스어: Όμηρος 오미로스[*], 기원전 8세기경)는 고대 그리스 중 그리스 암흑기 말기에 활동했던 유랑시인이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어로 쓰인 가장 오래된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및 그밖에 여러 시의 작가이며, 맹인 시인으로 알려졌다. 그의 정확한 생몰 년대는 미상이고,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영어식 이름인 호머(Homer)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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