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레바논 공화국(아랍어: الجمهورية اللبنانية‎ 알줌후리야 알리브나니야[*], 프랑스어: République libanaise 레퓌블리크 리바네즈[*]) 또는 레바논(아랍어: لبنان 루브난[*], 프랑스어: Liban 리방[*])은 중동지중해 동부 연안에 있는 이슬람교 54%, 기독교 40.5%의 다종교 국가로, 시리아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수도는 베이루트이다.

좌표: 북위 33° 50′ 동경 35° 50′  / 북위 33.833° 동경 35.833°

루브난 공화국
리방 공화국
아랍어: الجمهورية اللبنانية
프랑스어: République libanaise
Flag of Lebanon Coat of arms of Lebanon
국기 국장
표어없음
국가우리는 우리 나라를 위하여 우리는 깃발과 영광을
Lebanon on the globe (Europe centered)
수도베이루트 북위 33° 53′ 13″ 동경 35° 30′ 47″ / 북위 33.886944° 동경 35.513056°
정치
공용어아랍어, 프랑스어
정치체제공화제, 단일제, 의원내각제
대통령
총리
미셸 아운
사드 하리리
역사
독립프랑스로부터 독립
 • 선언1941년 11월 26일
 • 인정1943년 11월 22일
지리
면적10,452 km2 (166 위)
내수면 비율1.6%
시간대UTC+2 (UTC+2)
DST+3
인구
2016년 어림5,988,000명 (129위)
인구 밀도358명/km2 (26위)
경제
GDP(PPP)2012년 어림값
 • 전체$642.2억 (83위)
 • 일인당$15,757 (61위)
HDI0.745 (72위, 2012년 조사)
통화파운드 (LBP)
기타
ISO 3166-1422, LB, LBN
도메인.lb
국제 전화+961

역사

좋은 항구를 가진 혜택으로 레바논은 옛날부터 교역의 중심지로 번영하여 왔다. 기원 전 3000년경부터 페니키아인이 해안지대를 근거지로 하여 티루스(지금의 티레)·시돈 등의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그 뒤, 바빌로니아·페르시아 제국·로마 제국 등의 지배를 받았는데, 로마는 기원전 64년에 레바논을 점령했다. 로마 시대에는 티루스에 해군기지가 설치되었으며, 서기 300년대에 기독교가 널리 퍼졌다. 395년에 레바논은 비잔틴 제국의 일부분이 되었다.

600년대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아랍인들에게 정복된 후부터 아랍화·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이 시대에는 산악지대가 이슬람교의 분파인 시아파·드루즈파 등과 마론파 기독교인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11~12세기에는 셀주크 터키와 십자군의 쟁탈장이 되었으며, 1516년오스만 제국에게 정복되어 19세기까지 이 제국의 술탄 밑에서 반독립적인 여러 세력이 레바논을 지배했다.

19세기에 들어서자 오스만 제국은 레바논의 직접적인 지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으며, 마론파 기독교도와 이슬람교의 분파인 드루즈교도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살해되었다. 이 분쟁에 프랑스가 개입한 것을 계기로 1861년 마론파 기독교인들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했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함에 따라 1920년 4월 산 레몬 회의에서 베카고원 등의 내륙부도 레바논에 합병되었으며, 1923년에는 시리아 등과 함께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1926년 시리아에서 분리되어 위임통치 아래 자치국이 되었고, 1944년 1월에 완전독립을 달성했다.

독립 뒤 레바논은 복잡한 종파(宗派)의 대립을 배경으로 독특한 종교연합국가를 형성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중립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철저한 자유화 정책을 추진하여 아랍 여러 나라의 물자와 정보 제공의 중간자적 역할로 독자적인 번영을 유지했다. 그러나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 일어난 중동전쟁에 말려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1970년의 요르단 내전 이후 요르단으로부터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유입되어 레바논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근거지가 되었다. 이후 레바논에서의 기독교인과 이슬람교인의 수가 거의 비슷하게 되어 마론파 기독교인들의 우위는 무너졌으며, 그 뒤 정세불안은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종종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을 받았으며, 마론파 기독교인들도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반대하는 팔랑헤(Phalange) 민병대를 결성했는데, 이스라엘이 팔랑헤 민병대를 지원하였으며 지금도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친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단체와 헤즈볼라 무장단체 소탕을 위해 계속 팔랑헤 민병대 정당인 카테브당을 계속 지원하고 있는 중이다.

1975년 2월에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을 지원하는 이슬람교도와 이에 반대해 팔랑헤 민병대를 결성한 마론파 기독교인들의 내전이 일어났으며, 1976년 11월에는 시리아군의 개입을 초래했다. 또한 1982년 6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여 PLO 소탕을 위해 서(西)베이루트를 완전히 포위하고, 2개월에 걸쳐서 맹폭격을 가했다.

그해 8월 미국의 중재에 의하여 PLO의 서베이루트 주둔 군대의 철수 합의가 성립되어 약 1만 명의 PLO 게릴라는 아랍 세계 8개국으로 퇴거했다. 이후에도 1982년 9월의 기독교 민병의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사건, 1983년 7~9월의 기독교·이슬람교 각 파에 의한 내전 격화와 미국 해군의 함포사격, 1983년 10월의 미국 및 프랑스의 주둔 본부에서의 폭탄테러사건 등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1984년 1월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이슬람교도 세력과 정부군·기독교 민병대의 내전이 또다시 격화되었으며, 미국 해군은 이슬람교 민병대 거점에 재차 함포사격을 가했다. 그해 2월 이슬람교 세력이 총궐기하여 서베이루트를 제압했으며, 3월에는 시리아의 주도 아래 정전(停戰)이 실현되었다. 2006년에는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았다.

정치

레바논은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에게 같은 수의 의원을 보장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각각 64명의 의원이 할당되어 총 128명으로 의회가 구성된다.[1] 선거구에 따라 종파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며, 이웃 국가인 시리아의 영향력도 강한 편이다. 레바논의 정당 가운데 하나인 헤즈볼라는 미국 등의 국가로부터 테러 단체로 취급받기도 한다. 현재 레바논 팔랑헤 민병대 단체 출신이 집중되어 있는 기독교 마론파 우파성향의 카테브당은 현재 이스라엘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지리 및 기후

레바논은 산맥과 안티레바논 산맥이 나란히 북에서 남으로 뻗어 있고 그 사이에 평지가 있다. 평지는 그 밖에도 협장(狹長)한 해안 평야가 있다. 기후는 지중해성이지만 강우량은 동쪽으로 감에 따라 감소한다.

레바논은 연중 약 300일간 맑은 날씨를 보인다. 겨울에도 해안지역은 따뜻하고, 산간지역에만 눈이 내린다. 여름에는 해안지역은 덥고, 산간지역은 따뜻하다. 이러한 기후 조건 덕분에, 레바논에서는 봄 동안에 같은 날 산에서는 스키를 타고, 해변에서는 해수욕을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해안지방에서도 눈발이 내리거나 여름에는 드물게 40도 이상으로 올라갈 때도 있다.

언어

1990년 헌법 11조에 "아랍어는 공용어이다. 법률은 프랑스어를 사용할 경우를 결정할 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부처는 프랑스어도 아랍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비중을 높여가는 영어는 일상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아르메니아어랑 아람어도 쓰인다.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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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별 인구 비율      이슬람교 (51%)     기독교 (45%)     드루즈교 (5%)

레바논은 시리아와 함께 공식적으로 이슬람교를 국교로 채택하지 않은 아랍 국가로서, 여러 종파를 인정한다. 무슬림의 수가 많지만 종래 정치적으로 우세를 보인 기독교 정치 세력의 힘이 상당하기 때문에 비이슬람 국가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종파적 다양성은 레바논 사회에 정치적 통일이라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2]

레바논의 인구 구성은 아랍인이 95%, 아르메니아인이 4%이며, 종교는 이슬람교 54%(수니파 27%, 시아파 27%), 기독교 40.5%, 드루즈교 5.5%이다.[3] 기독교마론파가 21%로 기독교인의 절반을 조금 넘고, 동방정교회가 8%,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5%, 그 밖의 기독교 종파들이 6.5%를 차지한다.[3]

마론파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80년)에서 그리스도 단의론적 이단으로 낙인찍혔으나, 후에 십자군 관계로 12세기에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제5차 라테란 공의회(1512-1517) 이래로 오늘날까지 그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600년대아라비아 반도에서 온 이슬람교 세력이 레바논 지역을 정복하면서 서서히 아랍화·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지금의 레바논은 프랑스시리아를 독립시킬 당시 마론파 기독교인이 다수 거주하던 프랑스시리아의 서남부 해안가를 분리해 독립시킨 곳으로서 독립 당시에는 기독교 비율이 절반을 넘었으나, 현재는 오히려 이슬람 인구가 절반을 넘어 기독교 국가도, 이슬람 국가도 아닌 다종교, 자유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현재는 무슬림의 수가 많지만 독립 당시의 인구를 바탕으로 마론파 기독교 정치세력이 힘의 우위를 보여왔기 때문에 양측간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기독교계가 대통령을 차지해 왔는데, 최근에는 증가한 인구를 바탕으로 이슬람교계의 입김이 강하져 기독교인대통령은 이슬람계의 지원을 얻지 않고서는 국정을 운영하기 어려우며 심지어는 대통령의 선출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레바논에서는 정계에서 기독교인과 이슬람교인이 동등하게 자리를 나누어 힘의 균형을 이루어 종교 간의 공존을 도모하고 있지만, 이러한 정치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에는 심각한 무능과 부패, 혼란에 빠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4][5][6]

군대

레바논은 2007년 2월 10일 레바논 국회의 징병제 폐지안에 따른 헌법 개정으로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했다.

2015년 2월 9일 IS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 정부는 레바논에 2500만 달러 상당의 무기를 지원해줬다. 레바논은 미국의 무기지원국 중 5위에 속한다.

외교

레바논은 유럽 연합과의 협력조약에 관하여 2001년말 협상을 끝내고, 양측은 2002년 1월에 조약을 가조인하였다.

대한관계

레바논은 남북한 동시수교국이었지만 종파에 따라 대한관계의 시각도가 매우 다른 나라이다. 우경성향의 그리스도파, 특히 친이스라엘 성향의 마론파 기독교 민병대 정당인 레바논의 카테브당은 남한에 호의적인 관계를 보이고 있으며, 좌경성향의 이슬람파, 특히 친이란 성향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는 북한에 호의적인 관계를 보여서 사실상 등거리 외교노선을 걷고 있다. 1981년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함께 동시 수교했다. 최근 임종석 비서실장은 레바논을 방문하였다.

기아문제

레바논의 기아문제는 많이 개선된 상태이다. 아일랜드 NGO인 컨선월드와이드(Concern Worldwide), 독일의 NGO인 세계기아원조(Welthungerhilfe) 그리고 미국의 연구기관인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가 협력하여 매년 발간하는 세계기아지수(GHI)에 따르면, 2016년 레바논의 기아지수는 100점 만점 중 7.1점으로 가장 심각한 기아점수를 기록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46.1점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양호한 상태이다. 이는 조사 대상이었던 118개의 개발도상국 중 26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하지만 꾸준히 눈에 띄는 하락세를 보여온 다른 나라들에 비해 1992년의 11.4점에서 2016년까지 겨우 4점 정도의 감소를 보인만큼 그 개선 정도가 매우 느리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기아종식을 위해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7]

각주

  1. 레바논 개관 - (2) 레바논의 정부 구조 駐레바논 한국 대사관. 2015년 9월 8일 확인.
  2. 김성례, 〈레바논 내전에 관한 연구 : 종파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조선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02.8.) 1쪽. "레바논은 중동의 아랍 국가들과는 다른 복합적인 특징이 있다. 대부분의 아랍 국가가 이슬람만을 국교로 정하고 있으나, 레바논은 여러 종파를 인정한다. 무슬림의 수가 많지만 기독교도가 힘의 우세를 보이기 때문에 기독교 국가 또는 비이슬람 국가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종파적 다양성이 레바논 사회를 통일시키는데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다."
  3. CIA The World Factbook CIA, 2015년 10월 4일 확인.
  4. 레바논 '쓰레기 대란' 폭풍전야 조선일보, 2015.8.31.
  5. 유엔 안보리, 레바논에 새 대통령 선출 촉구…레바논 의회, 정족수 미달로 또 파행 연합뉴스, 2015.9.3.
  6. 해변이 쓰레기장으로…레바논 '폐기물 위기' Archived 2018년 1월 27일 - 웨이백 머신 뉴스1, 2018.1.26.
  7. 컨선월드와이드(Concern Worldwide), 독일의 NGO인 세계기아원조(Welthungerhilfe) 그리고 미국의 연구기관인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 (2017년 10월 13일). “Global Hunger Index-기아가 없는 세상”. 《2016 세계기아지수 보고서》. 2017년 7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8월 18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11월 7일

11월 7일은 그레고리력으로 311번째(윤년일 경우 312번째) 날에 해당한다.

1958년 레바논 위기

1958년 레바논 위기는 레바논에서 일어난 종교적, 정치적 긴장에 미군의 간섭이 합쳐져 촉발된 정치적 위기이다. 미군의 간섭은 개입을 요청한 레바논의 대통령 카밀 샤문이 임기를 끝내기까지 약 3개월간 개속되었다. 미군과 레바논 정부는 베이루트 항과 베이루트 국제공항을 장악했다. 위기가 끝나자 미군은 베이루트에서 철수했다.

2000년 AFC 아시안컵

2000년 AFC 아시안컵은 2000년 10월 12일부터 10월 29일까지 레바논에서 개최된 12번째 AFC 아시안컵이다. 일본은 사우디아라비아를 결승전에서 모치즈키 시게요시의 결승골로 1-0으로 누르고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10년 동계 올림픽 레바논 선수단

2010년 동계 올림픽 레바논 선수단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2010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한 올림픽 레바논 선수단이다.

2018년 동계 올림픽 레바논 선수단

2018년 동계 올림픽 레바논 선수단은 대한민국 평창에서 개최된 2018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는 올림픽 레바논 선수단이다.

이번 대회에서 레바논은 남자 2명과 여자 1명, 총 3명의 선수가 두 종목에 참가하였다.

동부넓은이빨들쥐

동부넓은이빨들쥐(학명: Apodemus mystacinus)는 붉은쥐의 일종이다. 알바니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조지아, 그리스, 이란, 이라크,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에서 발견된다.

레바논 내전

레바논 내전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레바논에서 일어난 내전이다. 15만에서 23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인구의 1/4인 백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35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

레바논 요리

레바논의 요리(المأكولات اللبنانية)는 채소나 샐러드, 수프 종류가 많고 허브 종류를 곁들여 만들어서 지중해 연안의 고급스러운 요리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세계적으로 인지되고 있는 레바논 요리의 대표는 마자(Maza)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메제(Mezze)라고도 쓰며 이것은 다양한 애피타이저 요리를 모아 놓은 경우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중해 연안의 다른 국가들이 취하고 있는 식단처럼 레바논의 경우도 아주 균형이 잡힌 건강한 식단으로 꼽힌다. 때문에 레바논의 음식은 지중해 식단으로 들어가는 서곡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과일이나 채소, 해물, 생선을 많이 먹고 동물성 지방은 그다지 많이 먹지 않는다. 가금류를 돼지고기나 소고기 따위의 붉은 고기보다 많이 먹고 대개는 양고기를 먹는다. 마늘이나 올리브유 소비가 많다는 점도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레몬 주스로 양념을 하기도 한다. 대개 요리를 해먹을 때는 석쇠에 구워 먹거나 적은 기름에 살짝 익혀서 먹고 버터나 크림 종류의 첨가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채소의 경우에는 씻어서 샐러드로 먹기도 하고 조리를 해서 살짝 데쳐 먹기도 한다. 레바논 요리의 특성 상 소스가 아주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신선한 재료를 돋보이게 해주는 허브나 약초를 쓰기 때문에 요리에서 다양한 재료를 한데 넣어서 만들 수 있다면 레바논 요리에는 그 한계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절에 따라서 먹는 요리나 조리 방식이 많이 달라지는 편인데 지중해식 식단답게 입맛을 돋우게 하며 많은 향을 첨가하기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맛을 선호한다.

레바논 축구 국가대표팀

레바논 축구 국가대표팀은 레바논을 대표하는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레바논 축구 협회에서 운영한다. 아시아의 복병이자 최약체로 불리는 팀으로 1940년 4월 27일 이스라엘과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뤘으며 현재 카밀 샤문 스포츠 시티 경기장과 사이다 국제경기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베이루트

베이루트(아랍어: بيروت 바이루트[*], 프랑스어: Beyrouth, 문화어: 바이루트)는 레바논의 수도이며, 베이루트 주의 중심지이자 레바논 최대의 도시다. 또 지중해에 접한 레바논 제일의 해항이다. 베이루트에는 약 18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은 크리스트교도(마론파,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가톨릭교, 가톨릭교, 개신교), 이슬람교도(수니파, 시아파, 또 드루즈파) 등 소수종교로 나뉘어 있고 중동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다양한 도시의 하나이다. 베이루트 유태인의 대부분은 1975년에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미국으로 이주했고, 현재는 뉴욕 시의 브루클린지구에 사는 사람이 눈에 띄고 있다. 베이루트는 레바논 내전 때에 분열해, 이슬람교도의 서부와 크리스트교도의 동부로 분할되었다.

베이루트는 레바논에서는 상업, 은행업 및 금융의 중심지이며,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교, 비즈니스 컴퓨터 대학교, 하가지안 대학교, 레바논 대학교, 아메리칸 레바논 대학교, 아메리칸 과학기술 대학교, 베이루트 아랍 대학교 등 21개의 대학이 있다.

베이루트 국제공항이 있다. 2009년 프랑코포니 경기 대회의 개최지이다.

스텝들쥐

스텝들쥐(학명: Apodemus witherbyi)는 붉은쥐의 일종이다.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스라엘, 터키, 요르단,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에서 발견되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에서도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 헤르몬산들쥐(A. hermonensis)과 노랑가슴들쥐(A. fulvipectus)를 별도의 종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시리아-레바논 전역

시리아-레바논 전역(영어: Syria–Lebanon Campaign) 또는 엑스포터 작전(Operation Exporter)은 작게는 중동 전선 (제2차 세계 대전)에 포함되고 크게는 지중해 전역에 포함된다. 연합국이 비시 프랑스에 의해 점령당한 레바논과 시리아 공화국을 탈환할 때까지의 전역이다.

시리아 내전의 레바논 확산

시리아 내전의 레바논 확산은 시리아 내전의 영향으로 시리아 정부 지지 및 반대자들이 레바논 내부에서 분쟁을 일으킨 사건이다. 레바논에서 폭력 사태가 재발된 사태가 됐으며, 이는 레바논의 수니 이슬람은 반군을 지지하는 반면 시아파는 아사드 대통령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레바논 전역에서 살해, 소요 및 외국인 납치가 자행되고 있다.

2011년 중반 7명이 사살되고 59명이 트리폴리에서 총기 난사로 피해를 입었고 2012년 5월 이러한 갈등이 베이루트로 퍼지면서 후에 남부와 동부 지역으로 확산돼 북부 지방에 레바논 군대가 파병됐다. 2013년 12월 최소 355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2,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레바논의 정치 지형상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지하는 반 시리아 세력이 3월 14일 시위를 벌였고 이란이 지지하는 친시리아 세력은 3월 8일 시리아 정부 지지 시위를 열었다.

ISIL도 참여한다.

아랍어

아랍어(아랍어: اللغة العربية)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의 셈어파에 속하는 언어 중 하나로, 주로 서아시아 및 북아프리카의 아랍권에서 사용된다.

같은 셈어족에 속하는 바빌로니아어, 아시리아어, 페니키아어는 사어가 되었으며 아람어는 시리아와 이라크, 몰타의 일부 지방에서 보존되고 있다. 표기로 아랍 문자를 사용하여 표기하며 굴절어에 속한다. 아랍어의 대다수의 단어는 기본 세 글자의 자음을 어근을 바탕으로 한다. 이 바탕에 모음 및 접두사, 접미사, 접요사가 부가되어, 여러 어휘를 파생하거나 활용이 이뤄진다. 이렇게 아랍어는 형태론적으로는 굴절어에 속한다.

셈어족에 속한 아랍어는 남서셈어에서 발달되었다. 남서셈어는 아라비아 반도 히자즈 지역을 중심으로 유목 생활을 했던 유목민들의 북방어와 농경 생활을 하던 예멘의 남방어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러나 마리브 댐(مأرب)이 유실되면서 예멘인들이 히자즈 등 아라비아 반도 북부로 이동하게 되었고, 북방어인 히자즈어(أللغة الحجاز رية)가 예멘인들을 비롯한 주변 부족들의 언어와 섞이게 되었다. 한편 꾸라이쉬 부족은 메카의 시장을 장악하였다. 아랍어의 모체인 꾸라이쉬족의 말은 이슬람 이전 시대의 시를 쓰고, 후에 무함마드가 꾸란을 기록하는 데 주로 쓰이면서 표준어가 되었다. 아랍어는 터키어, 페르시아어, 우르두어, 말레이어, 스와힐리어, 하우사어 등의 언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오랜 역사와 넓은 분포를 가진 언어이지만 다른 언어에 비하면 변화가 비교적 보수적이며 매우 점진적이다.

아랍어는 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 등의 아랍 세계에서 약 3억 명이 사용하며 UN 공용어 6개 중 하나이다. 아랍어의 통제기관으로는 시리아 다마스커스에 위치한 아랍어 아카데미,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카이로 아랍어학원을 비롯해서, 몇 국가에 설치된 아랍어 아카데미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 이 기관들은 과학 분야를 제외한 외국어의 차용을 가능한 한 제한하여, 새로운 개념에 대해 단어의 의미를 확장하여 기존 아랍어 어휘로 대응하는 경향이 강하다.

올림픽 레바논 선수단

올림픽 레바논 선수단은 레바논 대표로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단이다.

제1차 중동 전쟁

제1차 중동 전쟁 또는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간의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의 통치권을 두고 벌어졌다. 1948년 팔레스타인 전쟁의 두번째 국면이다. 이슈프와 아랍 사이에는 긴장과 분쟁이 잦았으며, 각각의 군대와 영국군은 1917년 벨포어 선언과 1920년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의 수립 이후 빈번하게 충돌했다. 아랍인들의 반발은 팔레스타인 봉기로 확산되었으며, 유대인들의 저항은 팔레스타인 유대인 반란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분란은 1947년 11월 29일 유엔 팔레스타인 분할안 이후 팔레스타인 내전으로 확산되었다. 이 분할안은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지구와 아랍인 지구, 그리고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포함한 국제연합 통치령으로 분할하려는 것이었다.

1948년 5월 15일, 지속되던 내전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는데, 5월 14일 이스라엘 독립선언에 아랍 국가들이 반발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집트 왕국, 요르단, 시리아 공화국이 연합군을 결성해 이라크 왕국의 해외원정군과 함께 팔레스타인에 진입했다. 침공군은 아랍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고 유대인 정착지와 이스라엘 군을 즉각적으로 공격했다. 이 외에도 레바논, 앵글로-이집트 수단,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예멘 왕국, 모로코 등이 전쟁에 참전했다. 10개월 간의 전쟁은 팔레스타인과 시나이 반도, 레바논 남부에서 벌어졌고 중간에 평화협정도 있었다.전쟁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유대인 지구 전체와 아랍인 지구의 60%를 점령했다. 나머지 지역은 요르단이 요르단 강 서안 지구를 병합하고, 이집트 왕국이 가자 지구를 정복하였다. 1948년 12월 1일 예리코 회담에서 2,000명의 팔레스타인이 팔레스타인과 요르단의 통합을 요구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어떠한 국가도 수립하지 못했다.

지중해긴귀박쥐

지중해긴귀박쥐(Plecotus kolombatovici)는 애기박쥐과에 속하는 박쥐의 일종이다. 알바니아와 알제리, 크로아티아, 키프로스, 그리스(크레타), 이탈리아, 레바논, 리비아, 몰타, 모로코, 세르비아, 튀니지 그리고 터키에서 발견된다.

팬아랍 게임 축구

팬아랍 게임 축구는 1953년 팬아랍 게임부터 시작된 경기 종목이다.

헤즈볼라

헤즈볼라(아랍어: حزب الله 히즈발라[*], 신의 당, 문화어: 히즈볼라흐) 는 레바논에 기반을 둔 시아파 이슬람 무장투쟁 조직이다. 정식 명칭은 레바논 이슬람 저항을 위한 신의 당(히즈발라 알모콰와마 알이슬라미야흐 피 루브난, Hizb Allah Al-moqawama Al-Islamiyah fi Lubnan)이다. 시아파이며 시리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레바논 정규군보다 강력한 무력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국내적으로는 학교 설립 등의 공익 사업을 벌이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방글라데시, 이라크, 이란, 시리아, 러시아, 팔레스타인, 파키스탄, 베트남, 인도, 아프가니스탄 등 동방 국가들의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다.헤즈볼라는 1982년 레바논 전쟁에서 당시 호메이니를 지지하며 이스라엘에 대항한 시아파 민병대에서 출발하여 레바논 내전 당시 이스라엘이 차지했던 레바논 지역에서 저항 활동을 하였다. 헤즈볼라의 지도자들은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군대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조직하여 훈련을 받기도 하였다.1985년 헤즈볼라의 강령에는 세 가지 주요 목표로 레바논에서 "식민주의자를 물리치며", 레바논의 우파 무장집단인 카테브 당에 대해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심판하며, 레바논에 이슬람 정권을 세우겠다고 제시하였다. 헤즈볼라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의 아랍 침략 행위를 규탄하는 언설을 수차례 쏟아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테러단체인 미국은 헤즈볼라의 정당한 투쟁 행위를 폭동이라고 폄하하고 있다.작은 민병대로 출범한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부에 진출하였으며, 라디오와 위성 텔레비전 방송국을 갖추고 사회 발전 계획을 추진하는 단체로 성장하였다. 레바논의 시아파 사람들은 헤즈볼라를 열렬히 지지하며, 이들은 2006년 레바논 전쟁 직후 레바논의 타종교 신자(순니파, 기독교 신자, 드루즈파)의 지지도 얻었으며, 시위에서 수십만 명을 끌어모았다. 헤즈볼라와 여러 단체들은 2006년에서 2008년 사이 레바논 푸아드 시니오라 총리의 정부에 반대하여 시위 운동을 개시하였다. 헤즈볼라가 주도하는 전사들이 시니오라에 충성하는 미래 운동 민병대를 물리치고 서부 베이루트 인근 지역을 점령했다가, 이 지역을 레바논 군대에 넘기기도 하였다. 결국 도하 협정을 근거로 헤즈볼라는 레바논 의회에서 거부권을 얻었다. 또 레바논 연립 정부가 구성되어, 헤즈볼라 출신 장관 한 명이 입각하였으며, 의회 내 30석 중 11석을 확보하였다.헤즈볼라는 이란과 시리아의 재정 지원을 받으며, 레바논과 여타 시아파 교도의 기부를 받고 있다. 레바논은 지난 몇 년 동안 군사력을 크게 증강하였다. 2008년 6월 유엔에서 이스라엘이 레바논 영토에서 철수할 것을 보장하였지만,

그해 8월 레바논의 새 내각은 만장일치로 헤즈볼라를 무장 단체로 인정하며 "점령지를 회복하는"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안에 승인하였다. 1992년 이래 헤즈볼라는 하산 나스랄라 사무총장이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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