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세기

기원전 3세기기원전 300년부터 기원전 201년까지를 말한다.

기원전
40 39 38 37 36 35 34 33 32 31
30 29 28 27 26 25 24 23 22 21
20 19 18 17 16 15 14 13 12 11
10 9 8 7 6 5 4 3 2 1
기원후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주요 사건

주요 인물

년대와 년도

기원전 300년대 전309 전308 전307 전306 전305 전304 전303 전302 전301 전300
기원전 290년대 전299 전298 전297 전296 전295 전294 전293 전292 전291 전290
기원전 280년대 전289 전288 전287 전286 전285 전284 전283 전282 전281 전280
기원전 270년대 전279 전278 전277 전276 전275 전274 전273 전272 전271 전270
기원전 260년대 전269 전268 전267 전266 전265 전264 전263 전262 전261 전260
기원전 250년대 전259 전258 전257 전256 전255 전254 전253 전252 전251 전250
기원전 240년대 전249 전248 전247 전246 전245 전244 전243 전242 전241 전240
기원전 230년대 전239 전238 전237 전236 전235 전234 전233 전232 전231 전230
기원전 220년대 전229 전228 전227 전226 전225 전224 전223 전222 전221 전220
기원전 210년대 전219 전218 전217 전216 전215 전214 전213 전212 전211 전210
기원전 200년대 전209 전208 전207 전206 전205 전204 전203 전202 전201 전200
기원전 190년대 전199 전198 전197 전196 전195 전194 전193 전192 전191 전190
고겐 천황

고겐 천황 (일본어: 孝元天皇 고겐텐노[*], 기원전 273년 ~ 기원전 158년 10월 14일 (음력 9월 2일))은 일본의 제8대 천황 (재위 : 기원전 214년 2월 21일 (음력 1월 14일) ~ 기원전 158년 10월 14일 (음력 9월 2일))이다. 일본식 시호는 오야마토네코히코쿠니쿠루노미코토 (《일본서기》 : 대일본근자언국견천황, 일본어: 大日本根子彦国牽天皇, 《고사기》 : 대왜근자일자국구유명, 大倭根子日子国玖琉命)이다. 고레이 천황과 구와시히메노미코토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도 계보만 기재되어 있고 사적의 기술은 없다. 특히 제2대 스이제이 천황부터 제9대 가이카 천황까지 8대의 천황이 이에 해당하며 이를 결사팔대(欠史八代/缺史八代)라고 한다. 고겐 천황이라는 시호는 762년 경에 오미노 미후네(淡海三船)가 찬진한 시호이다. 후세 사가가 고겐 천황을 일본 천황의 목록에 포함하였다. 그 실존여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강하지만 황릉은 존재하고 있다.

고겐 천황의 제1 황자인 오히코노미코토(大彦命)는 시도쇼군(四道将軍 : 4도 장군) 중 한 명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아베노오미(阿倍臣)・가시와데노오미(膳臣)・아헤노오미(阿閉臣)・사사키야마노기미(狹々城山君)・쓰쿠시노쿠니노미야쓰코(筑紫国造)・고시노쿠니노미야쓰코(越国造)・이가노오미(伊賀臣) 등 7씨의 시조가 된다.

고안 천황

고안 천황 (일본어: 孝安天皇 고안텐노[*], 기원전 427년 ~ 기원전 291년 2월 27일)은 일본의 제6대 천황(재위 : 기원전 392년 3월 3일 ~ 기원전 291년 2월 27일)이다. 일본식 시호는 야마토타라시히코쿠니오시히토노미코토 (《일본서기》 : 일본족언국압인천황, 일본어: 日本足彦国押人天皇, 《고사기》 : 대왜대일자국압인명, 大倭帯日子国押人命)이다. 고쇼 천황과 요소타라시히메노미코토의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황후는 조카딸인 오시히메(押媛)이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계보만 기재되어 있고 사적의 기술은 없다. 특히 제2대 스이제이 천황부터 제9대 가이카 천황까지 8대의 천황이 이에 해당하며 이를 결사팔대(欠史八代/缺史八代)라고 한다. 고안 천황이라는 시호는 762년 경에 오미노 미후네(淡海三船)가 찬진한 시호이다. 후세 사가가 고안 천황을 일본 천황의 목록에 포함하였다. 그 실존여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강하지만 황릉은 존재하고 있다.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

아리스타코스(고대 그리스어: Ἀρίσταρχος ὁ Σάμιος 아리스타코스 호 사모스[*], 기원전 310년~기원전 230년)는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일했으며, 세계에서 제일 먼저 지동설을 알아낸 사람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기하학을 응용하여 태양이나 달의 크기를 처음으로 계산하였다. 그는 이집트에서 지구의 둥근 크기를 관측하였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제자로는 히파르코스가 알려져있다.

사모스의 코논

사모스의 코논(고대 그리스어: Κόνων ὁ Σάμιος 코논 호 사미오스[*], 기원전 280년 무렵 - 기원전 220년 무렵)은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이다. 머리털자리에 이름을 붙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순자

순자(荀子, 기원전 298년? ~ 기원전 238년?)는 고대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03년 ~ 기원전 221년) 말기의 유가 사상가이자 학자로, 이름은 순황(荀況)이다. 전한 선제의 이름이 비슷하였고, 이를 피하기를 위해서 손황(孫況)이라고도 불렀다. 경칭으로 순경(荀卿) 또는 손경자(孫卿子)로도 불린다.

공자의 사상 중 예(禮)를 강조하여 발전시켰는데,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반대하여, 악한 본성을 예(禮)를 통해 변화시켜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였다. 그의 성악설은 자신의 저서 《순자》의 〈성악(性惡)〉편에 나타난 화성기위(化性起僞: 본성을 변화시켜 인위를 일으킨다)라는 명제로 대표된다. 즉, 사람의 본성은 악하여, 날 때부터 이익을 구하고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면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예의를 배우고 정신을 수련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순자는 한나라에서는 정통적인 유가의 인물로 여겨졌으나, 송나라 시대 성리학의 학풍 속에서 성악설이 비난받으면서부터 그 이래로 오랫동안 유가의 이단자로 간주되어 왔다. 그에 대한 재평가는 청나라 말기에서야 다시 이루어졌다.그의 책 《순자》 전 20권은 오늘날 유교 연구의 귀중한 문헌이다.

아라토스

아라토스(그리스어: Ἄρατος ὁ Σολεύς)는 기원전 3세기의 학자·시인이다. 소아시아 킬리키아의 솔로이에서 출생, 후에 아테네로 옮겨서 마케도니아의 궁전에도 초빙되었다. <파이노메나(Phainomena)>로 명성을 떨쳤다. <엘레게이아> <찬가> <에피그램> 등 많은 시를 썼으나 오늘날에는 <파이노메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소실되었다.

에라토스테네스

에라토스테네스(Ερατοσθένης, 기원전 274년 ~ 기원전 196년)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다. 헬레니즘 시대 이집트에서 활약했으며, 문헌학 및 지리학을 비롯해 헬레니즘 시대 학문 다방면에 걸쳐 업적을 남겼지만, 특히 수학과 천문학의 분야에서 후세에 남는 큰 업적을 남겼다.

지구의 크기를 처음으로 계산해 냈으며, 또 소수를 걸러내는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를 고안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런 업적으로 제2의 플라톤이라고도 불렸다. “베타”(β)란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를 시기하고 경쟁의 상대로 여겼던 어떤 사람은 그를 '베타'라고 불렀다고 한다. 베타는 알다시피 그리스 어 알파벳의 두 번째 글자이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무슨 일을 하든 그 분야에서 여지없이 세계 둘째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베타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라토스테네스가 손을 댄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는 '베타'가 아니라 아주 확실한 '알파'(α)였다."

에우클레이데스

에우클레이데스(고대 그리스어: Εὐκλείδης, 기원전 300년경) 또는 영어식 이름으로 유클리드(영어: Euclid, IPA: [ˈjuːklɪd] 또는 Euclid of Alexandria)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소설가이다. (고대 이집트의 수학자였을 가능성도 있다. 에우클레이데스가 어느 나라 수학자인지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의 재위 기간(기원전 323년~기원전 283년)동안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의 부탁으로 최초의 대학이자 도서관,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알렉산드리아 대학에서 활동하였고(하지만 이 대학은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정확한 위치도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당시 알려진 정수론 및 기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을 집대성한 업적을 가장 높게 평가받고 있다.

장자

장자(莊子, 병음 Zhuāngzǐ, 기원전 369년?-기원전 286년)는 중국 전국 시대 송(宋)나라 몽(蒙; 현재의 안휘성 몽성 또는 하남성 상구 추정) 출신의 저명한 중국 철학자로 제자백가 중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노자(老子) 사상을 계승, 발전시켰다. 본명은 주(周)이다.

후세에 노자와 함께 부를 때 노장(老莊)이라 부른다. 도교에서는 남화진인(南華眞人), 또는 남화노선(南華老仙)이라 부르기도 하며, 《장자》는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 부른다. 《삼국지연의》에서 황건적의 지도자 장각에게 도를 전수하는 선인이 바로 남화노선(장자)이다.

장자는 만물 일원론을 주창하였다. 어느 날 장자는 자기가 나비가 되어 훨훨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잠을 깨니 내가 꿈을 꾸고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을 꾸고 지금의 내가 되어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장자는 이처럼 상식적인 사고 방식에 의문을 품고 유학자들이 말하는 도덕적 가르침 따위는 하잘 것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노자의 생각을 이어받아 자연으로 돌아갈 것과 무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주가 (전한)

주가(周苛, ? ~ 기원전 204년? 203년?)는 전한의 인물로, 어사대부를 지냈다.

진평

진평(陳平, ? ~ 기원전 178년)은 전한 초의 정치가로, 양무현(陽武縣) 호유향(戶牖鄕) 사람이다.

춘추 시대

춘추 시대(중국어: 春秋時期, 병음: Chūnqiū Shíqi: 기원전 770~403)는 중국의 역사에서 기원전 770년에서 기원전 403년 사이 시기를 말하며, 주나라의 동천 이후 진나라의 중국 통일까지 시기를 부르는 춘추 전국 시대 전반기에 해당한다. 이 이름은 공자가 지은 《춘추》(春秋)에서 유래했다.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 경계는 춘추 시대에 열국의 강국 진(晋)이 조·위·한 3국으로 분열해서 동주가 정식으로 승인한 기원전 403년까지로 잡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진의 집정하에 있던 지백(知伯)을 멸망시키고 사실상 3국의 분립이 성공한 기원전 453년으로 올려 잡는 설도 있다.중국의 고대 춘추 시대 제후 간 회맹(會盟)의 맹주를 춘추오패(春秋五覇)라 하는데, 제(齊) 환공, 진(晉) 문공, 초(楚) 장왕, 오(吳) 합려, 월(越) 구천이 있다.

한편 진 목공, 송 양공, 오왕 부차 등을 꼽는 경우도 있다.

칼리마코스

칼리마코스(그리스어: Καλλίμαχος, 기원전 305?-기원전 240?)는 헬레니즘 시대의 시인·학자·비평가이다. 아프리카의 키레네 출신으로 젊었을 때 알렉산드리아에 이주했다. 고전작가에 조예가 깊어 온갖 장르의 시를 썼다. 현학적 냄새가 강하게 풍기기도 하나, 그가 특히 능한 짧은 시형에서는 정교한 세련미가 엿보이고 있다. 고대에 있어서도 그의 명성은 대단하였으며 로마 시인(詩人)들 가운데 모방(模倣)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아이티아> <헤칼레> <찬가> <이암보이> 등의 시와 고전작가의 작품에다 설명을 붙인 목록 120권의 <피나케스> 산문이 있다.

클레안테스

클레안테스(고대 그리스어: Κλεάνθης, 기원전 331년 - 232년)는 고대 그리스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 제논의 후계자이자 철학자이다. 소아시아의 아소스 출신으로 물 긷는 노동을 하면서 제논의 강의를 듣고 후일 그의 후계자가 되었다. 제논의 사후, BC 262년 클레안테스는 스토아 학파의 태두(泰斗)가 되어, 32년 동안 그 지위를 유지했다. 그는 철학을 변증학, 수사학, 윤리학, 정치학, 자연학, 신학 등 6개 분야로 나누었다. 스토아의 신학자(神學者)라고 일컬어져, 신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발상은 그에 의해 확립되었다고 한다. 특히 시(詩) 형태로 사상을 전개하는 것을 장기로 하여 《제우스 찬가(讚歌)》가 전승(傳承)되고 있다.

키티온의 제논

키티온의 제논(고대 그리스어: Ζήνων ὁ Κιτιεύς 제논 호 키티에우스[*], 기원전 335년경 ~ 기원전 263년경)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스토아 학파의 체계적 창시자·수립자로, 키프로스의 키티온 출신이다. 조상이 페니키아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페르게의 아폴로니오스

아폴로니오스(고대 그리스어: Ἀπολλώνιος, 기원전 262년~기원전 190년)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다. 소아시아의 페르게에서 출생하였으며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하였다. 에우클레이데스·아르키메데스와 함께 그리스의 3대 수학자로 불린다. 원뿔 곡선의 성질과 응용의 대부분이 그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저서로 <원뿔 곡선론>이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 (그리스어: Πτολεμαῖος Σωτήρ, 기원전 367년 — 기원전 283년) 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의 마케도니아 왕국의 부하 장군으로 알렉산드로스의 사후 그의 뒤를 이은 이른바 디아도코이 중의 한사람으로 기원전 323년부터 이집트의 총독이 되었고 기원전 305년 통치자가 되었다. 이집트의 헬레니즘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창시자였다. 그의 별칭인 소테르는 "구원자"라는 뜻이다.

피로스

피로스(그리스어: Πύρρος, Pyrros, 기원전 319년 ~ 기원전 272년)는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 의 장군이다. 그는 아이아코스 가문에 속하며 그리스 몰로소이족의 왕이자(기원전 297년경부터), 나중에는 에페이로스(기원전 306년~302년, 기원전 297년~272년)와 마케도니아 왕국(기원전 288년~284년, 기원전 273년~272년)의 왕이 되었다. 피로스는 초기 로마의 강력한 적수였다. 피로스 전쟁에서 그는 로마군과 싸워 여러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그만큼 손실도 많이 입어 피로스의 승리라는 고사를 남겼다. 플루타르코스의 비교 열전에도 그의 일대기가 수록되어 있다.

하후영

하후영(夏侯嬰, ? ~ 기원전 172년)은 진나라 말기의 인물이며, 전한 고조의 개국공신 제8위이다. 패현 사람이다. 병거 몰이를 잘했다.

다른 언어

This page is based on a Wikipedia article written by authors (here).
Text is available under the CC BY-SA 3.0 license; additional terms may apply.
Images, videos and audio are available under their respective licenses.